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성매매 여성들, 치유로서의 ‘글쓰기’

탈성매매 여성들, 치유로서의 ‘글쓰기’

[일다 2006-01-31 05:57]

부산 지역 성매매피해여성지원센터 ‘살림’(wom-survivors.org)의 쉼터에서 거주하는 여성 10인의 수기와 인터뷰 등을 엮은 책 <너희는 봄을 사지만 우리는 겨울을 판다>가 발간됐다. 이 책은 2006년 한국여성기금 지원사업으로 선정되어 2005년 3월부터 7월까지 총 16회의 글쓰기 치료프로그램을 거쳐 완성된 여성들의 글을 담고 있다.

과거의 경험과 마주대하다

이 책은 여성들이 직접 쓴 수기를 통해 성매매 현장을 가감 없이 고발하고 있다. 살림 측은 책을 엮으면서 “여성들이 손으로 써 내려간 수기 외에도 글에서 다 못 풀어낸 이야기를 담아낸 인터뷰, 작은 글 등을 통해 그 공간을 살아낼 수 있었던 힘과 용기, 그리고 꿈을 드러내고자 했다”고 한다.

“나는 사람일까? 아니면 동물일까?

아니면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그런 어떤 것일까?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그 때의 나는

어떤 의미도 없는 그런 것에 불과한 거 같다.

형상은 인간이지만 인간으로서 가져야 하는

그 어떤 것도 가지지 못한 인간...”

<재수, 「난 단지 여자일 뿐이다」중에서>

수기는 성매매 경험만이 아니라 어린 시절의 상처들, 성매매에 유입된 과정, 그 안에서의 폭력적 경험과 탈성매매까지의 삶을 재구성하고 있다. 마주대하기 고통스러운 과거의 경험을 재구성해낸 글들은 그 과정 자체가 여성들에게 치유의 경험이 되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깊다.

성매매 현장의 기록

성매매 여성의 시선으로 성매매 여성의 삶을 드러낸 글들은 이 사회 성매매 현실에 대한 구체적인 증언이 된다. 살림 측은 “사람들이 잘 안다고 생각하는 성매매 여성, 그러나 우리가 결코 몰랐던 그녀들의 이야기를 읽고, 글로써 타인이 되어보는 경험을 해 보았으면 한다”는 말로 출간의 의의를 밝혔다.

성매매와 성매매 여성에 대한 왜곡된 말들, 탈성매매를 하지 못하는 이유를 개인의 의지문제로 바라보거나, 성매매에 유입되는 것 역시 쉽게 큰 돈 벌려는 성품의 문제로 바라보는 것은 성매매의 현실을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에 실린 글들은 성매매 문제의 진실에 보다 진솔하게 다가설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한다.

“알지 못하는 사람들 결혼 축의금까지 내고 지각비, 결근비가 10만원이 넘고 구좌비에다 와리까지... 당연히 빚이 늘고 업소를 빠져나올 수 없는 상황이었는데 아등바등 발버둥쳤었던 게 우둔하게 느껴진다. 말도 안되는 소리를 들어도 당연하게 받아들였고, 따라야 하는 줄로 알았다.(중략)오히려 반항하거나 도망치려는 애들이 어리석게만 느껴졌다. 하라면 하고 죽으라면 죽는 시늉까지 내야만 하는 게 그 곳의 법이고 관례였다. 그래서 나는 아직 그 곳에 남아있는 친구, 동생, 언니들을 이해할 수 있다. 그들은 아직 그 법속에 살고있을 뿐 그 곳을 빠져나올 계기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쁘니, 「나는?! 」중에서>

그 공간을 살아낸 힘

이 책에서 “여성들이 ‘그 공간을 살아낸 힘’을 보여주고 싶었다”는 살림 측의 얘기처럼 책 곳곳에는 여성들의 긍정적인 힘들이 드러난다. 여성들은 피해의 경험에 머물지 않고 탈성매매 이후 자신을 지켜가는 방법을 터득하고 스스로의 삶을 만들어내고 있다. 이를 통해 우리가 마주하는 것은 성매매가 ‘어쩔 수 없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예전엔 먼 거리도 택시를 이용했는데, 지금은 땀냄새 풀풀 풍기는 버스를 탄다. 노인분들이 타시면 자는 척 한 번 해보고 자리를 비켜 드리고, 슈퍼를 갈 때도 화장을 하고 갔던 내가 요즘엔 아침마다 썬크림 하나만 바르고 학원에 간다. 지금은 대입자격 검정고시 시험을 준비중이다. 합격을 하게 되면 대학교도 가고 싶다. 나는 지금 꿈을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가고 있다. 내가 일을 했던 게 늦은 저녁이었나? 만약 그렇다면 지금은 새벽인가 보다. 곧 아침이 찾아오면 나는 업소에서 일하는 아가씨가 아닌, ○○○이라는 이름으로 새단장을 하고서 더 나은 오늘과 더 나은 내일을 생각할 것이다.”

<48쪽, ‘이제는 나도 웃는다’ 중에서>

문의: 051-247-8292, survivor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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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주의 저널 일다 박희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