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의 덫에서 구출하려면

침묵의 덫에서 구출하려면

인신매매 피해자와 증인 ‘보호’ 중요

정희원 기자
2005-11-22 02:39:39
‘국제 인신매매 방지 전문가 회의’의 분과별 토론에서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각국이 ‘피해자와 증인의 보호 시스템’을 어떻게 마련해두고 있나 하는 사례발표와 논의였다. 이주가 일어나는 인신매매의 특성상, 피해자와 증인의 안전이 보장되지 않으면 수사와 기소과정에서 어려움을 겪을 뿐 아니라 피해자가 또 다른 인권침해의 상황에 놓이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모든 피해자가 스스로 희생자라 생각하진 않아”

조지아나 코스텔로 호주 변호사는 “피해자의 신원을 확인하는 절차는 피해자를 보호하고 지원하며 범인수사와 기소를 진행하는 선결조건”인데, 국가가 인신매매 피해자를 찾아내고 그 신원을 확인하는 것에 실패하는 이유는 “인신매매에 대한 자각이 희미”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기소에 앞서서 사법 관계자와 변호사들을 훈련하고 검토해야 한다”며, “인신매매 피해자들이 거듭 상처 입는 위험성을 줄이고 정확한 신원확인을 하기 위한 인터뷰 기술을 개발하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지아나 코스텔로 변호사에 따르면 인신매매 피해자들이 신원을 드러내지 않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성매매를 했다는 ‘낙인’이 찍힐까봐 겁을 먹기 때문이기도 하고, 피해자가 불법이민이거나, 암거래와 공모해온 공범일 수도 있고, 가해자들의 보복을 두려워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모든 인신매매 피해자들이 스스로 희생자라고 생각하거나 탈출하고 싶어하는 것도 아니다. 많은 경우 모순된 양가감정을 갖는다. 충성심을 느끼거나 심지어 감사하고 인신매매범에게 의존하며 자아비난을 일삼기도 한다. 조금 지나면 실수입을 벌 수 있다는 희망에서 빚 관계를 청산하는 것을 즐기기로 결심할 수도 있다.”

따라서 “피해자로부터 정확한 이야기를 듣고, 피해자와 신뢰관계를 잘 구축해서 수사 초기단계에서 얻어낸 증거를 정확하게 남겨 나중에 은폐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성 산업 인신매매 피해자의 경우, 그들이 불법적으로 비자 없이 일했거나 세금을 내지 않은 사실과 관련해 포주가 ‘자발성’을 위장하게 하므로 주의해야 하고, ‘피해자의 동의’가 진정으로 의미하는 것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을 변화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지아나 코스텔로 변호사는 “범죄자들로 하여금 피해자에게 돈으로 보상을 지불하도록 명령하는 것도 범죄 억지력이 있다”며, “범죄 보상기금 같은 피해자와 증인 인센티브를 주어야 한다”고 말했다. 가령, 인신매매 피해자에게 밀린 봉급을 받을 수 있게 하는 등 확실한 이점을 주어 가해자를 고소하도록 격려하고, 인신매매 범죄업체들의 경우 가해자가 챙긴 이익에 대한 피해자들의 파업을 유도할 수 있다는 것. 조지아나 코스텔로 변호사는 피해자 보상이 갖는 의의에 대해 ‘이들이 피해자였다는 사실을 드러내어 (인신매매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사회에 피해자 인권에 대한 인식을 살릴 수 있다’고도 말했다.

성매매 피해아동에 “상황에 따른 지원필요”

한편 태국의 스태파니 델라니 ECPAT 인터네셔널(www.ecpat.net) 담당관은 아동 성매매에 초점을 맞춰 피해자를 보호하는 방안에 대해 이야기했다. 스태파니 델라니 담당관은 “어린이는 범죄자가 아니라 ‘범죄의 피해자’라는 관점을 확실히 해야 한다”며, “이런 관점이 학대를 경험한 어린이들의 피해여부를 결정하는 것뿐 아니라 법률적용과정과 서비스절차에도 반영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치료적인 관점 등에서 ‘경험자’나 ‘생존자’라는 말을 쓰기도 하지만, ‘피해자’란 용어는 그 어린이들이 어른에 의해 저질러진 범죄 때문에 피해상황에 처해있다는 사실을 지속적으로 상기시키며, 특히 어린이들이 그 과정이 어떻든 간에 피해상황 때문에 비난 받아선 안 된다는 점을 명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스태파니 델라니 담당관은 “피해 어린이에 대한 지원이 아이들의 특정한 상황들에 기초해서 각각 제공되지 못하고, ‘전형적’인 서비스 유형들로 일반화되었다”는 것을 비판했다. 특히 이주노동 피해자의 경우, 어린이들이 자신이 살던 곳이나 조국으로 되돌아간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해 자신이 겪은 성폭력 경험에 대해 침묵하게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 경우, 피해어린이가 장기적으로 어디서 살아야 할 것인지에 관해 “당사자의 필요”와 “안전성이 보장된 장소에 대한 평가가 이루어진 후 결정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효과적인 피해자 지원이란 어린이가 가진 내부의 강점과 자원을 북돋아주는 것이며, 이를 사회적인 기술이나 관계를 성장시키는 데 사용해서 학대적인지 않은 성인과의 관계를 확립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상대적으로 한 국가나 한 지역 내에선 각 서비스 기관과 현장간의 공조가 쉽지만, 언어권과 문화권의 차이가 있을 때 무척 어려운 문제가 되기 때문에 조정과 통합의 노력이 필수적”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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