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매매 피해여성들의 15년간 쉼터 셋집없어져 갈데없다..한계레

성매매 피해여성들의 15년간 쉼터 셋집없어져 갈데없다

△ ‘막달레나의 집’에서 살고 있는 여성들이 빨래를 걷고 있다. 비가 새고 지붕이 무너져내리는 오래된 집이지만 지난 15년 동안 이곳은 ‘치유의 집’이자 ‘사랑의 집’이었다. 봄이면 라일락과 목련이 마당 가득 꽃을 떨구는 이 집에서 이들은 곧 떠나야 한다.

용산 ‘막달레나의 집’

“밤이 되면 끔찍하지. 다 싫지. 사람 상대가 싫고 신물이 나는데. 마지막까지 왔으니까 여기서 마저 안 되면 나는 죽음 밖에 없잖아. 그러니까 하는 거지.” (어느 현직 성매매 여성의 증언)

“전세금 5천만원으로는
용산에서 집 못구해”

성매매 피해여성 쉼터 ‘막달레나의 집’ 이옥정 대표(57)는 이런 말들을 들을 때마다 눈가가 젖는다. 이들의 상처입은 삶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 대표는 모두가 잠든 새벽이면 다락방을 찾는다. 다락방에는 ‘막달레나의 집’에서 살다 세상을 떠난 여성들의 영정이 모셔져있다. 가족에게서 버림받고, ‘업소’에서 도망쳐 이곳에서 짧은 행복을 누리다가 한 많은 생을 마친 사람들이다. “이곳을 거쳐간 사람들 얼굴을 떠올리며 축복해달라고 기도해요. 하느님께 부탁하고, 투정도 부리지요.”

요즈음 이 대표가 드리는 기도는 주로 ‘새 집을 구하게 해달라’는 것이다. 1985년 서울 용산에 문을 연 ‘막달레나의 집’은 우리나라 최초의 성매매 피해여성 쉼터다. 최근 이곳이 위기에 처했다. 용산 미군기지 이전으로 인한 개발 때문에 땅값이 치솟아 15년 동안 세들어있던 집이 팔렸기 때문이다. 10여명의 식구들은 졸지에 갈 곳이 없어졌다. 전세금 5000만원으로는 용산 부근에서 살만한 집을 구할 수 없다고 한다. 용산 성매매 지역의 ‘터줏대감’이 된 지 오래라 다른 곳으로 옮기는 것은 아예 활동을 포기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일이다.

“연인원 6600여명이 이곳을 찾습니다. 상담, 보호, 재활교육을 받지요. 전업을 꿈꾸는 이들은 취업교육을 받고, 공부하려는 이들은 검정고시를 준비합니다. 무엇보다 여성들이 자신을 사랑하고, 남을 돕는 방법을 나누는 곳입니다.”

△ 매일 새벽 이옥정 대표는 다락방에 올라가 기도를 올린다. 이 다락방 기도실에는 ‘막달레나의 집’에서 살다가 세상을 떠난 성매매 피해여성들의 영정이 예수님의 모습을 담은 액자와 함께 놓여있다.

연인원 6600명이 찾아
상담·보호·재활교육

이 대표가 처음 용산을 찾아 성매매 여성들을 상대로 혼자 상담을 시작한 것이 20여년 전. 1984년, 미국인 문애현(요안나) 수녀가 이 대표를 찾아왔다. 아몰(아시아 오세아니아 수녀협의회)의 현장 교육으로 이 대표를 만난 수녀들 가운데 한명이었다. 두 사람은 이듬해 함께 ‘막달레나의 집’을 열었다. 매일같이 성매매 업소를 찾아가 일하는 여성을 만나고, 같이 웃고 울었다. 그들이 지나가면 업주들은 “재수없다”며 소금을 뿌렸다. 협박도 많았다. “칼침 맞을 줄 알아라”는 협박전화도 수차례 받았다. 그때마다 이 대표는 “다른 사람한테 피해 안 가게 내 얼굴이나 잘 봐둬라”고 응수했다. “사람은 안 무서워요. 처음부터 악한 사람은 없다고 믿으니까요. 인생을 통해서 그걸 배웠습니다.”

△ ‘막달레나의 집’을 만든 이옥정 대표.(위) ‘막달레나의 집’을 지키는 상근 활동가들. 왼쪽부터 회계담당 김문진, 교육담당 엄상미, 현장담당 이희애, 기획담당 백재희씨.

가슴 아픈 사건도 부지기수였다. 85년, 신부전증에 걸려 이곳을 찾은 현숙씨는 결국 세상을 떠났다. 그가 세상을 떠났을 때, 수십명의 매춘 여성들이 소복을 입고 나타나 망자의 한을 달랬다. 갑작스런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사람, 당뇨 후유증으로 세상을 하직한 여성들도 여럿이다. 뿌듯한 일도 많았다. 이곳의 상담과 글쓰기 등 치유 프로그램을 거친 이들 가운데는 주부, 농삿꾼, 의상실 사장, 회사원으로 ‘보통 인생’을 누리고 사람들도 꽤 된다. 몇몇은 ‘후배’들을 위한 성매매 지역 활동가가 됐다. 업소를 찾아다니며 홍보물과 생리대 등을 나눠주고, 상담을 하거나 성매매 관련 강사로도 나선다. 물론 다시 가출을 하거나 매매춘 업소로 돌아가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그들조차 가끔 전화를 걸어와 ‘큰 언니’의 안부를 묻곤 한다.

재작년에는 경기도 농촌 마을에 ‘시골집’을 냈다. 20대 여성 위주의 ‘서울집’과 달리 중·장년 여성들이 사는 집이다. 이곳에서 식구들은 된장, 한과, 선식 등을 만들어 판다. 원가계산을 잘못해 밑천을 까먹기 일쑤지만, 따뜻한 집과 식구들이 함께 있어 즐겁다. 모두가 시골집으로 가면 되지 않느냐고 하지만, 아직은 그럴 수 없다. 아직도 성매매 피해에서 벗어나지 못한 수많은 여성들이 가까운 곳에 있는 그들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여러 기업에 도움구했지만
아무도 회신 해주지 않아”

“‘자발적으로 매매춘 업소에 가는 것 아니냐’고들 묻지만 그들만의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재활의 의지를 주고, 스스로를 사랑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할 것 같지 않아요? 집도 구해질 거예요. 늘 필요한 만큼 주어졌으니까요.”

느긋한 이 대표와는 달리, 활동가 백재희씨는 걱정이 태산이다. “이미 여러 기업에 도움을 구했지만, 성매매 피해여성들에 대한 편견 탓인지 아무도 회신을 해주지 않았다”고 한다. 이제 10월이면 새 집을 계약해야 한다. 갈 길이 멀다. 후원문의 (02)798-6386, magdalena@dreamwiz.com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