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만 되면 다 하는 ‘뱀파이어’들

돈만 되면 다 하는 ‘뱀파이어’들

시사저널|기사입력 2008-02-05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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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여행사, 유학원, 국제결혼정보 업체, 해운회사, 선장·선원, 외국인 며느리 등등. 국내외 밀입국 알선 브로커들은 우리 주위 가까이에 있다.위장하고 있어서 쉽게 알아보지 못할 뿐이다.밀입국 수요자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다 보니 알선 브로커로 나서는 사람들도 부쩍 늘어났다.그만큼 돈이 된다는 말이다.

밀입국 알선 브로커는 크게 두 가지 유형이다.하나는 기업형 조직이며, 다른 하나는 자영업자들과 같이 각개전투하는 사람들이다.전자에는 여행사, 유학원, 국제결혼정보 업체 등이 속하고, 후자에는 국내에 정착한 외국인들이 많다.밀입국을 원하는 개인이 서류 위조 업체들과 접촉한 후 개별적으로 밀입국을 시도하는 경우도 있다.인터넷에는 ‘밀입국 직거래’를 원하는 개인들과 이런 고객을 유치하려는 브로커들이 넘쳐난다.세간에 알려진 것과는 달리 국내 폭력 조직은 밀입국 알선업에 끼어들지 않았다.

기업형 알선 조직들은 국내와 해외를 연계하며 세력을 확장하고 있다.모집·알선·운반책으로 역할을 분담하는 분업화 형태이다.밀입국 희망자들을 모집하는 단계에서도 관계 당국의 추적을 피하기 위해 다양한 수법과 경로가 이용되고 있다.미국 밀입국 희망자 대다수는 밀입국 조직의 도움을 받아 미국 영토로 들어간다.국제적인 조직은 육·해·공으로 밀입국자들을 실어 나른다.

지난해 국정원에 체포된 캐나다 밀입국 총책 알렉스는 영화 <007>을 방불케 할 정도로 주도 면밀했다.그는 한국과 캐나다에 밀입국 거점을 마련하고 점프 희망자들을 끌어모았다.캐나다 주택가에 숙소를 마련해놓고, 국경까지는 차량을 이용했다.그는 한 번 밀입국을 알선하고 나면 주소나 민박집, 휴대전화를 전부 바꿔버렸다.캐나다 밴쿠버에서는 학원을 운영하며 신분을 위장했다.미국과 캐나다에는 밀입국을 알선하는 크고 작은 알선 조직들이 상당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에 밀입국했던 여성들, 한인타운에서 성 노예 신세미국 한인타운에도 밀입국 알선 브로커 조직이 있다.이들은 성매매를 목적으로 여성들을 밀입국시킨다.지난해 5월 로스앤젤레스 한인타운 인근에서는 밀입국 여성의 성매매를 알선해오던 한인 남성이 경찰에 체포되기도 했다.

미국 이민세관국(ICE)이 작성한 ‘한국인 성매매 실태’를 보면 그 실상을 짐작할 수 있다.우선 한국과 미국에 있는 모집책이 밀입국을 원하는 여성들을 모집한 후 제반 비용을 지원한다.가짜 여권과 비자를 만들어주거나 캐나다 혹은 멕시코 국경을 통해 미국으로 밀입국시킨다.

이 과정에서 여성들은 알선 브로커들에게 수만 달러의 빚을 지게 된다.그 다음부터는 성매매 업주의 비참한 노예가 되어야 한다.업주는 밀입국 여성의 여권을 빼앗고 성매매를 시킨 후 빚 청산 명목으로 번 돈을 모두 챙겨간다.업주의 손아귀를 벗어날 수도 없다.‘불법 체류자’라는 또 다른 족쇄가 발목을 붙잡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 밀입국은 공항보다는 바다를 주로 이용한다.알선 브로커 중에도 해운 관련 회사나 선원 또는 어선 선장 등이 많다.해양경찰청에 따르면 한·중·일 알선책들이 사전 공모해 은밀한 점조직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한다.해상 알선 브로커로는 밀입국 경험이 있거나 밀입국자들과 안면이 있는 사람들이 주로 나선다는 것이 해경의 설명이다.밀입국 알선 수수료는 건당 8백~1천2백만원 정도이다.

중국과 한국은 밀입국 알선 브로커들의 천국이다.중국의 알선 브로커들은 ‘조직+기업’이 합쳐진 사업체 형태를 띤다.우리나라와 달리 조직폭력배와 연결되어 있다.전문 위조 조직과도 연계되어 있어서 사례비만 내면 밀입국이 일사천리로 진행된다.그만큼 위험 부담도 따른다.

중국의 밀입국 알선 조직들은 고액의 알선료를 받고 밀입국을 주선하고 있다.이들 조직은 밀입국자들을 협박해 돈을 뜯는가 하면, 인신 매매를 일삼기도 한다.노동과 매춘을 강요하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국정원에 따르면 중국의 밀입국 알선 조직들이 내국인과 결탁하면서 또 다른 밀입국을 유발하기도 한다.우리나라를 경유해 중국인들을 미국이나 유럽 등지로 밀입국시킨다는 것이다.최근에는 밀입국자를 이용해 마약 밀반입을 시도하다가 적발되는 일도 있었다.

외국인 불법 밀입국자가 알선업자로 변신하기도 한다.위장 결혼에 성공하거나 한국에 정착하면 자신의 경험을 살려 알선 브로커로 나선다.가족·친지들을 초청하는 형식으로 제3자에 대한 추가 입국을 알선하는 것이다.한국 남성과 중국 여성의 혼인을 성사시키거나, 한국인과 손잡고 위장 결혼을 알선해 소개비를 챙긴다.

한국을 다녀간 중국인이 중국에 가서 알선 브로커가 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때문에 중국과 국내의 밀입국 알선 브로커들은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가지에 가지를 치는 자생적인 ‘밀입국 가지치기’가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이 과정에서 각종 편법·불법이 난무하는 것은 당연하다.강철희 인천국제공항경찰대 기획수사계장은 “한두 건 알선하다가 아예 직업적인 알선 브로커로 나서는 사람들도 많다.어떤 때는 알선 브로커들 사이에 내분이 생겨 상대편을 신고하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라고 말했다.

국내외 밀입국에는 반드시 대가를 치러야 한다.‘돈’과 ‘목숨’이 그것이다.브로커들에게 고액의 밀입국 수수료를 지불해야 하고 때로는 목숨을 내놓아야 한다.국내 해상으로 밀입국하려던 중국인 25명이 질식해 떼죽음을 당한 일도 있다.지난해 2월 법무부 여수출입국 관리사무소 화재로 숨진 외국인 근로자 9명도 강제출국을 앞둔 밀입국자들이었다.미국 국경을 넘다가 언제 총에 맞을지 모르는 상황이다.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건 도박에 나선다.그 죽음의 도박에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것은 알선 브로커들이다.

정락인 기자 freedom@sisapres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