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성욕은 원초적 본능?

성매매방지법이 시행되니 온나라가 들끓는다. 인권을 되찾아 기뻐할줄 알았던 윤락여성들은 "생존권이 더 중요하다"며 데모하거나 자살을 하고 남성들은 "성욕은 본능이고 매춘은 필요악이니 무조건 막아서는 안된다"고 주장한다.

그 고매한 맹자도 고자(告子)의 입을 빌려 '식욕과 성욕은 사람의 타고난 본성'(食色, 性也)이라 했고 `지구촌 보안관'이라는 미국의 대통령 클린턴은 백악관 집무실에서 국정관련 전화를 받으면서도 모니카 르윈스키가 내리는 바지 지퍼 소리에 더 귀를 쫑긋 세웠다. 초등학생들의 음란사이트 가입이 급증하고 90세 영감님도 비아그라를 복용하며 성욕엔 정년이 없음을 자랑한다. 게다가 미국 항공우주공화국(NASA)이 최근 3년이 예상되는 화성을 오가는 우주비행을 준비하며 첨단장비보다 더 걱정하는 것은 우주인들의 성욕을 처리하는 방법이란다.

반면 합법적으로, 열심히 성생활을 하려고 결혼한 부부 5쌍중 1쌍은 성관계를 거의 하지않는 섹스리스 커플이고 성욕이 가장 왕성하다는 30대 청년층에 성욕저하증이 급속도로 퍼지고 있다. 욕구가 안 생기면 인생이 끝난 것 같고, 돈 주고 해결하면 사회지도층조차 파렴치범으로 만드는 성욕. 정말 성욕은 구제불능의 본능일까, 혹은 그저 인간이 필요해서 만들어낸 환상일까.

성욕은 조절 안 되는 본능이다?

비뇨기과전문의, 신경정신과 전문의 등 성의학자들은 '진화의 산물인 인간은 유전자의 99% 이상이 본능에 관계하고 있어 그 본능을 의식적으로 막거나 가치판단을 할 수 없다'는 견해를 보인다.

중앙대 용산병원 비뇨기과 김세철 교수는 "성욕은 테스토스테론이란 남성호르몬이 뇌의 성중추인 시상하부를 자극해 생기는 것"이라며 "남성의 성욕이 여성보다 훨씬 충동적이고 강한 것은 남자가 여자보다 10~20배 더 많은 테스토스테론을 생산하며 시상하부가 여자의 것보다 크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테스토스테론은 사춘기에는 남성으로서의 성징을 나타내며 30세쯤부터 해마다 1%씩 감소하여 50세에는 30% 이상 감소한다. 이 호르몬의 분비가 성욕이나 발기력을 좌우하며 성적욕구가 감퇴된 이들에게 테스토스테론 호르몬을 투여, 젊음을 되찾아주는 치료법도 이를 바탕으로 개발된 것이다. 청소년 성교육을 강조하는 구성애씨도 성호르몬이 왕성히 분비되어 자위행위를 하는 10대 아들에게 무조건 야단을 치기보다는 질이 좋은 휴지를 방에 넣어주라는 처방법을(?) 제안하기도 했다.

미국 인디애나대 킨지연구소 존 밴크로포트 박사는 "남성의 성욕 시스템은 고장나는 경우는 있어도 스위치가 꺼지는 경우는 없다"면서 "그러나 여성들은 성욕시스템이 매우 미묘하며 임신, 수유중이거나 다른 심리적 스트레스를 받으면 성욕 스위치가 꺼진다"고 한다. `남자는 밥숟가락 들 힘만 있어도 섹스를 생각한다'는 속설은 거짓말이 아니다. 전압이 낮아진 전구의 불을 밝히기 위해 남성들은 비아그라는 물론 각종 도구와 포르노의 힘을 빌리는 것이다.

물론 여성도 성적 욕구가 있다. 여성들은 '충동적으로 시각적으로 봐서 흥분하는 성욕'이 아니라 정서적으로, 따뜻하게 사랑받고싶다는 욕구가 더 크다. 그래서 원치 않는 성행위를 요구하는 남자들을 '짐승'이라 욕하지만 여성의 성욕를 무시하는 남성들을 '짐승만도 못하다'고 저주(?)한다.

그렇다면 매매춘이나 강간, 외도까지도 "나약한 인간이 무슨 잘못인가, 인간본능을 좌우하는 호르몬 탓이지"라고 넘기고 면죄부를 줘야 할까. 성범죄와 관련된 모든 법정과 교도소에 사람 대신 `테스토스테론'을 세워야 할까.

성은 환상이다?

반면 성욕 본능론은 남성우월자들이 만들어낸 신화이며 얼마든지 조절이 가능하다고 주장하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인간은 발정기에만 생식행위를 하는 다른 동물과는 다르다는 것. 즉 동물의 성욕은 주기에 따라 노출되고 절제와 조절이 불가능하지만 인간의 성욕은 종족보존의 욕구와 함께 사랑의 표현, 만족감 및 소속감을 느끼고자 하는 여러 가지 요소가 함축되어 정신적 차원에서 그 의미를 찾아야 한다. 대뇌의 연변제(구피질)는 욕구와 정서를 지배하고 신피질은 교육에 의해 완성되며 욕구를 제어하는 자기통제력의 훈련과 아름다운 정서를 만들어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인간성욕은 욕구에 따른 행동만이 아니라 이성적으로 통제하는 행동으로 이해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의학전문용어를 들출 필요도 없이 정말 사랑하는 여성의 순결을 지켜준 많은 남성이 이를 입증한다. 물론 그 여성과 헤어져 다른 방법으로 성욕을 해결했더라도 일단 '자제와 조절'은 가능하지 않았던가. 또 성욕이 일어 잔뜩 발기해 있다가도 누가 들어온다거나, 상대 여성의 실망스러운 행동이나 냄새 등으로 성욕이 식기도 하지 않던가.

과거 청교도주의자를 비롯, 금욕주의자들은 성욕을 다스리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했다. 현대인들이 아침식사 대용으로 먹는 시리얼도 금욕주의의 산물이다. 19세기초엔 과도한 성욕과 식욕이 모든 질병의 원인이며 육식은 성욕을 촉진시킨다는 성경 말씀에 따라 곡식과 과일을 주식으로 하자는 운동이 일어났다. 이때 켈로그란 사람이 교회가 운영하는 요양소에서 귀리를 주성분으로 만든 것이 시리얼의 원조다. 실제로 켈로그씨는 부인과 잠자리를 거의 하지 않았다고 한다.

또 집창촌을 찾는 주요 고객들의 특성도 성욕 본능론에 이의를 제기하게 한다. 성욕은 높으나 성적 파트너가 없는 이들, 즉 독신남이나 노인 등이 아니었던 것이다. 정작 집창촌을 찾거나 다른 방법으로 성매매를 하는 남성의 60%는 버젓하게 가정을 둔 건강한 중년남성들이었다. 또 성매매를 한 남성들의 7%만 만족했을 뿐 대부분은 성병감염 등을 두려워하거나 실망과 죄책감을 느꼈다고 밝혔다.

'사적유환론(史的唯幻論)', 즉 인간은 본능이 고장난 동물이며 그런 결함을 보완하기 위해 국가, 사회, 가족, 성이란 환상을 만들어냈다는 주장을 하는 일본의 정신분석학자 기시다 슈는 [성은 환상이다]란 책에서 이렇게 말한다.

"남자에게 여체는 많은 환상이 얽혀 있는 특별한 상품이다. 여자쪽이 간단히 몸을 허락하면 환상이 벗겨져 상품 가치가 떨어지며 매력이 없어진다. 손에 넣기 어려울수록 상품가치는 올라간다. 만일 남자의 성욕이 본능에 토대한 자연스러운 욕망이라면 그런 일은 일어날 수 없다. 실용품이라면 튼튼하고 쉽고 쓰기좋고 구입하기 편한 것이 선택되지만 환상에 입각한 남자의 성욕대상은 실용성과는 다르다"

그는 여자에게 성욕이 없다, 여자는 참아야 한다는 것도 근대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환상, 섹스의 가격을 높이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한다. 여자도 자유롭게 섹스하고 싶은 존재라면 굳이 남자만 섹스에 대한 대가를 지불할 필요가 없다. 근대 남성들은 비싼 돈을 지불해야 얻을 수 있는 것이 성(性)이라고 여겨 여자를 얻기 위해 더 많은 돈을 벌려고 열심히 노동했으며 그 결과 자본주의가 발전하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남자란 여자와 연애와 섹스를 하기위해 기꺼이 자발적으로 노예처럼 노동하는 인간이라는 것이다.

성이 더 자유로워야 한다?

성욕이 통제불능의 본능이건 의식적으로 조절가능한 환상이건 우리는 성욕 과잉의 시대에 살고 있다. 숱한 포르노상품, 학교와 주택가에도 들어선 술집과 러브호텔. 군대 간다고, 입사했다고, 계약 때문에 선물하듯 도처에서 섹스를 권하는데 혼자만 "참아야 하느니라"며 허벅지를 찌르거나 '사탄아 물러가라'고 부르짖을 수는 없다.

형사정책 연구원의 2002년 조사를 보면 성매매 여성이 33만명이고 경제규모는 24조원이다. 여성단체에서는 최소한 2백만명의 여성이 성매매를 한다고 주장한다. 화대만 따져도 농림어업 규모에 육박하는 엄청난 규모인데 이것이 모두 '성욕' 때문에 쓰는 돈이라니 우리나라 경제가 어려운 이유를 알 것 같다.

하지만 한편에선 여전히 "집창촌을 폐쇄하고 성매매자를 구속하면 성매매 여성들은 더욱 음성적으로 활동하며 성욕을 해소할 길 없는 남성들이 또다른 성범죄가 될 것"이라고 겁을 준다. 그러나 사창가가 있어도 한국의 성범죄는 세계적이었는데 남성들을 성범죄자로 만들지 않으려고 모든 여성이 남성들의 성요구에 순순히 응해야 할까.

신경정신과 전문의 김병후씨는 "어릴 때의 바른 성교육도 중요하지만 우리사회에서 성을 더욱 건강하게 받아들이고 성에 대한 인식이 자유로워지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여전히 순결가치관을 갖고 있고 성은 은밀하고 죄스러운 것이란 인식으로 출구까지 꽁꽁 묶어놓은 현실에서 성적 충동이나 욕구를 알아서 처리하라고만 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또 성에 대한 너무 많은 관심과 기대 때문에 오히려 자연스러운 성욕마저 병들어 젊은층에서 성욕저하증에 시달린다고 전한다. 그저 성은 누구나 즐길 수 있는 행위로 편안하게 받아들이라고 한다.

어찌 보면 조물주가 심술쟁이여서 그런지도 모른다. 성욕이 펄펄 끓을 때는 미혼이란 이유로 눈치를 봐야 하고 정작 결혼해 안정된 짝을 찾고나면 뚝뚝 떨어져 피차 괴롭다. 또 나이들고 몸이 늙으면 머리에서도 사라져야 하는데 불쑥불쑥 치미는 욕망 때문에 '주책바가지'란 비난까지 듣는다.

아무리 호르몬덩어리인 성욕 핑계를 대도 성을 사는 것은 범죄다. 만약 성욕해소를 위해 다른 여자의 성을 사는 것이 당연하다면 또 다른 여자인 당신의 딸, 누이, 엄마가 돈받고 성을 파는 것 역시 당연하게 여긴단 말인가. 또 성을 파는 여성들 역시 자신에게 정말 팔아야 할 것이 성밖에 없는지 이번 단속기간만이라도 곰곰 생각해보면 어떨까.

유인경 편집장 alic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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