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인신매매 피해국이자 가해국”

“한국은 인신매매 피해국이자 가해국”
기사입력 2008-04-22 19:25

[한겨레] 성·노동착취 등 세계 피해 해마다 80만명

중동 일용직·인도 아동결혼도 ‘현대 노예’

“한국, 유엔의정서 비준·국가간 협력 필요”

“인신매매는 마약 다음으로 큰 불법산업입니다. 피해자가 60만~80만 명에 이르고 해마다 90억달러를 벌어들이는 초국가적 범죄입니다.”

국제 인신매매 척결 운동에 앞장서 온 미국 시민단체 ‘바이털보이시즈’(Vital Voices)의 웬치 유 퍼킨스(사진) 부회장은 22일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인신매매’(human trafficking)라는 단어를 100번도 넘게 입에 올렸다.

“사람들은 주변에서 인신매매를 본 적이 없다고 생각해요. 또 주로 성적인 착취만 문제라고 생각을 하지요. 하지만 건설, 농업, 가사노동 분야에서 혹사당하는 노동착취형 인신매매가 더욱 심각합니다.”

유엔이 ‘무력이나 사기, 강압을 이용해 사람을 착취 목적으로 확보하는 행위’로 정의한 인신매매는 ‘현대판 노예제’로도 불린다. ‘노예’의 얼굴은 중동의 일용직 건설 노동자, 서아프리카의 아동 군인, 인도의 어린이 결혼, 동유럽의 우편신부, 동남아시아의 장기적출 피해자 등으로 다양하지만, 자신의 뜻에 반해 착취 당한다는 측면에서는 본질적으로 동일하다.

대만계 미국인인 퍼킨스는 검찰과 경찰, 시민사회 관계자들과 인신매매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한국을 첫 방문했다. 그는 “한국은 특히 인신매매 송출국이자 경유국, 대상국 모두에 해당하는 독특한 나라”라고 지적했다. 한국 여성들이 미국에서 성적 착취를 당하고, 섹스 관광에 나선 한국인들이 동남아시아에서 미성년자 성매매를 일삼는가 하면, 동남아시아와 러시아 여성들은 한국에서 착취 당하기 때문이다.

그는 “이런 상황에서 한국 정부가 유엔 인신매매의정서를 비준하지 않은 점은 안타깝다”며 “그나마 2004년 성매매방지 특별법 제정은 긍정적인 정책이지만, 한발 더 나아가 종합적인 관점에서 초국가적 협력에 임했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2000년 세워진 ‘바이털보이시즈’는 1997년 힐러리 클린턴 당시 대통령 부인과 매들린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이 ‘여성 개발을 미국 외교정책의 목표로 삼겠다’는 취지로 만든 프로젝트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동안 전세계 5천여명의 여성이 각종 훈련 프로그램에 참여했으며, 회원으로는 골드만삭스, 휼렛팩커드, 보잉 등 주요 미국 기업의 여성 경영진이 망라돼 있다.

글 서수민 기자 wikka@hani.co.kr 사진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