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서도 상속된 선급금 “사람으로 태어난 내가 싫다”

죽어서도 상속된 선급금 “사람으로 태어난 내가 싫다”
한겨레 | 기사입력 2007-09-17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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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성매매 여성이었던 이아무개(27)씨는 사채업자한테서 받은 선불금을 갚기 위해 2004년 오스트레일리아까지 가서 성매매를 해야 했다. 그 뒤에도 계속 빚독촉에 시달리자, 이씨는 2006년 채권부존재 확인소송을 냈다.

“오스트레일리아로 가면 성접대는 절대 없을 거라고 했습니다. 오스트레일리아로 가는 비행기표 값과 선불금 2천만원에 대한 공증을 법원 앞 변호사 사무실에서 하고, 11시간이 걸려 오스트레일리아에 도착했습니다. 그러나 오는 손님들마다 성접대를 요구하고 … 저는 견딜 수 없어 보름 만에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우선 저는 2천만원 중 800만원을 다른 곳에서 빌려 갚았습니다만, 몇 달 뒤 나타난 사채업자는 저에게 2천만원이 넘는 장부를 보여줬습니다. 그리고 일본에서는 성매매를 할 수 있기 때문에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다며 압력을 넣기 시작했습니다.”(2006년 이씨가 재판부에 낸 자료)

하지만 재판부는 2006년 10월 이씨에게 800만원을 사채업자에게 주라는 조정 결정을 내렸다. 이씨는 지난 5월 초 전북 군산의 한 여관에서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됐다. 이씨가 벗어나지 못했던 빚은 부모에게 상속됐고, 그때서야 부모는 딸이 성매매 여성이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부모가 확인한 이씨의 일기에는 그의 절망이 그대로 묻어 있었다. “2007년 5월2일, 언제가는 해뜰 날 올 거라 믿으면서 지금까지 죽어라 일하면 뭐하냐구! 오지 않는다. 지친다 몸두 마음두 … 지난날을 되돌아 본다. 정말 드럽다. 노력이라는 이 두 단어에 왜 이렇게 난 허무하기만 할까? 집에 가고 싶다. … 정말 사람으로 태어난 내가 정말 싫다. 누가 날 좀 도와 주세여. 이번 한번만여 … 제발 부탁입니다.”

하어영 기자 hah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