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창촌 여성들 "못살겠다, 한국 뜨겠다"

집창촌 여성들 "못살겠다, 한국 뜨겠다"

[조선일보 2004-10-16 10:51]

[현장르포] 2004 가을의 평택·텍사스 윤락가

[조선일보]

경기도 평택역 인근의 집창촌. 지난 10월 9일 오후 10시, 집창촌의 평택종업원협의회 임원진 10여명이 한터라는 사무실에 모였다. 이들은 10월 11일로 예정된 ‘생존권 사수를 위한 결의 대회’를 준비 중이었다. 10여평 규모의 사무실 바닥에는 이들이 제작한 피켓, 유인물 등이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었다. 나는 이들 옆에 앉아 이야기를 들었다. 회장 H씨가 목소리를 높였다.

“오죽하면 이 쓰레기 같은 바닥까지 왔겠냐 이 말이에요.”

H씨는 나의 얼굴을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아저씨. 우리가 몸 팔고 싶어 파는 줄 알아요? 상황이 절박해서 막다른 길목에서 최후 선택을 한 거고, 돈이 되니까 저는 사실 후회도 없어요. 나 하나 희생해서 우리 집에 웃음꽃이 피어나는데, 나는 더한 일도 할 수 있어요. 책상 머리에 앉아서 우리를 범법자, 살인자로 만들지 말란 말이에요.”

서른한 살의 K씨가 말을 거들었다. 이혼 경력이 있는 K씨는 “이혼 후 두 아들을 시댁에 빼앗겼다”며 힘 없이 말했다.

“남편한테 사기 당하고, 남편 바람나서 이혼 당하고, 아이들까지 빼앗겼어요. 대기업 공장에서도 일해봤고, 혼자 장사도 해봤는데, 남편이 진 빚을 다 떠맡아서 도저히 살 수가 없었어요. 저 지금 이 악물고 살고 있어요. 감금은 누가 감금해요. 돈 벌고 여기 떠나려면 얼마든지 떠날 수 있어요. 지금 빚은 다 갚았고, 한 1년 더 일하고, 1억 채우면 시댁 가서 아이들 내놓으라고 말하려던 참이었어요.”

분위기가 풀리자 처음에는 말을 아끼던 임원진들이 가슴에 묻어두었던 말들을 봇물처럼 터뜨렸다. 한꺼번에 두세 명씩 기구한 삶을 얘기하던 중 어떤 여성은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하나같이 가슴아픈 사연들이었다.

“정말 계속 이렇게 문 닫으면 자살할 애들 많아요. 오갈 데 없는 애들, 집에 돈 부쳐야 하는 애들, 자기가 아파서 비싼 약 사먹어야 하는 애들. 어떻게 할 거예요. 진짜 살인자는 그 인간들(여성단체, 정부)이에요.”

이들은 “여성단체가 면담도 거부하고 있다. 우리가 주는 것은 커피도 더럽다고 마시지 않더라”면서 울분을 터뜨렸다.

“여성 인권? 그게 뭐예요. 가끔 와서 콘돔 던져 놓고 가던 인간들이 우릴 인간 취급이나 해요? 와서 행패 부리는 사람들이나 처리해 주면 그게 우릴 위한 일이지. 이렇게 인간 취급 안 하고 쓰레기로 찍어버리는 게 인권이에요? 와서 한 번이라도 내 얘기 들어준 적이 있느냔 말이에요. 한번 만나서 얘기하자고 해도 만나주지도 않고, 우리도 여자예요. 왜 우리 시위할 때는 거들떠보지도 않는 거예요.”

미대 휴학생 “내게도 꿈이 있다”

“도대체 이런 날벼락이 어딨어요! 내 딴에는 최후의 선택을 한 거예요. 학교 다시 가고 싶었어요. 나도 남들처럼 정상적인 삶을 살고 싶어서, 계속 그림 그리고 싶어서 여기 온 거라고요. 쓰레기통에 있다고 내 삶, 미래도 모두 쓰레긴 줄 아세요? 나도 내일을 꿈꿔요. 딱 1년만 더 하면 다시 학교 복학할 수 있었단 말이에요.”

K씨는 뜻밖에도 미술대학 학생이었다. 스물세 살의 그녀는 “친구 보증을 잘못 섰다가 빚더미에 앉았다”고 말했다. 현재 휴학 중인 그의 방에는 데생 연습을 위한 조각상과 붓, 연필 등이 화장품과 함께 놓여있었다. 책상에는 ‘그림 연습 게을리 하지 않기’, ‘하루에 줄넘기 1000번’ 등의 다짐도 적어놓았다.

취재 중 만난 업주들도 분통을 터뜨렸다.

“아예 공산국가로 가든지, 언제부터 나라가 국민들 거시기까지 책임졌어! 아예 밥도 하루에 두 끼만 먹으라 그러든가. 식욕이나 성욕이나 뭐가 다른데!”(업주 A씨)

“정권이 이 짓 하는 이유가 뭔지 알어? 자기들 제대로 하는 거 없으니까 국민들 시선 돌리려고 이 짓 하는 거야. 쳇. 웃기고 자빠졌네 정말.”(업주 B씨)

성매매알선 등 행위의 처벌에 관한 특별법(성매매 특별법)이 지난 9월 23일부터 시행되었지만, 평택 집창촌에서 만난 업주와 여성들은 하나같이 택도 없는 소리라고 했다. 한 여성이 말했다.

“이제 나 1:1로 장사할 거예요. 벌써 친구들은 여관발이(여관 잡고 손님을 들여 장사하는 일) 시작했어요. 계속 이렇게 못 하게 하면, 그 방법밖에 없어요. 어디 가서 제가 한 달에 500만원을 벌겠어요.”

이들의 월 수입은 최소 300만~400만원, 많이 벌 때는 1000만원이 넘을 때도 있다고 한다. 취재 중 실제로 집창촌 생활 2년 만에 사회에서 진 빚과 업소에 진 빚을 다 갚고, 5000만원을 챙겨 나가 한식당을 차린 여성도 만나볼 수 있었다. 여성들은 “이만큼의 월수입을 위해서는 단속이 계속 되더라도 이동형 집창촌, 여관발이, 인터넷 채팅, 휴게텔 등을 통해 계속 성매매를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차 한 대 사야죠. 차 타고 다니면서 손님들 만나고 다녀야죠. 별 수 없어요.”

“더 위험해졌죠. 한국 남자 중에 변태들이 얼마나 많은데. 유영철 같은 인간들 계속 나타날 거야. 그 때 되면 그 인간들(여성단체, 정부)도 정신 차리겠지. 나도 인간이라고! 왜 나는 보호해 주지 않는 거야. 왜 더 위험하게 하느냔 말이야!”

“진상(변태 성행위를 요구하는 남성과의 잠자리) 한 번 당하면 온몸에 힘이 쏙 빠져. 그래도 바로 밑에 마담 언니도 있고 친구들도 있어서, 내가 소리 지르면 다들 올라와서 막아 준단 말이야. 이제 ‘개인 사업(1:1 영업)’ 하기 시작하면, 나 혼자 남자 만나야 되는데 어디서 무슨 일이 생길지 어떻게 알어.”

'텍사스’선 불 켜놓고 침묵 시위

서울 성북구 길음동 속칭 ‘미아리 텍사스촌’ 골목. 10월 8일 오후 8시 이 골목에 불이 환하게 켜졌다. 성매매 특별법이 시행된 지 보름 만이다. 일본인 관광객으로 보이는 남성들과 외국인 노동자로 보이는 남성들이 가끔 지나칠 뿐 골목은 한산했다. 손님보다 사복 경찰관이 더 많았다.

“장사를 못 하니까, 시위하려고 일부러 불 켜논 거예요. 일종의 침묵 시위죠.”

드레스를 입고 있는 한 여성이 인터넷 신문의 보도 내용을 보여주며 말했다.

“우리 집회가 강제적인 거라는데, 기가 막혀요. 아가씨들이 자발적으로 살려고 발버둥치는 거예요. 이게 말이나 되는 소리예요?”

앞서 10월 7일, 여의도에서 열린 전국 집창촌 결의대회에는 미아리텍사스촌에서만 11대의 관광버스에 500여명의 여성은 물론 인근 포장마차 업주들, 직업 여성들을 상대로 구걸하는 거지까지 참가했다. 집회를 끝내고 돌아오는 관광버스에 올라 50여명의 여성과 얘기를 나눌 수 있었다. S씨가 입을 열었다.

“룸살롱에서 일하는 제 친구는 바로 어제도 그 놈의 높으신 분들이랑 2차 나갔다 왔대요. 거기 2차는 여관 수준 아니에요. 손님 먼저 특급 호텔 잡고 기다리면 나중에 찾아가는 건데, 친구들 지금도 변함없이 2차 나가고 있대요.”

경찰의 서슬 퍼런 단속 의지와는 별개로, 출장 매매춘은 이미 은밀하게 이뤄지고 있었다. 실제로 미아리 텍사스촌 인근에서는 택시를 타고 동대문, 청량리 등지의 여관으로 출장가는 여성들을 쉽게 만나볼 수 있었다. 한 업소 사장의 말이다.

“한 사람에 단골이 20명, 많으면 50명인 사람도 있어. 그렇게 계산하면 미아리 텍사스촌 고정 단골만 2만~5만명이야. ‘너희 오늘도 영업 안 하냐’는 전화가 하루에 열 번씩 와요. 그럼 단골 관리하러 나가야지 안 나가겠어.”

방금 동대문 인근에서 손님을 만나고 온 여성은 “둘이 애인이라고 하면 경찰이 어떻게 잡아가느냐”고 말했다.

“원래 여기서(업소) 하면 7만원인데, 택시비까지 해서 12만원 주더라고요. 백화점 앞에서 만나서 여관에 팔짱끼고 들어가는데 누가 무슨 근거로 잡을 거예요.”

“돈을 주고 받는 현장을 목격할 수도 있지 않느냐”는 질문에 여성들은 “우습다”고 말했다.

“아저씨 바보 아니에요? 텔레뱅킹도 있고, 미리 선불로 50만원 줬다가 한 번 만날 때마다 돈 ‘까는(계산하는)’ 방법도 있어요. 방법은 많아요.”

텍사스, 연간 시장규모 1200억원

10월 9일 밤 1시30분경, 미아리 텍사스촌 입구에서 싸움이 났다는 소식에 달려가 봤더니 만취한 20대 남성 두 명이 형사들과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이 광경을 처음부터 지켜보던 업주가 설명했다.

“저 남자애 둘이서 미아리 놀러왔나봐. 근데 사장이 단속 때문에 장사 안 한다고 하니까 열 받아서 입구 분식집에서 소주를 죽어라고 마셨대. 형사들이 새벽에 배고프니까 라면 먹으러 들어왔나봐. 젊은애들이 뒤에 형사가 있는 줄도 모르고 ‘형사 XX놈들 때문에 말이야. 놀지도 못하고 에이 재수없어!’ 욕설 퍼붓고 난리 났나봐. 그 얘기 듣고 형사들은 기분 좋겠어? ‘우리 형사예요. 말 조심 좀 해 주세요’ 했더니 시비 붙었지 뭐.”

남자 두 명은 주위 사람들이 만류하자 곧 자리를 떠났다. 남아 있는 형사들은 어이가 없다는 듯 대꾸도 하지 않고 담배를 입에 물었다. 또 다른 업주가 말했다.

“우리 없으면 이 동네 다 망해. 업주랑 아가씨만 망하는 게 아니라, 이 동네 수퍼, 게임방, 백화점 다 망할 거야.”

미아리 텍사스촌에 있는 여성들은 1000여명. 1년 시장 규모는 최소 1200억원으로 추정된다. “한 달 수입이 500만~1000만원”이라는 여성들의 한 달 수입을 최소 500만원으로 잡고, “업주와 최대 50:50으로 수입을 나눈다”고 볼 때, 한 여성의 한 달 매출액은 최소 1000만원, 1년 매출액은 1억2000만원, 1000명의 1년 매출액은 최소 1200억원 이상이다. 졸지에 수입원이 끊긴 미아리 텍사스촌의 여파는 인근 상가는 물론 금융권까지 침투하고 있다. 국민은행 종암지점의 대출 관계자는 “업주는 물론 아가씨들도 9월 23일 이후 전혀 입금을 안 하고 있는 상태”라며 “여성들이 찾아와 하루에 3~4건씩 적금을 해약해 가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우리은행 길음역점은 사태가 더욱 심각했다. 2년여 전까지 미아리 텍사스촌 업주에 한하여 가맹점 대출(손님이 사용한 카드대금을 우리은행으로 회수하는 조건으로 해 준 무보증 대출)을 최대 5000만원까지 해주었던 우리은행 길음역점은 “파산한 업주들이 점점 늘어 원금 회수가 불가능한 상태”라고 금융권 관계자는 전했다.

1년에 최소 두 번 이상 단속을 맞는 업주들은 “벌금 계속 낼 테니까 장사 시켜 달라”고 말하고 있다.

“성매매가 불법으로 변했으면, 내 전과도 없애 달라 그래. 평범하게 살던 사람이 2년 만에 전과 5범이 됐어. 사업자등록은 받아 줘서 세금은 세금대로 받아가고. 주기적으로 단속 나와서 벌금은 벌금대로 받아가고.”

“미아리 텍사스촌의 업주들은 성북세무서에 주점, 요정업 수준의 세금을 내고 있다”고 성북세무서 세원관리과 직원은 설명한다. 성북구청 식품위생과의 관계자는 “2001년까지는 1년에 두 번 그 이후로는 1년에 한 번씩 단속했다”고 말했다. 종암경찰서 여성청소년계 관계자는 “단속으로 인해 1년에 최소 두 번 이상, 한 번에 적게는 200만원, 많게는 700만원의 벌금을 (업주들이) 내고 있다”고 말했다.

한 번에 200만~700만원씩 벌금

집창촌 여성들은 궁여지책으로 우리나라에서의 ‘장사’를 포기하고 외국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미국과 캐나다의 업소에서 일을 하다가 최근 입국한 여성은 “요즘 나가려는 애들 많다”고 전화통화에서 말했다.

“미국에 가려면 브로커에게 1만달러(1200만원) 줘야 돼요. 미국에 있는 한국인이나 한국에서 온 관광객이 주 고객이고, 주로 안마시술소나 콜걸로 일해요. 요즘은 나가려는 애들이 많아서 1만달러 이상 있어야 나갈 수 있다고 하네요. 일단 나가면 한 달에 1000만원 이상은 벌어요. 캐나다는 600만원 정도 벌고요.”

일본 진출을 알아보고 있다는 미아리 집창촌의 여성은 “일본은 공짜로 갈 수 있다”고 말했다.

“일본은 내가 들이는 돈은 없대요. 마마(일본 현지 마담) 만나는 데에만 마마가 브로커한테 700만원쯤 준다고 하더라고요. 한 달에 1000만원 이상 벌 수 있다고 소문 다 났어요. 일본만 가는 게 아니라, 홍콩, 유럽 다 나가요.”

이들은 모두 “위험한 일인 줄 안다”고 말했다.

“위험한 줄 알지 왜 몰라요. 야쿠자도 있고, 불법 체류자로 일하는 데 괴롭히는 사람 없겠어요. 위험한 줄 알면서 가는 데는 그만큼 사정이 있어서 그런 거죠. 여기서 장사도 못 하게 생겼잖아요.”

평택과 미아리의 집창촌 여성과 업주들은 먹고살기 위해 일을 계속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였다. 모든 위험을 무릅쓰고 집창촌 여성들은 “계속 영업을 하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서울지방경찰청 여성청소년계 관계자는 “성매매 뿌리를 뽑겠다”고 강조했다. 이 관계자는 “경찰의 눈을 피해 불법 영업을 계속 하겠다고 해봤자, 첩보 수집으로 수사를 계속 해 나가고 있기 때문에 결국 다 잡히게 된다”고 말했다. 법무부 입국심사과의 관계자는 “외국에서 불법 체류자로 성매매를 계속할 경우 외국법에 의해 처벌받는다”고 경고했다.

“끝까지 싸우겠다” 의지 보여

10월 9일 아침 6시, 집창촌 업소마다 고스톱 판이 한창이었다. 여성들은 “에이, 이 놈의 더러운 세상. 에이, 더러운 놈만 가득한 세상”이라며 화투장에 짝짝 힘을 넣었다. 여성들이 고스톱에 열중일 때, 말끔하게 차려 입은 남성들이 캔디와 명함을 돌리며 인사를 했다. 인근 호스트바의 남성 접대부들이었다.

“누님들 기분도 울적하실 텐데, 한 번 놀러오세요. 서비스 잘 해 드릴게요. 감사합니다. 꼭 오세요~.”

환하게 미소 짓는 그들의 얼굴을 바라보며 한 여성이 말했다.

“벼룩의 간을 도려내 먹어라, 썩을 것들아.”

옆에 있던 여성이 거들었다.

“쟤네가 무슨 잘못이 있냐. 다 먹고 살자고 저러는 건데. 시궁창 막아봐야 넘치는 건 별 수 없는 거야. 저 애들이나 우리나 흘러흘러 바다로 가겠다는데 왜 이러는 거야 도대체가….”


집창촌 여성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