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세 가출 소녀 '1년간의 악몽'

15세 가출 소녀 '1년간의 악몽'
매일신문|기사입력 2008-02-20 12:03

탈선의 끝은 상처뿐이었다. 친구들의 꾐에 빠져 다방 종업원으로 일하던 김모(15·대구)양은 다방에서 진 빚 50만원을 갚지 못해 악덕 직업소개소 업주에게 팔려 노래방 도우미로 전전했다. 돈을 벌기는커녕 빚만 불어났다. 부모의 끈질긴 수소문 끝에 가출 1년 만에 구출되기까지 김양의 가출기는 우리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15세짜리를 고용하는 보도방=김양이 집을 나간 것은 지난해 3월쯤. 친구들과 어울려 탈선했다가 보호관찰 처분(6개월)을 받은 상태에서 가족에게 말도 없이 종적을 감췄다. 당장 잠잘 곳과 일자리가 필요했던 김양은 서울, 대전 등지에서 다방 종업원 생활을 했다. 미성년이었지만 업주는 따져 묻지 않았다. 그러나 8, 9개월가량 커피 배달을 했지만 50만원의 빚만 남겼다.

결국 김양은 지난해 11월쯤 한 직업소개소(속칭 보도방) 업주가 대신 빚을 갚아 주는 조건으로 창원으로 데려가면서 그곳에서 노래방 도우미 일을 하게 됐다. 소개소의 차를 타고 초저녁부터 노래방을 전전하며 취객들의 술시중, 노래시중을 들었다. 또래 소녀 몇 명이 함께 일했다. 새벽 4시쯤에야 숙소인 모텔로 겨우 돌아와 지친 몸을 누일 수 있었다.

노래방 도우미로 일한 지 3개월. 처음에는 주당 120만원씩 벌던 수입이 다 어디로 사라졌는지 165만원의 빚만 남았다. 소개소 업주는 홀비, 결근비, 지각비 등 갖은 명목으로 돈을 가로챘다. 급기야 차용증까지 쓰게 하고 채무를 빌미로 협박했다. 무서워 도망칠 엄두도 내지 못한 채 기약 없는 밤생활이 반복됐다.

◆또래 도우미도 많아=김양은 전단까지 뿌리며 전국을 헤매고 다닌 부모의 노력 끝에 지난주 극적으로 구출됐다. 부모는 딸의 친구를 통해 딸이 창원에서 일한다는 사실을 알고 경찰관과 함께 직업소개소를 찾아갔다. 딸을 돌려달라며 울며 매달렸지만 업주는 "미성년자는 없다"고 잡아뗐다. 어렵사리 거처를 알아낸 부모는 13일 새벽 모텔 앞에서 귀가하는 딸을 만나 데려올 수 있었다.

김양은 지난 15일 보호관찰법 위반으로 대구보호관찰소 서부지소에 다시 수용돼 가정법원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보호관찰소 측은 이날 직업소개소 업주에 대한 수사를 창원지검에 의뢰했다. 권우택 대구서부보호관찰소 관찰팀장은 "소개소 업주의 행태가 아주 악독했다"며 "보도방의 미성년자 불법고용 실태가 심각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한편 지난 2000년 청소년 성보호에 관한 법률 제정 이후 미성년자 성매매는 잠시 주춤했으나 최근 들어 다시 느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대구지방경찰청에 따르면 미성년자 성매매, 유흥업소 고용·윤락 등을 하다 적발된 건수는 2006년 54건에서 지난해 93건으로 크게 늘었다.

최병고기자 cbg@ms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