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칭 옭아맨 성매매 선급금, 8차례 5천만원

칭칭 옭아맨 성매매 선급금, 8차례 5천만원
한겨레 | 기사입력 2007-09-17 14:30 | 최종수정 2007-09-17 15:39

[한겨레]

23일은 성매매특별법이 시행된 지 3년째 되는 날이다. 그러나 성매매 여성들의 피해는 여전하다. 지난 4~5일에는 대전의 한 유흥업소에서 일하던 여성 두 명이 잇따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포로와 같은 이들의 생활을 들여다본다.

2006년 7월. 이지수(29·가명)씨는 드레스를 벗고, 청바지에 면티를 걸쳤다. 성매매 10년. 그동안 이씨를 옭아맨 선급금(이전 업소에서 진 빚을 갚고 필요한 옷·화장품을 사도록 새 업소 쪽이 미리 주는 돈)은 여덟차례에 걸쳐 5천여만원. 그 액수와 횟수만큼 이씨의 몸은 망가졌다. 서울 미아리의 업소를 벗어난 이씨는 ‘성매매 피해자 위기지원센터’를 찾았다. 불과 걸어서 5분거리였다. 그곳에서 이씨는 여고 2년 때부터 써온 ‘77****-2******, 김민영’이라는 가짜 이름을 비로소 버릴 수 있었다.

300만원 받고 보름만에 그만 둔다니 “850만원 내놔라”

1996년, 여고 2년 때였다. 가출한 친구를 따라 간 직업소개소에서 ‘한 달에 200만~300만원을 버는 다방 아르바이트’라는 말을 듣고 강원 양구로 갔다. ‘별다방’ 주인은 옷을 사 입으라고 300만원을 줬고, 이튿날 새벽 5시부터 커피 배달일이 시작됐다. 보름 만에 그만두겠다고 하자, 주인은 850만원을 요구했다. 이씨는 집에 전화를 걸었고, 집에서 돈을 보내 왔다.

이씨는 850만원을 집에 돌려주고 싶었다. 별다방 선배가 “충남 서산으로 옮긴다. 거기는 진짜 아르바이트니 같이 가자”고 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마찬가지 일을 해야 했고, 선급금은 400만원이 붙었다. 집에 손을 벌릴 수가 없었다. 3년여를 보냈다. 결국 한 소개업자는 400만원 빚을 포함해 1180만원을 선급금으로 주고 이씨를 대구의 성매매 업소로 보냈다.

하루 7~8면 상대…1명당 7만원 받으면 손에 들어오는 건 1만원

2002년 월드컵 때 이씨는 대구에 있었다. 하루 7~8명을 상대하고 7만원씩 받으면, 5만원은 업주가 가져가고 남은 2만원에서 방값 6천원, 선불금 10부 이자 등을 뗀 뒤 수중에 남는 돈은 1만원이 안 됐다. 성매매 ‘호황’ 속에 이씨는 1180만원을 결국 몸으로 다 갚았다.

2003년, 이젠 다른 일을 해보겠다고 사채업자를 찾은 게 탈이 났다. 대출금은 선급금으로 변했다. 1천만원의 빚을 지고 대구에서 부산으로 보내졌고, 600만원이 더 보태져 충남 온양으로도 팔려갔다.

선급금 빚 무효라 들었지만 ‘가족 알면…’ 생각에

성매매특별법이라는 게 생긴다는 말을 처음 들었지만, 자신과는 무관하다고 생각했다. 이씨는 선급금 빚이 무효라는 말도 얼핏 들었지만, 안 주고 버티다 가족이 알게 되면 더 큰일이라고 생각했다.

업주는 10부 이자로 늘어나는 선급금이 줄지 않자, 다른 사채업자를 소개시켜주면서 차용증을 쓰게 했다. 상대해야 하는 사채업자 수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들은 ‘파이낸스’라는 그럴듯한 이름을 달고 다녔다. 지각하거나 결근하면 이율을 올리기도 했다. 동료들과 서로 맞보증을 세워, 혼자 도망갈 수도 없었다.

동료와 맞보증 세워 발 묶어…폐쇄회로 TV로 감시

빚이 줄지 않자 이씨는 전북 군산으로 보내졌다. 감금된 성매매 여성이 화재로 숨진 그곳이었다. 사건 뒤로 문을 잠그지는 않았지만, 폐쇄회로 텔레비전으로 감시는 계속됐다. 전북 익산으로 자리를 옮길 때까지 1600만원이던 선급금이 200만원으로 줄어들 만큼 일했다.

그즈음 이씨는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연락을 받았다. 익산의 업주가 서울로 가는 것을 막으면서 1천만원을 요구했다. 이씨는 1천만원의 사채 빚을 또 안고, 서울 미아리로 팔려갔다. 미아리에서는 성매매특별법 이후 찾아오는 사람이 줄었는데도, 예전처럼 하루 20명을 상대하는 만큼의 돈을 벌 것을 요구했다. 다 채우지 못하면, 낮에도 빨간 불을 밝히고 일해야 했다.

검정고시 거쳐 대학 사회교육원 진학…지금도 협박전화

이씨는 이번에도 2천만원에 가까운 선급금을 2년 동안 몸으로 다 갚았지만, 더는 몸이 버틸 수 없었다. 가끔씩 찾아오던 위기지원센터 대표가 생각났다. 무작정 짐을 쌌다.

그리고 1년여 흘렀다. 그 사이 대입 검정고시에 합격했고, 한 대학의 사회교육원에 다닌다. 단속에 걸려 부과된 벌금 750만원은 나눠 갚아도 된다는 결정을 받았다. 지금도 예전 업주한테 돌아오라는 협박전화가 오고 있다. 몸이 불편해 찾아간 병원에서 자궁경부암이 의심된다고 해 걱정이다. 하지만 당장 이씨는 다가오는 가을의 대학축제를 즐기고 싶다. 평범하게.

하어영 기자 hah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