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락에 포위된 ‘고시촌’

환락에 포위된 ‘고시촌’
문화일보 | 기사입력 2007-10-04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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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관악구 신림9동 고시촌에 최근 PC방을 비롯, 술집 등을 개조한 섹시바와 란제리바, 유사성행위 업소 등 유흥업소가 늘어나고 있다. 곽성호기자

“공부 열심히 하려는 고시생들은 오히려 신림9동 고시촌을 떠나고 있습니다.” 전국 최대의 고시촌인 서울 관악구 신림9동 고시촌이 변하고 있다. 신림9동 고시촌은 고시 지원자가 많은 서울대가 가까이 있는데다 고시학원 등이 밀집해 있어 전국에서 올라온 수천명의 고시생이 상주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신림9동 고시촌이 PC방과 유사성행위 업소, 섹시바 등에 의해 포위당하면서 신림9동 외곽의 고시촌으로 거처를 옮기거나 아예 신림9동 고시촌을 떠나는 고시생들이 속출하고 있다.

◆ 유흥업소 밀집촌으로 변하는 고시촌 = 4일 새벽 1시 신림9동 고시촌에 위치한 한 유사성행위 업소 입구에는 고시생 몇 명이 모여 있었다. 김모(32)씨는 “가끔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업소를 찾는다”며 “불법인 것은 알지만 혼자 힘들게 공부하다 보면 여기 생각이 자꾸 난다”고 밝혔다.

신림9동 고시촌 주변에만 현재 20여곳의 유사성행위 업소가 영업을 하고 있다. 고시를 준비 중인 이연희(여·28)씨는 “같이 스터디하다가 남자들끼리 막 이야기하는 걸 들어보면 다 유사성행위 업소 이야기”라며 “일부 업소에서는 실제 성행위를 하기도 한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신림9동 고시촌 주변에는 대학생들이 아르바이트로 일하는 이른바 ‘평범한’술집도 찾기 힘들다. 대신 섹시바와 란제리바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반 호프집도 짧은 치마와 몸에 딱 붙는 상의를 입은 종업원을 고용하는 추세다. 술집을 찾은 황모(30)씨는 “성매매를 하는 것도 아니고 어차피 술 마시는 거 이왕이면 예쁜 여자와 함께 마시고 싶은 게 당연한 마음 아니냐”고 밝혔다. 김모(29)씨는 “고시에 몇 년씩 떨어지다 보면 어느 순간 공부에 집중할 수가 없게 된다”며 “고시생을 업으로 삼은 이들을 노리는 업소가 늘어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 ‘PC방촌’ 돼버린 고시촌 = 2007년 9월19일 통계청이 발표한 ‘사업체 기초 통계조사 잠정결과’에 따르면 신림9동에는 동 단위로 전국에서 가장 많은 80여개의 PC방이 있다. 실제로 신림9동 고시촌 한가운데 위치한 놀이터 주변에 있는 거의 모든 건물에 PC방이 있을 정도다. PC방에는 주로 게임을 하거나 TV, 영화를 보는 고시생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일부 고시생들은 구석 자리에서 ‘야동(야한 동영상)’을 보기도 했다. 박모(27)씨는 “처음엔 기분 전환을 위해 하루 한두시간 PC방을 찾았는데 이젠 눈뜨면 발이 저절로 PC방에 갈 정도”라며 “길거리에 PC방이 많다보니 공부에 집중이 되지 않는다”고 하소연했다.

◆ 신림9동 떠나는 고시생들 = 신림9동 고시촌의 분위기가 이처럼 급속도로 바뀌자 이곳을 떠나는 고시생들이 늘어나고 있다. 최근 신림9동 고시촌을 나온 김모(28)씨는 “로스쿨 도입으로 고시를 포기하는 고시생들이 늘어나면서 신림9동 고시촌 분위기가 더 안 좋아진 것 같다”며 “고시촌 주변 환경이 오히려 고시 준비에 방해가 되는 것 같아 떠났다”고 말했다.

이정호(26)씨는 “최근 고시 열풍을 타고 공부에 뜻 없는 학생들까지 몰리면서 신림9동 고시촌의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다”며 “차라리 이동 시간이 걸리더라도 집에서 다니는 게 더 알차게 공부할 수 있다는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집에서 학원만 다니는 고시생들이 많아졌다”고 밝혔다.

민병기기자 mingming@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