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매매 못하니 온갖 문제가 생기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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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매매 못하니 온갖 문제가 생기잖아…”

△ 조선일보 10월13일자 38면 신문. 조선일보는 이날 성매매방지법 시행 이후 은행권이 타격을 받고 있다고 보도했다.

[분석] ‘성매매방지법, 그 이후’ 다루는 언론들의 ‘아주 특별한 시각’

지난달 23일 성매매방지법 시행 이후 언론들은 경쟁적으로 관련기사를 내보내고 있다. 성매매방지법 시행 취지와 목적, 문제점과 개선방안과 함께 여성단체나 성매매여성들의 의견 등 기사의 내용은 다양하다. 하지만 일부 언론은 성매매 업주들의 입장을 여과없이 보도하거나 성매매방지법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시하며 그 의미를 축소시키고 있다는 지적이 여성계 안팎에서 나오고 있다.

실제 일부 언론들이 성매매방지법을 바라보는 시각은, 성매매가 명백한 범죄라는 사회적 합의와 상식을 배반한다.

이들 언론은 성매매방지법이 가져온 성매매 중단의 긍정적 측면보다는 부정적 측면을 부각시키는 데 주력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고 있다. 이번 성매매방지법의 본질보다도, 성매매방지법에 따른 성매매여성의 생존권 보장 요구과 남성들의 성욕 해소를 위해 성매매를 ‘필요악’으로 호도하는 기사를 내보내는 언론들이 여럿이다. 나아가 성매매로 인해 관련 산업이 타격을 입으면서, 경제를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거나 음성적인 성매매가 확산되고 있다는 등의 기사도 경쟁적으로 쏟아내고 있다.

성매매 방지법을 둘러싼 언론의 보도는 어땠는가? <한겨레>가 신문철을 뒤집어 분석했다.

◇ 성매매업주와 성매매여성의 생존권을 보장하라니?
성매매 자체가 불법…강도짓 그만둔다고 생계 보장하나

성매매 업주와 성매매 여성들의 ‘생존권 보장’ 요구 시위가 있던 날, 신문들은 앞다퉈 이들의 시위소식을 전했다. 지난달 23일 밤 ‘미아리 텍사스’ 집창촌 여성 종업원과 대한안마사회 소속 맹인 안마사 강남경찰서 앞에서 생계보장 시위를 열자 신문들은 시위 참가자들의 말과 구호를 인용해 “여성단체가 우리 현실을 제대로 보지도 않고, 이상적인 정책을 정부에 강요해 우리 살 길을 막았다” “내 카드 빚은 누가 갚아줄 것이냐” “가방끈 짧은 나는 무엇으로 돈을 벌어야 하나” 등을 자세히 보도하며, ‘성매매방지법’ 시행으로 성매매여성들이 삶의 터전을 잃어버렸다는 식으로 보도했다.

<조선일보>는 9월24일자 신문에서 ‘성매매 단속 첫날…집창촌 여성 400여명 한밤시위’를 상세히 다뤘다. 또 이튿날 만물상에서 오태진 논설위원은 “독일과 네덜란드처럼 성매매가 합법화된 나라에서도 직업보장을 요구하는 성매매 여성들의 가두시위가 잇따른다”며 “이들의 시위는 일부 업주들이 부추긴 흔적이 없지 않았다지만, 이상과 현실 사이의 괴리를 새삼 씁쓸하게 돌아보게 했다”며 이들의 생존권 보장 요구가 ‘현실’을 반영한 것처럼 호도하고, 성매매특별법의 취지를 무색케하는 내용을 칼럼을 실었다.

△ 헤럴드경제 10월7일자 1면 신문. 헤럴드경제는 이날 성매매방지법 시행으로 여행업계와 기생관광 시장이 ‘불똥’을 맞았다고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같은 날 <경향신문>도 오피니언란에서 이광훈 논설고문은 ‘여적-매춘업의 반란’이라는 칼럼에서 “특별법이나 일제단속만으로 인류 최고(最古)의 직업이라는 매춘이 쉽게 뿌리뽑힐지가 궁금하다”며 “ 법도 지키고 생계가 어려운 집창촌 여성들의 딱한 사정도 풀어줄 ‘솔로몬의 지혜’가 아쉬운 때다”라며 효과가 의심스러운 성매매특별법으로 집창촌 여성들의 처지가 딱해졌다는 식의 논조를 실었다.

< 서울신문>(집창촌 업주 “생존권 보장”시위-9월25일), <동아일보>(성매매특별법 1주일 / 청량리 588 일대 자영업자들 단속유예 요구-10월1일), <한국일보>(경찰 ‘性파라치’ 도입…보상금 3천만 원 / 불신풍조 조장~사생활침해 논란-10월2일), 한겨레(“생존권 보장” 성매매여성 연대시위-10월2일), <조선일보>(한 세기 성업한 ‘자갈마당’ 사라지나;성매매특별법 시행 후 개점휴업 상태 업주~종업원들 “생존권 보장” 반발-10월5일), <헤럴드경제>(성매매업주·종업원 집단반발-9월24일), <매일경제> [취재노트] ‘성매매 금지에 한숨짓는 이유’ 등의 기사 역시 성매매 여성의 생존권 보장요구에 초점을 맞춰 기사를 내보냈다.

전국의 성매매 종사여성의 생존권 요구 시위와 시민사회단체들이 성매매방지법 시행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이 동시에 열린 10월7일 대다수의 신문들은 성매매여성들의 시위와 시민단체 기자회견을 한 기사로 묶어 내보냈지만 성매매여성의 여의도 국회 앞 시위에 비중을 둬 보도했다.

<문화일보>는 8일 ‘특수직 여성 시위를 보는 착잡한 심정’이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생계유지와 가족부양을 위한 막다른 선택으로 특수직종을 택한 여성 또한 적지 않기 때문에 성매매 여성들의 생존권 보장 요구시위를 업주들의 사주에 의한 행동으로만 보려는 시각에 대해서는 동의하기 어렵다”며 “무엇보다 생존권 위협을 받는 성매매 여성들을 위한 재활대책이 필요하다”고 요구했다.

◇ 성매매방지법때문에 경제가 위축된다고?
여행업계, 은행, 모텔, 위스키업계 ‘불똥’

경제지들은 성매매방지법 시행 이후 관련 산업이 된서리를 맞고 있다는 보도를 봇물처럼 쏟아냈다. 이들은 ‘타격’, ‘불똥’, ‘침체’ 등의 용어를 써가며, 성매매 산업 붕괴가 다른 산업의 붕괴까지 불러와 관광업, 무역업, 금융업, 위스키시장 등 관련 업계와 종사자들을 위기로 몰아넣고 있다고 보도하고 있다.

<헤럴드경제>는 10월7일자 ‘성매매 단속 여행업계 불똥’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일본인 투숙률이 높은 서울 시내 일부 중소 호텔은 일본 단체 관광객이 최고 20% 이상 줄었고, 한류 상품을 판매하는 국내 여행사도 외국인 모객에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며 일본인 대상의 ‘기생관광’의 위축을 우려했다. <연합뉴스>도 10월1일자에서 ‘성매매처벌법 시행 후 제주 관광업계 흔들’이라는 기사에서 ‘기생관광’이 줄어들어 관광업계가 어려워졌다고 보도했다.

<헤럴드경제>는 나아가 어느 무역업자의 말을 인용해, “일본 바이어가 한국에 올 때마다 미아리, 청량리 등에 들러 이들의 욕구를 풀었는데, 이들이 성매매 단속에 걸릴 경우 국제적 문제로 확대될 수 있어 걱정스럽다”며 “일본인 바이어 접대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성매매방지법 시행으로 무역업계까지 불똥이 미쳤다는 식으로 보도했다.

<한국일보>는 8일자 ‘성매매특별법 은행도 유탄?’이라는 기사에서 “대구의 집창촌인 중구 도원동 ‘자갈마당’의 경우 업주당 매일 1천만∼2천만 원을 입금했으나 법 시행 후 돈을 입금한 업주는 거의 없다”며 “집창촌 인근 세탁소와 미용실, 슈퍼마켓들도 단골 고객인 성매매 여성들의 발길이 끊겨 도미노 현상을 겪고 있다”고 보도했다.

<머니투데이>는 11일· 12일자 보도에서 ‘성매매특별법 숙박업 은행부실 초래’, ‘성매매 특별법으로 은행 여신 부실 우려’ 등의 기사를 잇달아 내보냈으며, <매일경제>와 <한국경제>도 ‘성매매 금지 은행권도 비상’, ‘불황 숙박업계 대출 잔액 4조…은행들 속앓이’이라는 기사를 11일과 12일 내보냈다.

앞서 <한국경제>는 8일 ‘[‘性매매’ 단속 보름] 모텔·대부업등 ‘도미노’ 부도 공포’라는 기사를 내보낸바 있으며, <서울경제> 는 5일자 ‘은행, 성매매특별법 불똥’과 10일자 ‘성매매 단속 위스키업계에 불똥’ , <제일경제>는 10일자 ‘위스키업계 엎친데 덮친 격’이라는 기사를 내보내는 등 경제지들은 의도적으로 성매매방지법 시행 이후의 부작용을 집중적으로 보도했다.

<연합뉴스>는 9월30일자에서 ‘성매매단속 1주일…업소주변 상권에 찬바람’이라는 기사를 내보내 주변상권이 타격을 받고 있다고 보도했다. <서울신문>도 10월1일자 기획기사로 ‘위스키업계, 성매매특별법 발효로 타격’을 실어, 관련 업소와 술집, 여관 등이 타격을 받고 있다고 보도했다. <조선일보>는 12일자와 13일자 신문에서 ‘성매매특별법 피해자는 은행?” “호텔~여관등 숙박업 불황에 대출금 4조 부실채권화 우려”’, ‘집창촌 근처 지점 적금해약…수신 15~20% 줄어 “성매매특별법이 은행 잡네”’, ‘유흥업소 썰렁… 40%로 격감’ 등의 기사를 내보냈다. <경향신문> 역시 12일자에서 ‘성매매특별법 단속 여파, 집창촌 주변산업들 '유탄' 은행 등 4조 떼일라...’ 기사를 실었다.

◇ 성매매방지법 시행으로 음성적 성매매가 성행한다?
한달만 지나면 다시 원상복귀 된다니.

일부 언론은 경찰 단속으로 집창촌의 영업이 중단되자 학교, 주택가, 인터넷 채팅 등을 통한 음성적 성매매가 확산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며, 이 법의 부작용을 키우는 기사를 경쟁적으로 쏟아냈다.

사실상 성매매방지법의 효과가 의심스러우며, 오히려 음성적 매매춘 시장을 활성화한다는 점에서 부작용만 커질 수 있다고 지적한 것이다.

<문화일보> 10월1일자 ‘인터넷·모바일로 성매매 대이동’, <동아일보> 10월2일자 ‘대학기숙사서도 성매매’, <한국경제> 10월2일자 ‘성매매, 주택가로 파고든다…경찰, 출장 알선 등 적발’, <헤럴드경제> 10월4일자 ‘집창촌 떠난 매춘 주택가로’, <제일경제> 10월1일자 ‘장소 안 가리는 성매매, 대학기숙사까지 침투’ 등의 기사가 대표적이다.

<국민일보>는 다른 관점의 기사를 보도해 눈길을 끌었다. 12일자 <국민일보>는 ‘대구 집창촌 여성 87%, 직업 바꿀 생각 없다’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대구여성회관 태평상담실의 성매매여성 대상 설문조사 결과를 보도하며 “성매매특별법 시행 이후에도 성매매여성들은 직업을 바꿀 생각을 하지 않고 있다”며 성매매특별법의 실효성을 의심했다.

<세계일보>는 김용섭씨의 ‘인터넷 매춘, 근절대책 세워야’라는 기고글을 통해 “성매매특별법이 시행된 이후 인터넷채팅으로 윤락의 무대가 옮겨가고 있다”며 “이 법이 인터넷 매춘을 더욱 활성화시키고 매춘시장을 음성화시키는데 기여하는 실패한 정책이 되지 않기를 기대한다”며 우려를 표시하기도 했다.

◇ 언론, 성매매에 대한 이해부터 다시 하라!

여성단체는 이런 언론들의 보도가 성매매 알선범죄 처벌강화로 성매매를 심각한 조직범죄이자 인권침해로 보고 있는 성매매방지법 정신에 대한 몰이해와 저급한 인권의식에서 비롯했다고 보고 있다.

‘법 집행이 형식에 불과할 것이다’ ‘한달만 지나면 다시 원상 복귀될 것이다’ ‘더욱 음성적인 성매매가 확대될 것이다’는 등의 부정적 여론조장 등이 그것이다.

여성단체는 나아가 성매매방지법 제정은 국제사회의 이러한 흐름을 반영한 것임에도, ‘사회적 필요악’이라거나 ‘성매매 업자(여성)의 생계를 보장해야 한다’는 식의 보도는 “강도짓을 그만둘 테니 생계대책을 마련해 달라”는 강도의 파렴치한 요구에 정당성을 주는 행위라고 분석하기도 한다.

조영숙 한국여성단체연합 사무총장은 “성매매방지법 제정과 시행, 단속의 책임은 정부와 경찰의 몫임에도, 언론이 마치 성매매업주와 여성단체의 대결구도로 몰아가는 것이 문제”라며 “성매매업주의 생존권 보장 주장이 합법적이라는 언론의 논리도 잘못됐으며, 화가 날 정도”라고 말했다.

서윤미 새움터 사무국장도 “언론은 업주들이 주장하는 ‘생존권 문제’를 있는 그대로 보도하고 있지만 범죄자인 이들에게 생계를 보장해주는 것 자체가 문제다”며 “성매매 여성들이 자발적으로 생존권 보장요구 시위에 참여했다는 보도 역시 본질을 알지 못하고 내보낸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겨레> 온라인뉴스부 김미영 기자 kimm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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