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처럼 돌아온 故 장자연의 ‘이야기’…결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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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처럼 돌아온 故 장자연의 ‘이야기’…결말은?
엔터미디어 | 기사입력 11.03.07 07:38

- 故 장자연 "악마들, 복수해달라"…생전 편지 공개
- "31명에게 100여차례 술접대, 성상납 강요"

[듀나의 영화낙서판] '블랙 달리아'와 'LA 컨피덴셜'의 작가 제임스 엘로이만큼 부당한 죽음과 그 후유증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은 없다. 그의 어머니인 진 엘로이는 1958년 6월 22일 정체불명의 인물에 의해 강간, 살해당한 뒤 LA 교외지역에 버려졌다. 그가 열 살 때였다. 그 뒤로 그는 어머니의 죽음과 동거하다시피하며 살았다.

그가 쓴 컴컴한 소설들과 그를 원작으로 삼은 컴컴한 영화들은 모두 몇 십 년 묵은 진 엘로이의 그림자 밑에 있다. 그는 피하려고도 해봤고, 잊어버리려고도 했지만, 결국 늘 그를 작가로 만든 그 비극적인 날로 돌아가고 말았다. 그의 여정에 대해 조금 더 잘 알고 싶은 분들은 그의 소름끼치는 회고록 '내 어둠의 근원'을 읽어보시라.

그렇다면 우린 이 전문분야에 대해서는 제임스 엘로이의 의견을 믿어도 된다. 그러니 그가 "종결이란 쓰레기다. 난 그 종결이라는 걸 발명한 놈의 뒷구멍에 종결 역병을 쑤셔 넣고 싶다"라고 말했다면, 그냥 그가 사실을 말했다고 받아들이면 된다. 적어도 엘로이에게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부당한 죽음으로 가족 구성원과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은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 공통되는 감정일 것이다.

죽음은 끝이 아니다. 한 챕터의 끝일 수는 있을 것이다. 세상이 그 죽음을 잊어버리는 날도 언젠가는 올 것이다. 하지만 그 사이에서 부당한 죽음은 결코 종결을 맞지 못한다. 그것이 살인이건, 살인이나 다른 없는 다른 상황에서 맞았던 죽음이건. 오히려 그것은 새로운 이야기의 시작이고 살아있는 우리는 그 이야기를 읽어야 할 의무가 있다.

몇 개월 전부터 나는 내 트위터와 게시판에 장자연의 기일을 알릴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냥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장자연의 이야기는 부당하게 잊혔고 부당한 종결을 맞았다. 그것은 톨스토이의 장편 소설을 둘로 쪼개 나머지 절반을 불 속에 넣고 태운 뒤 그게 끝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았다. 그녀의 이야기는 산 사람들에 의해 조작 당했고, 세상은 그 사실을 알면서도 그 결말을 억지로 받아들였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 사실을 잊지 않는 것밖에 없는 것 같았다.

그런데 죽은 사람의 목소리는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컸던 모양이다. 장자연의 2주년 기일 하루 전에 뉴스가 터졌다. 고인이 2005년부터 2009년 자살 직전까지 직접 작성해 지인에게 전한 문서 50통 230쪽이 공개된 것이다. 이 문서가 진짜라면, 고인은 31명의 남자들에게 100여 차례 술접대, 성상납을 강요받았다. 이중에는 연예 기획사 관계자, 제작사 관계자, 대기업, 금융기관, 언론사 관계자들이 연루돼있다고 한다. 여기엔 경찰은 알고 있으면서도 편지의 존재를 알고 있으면서도 제대로 수사를 진행하지 않았다는 뻔한 주석이 붙는다.

죽은 자가 다시 한 번 우리에게 말을 했다. 단순히 말을 한 것이 아니라 복수해달라고 애원을 했다. 이미 31명의 이름이 적힌 명단이 세상이 있다. 만약 이게 소설이라면, 영화라면, 우리는 이야기의 결말에 이르렀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사람들은 결말에 낙관하지 않는다. 우린 이미 이런 이야기가 어떻게 강제로 종결되는지 수없이 보아왔다. 죽은 것은 고인뿐이 아니다. 고인의 이야기 역시 살해당했다. 그 이야기가 기적처럼 다시 세상에 나와 우리에게 돌아왔다는데도 우리는 분노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을 거라고, 그 이야기는 다시 찢겨져 버려질 거라고 의심한다.

살해당하고 토막 나고 암매장 당한 이야기들의 세상. 우리가 조국이라고 발붙이고 살고 있는 나라가 바로 이런 곳이다.

칼럼니스트 듀나 djuna01@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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