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데리바리(출장성매매)’ 업주 상당수 한국인

일본 ‘데리바리(출장성매매)’ 업주 상당수 한국인
한겨레|기사입력 2007-11-21 09:08

[한겨레] 도쿄 우구이스다니에 한국여성 소개 ‘무료정보관’도

업소 직원 “그래픽 처리했지만 모두 실제인물 맞아”

“피랍사건 등 위험 잦지만 불법체류 탓에 신고못해”

지난 8일 오후 일본 도쿄 우그이스다니역 남쪽 출구 앞 모텔 골목. 평일 대낮인데도 한국인으로 보이는 젊은 여성들이 수시로 모텔 문을 드나들었다. 불과 10여분 사이에도 모텔 입구에 여성을 내려놓고 가는 차량 수십 대가 목격됐다. 일본 내 성매매여성 보호센터인 ‘나눔터’의 배은조(34) 간사는 “대부분 이 지역에 살면서 성매매에 나서는 여성들”이라며 “옷차림이나 얼굴 생김새를 보면 금방 한국인임을 알아차릴 수 있다”고 말했다.

우그이스다니는 일본 전역을 통틀어 출장 성매매를 뜻하는 이른바 ‘데리바리’ 업소가 가장 많은 곳이다. 노동 인력시장을 형성하고 있는 우에노와 미노와 사이에 있다 보니 자연스럽게 데리바리촌을 형성하게 됐다는 게 배 간사의 설명이다. 한국의 브로커를 통하거나 일본에서 발행되는 무료 정보지에 실린 전화번호로 연락하면 언제든지 이곳 데리바리 업소에 취업할 수 있다. 업소 대부분은 경영에서부터 잡지나 인터넷에 올릴 성매매 여성 사진을 찍는 스튜디오, 여성들을 모텔로 데려다 주는 일까지 한국인들이 도맡아 하고 있다. 인근의 한 부동산 중개업소 사장은 “2년 전부터 한국 여성들이 대규모로 모여들기 시작해 현재 200여개 성매매 업소에서 1천여명에 가까운 한국 여성들이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우그이스다니역 주변에는 한국 성매매 여성을 소개시켜주는 ‘무료 정보관’도 여러 곳 있다. 한 무료 정보관에 들어서자 일본인으로 보이는 남성 서너 명이 컴퓨터 모니터를 들여다보며 성매매 여성을 고르고 있었다. 이곳에서 일하고 있는 직원에게 ‘한국 여성을 만날 수 있느냐’고 묻자 그는 “화면에 나와 있는 여성들 전부가 한국인들”이라며 “컴퓨터 그래픽으로 얼굴을 예쁘게 처리하긴 했지만 모두 실제 인물이 맞다”고 말했다.

무료 정보관에서 얻은 전화번호로 전화를 하자 30분도 안 돼 취재진이 묵고 있는 호텔로 한 여성이 찾아왔다. 1년 가까이 이곳에서 출장 성매매를 하고 있는 김미선(24·가명)씨였다. 설득 끝에 김씨한테서 데리바리 생활에 대한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한국에 견줘 편하고 돈도 많이 벌 수 있다’는 데리바리 여성 모집광고와 달리 김씨는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보통 하루에 100차례 정도 지명을 받고 이 가운데 10차례 정도 출장을 나가요. 일주일에 6일을 꼬박 이렇게 일하면 한달 수입이 일본돈 80만엔(약 640만원) 정도 됩니다. 마음만 굳게 먹으면 기숙사비 등 생활비를 빼고 한달에 500만원 정도는 손에 쥘 수 있어요. 그러나 그게 어디 쉽나요. 저도 그렇지만 여기에서 일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술에 빠져 살다보니 돈을 모아서 귀국하는 경우는 거의 드물어요.”

김씨는 “우그이스다니는 성매매 때 콘돔을 착용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한 곳”이라며 “성병에 걸리지 않을까 늘 걱정되지만 단기간에 돈을 벌어야 한다는 압박감에 성매매를 계속하고 있다”고 말했다.

데리바리 여성이 넘쳐나면서 최근 들어 인권 침해와 안전 문제가 종종 일어나고 있지만, 성매매 여성들은 이에 항의도 못하고 감내하는 실정이다. 김씨는 이곳에서 1년 동안 일하면서 별의별 사람들을 다 만났다. “화장실에 가둬 두고 계속 신음소리를 내라고 시키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허리띠를 풀어 겁을 주고 겁탈하듯이 달려들기도 해요.”

지난해 여름에는 이곳에서 일하는 한국 여성이 출장 성매매에 나섰다가 일본인 남성에게 납치되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이 여성은 범인이 경찰에 잡혀 무사히 풀려났지만, 불법체류자 신분이어서 곧 잠적하고 말았다.

“데리바리 여성들 가운데 상당수는 불법체류자 신분이기 때문에 위험한 상황이 닥쳐도 경찰에 도움을 요청할 수 없어요. 언제든 신체 학대, 임금 체불 등의 불이익을 감내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는 셈이죠. 그런데도 이런 속사정을 모르는 한국 여성들이 계속 이곳으로 흘러들어오고 있어요. 지금은 돈도 싫고, 그저 한국으로 돌아가 평범하게 살았으면 하는 게 소원이에요.”

김씨가 호텔 방을 나서면서 힘없이 남긴 말이다.

도쿄/글·사진 김연기 기자 ykkim@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