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다] 변화된 '기지촌 여성'들의 삶에 주목해야

안녕하세요? 저는 아직 후원회원은 아니구요. 허허언니를 쫌 좋아해서^^
가끔 홈페이지 와보는 사람입니다.
일다에 이 기사가 있다고 친구가 얘기해줘서 이룸 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실지 궁금하기도 하고 해서 퍼올려봅니당

변화된 ‘기지촌 여성’들의 삶에 주목해야

지금, 기지촌은 어디로 가고 있나-1

조혜영 기자
2004-08-30 01:02:17
<미군기지 이전에 따른 여러 논란들이 일고 있지만, 기지촌 성 산업과 관련된 얘기는 별로 나오지 않고 있다. 여러 이권이 개입돼있는 기지촌 성 산업의 역사는 오래되었으며, 현재까지 변해왔고, 앞으로 더 많은 변화가 일어날 것으로 예측된다. 과연 기지촌 성 산업 종사자인 여성들의 과거와 현재는 어떤 모습이며, 미군기지 이전과 평택지역의 변화에 따라 또 어떻게 달라질 것인가. 일다는 성적소수문화환경을위한모임 ‘연분홍치마’(www.pinks.or.kr)와 공동기획으로 ‘지금, 기지촌은 어디로 가고 있나’ 기사를 5회에 걸쳐 연재한다. 필자 조혜영님은 '연분홍치마' 활동가이며, 이 문제에 접근하기 위해 평택 지역에서 한달 여간 취재를 해 왔다. -편집자 주>

동두천, 의정부 등지의 주한미군 기지가 평택으로 이전하기로 확정되자 기지촌 주변은 들썩거렸고 언론과 시민단체에서도 큰 관심을 보였다. 지역경제와 주민 보상, 환경문제, 미군의 군사전략 변화 등 다양한 시각에서 미군기지 이전에 따른 변화를 예측하는 기사와 성명이 발표됐다. 그러나 정작 기지촌이라는 이름 하에 사람들이 가장 쉽게 떠올리는 ‘기지촌 여성’(기사에선 기지촌에서 성매매 되는 여성을 지칭한다)들과 기지촌의 성 산업 변화에 대한 언급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단지 “미군기지가 떠나면 망하고 말 것”이라고 울상 짓는 클럽업주들의 인터뷰만이 간간이 보일 뿐이다.

사람들은 기지촌이 어디인지는 알고 있어도 실제로 기지촌에서 어떤 사람들이 어떤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는지에 대해 알고 있는 이는 드물다. 미군기지가 이전한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지만, 기지 이전에 따라 직접적인 영향을 받게 될 기지촌 여성들에 대해서는 관심을 갖는 이가 거의 없다.

과거로 기억되는 기지촌의 이미지

2000년대를 살아가고 있는 2,30대에게 기지촌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면 “그런 식의 기지촌이 아직도 존재하는가”라고 되묻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런 식의 기지촌”이란 소위 ‘양공주’로 표상 되는 기지촌이다. 미군기지 이전에 대한 기사가 연일 나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과는 별개로 동시대인들의 기억 속에 존재하는 기지촌은 1960-1970년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나 소설, 또는 부모세대의 회고담을 통해서 만들어진 이미지로 남아있다. 부모세대에게 기지촌은 이젠 향수까지 느껴지는 과거의 아련한 기억이라면, 2,30대에겐 전설처럼 전해지는 옛이야기에 불과하다.

기지촌에 특별한 관심이 있다고 할 수 있는 민족주의 진영에게도 기지촌은 실재하는 공간이라기보다는 무언가를 표상하고 상징하는 곳이다. 그들에게 기지촌은 민족적인 자존심이 훼손되는 문제있는 장소이며, 미군범죄가 무참히 벌어지는 곳이기도 하다. 현재 사람들이 떠올리는 기지촌은 실제로 누군가가 살아가고 있는 공간이 아닌 단지 자신들의 경험과 인식에 따라 정형화한 이미지로만 존재할 뿐이다.

이 시대 사람들에게 있어 기지촌 여성은 아이들을 위해 자신을 강간한 이들에게 다시 몸을 팔아야 했던 <은마는 오지 않는다>(1991, 이장수 감독)의 ‘언례’고, 매혹적이고 치명적인 팜므파탈이었던 <지옥화>(1958, 신상옥 감독)의 ‘쏘냐’다. 기지촌 여성으로 표상되는 기지촌은 사람들에게 힘들었던 과거를 떠올리게 만들기도 하고 이상하고 알 수 없는 전설이 되어버린 매혹의 공간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여성들의 성을 매매하여 이윤을 추구하는 기지촌의 모습과 그 곳에서 자신의 성을 팔 수밖에 없었던 여성들은 이젠 존재하지 않는 것인가. 나이가 든, 기지촌 여성들은 탈성매매에 성공하여 기지촌을 떠난 것인가. 그렇다면 그들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지역경제 상당부분이 클럽 ‘성매매’와 연관

기지촌은 과거의 공간이 아니다. 예전에도 그랬듯이 그 곳은 여러 다른 소도시처럼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있는 마을이다. 그러나 다른 마을과 달리 기지촌은 미군기지 앞에 형성되어 있다. 이 차이는 기지촌 사람들의 삶에 큰 영향을 미쳤다. 대부분의 기지촌들은 미군기지로 인해 다른 경제기반을 마련하는 것이 상당히 어려웠다. 동아일보가 27일 보도한 내용에 따르면 동두천의 경우 “행정구역 95.68km² 중 미군 공여지가 42%인 40.53km²를 차지하고 있는 데다 수도권정비계획법의 적용을 받아 공장 설립이나 대학설립에 강한 규제를 받고 있으며, 군사시설보호법 등으로 이중 삼중의 규제에 묶여” 있다. 그래서 기지촌 사람들에겐 미군이야말로 일종의 밥줄이자 생계수단이 됐다. 인구 7만5천여 명인 동두천시의 지난 해 지역내총생산(GRDP)은 7천465억원이며 이중 미군 관련분야는 32.6%인 2천436억원이다.

동두천시가 미군이전에 대해 예민하게 반응하고 미군기지 철수 반대 시위를 주도하기까지 하는 것, 평택시가 기지이전 반대여론에도 불구하고 이를 반기고 있는 것은 기지촌에 대한 지역경제의 의존도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이유로 미군 기지가 기지촌 사람들 모두에게 환영을 받는 것은 아니다. 기지촌에 사는 주민들도 세대와 성별과 생계방법에 따라 미군의 주둔에 대해 다르게 반응한다. 기지촌에서 미군을 상대로 생계를 유지하는 경우에도 주민들은 한편으로는 미군에 대한 피해의식을, 또 한편으로는 없어서는 안될 생계 밑천이라는 상반되는 생각을 가지기도 한다.

동두천 광암동 캠프 호비 주변, 일명 ‘턱거리’에서 만난 한 아주머니는 이렇게 토로했다. “미군이 없는 동두천은 상상할 수도 없어요. 모두들 동두천에서는 미군이 가지 않을 거라 해서 식당도 냈는데….” 하지만 또 이렇게 말했다. “동두천 사람들은 참 미군들 때문에 설움 많이 당했어요. 옛날에 소풍 가서 사람들이 어디서 왔냐고 물어보면 ‘천두동’에서 왔다고 그랬어요. 왜 동두천하면 여자장사를 떠올리잖아, 좀 창피한 기분도 들고…. 안에서는 미군한테 설움 받고, 밖에 나가면 손가락질 당하고….” 그러면서도 아주머니는 동두천시에서 소집하는 미군기지 이전반대 집회에 꼭 참석할 거라고 했다.

지역경제의 상당부분을 미군에 의존하고 있는 기지촌의 가장 큰 문제는 바로 그 생계수단이 여성의 몸을 상품으로 만들어 파는 성매매를 기반으로 해서 이루어지는 경우다. 클럽을 통해 미군을 상대로 여성의 성을 매매하며 이윤을 얻는 업주들뿐이 아니다. 직접 ‘여자장사’를 하지 않더라도 이 같은 클럽의 경제에 기생해 수많은 사람들-미군과 기지촌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관광상품 판매점, 식당, 약국부터 시작해서 소포 포장 가판대까지-이 성매매 산업과 관련되어 생계를 꾸려가고 있다. 여기에는 클럽에서 청소를 하고 유리잔을 닦는 여성, DJ, 클럽 앞에서 가방 검사를 하는 수위들도 포함된다.

많은 부분 미군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이상, 기지촌 사람들은 설사 미군에게 상반되는 감정을 갖고 있다 할지라도 기지촌에서 일어나는 성매매에 눈 감아주고 암묵적으로 동의할 수 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미군이 주둔한 오랜 시간 동안 성매매는 그 곳에 너무나 익숙하게 자리잡았다. 그리고 시간에 지남에 따라 성매매 작동 시스템이 변하고, 그에 따라 기지촌 여성들도 바뀌고, 그들의 문제도 변화하고 있다. 다만 그러한 변화는 드러나지 않았고, 지금껏 외면되었다.

'기지촌 여성'들의 변화, 그들의 문제에 관심을

취재차 K-55 앞의 송탄 기지촌에 갔을 때 기지촌의 변화를 느끼게 해준 일이 발생했다. 기자들 일행은 누군가 기다리기 위해 늦은 밤 거리에 앉아 있었는데, 한 무리의 미군남성들이 술에 취한 채 말을 걸어왔던 것이다. 대꾸를 하지 않자 무리 중 한 명이 “한국여성이야”라고 일깨워주듯 말했다. 우리 일행을 필리핀 여성으로 착각했던 것이다. 이 일화는 기지촌에서 성매매 되는 여성들 가운데 이주여성들이 늘어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며, 또한 이 지역에서 볼 수 있는 필리핀 여성들을 곧 ‘성매매 되는 여성’이라고 가정해버리는 미군들의 태도도 엿볼 수 있다.

기지촌에서 살아가는 여성들도 변화했다. 이제 클럽에서 미군 남성들에게 성적서비스를 제공하는 여성들은 대부분 동남아시아나 러시아에서 온 이주여성들이다. 이에 따라 성매매 시스템도 변하고 성매매가 이루어지는 장소도 외관상 일반 쇼핑몰로 둔갑하기도 한다. 신자유주의가 확장되고 있는 가운데, 일자리가 부족하고 임금이 낮은 나라 여성들은 외화를 벌 수 있는 나라로 속속 인신매매되고 있다. 한국의 기지촌은 다른 나라로 다시 인신매매되는 거점의 역할까지 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 기지촌은 이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보호해 줄 아무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 오히려 기지촌의 이주여성들은 한국여성이 아니라는 이유로, 더욱 관심을 받지 못한다. 반면 사람들이 기억하는 과거 기지촌에서 성매매 되었던 한국여성들은 지금도 성매매 산업의 연쇄고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가난과 질병, 외로움, 외상증후로 대변되는 그들의 문제는 계속되고 있으며, 생계를 위해 클럽에서 서빙을 보고 이주여성들을 관리하는 ‘마마상’이 되기도 한다. 병 들어 이런 일을 하는 것마저도 어려운 상황에서는 돌봐줄 이 없는 전형적인 독거노인의 문제를 겪고 있다.

이렇듯 기지촌의 성매매 문제는 진행 중이다. 기지촌 여성들은 과거뿐 아니라 현재에도 기지촌에서 살아가고 있다. 기지촌은 이제 이주여성들의 인신매매와 나이가 든 한국여성의 노후를 고민해야 한다는 점에서 예전과는 다른 곳으로 바뀌고 있다. 이렇게 변화하며 실재하는 기지촌의 문제를 포착하기 위해선 여성들이 실제로 그 곳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실제 그들에게 문제가 되는 것에 관심을 갖는 것이 필요하다. 그 문제들은 지금 이 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기사 예고: 너무 위험한 거래, ‘관광특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