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몽털고 보육교사 꿈 이뤄야죠"

"악몽털고 보육교사 꿈 이뤄야죠"

[한국일보 2006-01-31 17:51]

“저처럼 어려운 아이들을 돌보는 보육교사가 되고 싶어요.”

다시 꿈을 꾼다. 2년 가까이 잊고 지냈던 희망이다. 지난해 여름 경기지역의 한 성매매 집결지를 탈출한 K(21ㆍ여)씨는 설 다짐이 남다르다. 현재 지방의 모처에서 성매매로 만신창이가 된 몸과 마음을 추스르고 있는 그는 “보육교사 자격증을 따 당당한 모습으로 다시 세상에 나서고 싶다”고 소망했다.

그가 나락으로 빠진 건 2004년 고교를 졸업하면서부터. 꿈을 이루기 위해 매진했던 공부는 뒤지지 않았지만 어려운 형편 때문에 스스로 대학진학을 포기해야 했다. 지긋지긋한 가난을 벗어나고 싶었다. 대학도 가고 쉽게 돈도 벌고 싶었다. 친구의 속삭임이 무너진 마음을 비집고 들어왔다. “조금만 고생하면 자립할 수도 있고 대학도 갈 수 있어.”

유혹은 달콤하고 질겼다. “그래, 여동생 학비도 보태주고 대학에도 가자.” 그렇게 티켓다방에 발을 들여놓았다. 차 배달은 곧 성매매로 이어졌다. 끔찍했지만 꿈을 위해 마음을 다잡았다. 하지만 이상하게 돈은 벌리지 않았다. 일을 할수록 빚만 늘어갔다.

순간의 잘못된 선택은 디딜수록 빠져드는 검은 늪이었다. 급기야 눈 더미처럼 쌓인 빚을 갚기 위해 지난해 초 성매매 집결지로 팔려갔다. 밤 7시부터 다음날 아침까지 몸을 팔아야 했다. 평소에도 덜덜 떨리고 숨이 가빠지는 심장질환까지 앓게 됐다. 꿈은 사라진 지 오래, “이러다 죽겠구나” 하는 두려움이 엄습했다.

그제서야 퍼뜩 정신이 들었다. “나가게 해달라”고 통사정을 했지만 업주는 수입은 없고 빚 내역만 적힌 마이너스 통장을 내보여줬다. 강제로 작성한 500만원짜리 선불금 차용증도 덜미를 잡았다. 아픈 몸으론 달아날 수도 없었다. 게다가 주차관리요원으로 위장한 남자 2명이 늘 감시하고 있었다.

지난해 8월 어느날 아침 그는 마지막 손님을 보내고 휴대폰 버튼 ‘117’(117 성매매피해여성 긴급지원센터)을 눌렀다. 그날 감시의 눈을 피해 경찰과 문자메시지를 주고 받는 노력 끝에 그는 악몽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업주는 불구속 입건됐다. 그는 “세상물정을 너무 몰랐다”고 뒤늦은 후회를 했다.

K씨는 현재 유치원 보육교사가 되기 위해 대학 진학과 아르바이트를 준비 중이다. 몸도 많이 나았다. 그는 “저에게 꿈과 희망을 다시 찾아준 이들에게 감사하다”며 “어렵겠지만 이젠 평범한 길을 가고 싶다”고 말했다.

경찰청은 지난해 117 성매매피해여성 긴급지원센터를 운영해 성매매 여성 104명을 구조하고 업주 560명을 검거했다. 성매매 신고(395건), 업소단속(240건), 선불금 상담(199), 납치감금(18건) 등 1,679건이 접수됐다.

고찬유 기자 jutd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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