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만원을 내고 애인을 사다 ..조선

[현장체험] 20만원을 내고 애인을 사다

[조선일보 2004-09-04 09:11]

[조선일보 인턴 기자] 신촌 전철역, 8월 20일 오후 4시.

신문사 대학생 인턴 2개월째, 가장 긴장되는 순간이었다.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여성과 앞으로 세 시간을 보내야 한다. 나는 20만원을 주고, 낯선 여자와의 ‘데이트 상품’을 샀다. 그녀는 잠시 후, 청바지에 파란 티셔츠를 입고 신촌 전철역 3번 출구 앞에 나타날 것이다. 사람을 빌려주는 회사 측은 오늘 내가 만나게 될 여성이 24세에 키는 168㎝, 현직 내레이터 모델인 S라고 했다.

금요일 오후, 오늘은 여자친구와 함께 새로 개봉한 액션 영화를 보기로 약속한 날, “일이 있다”는 핑계를 대고 나는 애인과의 약속을 깼다. 휴대폰을 열고 여자친구가 보낸 문자메시지를 다시 확인했다. ‘오빠! 오늘도 고생이 많아^^ 열심히 일하구 저녁에 연락해~^^*’. 가슴이 미어졌지만 ‘일은 일이다’라며 마음을 다잡았다.

신촌 전철역. 오후 4시15분.

불안과 초조의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누군가의 눈길이 느껴졌다. 숨을 고르며 고개를 돌리자 한눈에도 번뜩 뜨이는 늘씬한 미인이 어색한 듯 날 바라보고 있었다. 약속한 대로 청바지에 파란색 티셔츠. 사람 빌려주는 회사에서 보낸 S가 분명했다.

“늦어서 죄송해요. 오래 기다리셨나요?”

“아닙니다. 실장님이 보내신 분 맞죠?”

S는 키가 무척 크고 늘씬했다. 시원한 두 눈에 얇은 입술, 적당히 곱슬거리는 퍼머머리가 생기있어 보였다. 옅은 화장 때문인지 대학 신입생 같은 싱그러움도 느껴졌다.

신촌 거리로 나서자 영 어색했다. 모든 사람이 우리를 쳐다보고 있는 것 같았다. 서먹한 분위기를 깨며 “커피 한 잔 할까요”라고 묻자, S는 “아이스크림이나 먹으러 가죠” 했다.

요즘 유행이라는 한 요구르트 아이스크림 가게에 S와 나란히 앉아 아이스크림을 떠먹고 있으니 군입대 전 옆 학교 여대생들과 소개팅을 하던 때와 비슷한 기분이 들었다. 아직 대학생인 난 미팅ㆍ소개팅 경험이 많긴 하지만 여자친구가 생긴 이후엔 해보지 못해서 더 쑥스럽고 어색했다. 그녀에게 갑자기 한마디 하고 싶었다.

“사실 기대 많이 안 했는데, 참 예쁘시네요.”

그러자 S는 의미심장한 말로 받았다.

“에이… 우리나라 예쁜 여자들은 전부 강남 지하에 모여 있어요. 이런 곳에 있을 리 없죠.”

작업 중 ‘삐리리~’ 진짜 여친이 전화

아이스크림 가게를 나오니 시간이 애매했다. 저녁을 먹으러 가기에는 너무 이른 시간이었고 영화를 한 편 보자니 계약한 세 시간이 금세 지나가 버릴 것 같아 ‘돈이 아까웠다’. 무엇을 할까 고민하며 길을 걷고 있는데 S가 슬그머니 내 팔짱을 꼈다. 온몸에 전기가 짜릿 통하는 것 같았다. 뒷주머니에서는 순간 휴대폰이 진동했다. 여자친구로부터 문자메시지가 또 왔다. ‘오빠! 금요일 오후에 일하느라 수고가 많지! 힘내~~^^* 사랑해~~^^*’.

반소매 셔츠를 입고 있던 나의 살갗에 닿은 S의 손길은 따스했다. 따스함에 용기를 낸 나는 ‘기자 정신’을 발휘, S의 사진을 남겨두기로 결심했다. “기념으로 스티커 사진이나 한 장 찍을까요?” “얼굴이 알려지는 거 불편해요. 싫어요.” S는 단호히 거절했다.

전혀 익숙하지 않은 모르는 사람을 만나 거리를 걷는 경험은 특별했다. 돈을 주고 모르는 사람과의 데이트를 사는 조금은 이상한 거래. 돈을 받고 모르는 사람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는 S의 감정은 어떨까 궁금했다.

“나이트클럽에서 만나 모르는 사람이랑 하루 저녁 술도 마시고 얘기도 나누잖아요. 별로 다를 게 없는 것 같아요.”

S는 “(이 일을 통해) 큰돈은 벌지 못해도 내년에 유럽 배낭 여행을 가기 위해 조금씩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한 500만원쯤 필요할 것 같은데 이제야 50만원 모았어요. 아직도 더 많이 벌어야 해요.”

내가 지불한 20만원 중에서 5만원 가량을 갖는다고 했으니 이 일을 한 열 번쯤 했나 싶었다. S는 “애인으로는 세 번째…”라며 말을 흐리다가 “다른 일도 있으니까…”라고 했다.

S는 외동딸이라고 했고 “부모님은 지방에서 사업을 하고 있다”고 했다. 웃는 모습이 선했고 교양있는 말씨였다.

이런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그냥 이렇게만 끝날 수 있을까? S는 종종 “귀찮게 하는 사람이 있다”고 했다. “데이트를 하고 헤어진 후 다시 연락이 와서 만나자고 하는 경우가 종종 있어요. 그래서 절대로 연락처는 안 가르쳐 줘요”라며 단호한 표정을 지었다.

처음 불편했던 자리는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편안해지기 시작했다. S와 이런저런 잡다한 이야기들을 차분히 나누다 보니 어느새 저녁 시간이었다.

헉! 취재 중 아는 선배를 만나다

신촌의 한 대학에 다니는 내게 신촌은 홈그라운드다. S가 “저녁으로 맛있는 갈비나 먹자”고 했을 때 난 곧바로 단골 식당으로 안내했다. 소주 한 잔을 따라 주고 건배하자고 하자 S는 “술 많이 못 마셔요”라며 조심스런 표정이었다. 갈비는 익어갔지만 또다시 특별히 할말이 없었다. ‘썰렁해진’ 분위기를 어떻게 ‘회복’ 시킬 수 있을지 대책이 서질 않았다. “고기를 참 균등하게 자르시네요”라는 S의 다소 엉뚱한 말 한마디가 무척 고맙게 느껴질 정도였다.

이때 예기치 않았던 ‘사고’가 발생했다. 평소 친하게 지내던 동아리 선배가 한 손에 소주병을 든 채, 큰 소리로 나의 이름을 부르며 저 멀리 테이블로부터 달려오는 게 아닌가.

“뭐야. 너! 한동안 얼굴도 안 보이고!” 잠시 동안 그 선배와 이런저런 인사를 나누었다. 선배는 연방 ‘옆에 있는 여자가 누구냐’는 눈치를 보냈다. 나는 할 수 없이 작은 목소리로 “소개팅”이라고 했다. 그러자 선배는 ‘아. 너 그 여자친구랑 헤어졌구나’ 하는 묘한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S에게 “이 친구 정말 괜찮은 놈이니 잘 부탁해요”라는 쓸데없는 얘기까지 늘어놓았다.

선배는 끝내 S에게 소주까지 한 잔 따라주고 나서야 자기 테이블로 돌아갔다. 이 날 이후 나의 신촌 친구들 사이에서는 내가 여자친구와 헤어지고 다른 여대생과 ‘소개팅’을 했다는 소문이 퍼졌다. 그 때문에 여자친구와는 그 날 이후 현재까지 5일째 연락두절 상태다.
“시간 다 됐네요” 싸늘한 반응

신촌 J 재즈바. 오후 7시30분.

더 이상 아는 사람을 만나는 불상사를 피하고 싶었다. 어두운 재즈바로 S를 데리고 간 이유다. 부드러운 음악에 말을 내뱉을 때마다 테이블 위의 촛불이 적당히 흔들리는 분위기 있는 바였다. S가 잠시 화장실에 갔다. 다시 한 번 ‘취재 근성’을 발휘해 S가 두고 간 가방에서 지갑을 꺼내 살짝 열어보았다. 심장이 쿵쾅거렸다. 1981년생, 이름도 가르쳐 준 그대로, 그녀가 밝힌 신상정보는 모두 사실이었다. 혹시 S의 지갑에 학생증이라도 있을까 싶어 조금 더 뒤적거리다 마음이 급해져 얼른 지갑을 도로 가방 속에 넣었다. S가 이내 돌아왔다.

S는 돌아오자마자 망설이는 기색도 없이 “저기, 이제 시간이 다 된 것 같은데요”라고 했다. 내가 “맥주 한잔 더 하면 좋겠는데요”라고 했지만 그녀는 “시간이 늦어서 이만 일어날게요”라며 일어섰다. 싸늘했다. 그녀는 짧은 목례만을 남긴 채 휑하니 사라졌다.

홀로 바에 앉아 무심코 그녀의 손이 닿았던 팔 언저리를 다른 손으로 쓰다듬어 보았다. 그녀의 체온은 남아 있지 않았다.

이런 만남을 누가 왜 할까 혹시 사람들 사이에 쉽게 끼지 못하는 사람이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하루 저녁 20만원을 주고 데이트를 신청하는 것은 아닐까. 혹은 모르는 사람과의 첫 만남이 주는 짜릿함에 중독되어 매번 새로운 사람을 만나야 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일까. 업체 관계자는 “주로 파티장에 함께 갈 애인을 찾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쇼핑을 함께 가거나 영화를 함께 볼 애인을 찾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S에게 수표 몇 장을 더 쥐어줬다면 어떻게 됐을까…’ 싶을 때 생각을 접고 재즈바를 나섰다.

“싱싱한 20대 대학생이 갈 거예요”

갖가지 목적으로 사람을 빌려주는 업체들이 성업 중이다.

회사원 정모(31)씨는 친구들과의 모임에 데리고 나갈 애인이 필요해 생활정보지를 보고 전화를 했다가 황당한 경험을 했다. 우선 가입비 10만원을 이체하자 ‘발신자표시제한’ 번호로 다시 전화가 왔다. 업체 관계자가 후보로 알려준 여성 중에 한 명을 고르자 날짜와 시간을 정하라고 했다. 관계자는 “잔금은 아가씨에게 직접 전해 주세요”라며 “싱싱한 20대 초반 대학생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정씨는 “얼굴이 조그맣고 귀엽게 생긴 아가씨가 나와 처음에 무척 마음에 들었다”고 한다. 여성과 함께 친구들 모임이 있던 장소에 나가 즐거운 시간을 보내다가 밤 11시가 가까워지자 정씨는 여성을 집에 먼저 보내려고 밖으로 함께 나왔다. 이때 작고 귀여운 여성이 “오빠, 2차는 얼른 끝내주세요. 저 집에 부모님이 계셔서 일찍 들어가야 되거든요”라고 했다. 정씨는 그저 ‘대역 애인’만 빌려주는 곳인 줄 알고 있다가 여성의 말을 듣고 당혹스러웠다. 정씨는 친구들 모임에 함께 데리고 갔던 여성이 ‘2차’가 가능한 여성도우미란 사실을 알고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하객 도우미’ 업체의 역할 대행 서비스와 달리 정씨의 황당한 경험처럼 결혼이벤트 대행 회사로 위장해 윤락업을 하는 유령 회사들도 있다. 이들은 각종 생활정보지의 ‘전문대행서비스’ 난에 ‘결혼이벤트 cool한 만남, 당일 주선, 매너용모 A급, 비밀 보장’ 등의 광고를 내며 남성들을 유혹하고 있다.

생활정보지에 나와 있는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어 머뭇머뭇거리니 40대인 듯한 남성이 “미팅하시려고요?”라고 먼저 물었다. 이들은 전화를 건 남성들에게 “젊은 여성과 미팅자리를 주선해 주겠다”며 10만원의 가입비를 계좌 이체하라고 했다. “데이트 비용은 2차까지 포함하여 20만원”이라면서 “만나는 여성에게 직접 주면 된다”고 했다.

생활정보지에 나와 있는 전화번호로 여러 군데 대행서비스 회사에 전화를 걸어본 결과, 이들은 방대한 여성 회원의 자료를 갖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40대 정도로 추정되는 한 여성은 전화 통화에서 “일하는 여성들은 주로 대학 휴학생이나 주부들이고 99% 카드빚 등 돈 때문에 일을 하고 있다. 저녁에는 집에 들어가야 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되도록 오후에 만나 일을 마치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다. “손님이 원하는 스타일은 모두 맞춰드릴 수 있으니 말만 하라”고도 덧붙였다.

이들은 ‘2차’를 안 가는 특별한 경우에는 3~4시간 데이트에 13만~15만원 정도를 받고 있다. 철저히 점조직으로 이루어져 있어 이들의 위치나 신원을 파악하기는 쉽지 않다.

한 ‘하객 도우미’ 업체의 인터넷 홈페이지에는 ‘수도권 여성 도우미’뿐 아니라 ‘수도권 남성 도우미’ ‘지방 여성 도우미’ ‘지방 남성 도우미’로 분류된 약 3600명의 회원이 등록되어 있다. 이들은 인터넷상에 회원들의 사진과 프로필을 올려 소비자가 원하는 상대와의 데이트를 주선해 주고 있다.

지역·연령·성별로 분류

업체 관계자에게 서울에 사는 여성이 하루동안 애인으로 필요하다고 하자, 관계자는 ‘수도권 여성 도우미’의 프로필을 열람할 수 있는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가르쳐줬다. 가르쳐 준 아이디로 로그인을 하니 수도권 여성만 8월 23일 현재 1153명이 등록되어 있었다. 회원들은 대부분 20대의 대학생이거나 취업 준비생들이었고 학교 선생님, 컴퓨터 프로그래머, 하급 공무원도 있었다. 환하게 웃는 표정의 사진과 함께 나이와 신장이 명시되어 있었다.

이 업체의 한 관계자는 “우리 회원들은 모두 순진한 학생들로 용돈을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역할 대행 서비스’를 제공하는 ‘하객 도우미’ 업체 역시 전국적으로 3000여명의 회원을 확보하고 있다. 원하는 스타일을 말하고 총비용의 20%를 계약금으로 계좌에 입금하면 5명의 애인 후보를 이메일로 보내주며 “이 중 한 명을 선택하세요”라고 한다.

나는 미소가 환해 보이는 24세 여성을 ‘선택’했다. 업체에서 다시 전화가 왔다. “네, 그 분 시간 괜찮으시다고 했고요. 잔금은 만나기 하루 전까지 입금해 주세요. 그럼 즐거운 시간 보내시고요.”

술 권하면 못 마시는 척하며 ‘원샷’

인터넷 사이트에서 ‘하객 도우미’ 업체를 찾아 “친구들 모임에 함께 가 줄 여자친구가 필요합니다”라고 말하면 이내 “어떤 스타일을 원하세요? 참한 여성 3500명이 대기 중입니다”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돈으로 애인까지 살 수 있는 시대’인 것이다. 모임에 데리고 나갈 애인이 필요할 때 전화 한 통화면 해결이 된다. 전화로 서로에 대한 기본정보를 나눈 후 자리에 나온 상대는 의뢰인의 친구들 앞에서 아주 오래된 연인마냥 감쪽같이 연기를 해 준다. 까르르 웃음을 짓는 것은 기본이고 친구들이 술을 권하면 짐짓 못 마시는 척 ‘원샷’을 하고 쓴 표정까지 완벽하게 소화해 낸다.

“친구들 수준이 좀 있어서, 교양있는 여자였으면 좋겠는데요.”

“걱정하지 마세요. 대학원생부터 초등학교 선생님까지, 연령대, 신장대별로 다 있습니다. 원하시면 입는 옷 스타일도 맞춰 드립니다.”

“검은색 짧은 치마 정장에 진주 목걸이를 하고, 꼬불꼬불 긴 파마 머리였으면 좋겠는데요”

3시간, 20만원이면 ‘멋 없이 혼자 다닌다’고 매일 구박받던 사람이 늘씬하고 섹시한 미인과 함께 팔짱을 끼고 친구들 앞에 나타날 수 있다. 물론 차값, 술값은 따로 내야 한다. 친구들은 ‘네가 웬일이냐’며 놀라 자빠지고 술이 한두 잔 돌면 분위기가 무르익는다. ‘야 너 다시 봤다. 어디서 저런 미인을 데리고 왔다냐’라고 친구들이 치켜세우면 돈 15만원이 아깝지 않다.

‘하객 도우미’ 업체들은 결혼식에 하객을 공급하는 일을 주업무로 하지만 ‘역할 대행 서비스’를 따로 제공하고 있다. ‘역할 대행 서비스’는 고객이 원하는 상황에 맞게 고객에게 필요한 사람을 대여해 주는 서비스로 애인을 빌려주는 것도 이 중 하나다. 애인뿐 아니라 남편, 부인, 형제, 심지어 부모까지 빌려준다. 상가에서 상주 가족 역할을 부탁하면 밤새도록 통곡까지 해준다.

(김경수 주간조선 인턴기자 sonar@yonsei.ac.kr )

* 이 기사는 주간조선의 허락을 얻어 게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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