'꽃뱀'과 피해자 사이

‘꽃뱀’ 과 피해자 사이

한겨레 칼럼 2005-09-21

▲ 정희진/서강대 강사·여성학

며칠 전 상담한 성폭력 가해 남성이 분을 삭이지 못하고 말했다. “합의금으로 500만원 줬는데, 억울해서 잠이 안와요. 여자 몸 좀 만졌다고, 500만원이 말이 안 되죠! 그 돈이면, 하룻밤 5만원 하는 여자들이랑 100번 잘 수 있는데….” 나는 “성매매도 불법입니다”라고 말했지만, 그는 “한 번에 오백이라니…”를 반복했다. 성폭력특별법이 제정된 지 10년이 넘었건만, 그에게 성폭력은 범죄가 아니라 “재수 없어 걸린, 비싼 오입질”이었다. 이 남성만이 아니라 (특히 어린이 성폭력의 경우) 과자나 옷을 사주었으므로 강간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가해자도 많다. 성매매가 성노동이냐 성폭력이냐는 오랜 논란거리다. 하지만, 분명한 점은 노동이든 폭력이든 파는 사람은 여성이고 사는 사람은 남성인 이상, 성매매는 성차별이다(남성이 판다 해도 주로 가난한 남성이 종사하는 계급 문제가 될 것이다. 어떤 경우에도 성매매는 옹호되기 힘들다). 설령, 성판매가 ‘고임금의, 안전한, 존경받는’ 직업일지라도 성매매가 존재하는 한, 성폭력은 근절되기 어렵다.

성폭력과 성매매를 구분하는 강제냐 동의냐, 돈을 지불했느냐 강탈했느냐는 물론 큰 차이다. 그러나, 여성의 성이 교환 가치가 되고, 성 행동에 따라 여성의 인격이 정해지는 가부장제 구조에서 이는 중요한 차이가 아니다. 여성의 성이 자원이 되는 것 자체가 성차별이고 인권 침해다. 남성의 성은 여성에 의해 유통되거나 폭력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성매매 근절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언설은 성매매 유지를 희망하는 남성 시각이지만, 여성의 사랑, 노동, 성 판매가 쉽게 구분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한국은 전 세계에 유례없는, 여성의 성이 매춘화되고 노동은 성애화된 사회다. 성산업 종사 여성뿐 아니라 노동시장에 진출한 거의 모든 여성들에게 ‘여성으로서의 규범’을 노동조건으로 요구한다. 커피 끓여라, 모욕적인 성적 폭언에 ‘여유 있게’ 대응하라, ‘애교’와 같은 성애화된 의사소통을 주문한다.

내일은 이른바 ‘9·23 사태’라고 불리는 성매매방지법 시행 1주년이다. ‘너무 오래되어서’, ‘경제가 어려워서’, ‘현실적으로 근절 불가능하니까’ 살인이나 강간을 합법화하자고 주장하는 사람은 없다. 이 법은 남성 세력이 걱정할 만큼 성매매를 ‘근절’할 만한 강력한 법도 아니고, 법을 현실화할 만한 예산과 인력도 턱없이 부족하다. 노예시대도 아닌데 최소한 여성이라는 이유로 팔리고 감금당하고 불타 죽는 야만은 막아보자는 것이다. 성매매방지법은 너무 늦게 제정되었기에, 너무 ‘급진적인’ 법이 되었을 뿐이다.

집결지(‘사창가’) 성매매는 전체 성산업의 5~10%에 불과하다. 때문에 집결지가 주요 처벌 대상인 현행법의 한계는 명확하다. 하지만, 정부가 기지촌 성매매와 기생 관광을 주도하며 국민(여성)의 성을 수출품으로 관리한 ‘포주’였던 이전의 군사정권 시절에 비하면, 성매매방지법은 놀라운 진보다. 현 정부가 이 법을 제정한 이유는, ‘여성인권을 위해서라기보다는’ 지나치게 비대한 성산업이 ‘정상적인’ 국가경제를 위협할 만한 수준인데다가 ‘인신매매 3등급 국가’, ‘여자 장사 왕국’이라는 국제사회의 망신을 피하기 위해서라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힘 있는 남성 여론의 지속적인 협박과 ‘발길질’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약자를 위해 이 같은 비인기 정책을 추진한 용기는 평가할 만하다. 성매매방지법의 성공 여부는 역사적으로 그리고 국제적으로 당대 한국의 인권 수준을 가늠하는 지표가 될 것이다. 정부의 의지가 태풍 앞의 촛불이 되지 않도록 남성 문화의 변화가 절실하다.

정희진/서강대 강사·여성학

▲ 정희진/서강대 강사·여성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