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매매 현장 밖의 삶

[열린세상] 성매매 현장 밖의 삶/최광기 전문MC

[서울신문]뜻밖의 일이었다.“너 어떻게 살았니?”라고 물을 수도 없었다. 그저 담담하게 “너, 희야 아니니?”라고 물으며 내 기억 속에 있던 어린 희야의 말투와 모습을 떠올리며 반갑게 웃었다. 그랬다. 열두세살의 희야는 자기보다 두세살 많은 오빠와 단둘이 살았다. 유난히 눈이 크고 수줍음이 많았던 희야. 나와도 몇개월을 함께 지낸 적이 있었다. 그리고 내가 그 지역을 떠나면서 희야 남매에 대한 기억도 세월 속에 묻혀져 가고 있었다. 그런데 얼마전 성매매에서 벗어난 여성들의 쉼터인 ‘M 쉼터’에서 이제는 25세가 된 희야를 만난 것이다.10여년이 넘는 시간 속에서 그 아이가 겪어야 했을 그 험한 세상을, 그 고단한 삶의 무게를 가늠한다는 것이 가능하기나 할까?

2000년과 2001년, 군산 성매매 집결지 내 업소에서 연이어 발생한 화재사건은 우리 사회 성매매 피해여성들의 인권 문제를 사회적 이슈로 등장시켰으며, 이는 성매매 방지법 제정운동으로 이어졌다.2004년 성매매 방지법이 제정되고 시행되면서 관련 예산이나 시설의 수가 늘어나고 성매매 피해 여성들을 지원하는 단체들도 많이 생겨났다. 법적인 제도가 갖추어진 만큼 강력한 행정력이 갖추어져야 하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런데 지난 3월에 하월곡동, 속칭 미아리 텍사스촌에서 5명의 여성의 목숨을 앗아간 화재의 현장에서 나는 또다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곳에서 ‘벗어나려는’ 여성들과 ‘일하게 해달라는’ 여성들…. 그 끔찍한 삶의 현장에서 도덕적 잣대로만 길들여진 내가 다양한 삶을 수용하고 존중하며 함께 삶의 그림을 그려나간다는 것은 여간 혼란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성매매 현장에 있는 여성들의 대부분은 성매매를 ‘바람직하지 않은 일’로 인식하며 ‘언젠가는 그만둬야 할 일’로 여기고 있다. 성매매에 관한 사회적 비난과 낙인으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여성들의 인식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성매매로 인한 폐해를 그들 스스로 모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이 현장에서 느끼는 부정적인 상황 인식에도 불구하고 성매매 현장 밖의 삶에 대한 긍정적인 고민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 또한 현실이다.

특히나 학력이 낮고 상대적으로 다른 사회적 경험이 부족한 여성들로서는 더욱 그러할 수밖에 없다. 사회적으로 누구나 누리는 배움과 경험의 기회가 그들에게는 없다. 이들 역시 우리 사회가 확보하고 있는 ‘여성 자원’이 될 수 있다는 인식은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탈출’을 시도한 여성들의 경우 당장의 주거 문제에서부터 성매매 현장에 남겨진 채무 관계며 그 안의 인간관계를 해결하고 나면,‘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근원적인 물음과 직면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그동안 긴 시간 성매매 현장에서 생존을 위해 체득된 삶의 양식을 한꺼번에 바꾸기란 쉬운 문제가 아닐 것이다. 또, 현장 깊숙이에서 벌어지는 하루하루의 삶에는 우리가 함부로 단정지을 수 없는 인권의 문제, 한 개인의 삶의 문제가 존재하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사회 속으로 ‘탈출’한 성매매 여성뿐 아니라 아직도 그 안에서 삶을 살아내고 있는 여성들 존재 또한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안과 밖의 거리를 좁히고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주는 방법을 모색해야 할 때가 아닐까 싶다. 인식의 변화와 더불어 그 지원의 내용과 방법이 더욱 다양해져야 한다. 그 여성들이 무엇보다도 자기에게 희망을 걸고 익숙했던 그 많은 것들과 결별할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되기까지 천천히, 조금씩 넘나듦이 필요한 것이다.

성매매의 대안은 그 ‘안’의 여성들을 ‘밖’으로 탈출시켜 ‘편입’되도록 하는 식으로 바라볼 수 없다. 그 안의 여성들은 삶의 새로운 변화가 아닌 자신의 인생의 변혁(transformation)을 치러내야 하기 때문이다. 법적·제도적 변화로 너무나 오랫동안 우리 일상에 뿌리박힌 관념과 삶의 방식을 한꺼번에 바꾸기란 쉬운 문제가 아니다. 성매매에 대한 적극적인 인식,‘피해’와 ‘비난’이 아닌 ‘지금, 여기’에서의 삶을 고민하는 것, 인간의 존엄성과 삶의 권리를 더욱 민감하게 감지할 수 있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10년의 세월을 훌쩍 뛰어넘어 ‘M쉼터’에서 건강한 모습으로 그 어느 때보다 활기찬 모습으로 자신과 닮은 여성들을 위해 일하고 있는 희야를 보며 다시 한번 묻게 된다. 나는 지금 희야를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가를….

최광기 전문M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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