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매매특별법’ 23일 1돌…탈성매매 여성 7인의 자립기

‘성매매특별법’ 23일 1돌…탈성매매 여성 7인의 자립기

[한겨레 2005-09-21 19:18]

“남자들은 욕구 해소를 위해 성매매업소가 필요하다고 하잖아. 성매매 여성들은 전부 쉽게 돈 벌러 온 여자라 매도하고….” “그러면 이렇게 되물어. ‘당신 가족 중에 피해 여성이 생길 수 있다는 생각은 해 봤나요?’, 아니면 ‘당신 애인이 과거 성매매 여성이었다면 이해할 수 있나요?’라고. 아무 대답도 못할 거야.” 업소탈출 처음에는 추적 무서워 숨기만…
이제는 부푼 꿈
결혼해 평범하게 살고 싶어 21일 인천 여성의전화가 운영하는 부평구 한 탈성매매 여성 쉼터에 모인 여성 7명은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었다. 대화 내용으로는 성매매 여성들을 돕는 자원봉사자들 같다.
그러나 이들은 모두 불과 1년, 또는 몇달 전까지만 해도 인천 숭의동 성매매업소 집결지에서 성매매를 하던 여성들이다. ‘성매매 특별법’ 시행 이후 어렵사리 업소에서 탈출해 이제는 쉼터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 있다.

인천 여성의전화 배임숙일 회장은 “탈성매매하고 한달이면 사람이 바뀐다”고 설명했다. “처음 쉼터에 오면 업주들의 추적이 무서워 숨기만 해요. 하지만 한달 정도 지나면 이렇게 자신들의 주장을 당당히 빍힐 수 있는 20대, 30대 여성들로 돌아오는 놀라운 변화를 보입니다.” 그러나 쉼터 생활이 쉬웠던 것만은 아니다. “20년 가까이 집결지에 살다 보니 밤에는 잠을 자고 아침에 일어나 일을 한다는 기본적인 생활 방침조차 따르기 힘들었어요. 처음에는 늘 수면제로 잠을 청했죠.” 동생들 학비를 대기 위해 17살 때부터 유흥업소에서 일하기 시작해 전국을 전전했다는 김영애(37·가명)씨의 말이다.

변화의 시작은 힘들었지만 그 다음에는 빠르게 속도가 붙었다. 여성부에서 나오는 월 40만원의 지원금을 쪼개 적금을 붓고, 요리나 미용 등의 직업교육을 받고, 중·고·대학 입학 검정고시 준비까지 하루 24시간이 모자랄 정도로 바쁘다.

무엇보다도 이들을 즐겁게 하는 것은 성매매 특별법과 성매매 여성들을 위한 상담법을 배우는 하루 2시간의 ‘특별교육’ 시간이다. 노동부의 ‘사회적 일자리 창출 프로젝트’에 응모해 당당히 지원금을 따냈고, 이 돈으로 자신들과 같은 처지에 있는 여성들을 돕는 일을 시작한 것이다.

“우리처럼 쉼터를 찾아온 ‘언니’들은 처음에는 말문을 열지 못해요. 그래서 ‘나도 성매매를 하다 쉼터의 지원을 받았다’고 말해주면 그때야 눈물을 흘리며 자신의 억울한 얘기들을 쏟아놓지요.” 최근에는 성구매 남성들의 의식을 조사하는 설문지도 직접 만들었다. “행정가들이 책상에서 만드는 것보다는 성매매 경험이 있는 우리들이 좀더 실효성 있는 설문지를 만들 수 있을 거라 믿었어요.” 그래서 설문에는 ‘성매매 피해자가 도움을 청한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돈을 지불한 만큼 성판매자가 자기 것이라고 생각합니까’ 등 성매매 여성들의 시각을 담은 질문들이 많다. 이 설문지는 다음달 민방위훈련장에서 남성들에게 성매매 특별법에 대한 교육과 함께 배포될 예정이다. 또 설문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여성부와 함께 토론회도 열기로 했다.

“우리 생일은 모두 성매매 특별법이 시행된 9월23일이에요. ‘다른 사람’으로 보지 마시고, ‘새로 시작하는 사람’으로 바라봐 주세요.” 결혼해 아이 낳으며 평범하게 살고 싶은 ‘언니들’이 세상을 향해 던지는 작은 부탁이다.

인천/유선희 기자 du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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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업소여성 절반 줄어”…절만의 성공? 아직 갈길 먼 절반의 성공.
23일로 시행 1돌을 맞는 ‘성매매 특별법’을 바라보는 여성계의 시각은 이렇게 요약된다. 성매매 집결지가 축소되고 성 매수남이 실제 형사처벌을 받게 된 점이 성과라면, 피해여성 보호대책 등은 보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정미례 ‘성매매문제 해결을 위한 전국연대’ 공동대표는 “국가가 성매매 범죄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나섰다는 것 자체가 큰 의미를 지닌다”며 “지속적인 경찰 단속이 이뤄져 성매매가 인권 침해임을 계속적으로 알려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여성단체연합, 성매매문제 해결을 위한 전국연대 등은 21일 서울 언론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사법당국의 지속적인 단속과 처벌을 촉구하기도 했다.

정부 쪽은 나름대로 성과를 거뒀다고 자평하고 있다. 경찰청은 법 시행 뒤 성매매 집결지 업소 종사여성이 절반으로 줄었다는 자료를 20일 내놨고, 여성가족부는 21일 국민 성의식이 많이 바뀌었다는 자료를 내놨다. 여성부는 여론조사기관 엠엔씨(M&C)리서치에 의뢰해 지난달 11일부터 24일까지 성인 1181명(남성 921명, 여성 260명)의 성문화의식을 조사한 결과, 성구매 경험이 있는 남성(497명)의 86.7%가 ‘법 시행 뒤 성구매 횟수가 줄었다’는 응답을 했다고 밝혔다. 여성가족부는 “지난해 말 같은 조사 결과 성구매 횟수가 줄었다고 답한 남성이 43.4%였던 것에 견줘 2배 가까이 늘어났다”고 밝혔다.

반면, 성매매업소 업주 쪽에서는 냉소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박승철 전농2동(이른바 588지역) 자율정화위원회 위원장은 “전체 성매매에서 극히 일부분을 차지하지만 눈에 쉽게 띈다는 이유로 성매매 집결지만 강력하게 단속해 이젠 더 물러날 곳도 없다”며 “업소에 있던 아가씨들이 어디로 갔는지 경찰도 알테니 이제는 그쪽에 좀더 신경을 썼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금형 경찰청 여성청소년과장은 “국회에서 유사 성행위도 처벌 대상에 포함시키는 법률 개정안이 논의되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인권유린 성매매업소 업주, 인터넷 성매매, 마사지 간판을 단 유사 성행위 업소 등을 집중 단속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이순혁 이유진 기자 h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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