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려 쓴 돈 330만원, 5개월간 갚은돈은 610만원

빌려 쓴 돈 330만원, 5개월간 갚은돈은 610만원
한겨레 | 기사입력 2007-10-08 20:21 | 최종수정 2007-10-08 23:21

[한겨레]
대부업체들 “싫으면 관두쇼” 배짱영업
신고해봤자 “단속인력 없다”고 시큰둥
대부업 이용자 절반이 “있는줄도 몰라”

개인과외 강사인 이선미(24·가명)씨는 지난 9월 말 그룹과외를 하기 위해 얻었던 오피스텔에서 나와야 했다. 보증금 500만원 가운데 250만원이 대부업체에 넘어갔기 때문이다. 이씨는 이 업체에서 올해 4월 오피스텔 보증금을 담보로 300만원(실수령액 210만원)을 빌렸다. 5월부터 석달 동안 60만원씩 여섯 차례에 걸쳐 360만원을 갚으라는 조건이었다. 6월에 다시 150만원(실수령액 120만원)을 빌려 여섯번을 채웠지만 이 업체는 8월에 210만원을 더 내야 한다고 통보했다. 결국 이씨는 오피스텔 보증금으로 빚을 갚아야 했다. 실수령액 330만원을 받고 5개월 동안 610만원을 줬으니 연 이자율이 200%가 넘는 셈이다.

지난해 9월 오피스텔 보증금 때문에 처음 대부업체에서 500만원을 빌렸던 이씨는 올해 9월까지 12곳의 등록·무등록 대부업체를 전전하며 ‘사채 돌려막기’를 했다. 연 이자율 200%가 넘는 살인적인 이자를 갚으려면 다시 다른 대부업체에서 돈을 빌릴 수밖에 없었다. 무등록 업체뿐 아니라 등록 업체도 법정 이자율(66%, 10월4일 이후 49%)은 있으나마나였다. 지난 6월30일 무등록 대부업체의 이자율을 연 30%로 제한하는 ‘이자 제한법’이 시행됐지만, 이씨의 고통에는 아무 변화가 없었다. 이자제한법 시행 직후인 7월 초 이씨는 한 업체에서 100만원(실수령액 70만원)을 빌렸고 20일 뒤 이자와 원금으로 140만원을 갚아야 했다.(하루 이자율 5%)

이씨는 “500만원으로 시작했는데, 1년이 지난 지금 1500여만원을 갚았는데도 아직 3500여만원의 채무가 남아 있다”며 “처음에는 돈이 급해 ‘일단 빌리고 보자’는 생각밖에 없었는데 정말 후회된다”고 가슴을 쳤다. 이씨는 “이자제한법은 있는 줄도 몰랐다”며 “대부업법상 이자 상한선 66%는 알고 있어 대부업자에게 한번 운을 떼봤더니 ‘돈 빌리기 싫으면 나가라’는 말만 돌아왔다”고 말했다. 경찰에 신고하고 싶었지만 ‘대부업자들이 해코지를 할까봐’ 두려웠다. 결국 막판까지 몰린 이씨가 찾은 곳은 정부 기관이 아니라 민주노동당 민원센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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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자제한법이 시행된 지 8일로 100일이 지났다. 10년 만에 힘들게 부활한 법이지만 정작 불법 사금융 현장에는 미풍도 불지 않고 있다. 법의 실효성을 확보하기 위한 관리·감독, 단속과 처벌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탓이다. 이런 법이 있는지조차 모르는 국민들도 많다. 정부는 지난 6월 2차 대부업정책협의회를 열어 ‘종합선물세트’처럼 번지르르한 대책들을 발표했지만, 대부분 실행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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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가 서민대출중개업체 한국이지론과 공동으로 10월 1~7일 이지론 이용자들에게 이메일을 보내 설문조사한 결과, 설문에 응한 768명 가운데 절반에 가까운 380명이 이자제한법에 대해 “모른다”고 답했다. 석달 동안 정부의 홍보는 거의 없었다. 소관 부처인 법무부의 김영준 법무심의관은 “이자제한법이 대부업법과 밀접한 관련이 있어 이번 정기국회에서 대부업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관련 내용을 함께 정리해 홍보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정부의 대부업법 개정안은 아직 정기국회에 제출되지도 않은 상태다.

법무부는 6월 발표문에서 “고리사채를 이용한 저소득층 국민이 법률구조공단을 활용해 이자제한법 관련 법적 분쟁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홍보하겠다”고 밝혔지만, 역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자제한법상 연 30% 이상 지급한 이자는 소송을 통해 돌려받을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 저소득층인 사금융 피해자들이 대부업체를 상대로 소송을 하기란 제도적 지원 없이는 어려운 일이다.

불법 대부업체 단속은 여전히 사각지대에 방치돼 있다. 등록·무등록 대부업체들의 불법 영업에 대한 처벌은 이자제한법이 아닌 대부업법에 규정돼 있다. 따라서 이자제한법이 실효성을 가지려면 대부업법의 철저한 시행이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 현재 대부업체 관리·감독은 지방자치단체가 맡고 있다. 이광수 서울시 특수거래팀장은 “담당 인력이 4명인데 대부업체 신규 등록 신고만 일주일에 100건씩 된다”며 “숫자도 많은데다 숨어서 영업하는 무등록 업체까지 어떻게 적발할 수 있겠냐”고 말했다. 정부는 지난 6월 “전국 지자체의 대부업 담당 인력을 71명 증원하고 이자제한법 시행 전까지 경찰청의 단속 전담 인력 충원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8월 말 현재 지자체 인력 증원은 12명밖에 되지 않았다. 경찰의 인력 충원은 아예 내년으로 미뤄졌다.

사금융 피해자들을 돕는 모임인 서민경제회복연대의 백승진 국장은 “피해자들이 지자체에 전화를 하면 경찰로 돌리고, 경찰은 다시 지자체에 전화를 돌리기 일쑤”라고 말했다. 한국이지론의 이현돈 이사는 “불법영업을 하는 대부업자들은 ‘단속에 걸릴 확률도 거의 없고, 걸려도 벌금을 내면 된다’는 말을 공공연하게 한다”고 전했다. 불법 이자율에 대한 처벌은 벌금 200만~300만원으로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일단 법만 만들면 끝’이라는 식의 정부의 안일한 태도가 계속되면서 이자제한법은 유명무실한 법으로 전락하고 있다. 안선희 김경락 기자 s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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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구조공단 소송지원 나서고
금감원도 더 책임 회피 말아야

어떻게 해야 하나

이자제한법이 실효성을 가지기 위해서는 불법 사금융에 대한 철저한 단속과 피해자들에 대한 법률구조, 저소득층에 대한 금융상담, 대안금융 활성화 등의 종합적인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

우선 일반 국민들이 ‘30% 이상의 이자는 불법’이라는 인식을 분명히 가질 수 있도록 적극적인 홍보를 하는 것이 필요하다. 참여연대의 권정순 변호사는 “일단 국민들이 이를 체감하게 되면 아무리 사정이 급해도 수백%의 이자율을 선뜻 받아들이지 않게 되고, 폭리 수준도 차차 낮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초과이자 반환 소송도 활성화해야 한다. 6월30일 이후 무등록 대부업체에 지급한 30% 이상 이자는 이자제한법상 무효다. 송태경 민주노동당 경제민주화운동본부 정책실장은 “경찰이 무등록 대부업자를 적발해 형사 처벌을 하는 동시에 민사적으로는 초과이자 반환 소송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법률구조 시스템이 갖춰져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대한법률구조공단이 월 소득 240만원 이하 저소득층에게 소송 대리 같은 법률 지원을 하고 있지만, 이자제한법 정착을 위해서는 좀더 적극적인 지원 장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권 변호사는 “일본에서는 초과이자를 돌려받으려는 소송이 아주 많다”며 “법률구조공단에서 ‘가정폭력’이나 ‘체불임금’처럼 ‘사채 피해’를 별도 범주화해 구조 대상에 넣는다면 소송이 더 활발해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부업체 불법 영업을 철저하게 적발해 처벌할 수 있는 지방자치단체와 경찰의 전담 인력과 증원은 이자제한법이 제자리를 잡는 데 기본적인 조건이다.

금융감독원이 더는 책임을 회피하지 말고 대부업체 감독에 적극 나서야 한다는 요구도 많다. 금감원이 대형 대부업체 감독을 맡으면서 표준계약서 의무화 등 전체 대부업 관련 제도 개선을 주도적으로 해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한 지자체 관계자는 “대형 대부업체는 금감원에서, 소규모 법인은 시·도에서, 개인 대부업자는 시·군·구에서 관리·감독을 맡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말했다.

금융 소외 계층이 빚의 수렁에 빠지는 것을 막으려면 금융 교육, 적절한 대출기관 알선, 과다채무 해결방안 상담 등을 제공해줄 정부 차원의 상담센터 설립을 검토해볼 만하다. 영국 정부는 2004년 상담 인력 500여명을 고용해 전국 100여곳에 저소득층에게 상담에서 대출 알선까지 원스톱 서비스를 무료로 제공해주는 ‘시민상담센터’를 만들어 성공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저소득층이 대부업체를 찾아야 하는 ‘수요’ 자체가 줄어들 수 있도록 교육비·의료비 대출 제도, 소액보험제도, 무보증 소액대출제도 같은 공적 금융과 대안금융 확대도 시급한 일이다.

안선희 김경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