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노동권 유감

05-07-17 한겨레 칼럼

지난 달 29일 개최된 ‘전국 성 노동자의 날’ 행사에서 일부 성 판매 여성, 일부 ‘진보 세력’, 성매매 업주들은 “여성의 성 판매는 성 노동”이라며 “반인권적 성매매특별법 폐지”를 강력히 요구했다. 나는 이 짧은 지면에서 성매매의 ‘본질’과 ‘해결책’을 논할 의향도 능력도 없다. 다만, ‘성 노동’이라는 말에 깊이 침윤된, ‘진보’ 진영의 성차별, 계급 차별 의식을 지적하고 싶다.

이날 대회에서 내 눈길을 붙잡은 것은, “성 구매 남성도 여건이 열악하기에 우리를 찾는 빈곤한 사람들”, “구매자 처벌 반대” 주장이었다. 이들은 성매매를 성차별의 문제라기보다는 계급 차별의 관점에서 본다(물론, 성매매는 남녀간, 남남간 계급 문제이기도 하다). 그러나 나는 이러한 주장이야말로 계급의식이 없다고 생각한다. 성매매는 가난한 남성의 계급의식을 결정적으로 가로 막거나 희석시키는, 가장 오래된 지배 이데올로기다. 성매매는 남성간 계급 갈등으로 인한 불만과 저항을 완화, 약화시킨다. 가장 낮은 계급의 남성이라 할지라도, 성 판매 여성에 대해서만큼은 ‘지배자’가 될 수 있으며, 섹스를 통해 주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성매매는 피지배 계급 남성을, 자신도 지배 계급 남성과 같다는 남성 연대라는 ‘허위의식’의 포로로 만든다. 이것이 성 보수주의에도 불구하고, 보수-우익-자본 세력이 “성매매특별법은 좌파 정책”이라며 성매매를 지지하는 근원적 이유다.

성매매 방지법이 장애 남성이나 이주 남성 노동자 등 남성 내부 타자들의 ‘성을 살 권리’를 침해한다는 주장도 늘 제기되는 ‘여론’중 하나다. 여성의 성을 사는 것은 인간의 권리인가, 남성의 권력인가? 장애 여성의 인권을 위해, 남성이 장애 여성에게 성을 팔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없다. 오히려 장애 남성의 성 구매권은 장애 인권 운동을 후퇴시키는 논리가 아닐까? 이는 비장애 남성에게 받은 차별을 비판하기보다는 비장애 남성의 ‘남성다움’, ‘정상성’에 집착하는 것이다. 이제까지 비장애 남성이 누려왔던 권력이자 범죄인 성폭력, 성매매를 장애 남성도 똑같이 하겠다는 것이, 장애 남성과 비장애 남성의 ‘평등’인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그동안 여성들은 승진, 고용, 숙련, 위험도, 산재 등 노동 시장에 전제된 남성 기준에 도전하면서 동시에 공적 영역 중심의 기존 노동 개념을 확장, 재구성해 왔다. ‘감정 노동’이나 ‘성 노동’이 대표적인 예이다. 사회와 마찬가지로 모든 인간관계는, 기본적으로 그 관계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노동에 의해서만 유지될 수 있다. 그래서, 성과 사랑은 노동이고, 노동이어야 한다. ‘가사노동’, ‘성 노동’의 정치적 의미는 이제까지 보이지 않았던 여성의 노동을 가시화, 사회화하기 위한 것이다. 즉, ‘여성의 사회 진출’처럼, ‘사적’ 영역의 노동에 남성들도 진출하여 남녀가 함께 성별 분업을 극복하자는 것이지, 여성이 계속 ‘성 노동’을 하겠다는 의미가 아니다. 남성과 달리 여성에게 섹스는 노동이고 몸은 자원이라는 주장이 전혀 아닌 것이다.

지금 ‘진보’ 진영이 주장해야 할 것은 “여성의 성 노동권”이 아니라, 성 노동을 하지 않고도 생존할 수 있는 권리가 아닐까? 이날 대회에 참가했던 ‘진보’ 세력의 모습은, 노동 시장의 성 평등을 위해 노력해온 여성운동의 목소리에는 그토록 인색하면서 ‘성 노동’ 주장에는 반색하는 제도언론과 무엇이 다른가. ‘성 노동권’ 주장은 복잡한 성매매 문제 ‘해결책’치고는 너무나 진부한, 따라서 전혀 현실적이지 않은 발상이다. 정희진/서강대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