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성매매후 찾은 새 삶..."117 누르세요"

탈성매매후 찾은 새 삶..."117 누르세요"
성매매 종사 여성들에게 전하는 당부 "지옥같은 생활 접으세요"
< 2004/10/22 오후 6:56 오마이뉴스 >

불과 1년 전까지 만해도 이영은(21·가명)씨의 꿈은 "선불금을 한푼이라도 더 까는(갚는) 것"이었다. 희망조차 없었던 그에게 '미래'란 존재하지 않았다.

16살때 충동적인 가출로 거리에 나선 그에게 먹여주고 재워주고 월급까지 준다는 (티켓)다방은 뿌리칠 수 없는 유혹이었다. 이렇게 발을 디딘 티켓다방은 이후 6년간이나 그의 발목을 붙잡았다. 애초 다방에서 쥐어준 선불금 150만원은 3000만원까지 불어났다. 업주는 지각비, 결근비, 세금(실제 세금이 아니다), 방값, 옷값 등 갖은 명목으로 돈을 떼갔다. 박씨는 빚을 갚기 위해 티켓다방을 전전하다 룸살롱까지 들어갔지만 빚은 늘어날 뿐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현재 그는 국가기술자격증을 가진 미용사다. 미용실에 취직한 이씨는 "2주 뒤엔 첫 월급을 받는다"고 말했다.

"피땀 흘려 번 돈이예요. 월급 받으면 눈물부터 날 것 같아요."

이씨가 새 길을 찾은 데에는 서울의 한 성매매 피해여성 지원시설(쉼터)의 도움이 컸다. 더 이상 내일없는 하루를 살기 싫었던 이씨는 부모에게 도움요청을 했고 부모의 수소문으로 지난 해 10월 이 쉼터에 오게 된 것.

죽고 싶었던 하루하루는 과거로... 미용사·대학생으로 '새 삶'

이씨는 쉼터에서 지내는 1년 동안 자신의 꿈을 되찾았다고 말했다.

"원래 메이크업(아티스트)에 관심이 많았어요. 쉼터에 오면서 네일아트와 미용 교육을 받았지요. 일주일에 닷새씩 종일 교육이 있는데, 7개월 후에 국가기술 자격증을 땄습니다."

처음에는 업주들이 찾으러 오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과 두려움에 시달렸다. 다른 탈성매매 여성과 잘 지낼 수 있을까 하는 걱정도 있었다.

하지만 쉼터에서 지내는 1년 동안 그는 서서히 변했다. 입소 기간이 만료된 지난 달 쉼터를 나서면서도 걱정보다는 미래에 대한 설계가 앞섰다.

"이제는 고교 검정고시를 준비할 거예요. 대학도 갈 거고 가능하다면 유학도 가고 싶습니다. 예전에는 감히 하지도 못했던 생각이죠."

박미림(25·가명)씨도 같은 쉼터에서 새 삶을 찾은 경우다. '1366'(여성긴급전화) 신고를 통해 두 달 전 룸살롱에서 빠져 나와 이곳으로 오게된 박씨는 지금 '사회복지학도'가 됐다. 쉼터에서 자매결연을 맺고 있는 한 사이버대학에 입학했기 때문이다.

박씨는 "매일 죽고 싶다는 생각 뿐이었던 석 달 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하루하루"라며 "지금 느끼는 행복은 복권 1등 당첨에도 비교할 수 없다"고 말했다.

"요즘은 중간고사 기간이예요. '아동복지론''지역사회복지론''인간행동과 사회' 등의 과목을 수강하고 있는데, 공부를 하다보면 24시간이 모자라요. 예전에는 자다 일어나서 화장하고 술먹고 성관계 갖고 또 지쳐서 자다 일어나서 화장하고… 이런 생활의 반복이었는데."

공부를 하면서부터 박씨는 자신감도 되찾게 됐다고 말했다. "전에는 낮에 돌아다니면 누가 알아보지 않을까 불안에 떨었지만 지금은 아니"라며 "공부를 계속해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따 같은 처지의 여성들을 돕고 싶다"는 포부도 밝혔다.

"용기를 갖고, 마음 굳게 먹고 '전화'하세요"

이 쉼터에는 박씨와 이씨 같은 처지의 성매매 피해여성 27명이 살고 있다. 적게는 15살부터 많게는 36살까지 성매매업소 밀집지역(집창촌), 룸살롱, 티켓다방 등 각종 성매매 업소를 빠져 나온 여성들이 새 삶을 꾸려가고 있는 것.

물론 쉼터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이들도 있다. 박씨와 이씨는 "쉼터에 들어오고 나서도 다른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거나 돈이 궁해 나가는 경우도 있다"며 "하지만 그런 경우 대부분은 다시 업소로 들어가게 되는데 무척 안타까운 일"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최근 집단 시위와 기자회견을 통해 성매매 종사여성들이 한 "갈 곳 없는 우리더러 어디로 가라고 하느냐" "쉼터에 들어가도 버는 돈이 없을 텐데 어떻게 살란 말이냐"라는 호소에도 공감이 간다고 했다.

박씨는 "사실 나도 업소에 있을 때는 업주에게 잡힐 것이라는 불안감과 나가도 갈 곳이 없다는 이유로 빠져나갈 엄두도 못 냈다"며 "하지만 쉼터 온 이후 마음의 평안과 미래를 되찾았다"고 말했다.

이씨와 박씨는 그들의 주장을 액면 그대로 받아 들여서는 안 된다는 말도 덧붙였다. 이씨와 박씨는 "아마 우리도 업소에 있었으면 거리로 나갔을지도 모른다"며 "선불금을 깎아준다거나 빚을 청산하지 못하면 섬으로 팔아버린다는 업주들의 회유와 협박이 있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한 달에 300∼500만원은 거뜬히 벌어주면서도 내 손에 쥐어지는 순수입은 10만원도 안 돼 돈을 돈으로 알지 않았다"는 이들은 "이제는 돈 귀한 줄을 알겠다"고 입을 모았다.

쉼터에서 주는 용돈은 한달에 단 3만원 뿐인데도 생활에 불편함은 없다고 설명했다. 이들은 "의료비, 외출비, 교통비, 교재비 등 생활에 필요한 돈은 지원이 되는데다가 숙식도 해결이 되니 3만원으로도 생활에 어려움은 없다. 300만원 벌어서 업주에게 고스란히 줬던 옛날에는 돈 귀한 줄 몰랐지만 이제는 10원짜리 동전 하나도 허투로 쓰지 못한다"며 웃었다.

성매매 피해여성 지원시설에 대한 온갖 억측에 대해서도 "말도 안된다"며 고개를 내저었다. 이들은 성매매 종사여성들이 기자회견에서 지원시설에 대해 "수용소와 다를 바가 없다"고 말한 데 대해 "직접 와보면 그런 말은 하지 못할 것"이라며 "무엇보다 '그일'하는 것보다는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편안하다"고 말했다.

이들은 성매매 방지법에 대해서도 기대감을 표했다. "이전에는 '윤락녀'라고 표현하던 방송들이 지금은 '피해여성'으로 표현하는 데서부터 변화를 느낀다"며 "경찰도 '겉핥기 단속'이 아닌 속을 파고드는 확실한 수사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이 해줄 말이 많은 사람들은 무엇보다 성매매의 굴레에서 빠져 나오지 못한 여성들.

"언론에 얼굴이라도 공개해 대놓고 '나오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희망을 잃지 말고, 마음도 굳게 먹고, 용기를 가지세요. 그리고 전화(117)만 하세요. 나오고 싶다는 의지만 있으면 그 지옥같은 생활을 접을 수 있습니다."

이씨와 박씨가 성매매 여성들에게 전하는 진심어린 당부다.

"서울 탈성매매 여성 지원시설 수 늘려야"
집창촌 몰려있어 수요 증가

지난 22일 오후 강북에 자리한 한 성매매 피해여성 지원시설(쉼터)의 '미용반'. 5∼6명의 탈성매매 여성들이 네일아트와 피부관리, 미용 실습 교육을 받고 있었다.

미용반의 담당 교사 이아무개씨는 "7개월정도 수업을 받으면 네일아트와 미용 등 자격증 시험에 평균 반 이상이 합격한다"며 "일반 미용학원에서도 이 정도의 성과는 내기 힘들다"고 말했다.

서울시와 여성부의 지원을 받고 있는 이 쉼터는 미용반, 컴퓨터반 등 기술교육 말고도 ▲성매매 방지법 교육 ▲산부인과 진료와 상담 ▲성평등 교육 ▲우울증, 정신분열증, 불면증, 대인관계 기피증 등 성매매 후유증 치료 등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검정고시나 보육교사, 간호조무사, 의상디자인 등 외부 교육이 필요한 경우에는 교육비도 지원한다.

정원은 25명. 그러나 현재는 이보다 10% 초과한 27명을 수용하고 있다. 성매매 방지법 시행 이후 수요가 늘었기 때문. 이 쉼터의 관계자는 "인원이 초과하고서도 받아달라는 요청전화가 오지만 더 이상은 받지 못하도록 돼 있어 거절하고 있다"며 "새 법 시행 이후 서울은 특히 수요가 증가하고 있어 증설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같은 정부 지원시설은 모두 38곳(전국). 총 747명을 수용할 수 있으나 현재는 반 정도인 432명 정도가 차 있다(지난 6일 여성부 발표). 14곳의 지원시설이 있는 서울의 경우 평균보다 높은 71% 정도가 차 있는 상황.

업주의 눈을 피해 지역에서 오는 탈성매매 여성이 많은 데다가 성매매업소 밀집지역(집창촌)도 몰려있기 때문이다.

이같은 이유로 서울의 경우 지원시설을 늘릴 필요가 있다는 필요성도 제기되고 있다. 지방의 룸살롱에서 빠져나와 서울의 한 지원시설에 머물고 있는 박아무개씨는 "지방 업소에 있던 아가씨들의 경우 업주를 만날 것을 우려해 서울에 있는 시설을 선호한다"며 "이와 같은 시설이 더 늘어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편, 최근 언론을 통해 보도된 성매매 종사여성들의 추측성 발언에 강북의 한 성매매 피해여성 지원시설의 한 관계자는 "쉼터를 '감금시설'로 오해하고 있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 관계자는 "과거 기술학교식의 시설을 연상하고 이런 소문이 퍼지고 있는 것 같다"며 "60∼70년대의 시설 이미지가 아직도 계속되고 있어 더욱 적극적인 홍보가 필요하다"고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2004/10/22 오후 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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