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왕설래]단란주점

[설왕설래]단란주점
세계일보|기사입력 2007-10-28 21:45

중국 송나라 때 범엽이 쓴 후한서의 동이전(東夷傳)은 우리 조상을 “저녁이나 밤에 무리를 지어서 며칠씩 술을 마시고 춤추고 노래한다”고 표현하고 있다. 우리 민족은 일을 하면서도, 심지어 장례를 치르면서도 음(音)을 빼놓지 않는다.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음악을 좋아하고, 삶 자체를 노래로 승화시켰다.

1980년대 중반 일본에서 발명한 노래방 기기가 우리나라에 상륙해 엄청나게 번져나간 것도 가무음률을 즐기는 우리의 민족성에 잘 들어맞은 셈이다. 한국 교민이 살고 있는 곳이면 어디에서든 반드시 노래방이 들어서 있을 정도다.

노래방이라는 업종이 처음 등장할 때만 해도 술을 팔지 않는 조건으로 허가를 내줬다. 처음에는 이러한 영업조건이 잘 지켜졌다. 시간이 흐르면서 노래방 업주는 술을 달라는 손님들의 요구를 맞추지 않을 수 없었다. 이후 경찰과 행정기관은 노래방에서 술을 파는 업태위반 행위에 대해 단속을 계속했다. 단속 때마다 너무 많은 업소가 적발되다 보니 이를 양성화하기 위해 등장한 업소가 ‘단란주점’이었다. 가족이나 친구끼리 부담없이 좋은 분위기에서 단란하고 즐겁게 노래도 부르고 술도 마시는 곳으로 허가를 내 준 것이다. 일정 규모(150㎡) 이하의 경우 주거지역에도 허가를 내줬다. 1종 유흥업소인 값 비싼 룸살롱과 달리 서민들의 건전한 휴식공간을 위해 술만 팔 수가 있고, 룸은 투명한 유리 등으로 개방하며 접대부를 고용할 수 없도록 원칙을 규정했다.

하지만 단란주점은 어느 틈엔가 접대부 고용, 성매매 행위 등 룸살롱과 흡사한 영업을 하기 시작했다. 업주들은 단속에 걸리면 벌금을 내고 말겠다는 식으로 버텼다. 관계기관의 단속도 무력했고, 이젠 단속을 사실상 포기한 상태가 돼 버렸다.

국정감사에 나선 국회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 소속 의원들이 피감기관의 향응을 제공받고 최근 대전 유성의 단란주점 등에서 술자리를 가져 파문이 번지고 있다. 국감 향응이 여러 차례 문제가 돼 ‘다시는 그런 일 없겠다’는 다짐 또한 수도 없었지만 구태가 여전하다.

더 이상 ‘단란’이란 말을 쓰기에 민망할 정도의 세태가 돼 버려 씁쓸하다.

박병헌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