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 기지촌 외국인 여성 “우리가 행복해 보여요?”

미군 기지촌 외국인 여성 “우리가 행복해 보여요?”
한겨레 | 기사입력 2007-10-19 08:39

[한겨레] 동두천 보산동 ‘아메리칸 앨리’에는 미군과의 사이에 태어난 혼혈아들을 유모차에 태우고 다니는 필리핀 ‘새댁’들이 많다. 최근 2∼3년전부터 눈에 띄게 달라진 ‘새 풍경’이다.

예술흥행비자(E6)로 우리나라에 입국한 필리핀 여성은 2381명(2005년 기준). 전체 연예인 입국자 4759명의 59%이고, 10년 전의 898명보다 3배 가까이 늘었다. 이들이 대부분 동두천·송탄·평택 등지의 기지촌 주변 클럽으로 유입되면서 클럽에서 만난 미군과 동거, 결혼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미군 병사와 외국인 여성들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보산동에만 수십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미군이 떠나버리면 혼혈아들은 ‘무국적자’가 되거나 친자 인정 등을 둘러싼 소송 등의 대상이 된다. 기지촌 주변 사람들은 “과거 한국 여성에서 외국인 여성으로 대상만 바뀌었을 뿐”이라고 말한다.

“행복해 보여요?” ‘아메리칸 앨리’에서 만난 필리핀 여성 샤일라(22)씨는 “(우리) 10명 중 9명은 슬프고 그나마 1명은 미국에 가도 고립감과 냉대로 불행해지곤 한다”고 힘없이 말했다.

‘두레방’ 유영님 원장은 “기지촌 여성들이 클럽에서 탈출하려면 미군을 잡아야하고, 이런 열악한 조건을 잘아는 미군은 사랑을 빙자해 동거, 결혼해 돈을 주고 않고 성을 사고 매달 1천달러 안팎의 적지 않은 가족수당도 챙긴다”고 말했다. 클럽의 한달 수입이 대략 500∼600달러에 ‘2차 성매매’도 공공연한 이곳에서 외국 여성들에게 미군은 ‘탈출구’로 보인다. 그러나 미군이 훌쩍 떠나버리면 아이와 힘들게 살아야 한다.

미군과 결혼한 에이프럴(21)씨는 “미국으로 전출된 남편이 아기와 나를 데려간다고 했다”면서도 “솔직히 불안하다”고 말했다. 동두천/홍용덕 기자 ydhong@hani.co.kr

한살배기 놔둔 채…미군 아빠, 500달러 주고 도망
한겨레 | 기사입력 2007-10-19 08:39

[한겨레]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아이를 위해 싸우고 있습니다.”

필리핀 출신인 아린진 베라노(37)씨는 한 살된 아들 아리스 데이브 왓슨과 경기 동두천시 보산동 미 2사단 캠프 케이시와 붙은 ‘아메리칸 앨리’(일명 미국의 뒷골목)에 산다. 모자가 살고 있는 단칸방은 낯선 땅에 남겨진 이들의 유일한 피난처다.

16만원의 사글세도 밀리고 예술흥행비자(E6) 기간도 끝나 ‘불법 체류자’가 된 그는 지금, 빵공장을 다니며 힘겨운 ‘법정 소송’을 진행 중이다.

그는 아들 데이브의 아버지이며 자신과 한 때 동거했던 미2사단 소속의 윌리엄 토마스 왓슨(27)씨를 상대로 지난 5월2일 의정부지원에 친권 행사자와 양육권 지정 및 아들에 대한 양육비로 매달 50만원을 지급하라는 소송을 냈다. 그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여자와 성관계만 갖고 아무런 의무도 이행하지 않은채 떠나 버리면 안된다는 것을 (미군들로 하여금) 알게 하고 싶다. 왜냐하면 아직도 많은 미군들이 그렇게 하기 때문이다.”

그가 왓슨씨를 만난 것은 2005년 9월이다. 연예인으로 한국에 입국해 동두천 기지촌인 이른바 ‘턱거리’의 한 클럽에서 미군들을 상대로 주스를 파는 ‘주스걸’로 일하며 매달 6백달러를 받았지만 ‘코리안 드림’을 이룰 곳은 아니었다.

“처음에 클럽 아가씨들이 와서 ‘너 여기서 어떤 일을 할 지 알고 왔어? 여기는 미군들하고 나가서 자야하는 곳이야.” 심지어는 한국인과의 ‘2차’(성매매) 요구도 받았던 그는 한 달여만에 클럽을 나와 식료품공장 등을 떠돌다 왓슨씨를 만나 동거에 들어갔고 아이를 낳았다.

왓슨씨는 자신의 아들을 위해 미국 여권을 만들었지만 이내 다른 필리핀 여성을 만나자 그를 떠났다. 그 사이 왓슨씨가 2차례 준 양육비는 552달러. 소송이 제기되자 왓슨씨는 지난 8월15일 ‘온다 간다’ 말도 없이 미국으로 가버렸다. 새 주소를 알려달라는 그의 요청에 미군은 지금껏 침묵하고 있다.

법무법인 덕수의 이정희 변호사는 “소장을 전달할 주소지 확인도 어렵다”며 “소파 규정상 미군이 민사문제에 협조해야 하지만 이런 경우 적용된 사례도 없고 한국 법원이 양육비 지급 판결을 내려도 다시 미국 법정에서 양육비 지급 절차를 거쳐야 한다”고 말했다.

그 사이 상대 없는 재판은 3차례 열렸다. 그는 “주변에서 미군을 상대로 어떻게 이기냐고 한다. 그러나 내 아이는 ‘하찮은 존재’가 절대 아니다”며 소송을 계속할 뜻을 밝혔다.

이에 대해 미군 쪽은 “이 건은 개인 문제로, 미 대사관을 통해 법적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밝혔다. 동두천/글·사진 홍용덕 기자 ydho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