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유흥가 뒷골목 한국인 주부·대학생 넘쳐난다

일본 유흥가 뒷골목 한국인 주부·대학생 넘쳐난다
한겨레|기사입력 2007-11-20 10:08 |최종수정2007-11-20 10:48

[한겨레] 무비자로 입국 “석달 동안 2천만원 벌어 뜨겠다”

신주쿠에선 “2차도 가능해요” 한국말로 손님 끌어

평범한 주부나 대학생들이 일본으로 몰리고 있다. 성매매로 돈을 벌기 위해서다. 한류 열풍이 분다는 일본 사회의 뒷골목에는 한국인 성매매 여성들이 넘쳐나고 있다. 이들의 인권 침해는 물론 여권 위조, 불법 밀입국, 사기 브로커 등 온갖 폐해가 끊이지 않고 있다. <한겨레>는 현지 취재를 통해 두차례에 걸쳐 일본 원정 성매매 실태를 고발한다.

지난 6일 저녁 7시께 일본 나리타공항 1번 터미널. 공항에서 막 빠져나온 한국 여성 일고여덟명이 서둘러 대기하고 있던 승합차로 향했다. 처음 일본 땅을 밟은 김정선(22·가명)씨는 겁을 잔뜩 먹은 표정으로 차에 올랐다. 이들이 향한 곳은 도쿄 우구이스다니에 있는 한 허름한 맨션. 일본 유흥업소에서 일하는 한국인 여성들이 모여 사는 곳이다.

김씨는 뒤쫓아간 <한겨레> 취재진에게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한방에서 다른 10명의 한국 여성들과 생활하게 됐다는 김씨는 “딱 3개월 동안만 머물면서 2천만원을 모으면 이곳을 뜨겠다”고 말했다.

김씨는 음대 학생이다. 아버지의 사업이 부도나면서 집이 빚더미에 앉자, 다음 학기 등록금을 마련하려고 일본을 찾았다. 입국 때 ‘관광 목적’으로 신고했기 때문에 석달 동안 비자는 필요 없다. 일본에서 성매매는 불법이지만, 한국 여성들은 무비자 입국 등으로 사법당국의 단속을 절묘하게 피해 가고 있다. 그가 보여 준 수첩에는 ‘음악 연습 게을리하지 않기, 매일 저녁 부모님께 전화하기’ 등의 다짐이 적혀 있었다.

이틀 뒤 일본 도쿄 아카사카 한복판의 한 유흥업소. 술 판매보다는 ‘2차’(성매매)를 주목적으로 삼는 이른바 ‘데이트 크라브’ 업소다. 일본돈 5만엔(약 40만원) 정도면 여성 종업원을 데리고 나갈 수 있다. 업소 안에는 푹 꺼진 소파에 한국 여성 일고여덟명이 담배를 물고 앉아 있었다. 김씨도 그들 틈에 끼었다.

밤 10시가 막 넘어설 무렵 일본 남성 넷이 업소로 들어왔다. 한국 드라마 판권 사업을 하고 있는 이들은 이 업소의 단골이다. 한국인 ‘마마’(마담)가 “모두 며칠 전 새로 온 아가씨들”이라며 한국 여성 6명을 이들에게 소개했다. 일행 중 몇이 고개를 가로젓자 ‘마마’는 홀 구석에 놓인 모니터 앞으로 이들을 안내했다. 모니터에는 가슴에 번호표를 단 한국 여성들이 차례로 등장했다. 김씨처럼 20대 대학생부터 30대 주부까지 다양했다. 잠시 뒤 일본 남성들은 모두 자신의 상대를 고른 뒤 근처 호텔로 자리를 옮겼다. 김씨도 한 남성의 손에 이끌려 호텔로 향했다.

이 업소에서 일하는 한국 여성은 20명 가량. 과거에는 대부분 유흥업소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여성들이었지만, 최근에는 김씨처럼 단기간에 큰돈을 벌려는 젊은 여성들이 늘고 있다는 게 이 업소 ‘마마’의 설명이다.

9일 밤 도쿄 최대 유흥가인 신주쿠 가부키초. 신주쿠역을 빠져나오자 한 호객꾼이 서툰 한국말로 말을 걸어왔다. “한국 아가씨들 찾나요? 2차도 가능해요.” 그를 따라 한 업소로 들어서자, 아니나 다를까 여기저기서 한국말이 튀어나왔다. 15년 전 위장결혼을 통해 일본에 정착한 정수민(35·가명)씨는 10년 넘게 유흥업소를 전전하다 지난해 직접 가게를 차렸다. 한국 여성 20여명이 정씨 업소에서 일하고 있다.

정씨는 “과거에는 성매매 알선 브로커에게 속아 원치 않는 원정 성매매가 이뤄졌지만, 최근에는 고수익을 노리는 한국 여성들이 자발적으로 원정 성매매에 뛰어들고 있는 추세”라고 말했다. 그는 이달 말 한국을 방문해 일본에서 같이 일할 여성들을 구한 뒤 이들과 함께 내년 초 일본으로 건너갈 계획이다.

11일 저녁 일본 나고야 공항. 나고야의 한 유흥업소에서 1년 동안 일하다 귀국길에 오른 최정원(36·가명)씨는 한국에 두 아이를 둔 엄마였다. “재작년에 이혼한 뒤 두 아들을 친정에 맡겼어요. 공장에서도 일해 봤고 장사도 해봤는데, 이게 제일 낫더라고요. 내년에 큰애가 초등학교에 입학해요. 애들 가르치려면 이러는 수밖에 없어요.” ‘일본에서 얼마나 돈을 모았느냐’는 질문에 그는 “앞으로 1년 정도 더 일하면 아이들 가르치는 데는 문제 없을 거예요”라고 답했다. 그는 불법체류 신분을 피하려고 석달 단위로 한국을 드나들었다. 그날 밤 김씨는 한국으로 향하는 비행기에서 자신이 갖고 있던 편지지를 꺼내 또박또박 편지를 써내려갔다. 한국에 들르더라도 부끄러운 마음에 아이들을 만나지 못한다는 김씨가 대신 쓰는 편지다.

‘할머니 말씀 잘 듣고 몸 건강하게 있어라. 내년 입학식 때 엄마가 꼭 예쁜 가방 사가지고 갈게.’ 도쿄 나고야/김연기 기자 ykkim@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