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와 남자의 과거라는 것 -오마이뉴스

여자와 남자의 과거라는 것 홍경석(hks007) 기자

주말드라마 '애정의 조건'을 애청하고 있습니다. 이 드라마엔 우선 제가 좋아하는 채시라씨가 나오기에 '봐 주는' 편입니다. 연전 '여명의 눈동자'에서 그의 미모와 연기에 반한 터여서 그 후로 저는 그의 마니아가 되었는데 하여 아내는 한 때 저랑 부부싸움을 할라치면 "나랑 헤어지고 나면 채시라 같은 여자랑 살아라"는 악담(?)을 한 바도 있었습니다.

헌데 그녀도 이젠 한 남자의 아내가 되고 아이까지 낳은 아줌마가 되었기에 그전처럼 열광적으로 그녀를 좋아하진 않지만 말입니다. 그런데 그 주말드라마 '애정의 조건'이 지난주에 마침내 '꿈의 시청률' 40%를 돌파했다고 합니다. 이는 아마도 채시라의 동생으로 나오는 한가인의 과거(그녀는 지난 2년간 다른 남자와 동거했으며 아이도 낳았으나 쭉 숨겨왔음)가 밝혀지면서 그를 둘러싼 갈등이 시청자들의 흥미를 '대폭' 유발한 것으로 보입니다.

근데 종영을 앞두고 있는 '애정의 조건'은 세인들의 심적(心的) 시류와는 다르게 해피엔딩으로 막을 내릴 것이 기정사실로 보입니다. 물론 드라마라는 것은 어쩌면 만화와도 같은 것이기에 그렇다 치자고요. 하지만 현실은?

오늘자 모 신문의 사회면에 "선불금이 가정 파괴했어요"라는 기사가 실렸습니다. 24세의 박아무개씨(여)는 지난 1998년 18세 때 지긋지긋한 가난에서 벗어나고자 여수의 한 다방에 선불금 220만원을 받고 취업했답니다. 하지만 이른바 '티켓다방'의 거개가 그러하듯 그처럼 미리 주는 선불금은 십중팔구 돈이 아니라 '쥐약'이었습니다.

차 배달을 하던 중 그녀는 교통사고를 당해 한 달 정도 일을 못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이자가 이자를 확대 재생산하고 또한 그 계통의 파렴치한 업주들이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하고 있는 '그들만의 악법'인 화장품값과 식대, 그리고 이른바 '결근비'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게 되었답니다. 그래서 그녀는 결국 다방 10여 곳을 전전하다 윤락가로까지 팔려가게 되었습니다.

지옥 같은 생활을 견디다 못 한 그녀는 그곳을 탈출하여 사찰에 숨어 지내다가 어떤 공장에 취직하게 되었는데 거기에 성실한 남자를 만나 단란한 가정을 꾸리게 되었지요. 물론 그 '여자의 과거'는 숨긴 채로.

그러나 불행은 또 다시 찾아왔습니다. 재수가 없으면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진다더니 그녀는 시댁을 가던 중에 터미널에서 그만 소매치기를 당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지갑을 찾았다"는 경찰의 연락을 받고 찾아갔더니 과거 선불금을 줬던 업자가 그녀를 사기혐의로 고소하는 바람에 그녀는 졸지에 기소중지자로서 체포된 것이었습니다.

참으로 파렴치한 업주는 남편까지 찾아가 그녀의 과거를 까발렸고 이에 충격을 받는 남편은 집을 나가 오리무중이며 그로 인해 그녀의 가정은 순식간에 파탄지경이 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기사를 읽으며 그녀의 불행한 인생이 참으로 가여워 안타깝기 그지없었습니다.

설혹 일이 그리 되었더라도 업자가 그녀의 남편에게까지 그녀의 불행한 과거를 폭로만 하지 않았더라도 가정의 붕괴만큼은 막을 수 있었을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그 저질의 다방 업주는 한 여성을 불행의 구렁텅이에 밀어 넣는 것도 모자라 소중한 가정마저 파괴한 것입니다. 아무리 돈이 좋기로서니 그렇게까지 인간말종적인 행태를 보이다니! 사람이 살면서 '빚'을 안지는 것처럼 좋은 일은 없습니다.

하지만 부득이하게 빚을 지게 되더라도 그 빚의 종류는 실로 다양하다고 봅니다. 작금 문제가 되고 있는 신용카드 빚도 무섭지만 그보다 더 무서운 게 '사채빚' 입니다. 하지만 그 사채빚도 ‘웃기는 짬뽕’이라고 조소하며 사람의 피를 극도로 말리는 것에 바로 유흥가의 '선불금 빚'이라는 게 있는 것입니다. 일부의 유흥과 윤락업자는 이러한 선불금으로 '덫'을 만들어 생사람(여자)을 잡는 것도 모자라 아무리 노력을 해도 도무지 빠져나올 수 없는 거미줄(선불금)에 걸려든 여자들을 파멸로까지 몰아가고 있는 것이지요.

주지하건대 지금도 술집과 다방 등지를 찾아가 이른바 '영계'를 찾는 한심한 작자들이 적지 않습니다. 아니! 영계는 삼계탕 집에나 가서 찾을 일이지 술집과 다방에서 왜 영계를 찾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이렇게 주장하는 필자에게 "너는 그럼 그렇게 안 했냐?"를 누가 묻더라도 필자는 당당하게 반론을 제기할 수 있습니다. 필자는 값싼 식당에서 삼겹살에 소주만 있어도 감지덕지로 행복해 했으니까요!).

이제 9월 23일부터 '성매매 알선 등 처벌법'과 '성매매 피해자 보호법'이 발효됩니다. 하여 과거엔 가벼운 벌금형만 받고 풀려났던, 성을 산 남자의 경우도 실형선고는 물론 사회봉사와 보호관찰, 그리고 특정지역 출입금지 등의 처분을 받게 된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이 법이 발동되면 그전처럼 '영계'를 탐하고 아울러 '바람도 못 피우면 그건 남자도 아니다'라는 잘못된 사관에 물들어있던 남성들의 경우 이젠 아내로부터 "당신은 (더러운) 과거가 있었기에 이혼하겠다!"는 시달림을 당하는 일도 아마도 적지 않으리라 예견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족이겠으나 여자든 남자든 과거가 깨끗해야 뒤탈이 없는 것임은 세월이 흘렀어도 여전한 '부동의 명제'로 보입니다.

진부한 말이겠으나 역시 화목한 가정은 '세상에서 가장 보기 좋은 꽃'입니다. 하여 '법에도 눈물이 있다'고 했으니 부디 불행을 당한 그녀가 법원의 선처로서 다시금 밝은 햇빛을 보길 바랍니다. 아울러 실로 후안무치한 그 다방 업주에게는 '가정파괴의 수괴'라는 죄목으로라도 단죄했으면 하는 바람 간절합니다.

2004/09/21 오전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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