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윤락녀의 안타까운 '36년 굴곡의 삶'

한 윤락녀의 안타까운 '36년 굴곡의 삶'
기사입력 2008-06-21 13:21

<아이뉴스24>

가난 때문에 성매매로 끼니를 이어 오다 36년이란 짧은 생을 마친 한 성매매 여성의 슬픈 사연이 뒤늦게 알려져 안타까움을 주고 있다.

사연의 주인공은 13년여 동안 충남 공주를 시작으로, 군산, 부산, 원주, 미아리 등 전국 곳곳의 티켓다방과 술집, 집창촌 등으로 팔려 다니며 얻은 것이라곤 눈덩이처럼 늘어난 빚과 유방암뿐이었던 성매매 여성 고(故) 한순미(36)씨.

한 씨는 지난 19일 오전 10시 인천 성모자애병원에서 악성종양(암)을 끝내 이겨내지 못하고 '한' 많은 이 세상을 마감했다.

장례식을 지켜보던 한 측근은 "그녀의 삶은 외로웠다. 그녀의 죽음은 초라했다. 그래서 그녀의 가는 길은 눈물겨웠다"고 말했다.

하루의 끼니를 걱정해야만 했던 한 씨는 이 세상을 떠나 기 전까지 '가난'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왔다는 측근들의 전언. 가난의 시련으로 그녀는 냉엄한 사회 속 그늘진 곳으로 인도됐다는 것.

그녀는 자신을 옭아매고 있는 지긋지긋한 가난을 떨쳐내고자 집을 나섰다. 이 선택으로 그녀는 14년간의 굴곡진 삶을 살아야만 했다.

생애 첫 직장은 충남 공주에 있는 한 다방이었다. 단순히 커피 심부름이나 하고 주방에서 설거지만 하는 일에 비해 보수가 많다는 게 그녀를 유혹했다.

잠자리와 먹을거리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월급은 차곡차곡 모아 모친과 함께 살 집을 마련할 수 있다는 기대감에 그녀는 일을 시작했다.

그러나 그녀는 업주의 꼬임에 빠져 티켓다방에 발을 들여 놓은 실수로, 2000년 세간을 들끓게 했던 군산 집창촌 화제사건을 경험해야 했고, 원치 않은 성매매로 인한 유산에도 바로 당일 성매매를 강요당하는 처절한 삶을 살아야만 했다.

이후 그녀는 성매매 노예가 되어 전국에 있는 티켓다방과 집창촌 등으로 팔려 다니는 신세로 전락했다.

이곳들은 생지옥과 다름없었다. 팔려 다닐 때 마다 업주끼리 건네주고 받은 소개비는 언제나 그녀의 빚으로 남았다.

알지도 못하는 새 불어난 빚더미는 그녀를 성매매로 내몰았다. 자신의 몸을 혹사하며 받은 화대는 이미 자신의 것이 아니었다.

이렇게 꽃다운 나이 꿈 많았던 한 씨는 인생도 희망도 포기한 채 세상 밖으로 자신을 던졌다.

◆"나같은 성매매 여성 생기지 않기를" 유언

그런 그녀에게 몸의 이상 징후가 나타났다. 지난 2005년 가을경 가슴에 통증을 느끼기 시작한 것. 가슴엔 알 수 없는 단단한 혹이 만져졌다.

그러나 그녀는 병원을 찾아 진단과 치료를 받을 수 없었다. 빚 때문에 자유로운 외출이 허락되지 않았고, 하루도 쉴 수 없는 영업(성매매)을 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이미 자신의 몸속에 찾아든 고통은 견뎌내기 힘든 상황에 다다랐다.

그녀는 용기를 내 지난해 10월 미아리 집창촌을 도망쳐 나와 13년 만에 인천 부평구 부개동에 살고 있는 어머니 김모(65)씨를 만나 병원에서 수술을 받았다.

결국 상체 전체에 암세포가 전이된 채 남은 삶을 어머니와 함께 하고 싶어 했던 한 씨는 따뜻한 사회의 품속으로 돌아오면서 자신에게 계속적 도움을 주고 있던 한국교정복지선교연합회 주선장 사무국장에게 빚 때문에 쫒아오거나 협박을 하는 사람이 없는 곳에 모친과 함께 살 수 있는 '월세 없는 전세방'을 부탁했다.

이것이 진정 한 씨가 가난과 고통의 시간을 보내며 가슴속으로 열망했던 행복한 소망 전부였다.

한국교정복지선교연합회는 이러한 그녀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기업, 단체, 개인 등 많은 곳들에 도움의 손길을 청해 모금된 돈을 모아 '한순미를 위한 공간'을 마련했다.

이 집은 한순미 본인의 명의로 계약돼 최근 수리와 보수를 마쳤다.

지난달 22일 인천 성모자애병원에는 온 몸에 암세포가 전이된 한 씨가 입원했다. 병원측도 어떠한 치유책을 내 놓을 수 없는 상태에서 그녀의 고통만을 달래주는 최선을 보였다.

지난 17일 죽음의 길목에 다다른 한 씨는 거친 호흡 속에서도 또렷이 "자신과 같은 성매매 여성이 다시 생기지 않기를 바란다"며 "한순미의 집을 오갈 데 없는 출소자들의 보금자리로 사용해 달라"고 유언했다.

주선장 사무국장은 "지난달 21일 한 씨를 처음 만났다"면서 "온 몸이 만신창이가 되어버린 한 씨는 '살고 싶다, 살려 달라'고 눈물로 애원했다"고 회고했다.

주 사무국장은 "무엇부터 그녀에게 어떻게 도움을 주어야 할 지 처음엔 막막했다. 다행히 인천성모자애병원과 DH상조 등 많은 분들의 도움으로 한 씨에게 작은 보탬을 줄 수 있게 됐다"면서 "그러나 정작 그녀의 작은 소망이었던 '자신만의 집, 자신만의 공간'에 한 발도 들여놓지 못하고 허망하게 이 세상을 떠나 가슴이 아프다"고 말했다.

가난 때문에 돈을 벌고자 했고 가난 때문에 치료를 제 때 못해 죽음을 맞은 한 씨의 '한' 많은 일생은 지난 19일 이 세상과의 마지막 작별을 고하면서 막을 내렸다.

늘 혼자였던 그녀의 마지막 가는 길에는 노모와 한국교정복지선교연합회 회원, DH상조 관계자, 소식을 접한 여성단체 회원 등이 나와 지켜줬다.

현재 인천성모자애병원 뒷산 밑자락에는 고인이 되어 버린 한 씨의 아름다운 소망이 담긴 그녀의 집만이 돌아오지 않을 주인을 기다리며 외로이 자리하고 있다.

/김영욱기자 kyw@inews24.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