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매매x여성노동x여성빈곤 세미나 1차 후기 – 라라

올해 이룸은 새로운 사업을 시작했어요¡ 사실 2020년에 이미 같은 주제로 ‘빈곤담론화’라는 이름의 세미나를 했었는데요。 2020년 이후에 논의를 더 진전시키는 사업을 매년 하기로 했었는데、매년 다른 일들에 밀려 진행되지 못했었습니다ㅠ “올해는 꼭 시작을 하자¡”는 다짐을 하며、 드디어 같이 논의할 팀을 모아서 첫모임도 하고、 첫세미나도 진행했어요¡  

이룸은 성매매피해지원상담소라는 제도적 틀 안에서 성매매 현장활동을 하며, 성매매를 하고 있는 노동환경이 성매매 여성들에게 미치는 부정적 영향에 대해 계속 접하고 지원하면서도, 법률지원, 의료지원, 탈성매매와 임금노동 진입을 위한 과도기단계 제공이라는 현재의 성매매피해여성 지원 제도 안에서는, 성매매를 하게 되는 사회적 조건에 대한 개입이 어렵다는 한계를 느껴오고 있어요。 

성매매는 여성의 섹슈얼리티는 어떻게 억압/착취되는가라는 젠더의 문제이면서, 현 사회의 자원이 어떻게 분배되는가, 임금노동이 어떻게 조직되어 있는가라는 질문에 가닿게 되는 계급의 문제라는 점에서, 성매매 현장에서의 문제의식은 성매매를 하게 되는 사회적 조건, 사회 자원의 분배, 임금노동, 빈곤과 같은 주제로 연결되게 되는데요。 

성매매를 여성의 빈곤 문제로 접근하고자 할 때, 성매매 여성들이 사회복지제도에서 자원을 획득하고자 시도할 때, ‘능력이 있음에도 사치스럽고 음란하게 돈을 버는 여자’라는 프레임에 번번히 가로막막히고는 합니다. 소득액만이 빈곤의 기준이 되는 전통적 빈곤 담론과 이에 의거하는 현 사회복지제도에서, 소비하지 못함으로 인한 상대적 빈곤, 소속되지 않음으로 인한 정서적 빈곤, 채무화를 통해 유예한 빈곤 등 성매매 여성들이 겪고 있는 빈곤은 포섭되지 않음을 계속해서 목격하고 있어요.

‘음란하고 사치스러운 여자’라는 프레임을 넘어서서, 성매매를 빈곤 문제로 기입하기 위해서는 여성의 섹슈얼리티/몸이 상품화되며 착취되고 있는 사회라는 맥락, 자원없는 사람들이 자신의 노동력을 상품화함으로써 생존해야 하는 사회라는 맥락에서 성매매가 분석되어야 한다고 생각되어요. 이러한 질문과 문제의식을 이어나가는 작업을 해보고자 합니다。

성매매를 빈곤x노동 문제와 연결지으며 연결되는 점과 구분되는 점은 무엇인지、 노동과 빈곤으로 분석할 때 노동과 빈곤은 무엇이며、 그 분석의 의미는 무엇인지 질문해보려해요。현재의 빈곤 기준과 개념에 대해 질문하며, 성매매 문제를 빈곤 문제로 기입하기위한 고민을 해보려 합니다. 계속될 이룸의 고민과 논의에 많은 관심을 부탁드리면서😊 팀에 함께하는 라라가 써주신 첫번째 세미나 후기를 공개합니다。 

 

 6월 27일 오후 7시 한국여성노동자회 사무실에서 성매매x여성노동x여성빈곤 세미나 두 번째 모임을 가졌다. 이번 모임은 <여성의 경제적 어려움과 “쉬운 돈” 빈곤산업으로서의 성산업에 대한 시론적 연구>, 김주희, 2018, <신자유주의 시대 신빈곤층 십대 여성의 주체에 관한 연구 : 젠더, 계급의 상호성을 중심으로>, 민가영, 2008 (215p.) 이렇게 두 논문을 미리 읽고 읽으며 들었던 고민과 인상깊은 점을 나누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OT 후 본격적인 공부를 시작하는 뜻깊은 날, 왜 성매매를 연구한 많은 논문 중 이 두 논문을 함께 읽어오자고 꼽았을까. 혜진님은 두 논문에 대해 “성매매로 진입하는 여성이 이상한 게 아니라 이 사회가 이 모양 이꼴이라는 걸 얘기하고 싶어서 나온 논문들 같다”고 논문을 읽은 뒤 감상을 설명했는데 이 표현이 핵심이고 이 말을 잘 얘기해보고 싶어서 퇴근 후에 피곤한 몸들을 이끌고 우리가 이 곳에 모인 거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김주희 교수님은 빈곤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여성들의 성매매 유입 경험을 이해하고자 하는 시도에서 연구를 시작했다고 밝히며 성산업에 대해, 여성들이 ‘현재’ 당면한 문제를 여성의 ‘미래’ 소득에 신용을 부여해 빈곤을 유예시키지만, 결국 여성들로 하여금 가치가 하락하는 미래를 당겨쓰도록 만들면서 이들의 빈곤을 재생산하는 ‘빈곤산업’이라고 규정한다. 스터디에 참여한 레나님이 보충해주셨는데 여성노동자 중 비정규직 비율은 49.7% 고 여성 비정규직 임금은 22년 8월 기준 155만원이라고 한다. 2022년 기준 최저임금은 2,010,580원인데도. 동시대 많은 여성들이 주휴수당, 퇴직금, 유급 연차휴가가 지급되지 않는 초단시간 일자리에 종사하고 있고 이 여성들에게 미래를 기약할만한 충분한 임금은 주어지지 않는다. 

 

 자격증 공부 등 취업 준비를 위한 ‘전념의 시간’(김주희 교수님 논문 표현)을 가져야만 안정적인 노동시장에 진입할 조건을 갖추게 되는데 이 전념할 수 있는 기회는 모든 사람에게 제공되는 것이 아니다. 미래를 위한 전념의 시간을 가질 수 없이 시급하게 생존을 모색해야 하는 여성들에게 성산업만이 유일하게 미래를 기약할 수 있는 돈을 준다. 이 돈에 대해서도 김주희 교수님은 ‘용처가 정해진 돈’이라고 헤어메이크업비, 홀복렌탈비와 같이 업소에서 일하기 위한 준비비로 사용되며 성산업에서 여성들의 가치는 하락하기 때문에 여성들은 빈곤에 굴레에 놓이게 된다고 설명한다. 

 

 민가영 교수님 논문에서는 현재의 유예를 무의미한 것으로 보고 비유예 비훈육의 가치관을 공유하는 인터뷰이들이 등장한다. ‘어차피 공부해서 대학 나와도 이 정도 벌 수 있는 곳은 없다.’ 자신이 맞닥뜨릴 현실 노동시장에 대해 가감없이 간파한 인터뷰이들은 ‘전념의 시간’을 욕망하지 않고 불안정하고 전망 없는 저임 여성 고용시장에 비해 단기간의 고소득을 제공하는 성산업에 이끌린다. 

 

 ‘성산업에서 일한다는 것의 낙인은 여전하지만, 변한 것은 성산업에 대한 낙인이 알바인생에 대한 낙인보다 더 치명적인 낙인은 아니라는 점이다. 성산업의 의미는 그것 자체로 단독으로 작동되지 않고 알바/비정규직/실업/불안정한 고용시장과의 관계 속에 놓여 있다. 성산업에 종사하는 여성에 대한 사회적 낙인과 여성에 대한 이분화는 여전하다. 그러나 이들에게 성산업의 의미는 불안정한 고용시장, 계층상승 수단으로 작동하지 못하는 학력의 현실, 이들의 하위문화와의 관계 속에서 새로운 의미를 갖기 시작하고 있다. ‘알바 인생’ 에 대한 낙인 보다 ‘성산업’에 대한 낙인이 더 치명적이어야 할 이유가 굳이 없는 조건에 놓이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성산업을 안 하고 다른 불안정한 일시 고용직을 택한다는 것이 삶에 있어서 대단한 자부심이나 떳떳함이 될 이유가 없는 상황에 놓이고 있다.’-165page

 

 논문에 대해 서로 준비해온 고민과 인상깊었던 부분에 대해 나눌 때 많이 돈을 버는 것에 대한 추앙이 성매매에 대한 혐오를 극복했다고 혜진님이 숏폼 해외 유명 컨텐츠에 대해 설명해주셨는데 그게 인상깊었다. 슈퍼카를 모든 사람에게 인터뷰를 거는 틱톡 컨텐츠가 있는데 간혹 여성인데 슈퍼카를 끄는 사람들은 자신이 하는 일로 남자들에게 기쁨을 주는 일을 한다고 대답한다고 한다. 이들이 대답할 때 보이는 정서는 그냥 돈 버는 일들 중 하나일 뿐이라고 한다.

 

 “멍청하게 왜 그러고 있어. 빨리 이런 거 해가지고 한탕 빨리 당겨야지.”, “임금 노동만큼 멍청한 일이 없다. 경제적 자유를 획득해야 한다. 그것은 시간의 자유를 획득하는 것이다.” 혜진님 말을 듣고 곰곰히 생각해봤더니 이게 정말 요즘 사회를 관통하는 정서, 메인 담론인 것 같다. 틱톡커, 유튜버 철없는 몇몇만의 생각이 아니라 온 사회가 나서서 권장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부지원을 받아 청년들에게 필요한 자원 및 특강을 지원해주는 공적 공간의 캘린더에도 재테크 특강이 꼭 한 자리씩은 차지하고 있다. 주식을 하지 않으면 바보라는 듯이, 날이 갈수록 현금가치는 떨어지는데 멍청하게 돈을 왜 가만히 놀리고 있냐고 말하던 전 상사의 얼굴이 떠올랐다. 

 

 ‘빨리, 적게 일하고, 많이 벌자.’ 주식투자, 코인투자를 하는 것과 성매매를 하는 것은 같은  메커니즘으로 하는 것 같은데 왜 주식투자나 코인투자 같은 건 추앙받고 안 하면 바보가 되는 것 같고 성매매는 왜 그렇지 않을까. 성매매는 일반 경제의 맥락과 동떨어진 특수한 선택이 아니라 자본주의 거시경제 권력관계 아래에서 영향을 받는 것 같은데 이 지점은 왜 자주 간과될까. 혜진님의 고민을 나누어 받으며 노동윤리, 돈, 빈곤에 대해 얘기 나누다가 성산업에서 여성들은 돈을 정말로 못 버는가. ‘돈이 벌리지 않는다. 돈을 벌어도 꾸밈비, 선불금 등의 이유로 그 돈이 여성에게 쥐어지지는 않는다.’ 이런 담론 여성운동에서 많이 활용되는 메타포인 것 같은데 설명이 부족하지 않나. 실제로 돈이 벌리는데 왜 그걸 숨기려 하지. 돈이 벌리는데. 돈이 많으면 빈곤하지 않은 건가. 빈곤이란 무엇인가와 같은 질문들로 이어졌다. 

 

 이야기를 들으며, 그리고 논문을 읽을 때도 인상 깊어서 표시해뒀는데 민가영 교수님의 논문에 나온 ‘나의 일상에 애정어린 관심을 가져주는 누군가의 시선은 내가 나를 긍정적으로 규율할 수 있는 자기 규율의 공간을 내면에 만들어 주는 계기가 된다. 방향성을 가지고 살아야할 이유가 없던 마음을 누를 수 있는 힘은 친밀하고 지속적인 관계에서 시작 되었다’ 문장이 떠올랐다. 

 

 내가 핀트를 못 잡고 있나 고민하긴 했지만.. 민가영 교수님의 신자유주의 시대 신빈곤층 십대 여성의 주체에 관한 연구를 읽을 때 ‘젠더, 계급의 상호성을 중심으로’ 라는 부제목이 붙은 논문인데도 인터뷰이의 이야기에서 소득분위나 생활비 같은 얘기는 덜 다뤄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들에게 이 경험에서 중요한 건 금액 얼마가 있고 없고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터뷰이들은 끊임없이 사람을 만난다. 탈가정을 하고 자원을 마련하기 위해 모이고 흩어진다고 논문에서는 말했지만 N포세대 라고 돈이 없어서 포기할 때 사람을 우선 포기하는 것처럼.. 사람을 만나는 데에는 돈이 든다. 친구가 나에게 자원이 되어줄 때보다 내가 쓰는 지출이 더 커지는 순간이 올 것 같은데 빈곤한 사람들은 끊임없이 사람을 만나고 이동하고 다시 사람을 만난다.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돈(술값, 방값, 밥값)을 끊임없이 요구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 지역을 떠나기 전까지 경화는 그 관계를 힘들어 하면서도 굳이 끊지 않았는데, 어차피 지역을 뜨면 끊어질 관계였고 그 동안 만큼은 그런 관계가 없는 것 보단 있는 것이 덜 외롭기 때문이었다.’ -119page 

 

 문득 빈곤의 상태를 ‘자기 규율의 공간을 만들어주는 친밀하고 지속적인 시선’이 없는 상태 혹은 이 시선을 마련하기 위해 내가 가진 모든 에너지를 쏟아 넣어야 하는 상태’로 정의해볼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성산업 종사자들이 돈을 벌어도 빈곤하다면, 업소에서 꾸밈비 등으로 직접적으로 수탈하거나 선불금과 같은 부채로 속박하지 않아도 가난하다면 그걸 여성의 의지 부족이나 과소비의 문제가 아니라 이렇게 설명해볼 수 없을까. 사람은 관계안에 있을 때 좋은 삶이라고 느끼는데 운동 좀 하려고 헬스장에 피티 등록할 때도 직업은 뭐냐고 묻고 의식주와 밀접한 당장 살 집 월세낼 때도 집주인이 무슨 일 하냐고 물어본다. 직장을 밝히지 않으면서도 사회 구성원으로 안정적으로 관계맺고 녹아들 수 있는 공간이 적어도 정상 사회 공간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성매매를 하는 것을 밝힐 때 환대받을 수 있는 곳이 소비자로 있을 수 있는 공간 외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호빠에 가는 것이 아닐까. 남성을 대상으로 한 성산업의 규모와 여성을 대상으로 한 성산업의 규모의 차이, 손님 층의 차이는 이것 때문이 아닐까. 

 

 ‘울어도 5성 호텔에서 야경보며 울고 싶다’는 말이 돌 정도로 돈이면 거의 모든 게 되는 천하제일 자본주의 세상이니까 ‘돈이 벌린다’ 가 곧 ‘문제가 없다’로 읽힐까봐 종사자들이 얼마나 열악한 처지에 있는지 강조하기 위해 그거 다 여자들한테는 쥐어지지도 않는 돈이라고 말하고 싶은 마음 이해하지만 돈이 벌리는 걸 숨겨야 할까. 여성들 돈 못 번다고 말할수록 돈 벌면 괜찮다고 말하게 되는 건 아닐까. 돈을 못 버는 것 만이 빈곤인 것은 아니다. 이런 얘기를 해야 하는 거 아닐까. 그래야 소위 절대적 빈곤이 아닌데도 성매매를 하고 월 이백 버는 입장에서 보면 참 기함을 토할 일이지만 월 천을 버는 중산층 고소득층도 자신을 서민으로 정체화하며 우는 소리하는 이 사회의 기현상을 해석해볼 수 있지 않을까.   

 

 이룸 덕분에 고민만 깊어진다. 이룸의 후기를 어떻게 쓰면 좋을까 고민하며 지난 후기들을 검색하다가 이런 문장을 봤는데 소개하고 싶어졌다. 

 

‘‘피해자’ 로서 호명되는 것은 여전히 중요하지만, 그 ‘피해’의 경험이 보다 풍부해져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습니다.’ 

 

https://e-loom.org/190830-%EC%9D%B4%EB%A3%B8%EA%B3%B5%EB%B6%80%EB%B0%A9-%EC%84%B8%EB%AF%B8%EB%82%98%ED%8C%80-%EC%84%B8%EB%B2%88%EC%A7%B8-%EB%AA%A8%EC%9E%84/ 

  • 강주영

    다음 세미나는 언제 하나요? 참여하고 싶습니다.

    • E-LOOM

      내부활동가 세미나여서 참여는 어렵습니다. 다음에 있을 회원들과 함께하는 사업에 관심 가져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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