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매매피해 여성의 자살기도가 의미하는 것 -월간말

성매매피해 여성의 자살기도가 의미하는 것
성매매 처벌법 꼬투리 잡아서 될 일인가

이정은 기자 leeche2001@hotmail.com

추석 연휴 마지막 날인 9월 29일, 한 성매매피해 여성이 자살을 기도했다. 언론은 그가 남긴 유서에 성매매알선등처벌법(이하 처벌법) 시행으로 수입이 줄어 생계가 어려워졌다며, 법을 제정한 국회의원들을 원망하는 내용 등이 담겨 있다고 전했다. 현재 병원에 입원치료 중인 이 여성은 경찰 조사에서도 "왜 (성산업을) 없애려고 하는지 모르겠다"는 말을 반복했다고 한다.

처벌법이 시행된 9월 23일 이후 휴가를 얻어 새 직장을 구하려고 했지만 실패해 자살을 결심한 그에게 경찰이 성매매피해 여성들을 위한 쉼터를 소개했지만 본인은 그도 거부했다고 한다. 이번 사건을 두고 업주들은 "집중단속으로 일자리를 잃은 데다 자기들도 처벌을 받는다고 하니까 이런 일이 생긴 것"이라며 처벌법 시행을 비난했다. 이런 반응은 네티즌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성매매 관련 논란이 일 때마다 게시판을 가득 메웠던 비난 섞인 음담패설을 제외하더라도, 대부분의 의견은 "성매매로 손쉽게 돈을 벌려고 하지 말라"는 점잖은 충고(?)로 모아졌다. 'newnewjj'라는 아이디를 쓰는 이는 "돈은 조금 적더라도 마음만 먹으면 아르바이트라도 구할 수 있을 텐데 안타깝네요. 이 기회에 돈을 쉽게 벌려고 하는 윤락녀들 반성하세요"라고 썼는가 하면, 'rltpgus'라는 아이디의 네티즌은 "딱한 사정은 알겠지만 정상적이지 못한 삶을 남 탓으로 돌리지 말고 이제부터라도 열심히 사세요. 일할 곳은 널려 있어요. 지금보다 편하고 쉽게 돈 벌 수 없지만 소중한 땀방울 흘려보세요"라고 남겼다. 아예 "선불금도 무효라고 하는 마당에 뭐가 아쉬워서 남아있겠냐, 뻔하다"며 성매매 피해여성들을 '쉽게 돈을 벌려는 여성'으로 매도하는 글이 쇄도하고 있다.

성매매가 피해여성 개인의 문제인가

이번 사건에 대해 성매매피해 여성의 재활을 지원하는 단체들은 대부분 '예상했던 일'이라는 반응이다. 처벌법이 시행됐다고는 하나, 여전히 성매매 근절(금지주의)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인데다가 새 법에서 강력한 처벌 대상인 업주들의 반발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또한 업주들의 논리를 확대재생산하는 일부 성 구매자들의 호응도 커 이와 유사한 논란은 앞으로도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하긴 이미 처벌법이 시행된 첫 날, 성매매피해 여성들이 앞장 선 처벌법 시행 반대 집회가 열리기도 하지 않았던가. 물론 이후 업주의 강요에 의한 것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지긴 했지만. 문제는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이 성매매 문제를 피해여성 개인의 것으로 돌리는데 앞장서고 있다는 점이다.

성매매피해 여성 재활지원을 위한 '다시함께센터'의 조진경 소장은 "가난한 집에서 검사 나온다고 하는 말이 있다. 마치 가난은 개인 탓이다, 너만 열심히 하면 검사도 되고 뭐든 할 수 있다는 식인데 이런 논리가 성매매 피해여성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묻고 싶다. 성산업을 '너만 열심히 하면 돈을 벌어 나갈 수 있는 일'로 이해하는 한 결국은 성매매 피해여성 개인의 문제로 좁히는 함정에 빠질 수 있다"라고 말했다.

특히 이번 사건은 이런 구조를 만드는데 성매매피해 여성들이 앞장 서고 있는 것 아닌가하는 의구심을 낳았다. 이에 대해 조진경 소장은 "성매매피해 여성들조차 이곳에서 돈을 벌어 나갈 수 있다는 환상을 갖고 있다"며 이번 사건과 비슷한 상담 사례를 소개했다. 그는 "드러나 있는 사실뿐 아니라 그 의미를 잘 살펴 보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작년 00 집결지에서 찾아 온 한 여성이 상담소에 들어 선 순간 '내가 몸 팔겠다고 데모했던 애에요'라는 말을 했다. 사연은 이렇다. 어느 날 갑자기 자기가 있던 업소를 폐쇄한다고 전경들이 출입구를 막아서더란다. 그 친구는 나이가 어렸는데 스스로도 쉬지 않고 일했다고 할 만큼 몸을 혹사시켜서 돈을 벌려고 했단다. 빨리 돈을 벌어야 빚을 갚고 순수익을 얻을 것으로 기대했던 것이다. 그런데 구청에서 업소를 폐쇄한다고 하니 본인이 나서서 집회를 주도했고, 한 1년 동안 꾸준히 탄원서를 보냈다고 했다. 영업이 안 되자 빚은 계속 쌓여 3500만원에 이르렀고 그는 업주에게 빚을 묶어달라고 사정하고 이후 2년 동안 다른 지역을 전전했다. 결국 두 번의 자궁수술을 받으면서 이후 3500만원의 빚을 더 지게 됐다. 이제 죽는 길 밖에 없다고 생각했던 차에 상담소에 오게됐고, 이미 6군데에서 사기로 고소당한 상태로 직접 만나보니 마치 '산 송장'같았다. 그 친구는 자기만 잘 하면 돈을 벌어 나갈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에게 남은 것은 무엇인가."

탈성매매 이후의 삶, 별다른 대안이 없다

현재 성매매피해 여성은 10대 중후반의 나이에 성산업에 유입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교육수준이 낮고 수년간 성산업에 종속돼 비정상적인 삶을 살아온 이들이기에 탈성매매에 성공했다 해도 다른 일자리를 구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또 사회에서 이들을 보는 시선은 어떤가. 조진경 소장은 이들을 이방인이 아닌 피해자로 받아 안는 인식의 변화가 시급하다고 말한다.

"성매매피해 여성들은 이렇게 말한다. 아무도 우리를 인간취급하지 않는다고. 누가 보호해 주겠느냐고 말이다. 사실 밖에 나가도 할 일도 없다. 너무나 많은 성매매피해 여성들을 보면서 이미 큰 상처를 받은 이들이 다시 살아나기 위해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미비하게나마 이들을 위한 보호체계가 있지만 제대로 홍보가 안돼 오히려 거부감을 갖고 있는 경우도 많다. 이런 상황에서 선불금을 갚기 위해서든, 아니면 빚을 갚기 위해서든 돈을 벌어야 하는 입장에 놓인 이들에게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이다. 성매매 피해여성들을 이방인이 아닌 피해자로 받아들이고 이 사회 안에서 잘 살게 하기 위한 사회보장 체계를 마련하는 것이 우선이다. 얼마나 몸을 팔고 싶었으면 자살했겠느냐가 아니고 얼마나 극한 상황에 몰렸으면 그런 선택을 했겠냐를 이해하는 것이 맞지 않겠는가."

('윤락'이라는 용어는 성매매를 사회문제가 아닌 개인의 도덕적 측면으로 정의하고 있고 '매음'이나 '매춘'은 성을 사는 행위를 덮고 성을 파는 행위에만 촛점을 맞추고 있다. 또한 '매매춘'은 여성의 성과 몸을 봄이나 꽃으로 비하하는 일본식 표현으로 적절하지 않다. 최근 성을 사고 파는 행위 모두를 다루는 '성매매'라는 용어가 쓰이고 있으나 이는 성매매가 성적 착취를 목적으로 가해지는 인권침해라는 점이 드러나 있지 않다. 그래서 <말>지는 앞으로 성매매 관련 기사를 다룰 때 '성매매 피해여성' 이라는 용어를 사용할 것이다.)

2004년 10월 0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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