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너리티의 性] <3> 외국인 노동자

[마이너리티의 性] <3> 외국인 노동자
"돈벌러 왔으니 그것도 꾹 참아야 하나요" 대부분 20, 30대… "性문제, 음식…주거보다 더 고민"
비용에 원거리에 같은 노동자끼리 연애도 어려워 한국여성 사귀자 주변서 "에이즈 조심" 절교 부추겨

[한국일보]
허정헌 기자 xscope@hk.co.kr
김성환기자 bluebird@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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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노동자 밀집 지역인 경기 안산시 원곡동 한 상점 앞에서 15일 동남아 지역 국가 출신으로 보이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국제전화를 이용하고 있다. 증가하는 외국인 노동자 성범죄를 막기 위한 대책 마련과 함께 이들의 성문제 대한 논의도 필요하다는 지적이다.원유헌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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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출신으로 지난해 10월 귀화한 R(40)씨는 요즘 꿈 같은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귀화하기 전 7년 넘게 불법체류자로 방황하던 생활을 떠올리면 한국인이 된 자신이 믿겨지지 않기 때문이다. 1996년 산업연수생으로 입국, 한국 여성과 결혼해 합법적으로 정착하게 된 R씨를 만나 외국인 노동자의 ‘숨겨진 성(性)’ 실태를 들어봤다.

R씨는 “한국에 들어와 3~4개월 정도 지나 동남아 출신 노동자들이 부닥치게 되는 가장 큰 고민이 성욕”이라고 말했다. 언어 소통 문제, 한국인의 차별 등은 각오한 일이지만 혈기 넘치는 20~30대 노동자들이 ‘돈벌러 왔으니 꾹 참자’는 생각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게 성 문제라는 것이다.

실제 노동부 설문조사에 따르면 외국인 노동자들이 일상생활에서 성 문제(20%)때문에 심각한 고민을 하고 있다는 비율이 차별대우(27%), 언어(26.8%) 다음으로 많았다. 음식(3.6%), 주거(5.6%) 때문에 고민한다는 비율은 10%에도 미치지 못했다.

외국인 노동자의 손쉬운 해법은 이성 외국인 노동자를 사귀는 것. 그러나 남성이 압도적으로 많은데다, 남녀 직장이 멀리 떨어진 경우 교통비, 숙박비 때문에 지속적인 만남을 갖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고 한다.

R씨는 “수도권에 직장이 있는 한 동료가 경북 구미시에 사는 여자 친구와 사귀다 헤어진 사례가 있었다”며 “월급이 100만원에 불과한데 교통비, 여관비로 1회 15만원이 들어가는 만남을 지속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성매매 업소를 이용하거나 한국인 이성 친구를 사귀기도 하는데, 당국의 단속과 한국인의 차별 때문에 쉽지 않다. R씨는 “3년 전만 해도 외국인 노동자들이 집창촌을 찾는 경우가 많았으나, 2004년 성매매특별법 시행 이후 그마저도 쉽지 않다”고 말했다.

한국인 여자 친구를 사귀는 것은 더 어렵다. R씨는 “미국, 유럽, 일본 출신 외국인에 비해 중국, 동남아 출신 노동자에 대해 한국인은 훨씬 더 부정적”이라며 “지금은 부인이 된 한국인 여자 친구를 2002년 직장에서 만나 사귀게 되자, 사장이 여자 친구에게 ‘에이즈에 걸렸을지 모르니 조심하라’며 절교를 강요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국내 체류 외국인 노동자 숫자는 늘어나고 있지만 욕망의 해소 통로가 꽉 막힌 탓에 동남아, 중국, 몽골 출신 노동자들의 성범죄가 급증하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외국인 노동자의 성폭행 사건은 2003년 49건이었으나 지난해에는 114건으로 2.5배나 증가했다.

경찰 관계자는 “이는 한국 여성이 피해를 신고한 것”이라며 “외국인끼리의 성폭행 사건은 대부분 피해자가 강제 출국을 두려워 해 신고하지 않기 때문에 실제 범죄건수는 훨씬 많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외국인 노동자들은 여러가지 해결책을 원하고 있지만 한국 사회와 한국인들이 받아들이기 힘든게 대부분이다. R씨는 “결혼한 사람은 배우자와 같이 들어와 살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가족 이주를 허용하면 외국인 성범죄도 크게 줄어들 것이라는 게 R씨의 주장이다. R씨는 또 “가족이주가 어렵다면 외국인 노동자들끼리 만날 수 있는 공간이라도 조성해달라”고 했다.

외국인 노동자들이 많은 안산, 시흥, 구미 등 공단 지역에 한 곳씩 외국인 노동자 전용클럽을 만들어 달라는 것이다. 이제 한국인이 된 R씨는 “외국인 노동자도 한국 경제에 기여하는 엄연한 한국의 노동력”이라며 “한국 사회가 외국인 노동자도 성욕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해줘야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시민사회단체도 해법 분분

"가족 체류 인정을" "불법체류 단속"

외국인 노동자들의 성 문제에 대해서는 시민사회단체들조차 시각이 갈리고 있다.

외국인노동자대책시민연합(외노연) 이충재 고문은 "외국인 노동자 범죄의 대부분이 불법체류자가 저지른 것"이라며 "23만명에 달하는 불법체류 외국인 노동자들에 대한 단속과 범죄 수사를 위해 2004년 폐지된 지문날인 제도를 부활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외국인이주노동운동협의회(외이협) 우삼열 사무처장은 "불법체류자라는 사실이 보편적 인권마저 무시할 수 있는 이유가 될 수 없다"며 "정부는 이들의 기본적 인권 보장을 위해 이들이 가족과 한국에서 같이 살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우 처장은 또 '불법체류자들은 범죄로 인한 강제 출국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범죄를 저지를 확률이 낮다'는 형사정책연구원 연구결과를 근거로 "오히려 개별 사건으로 외국인 노동자 전체를 혐오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문제"라고 일축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외국인 노동자 증가와 함께 그들이 낳는 아이들의 수도 크게 증가하고 있다"며 "이들을 한국 국민으로 끌어안지 않으면 머지 않아 차별을 받은 그들의 분노가 사회문제로 끓어 오를 것"이라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