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매매 알선 자수한 강 청장도 '리스트' 밝혀라

성매매 알선 자수한 강 청장도 '리스트' 밝혀라
비즈니스 접대=성매매, 한국식 문화의 한계

글쓴이 : 표정선 by 오마이뉴스

최근 '성상납', '성접대', '성매매' 관련 사건이 연일 보도되더니, 이번엔 강희락 경찰청장의 '성접대 경험' 발언이 도마 위에 올랐다. 강 청장은 지난 달 30일 오전 브리핑을 마치고 기자들과의 정례간담회 자리에서 "성매매 문제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난감하다. 기자들에게 조언이라도 구하고 싶다. 노총각 기자들 조심해야지 재수 없으면 걸린다"고 말했다.

그는 또 "나도 공보관 하면서 접대 많이 했다. 내가 공보관 끝나고 미국 연수 준비하면서 기자들이 세게 한 번 사라고 해서 기자들 데리고 2차를 가는데, 모텔에서 기자들 열쇠 나눠주면서 '내가 참, 이 나이에 이런 거 하게 생겼나'하는 생각이 다 들더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일고 있다.

그야말로 따뜻한 봄날에 맞춰 '성구매(알선) 커밍아웃(?)'이 만개하고 있는 듯하다.

강 청장 발언과 꼭 닮은 성매매 수사관의 태도

'성매매는 재수 없으면 걸리는 것'이라는 강희락 경찰청장의 발언이 여러 언론들과 포털사이트에 뜨자마자 머릿속에 떠오른 일화 하나를 소개하고자 한다.

성매매 관련 수사과정 때, 성매매 여성을 지원하는 입장에서 어쩌다 성매매 여성과 성구매 남성의 대질조사에 참여하다 보면 '성매매는 재수 없으면 걸리는 범죄'라는 강희락 경찰청장의 발언과 꼭 닮아 있는 수사관의 태도와 마주치곤 한다.

조사 자리에 불려나온 성구매 남성에게 (남성)수사관은 측은함과 안쓰러움을 표현하기도 하고 조사가 끝나면 처벌 수위에 대해 아주 친절하게 설명해 주기도 한다. 심지어 교육을 받으면 처벌을 면할 수 있다는 설명까지 덧붙여 준다.

조사 중간 휴식시간에 수사관과 성구매 남성이 함께 담배를 피우는 자리에선 '그들만의' 이러저러한 이야기도 모락모락 피어난다. 성구매 남성에 대한 수사관의 이러한 태도가 선명하게 부각되는 이유는 옆에 앉아 있는 성매매 여성에 대한 태도와 확연한 차이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수사관들이 성매매 여성에게는 '인생 그렇게 살지 말라'는 훈계성 메시지를 수사 과정 내내 전달하고 있는 것에 비하면 말이다.

성구매·성접대로 유지하는 사회생활엔 계급이 없다

또 하나 강희락 경찰청장이 "이런 사건은 정말 수사하기 어렵다"고 하소연했다는데, 수사관들도 성매매를 수사하면서 "이런 수사는 정말 어렵다"고 NGO관계자로 참석한 내게도 몇 번을 강조해서 말하곤 했다. 왜 '이런 수사'는 그들에게 유독 어려운 것일까?

어떻게 보면 강희락 경찰청장은 경찰을 대표해 위와 같은 말을 했을 뿐이다. '대한민국 남성'으로서 여자를 도구처럼 주물럭거리며 밤 문화를 향유하는 행위에 가담한 공모자들은 당연히 성매매를 문제 삼고 싶어 하지 않는다. 오히려 강희락 경찰청장의 발언은 성구매, 성접대로 사회생활을 지탱해 나가는 현상에 계급이 따로 없음을 절감케 할 뿐이다.

한편, 최근 연일 보도되고 있는 '여자 연예인에게 성매매 강요', '청와대 행정관 비서실 성접대 파문', '강희락 경찰청장의 과거 성접대 관행에 대한 발언' 등은 '한국식 비즈니스 접대'가 성매매와 얼마나 밀접한 연관성을 가지고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참여정부 때 성산업 규제와 더불어 기업의 접대비에 개입했던 이유도, 이와 같은 연관성을 반증한다. '접대와 성매매'는 없었던 문제가 아니라 성산업을 무조건 옹호하는 이 사회가 애써 외면해 왔던 문제들이다.

'성접대' 발언 보도 안 한 기자들도 자유롭지 못해

성산업은 그저 남성 개개인의 욕구충족과 관련된 것이 아니라 사회생활, 비즈니스 등과 같은 남성들의 관계 맺기의 정점에서 팽창하고 있으며, 그 안에서 일어난 문제들은 그 경험을 공유하고 현상에 공모한 사람들에 의해 축소, 은폐된다. 그리고 접대와 성매매의 고리를 끊기 어려운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강희락 경찰청장의 문제 발언을 보도하지 않기로 한 일부 기자들의 결정도 위와 같은 맥락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성접대와 관련한 일련의 사건들이 사회적으로 크게 논란이 되고 있지만 이것이 그저 한 개인의 도덕적 문제로만 치부되어선 안 될 것이다. '하룻밤 2차비'로 수십 만원을 쓰면 쓸 수록, 또 위와 같은 접대 관행을 방치하면 할수록 성매매 산업의 토대는 확장되고 비좁은 노동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여성들은 그곳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 '강요' 상태에 내몰리게 된다는 것을, 그리고 결국엔 사회 전체가 성착취 구조에 적극적으로 가담하고 있는 꼴이 된다는 것을 선명하게 기억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이번엔 강희락 경찰청장이 소위 '리스트'를 밝혀야 할 차례가 아닌가라는 생각이 스친다. 두려울 게 뭐 있나, 옆에 남자 동료들이 측은하게 여겨줄 것이고 처벌받더라도 존스쿨 교육 8시간만 받으면 되는데….

덧붙이는 글 | 표정선 기자는 성매매없는세상 이룸에서 활동가로 일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