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모임] 4회차 ‘단순히 일한다.’ 는 수사를 붙들어보았습니다.

[on the game 읽기] ‘단순히 일한다.’는 수사를 붙들어보았습니다.

 

유나

 

 

2장 simply work를 읽었습니다.

 

저자 소피데이는 성노동자들이 나는 그저 ‘단순히 일하는 것’이라 말할 때 이 ‘단순히 일한다(simply work)’는 수사의 맥락을 탐색한다. 연구 참여자인 성노동자들은 ‘일’과 ‘사생활’을 분리하여 이것은 ‘일’에 불과하므로 ‘일’로서 보호받아야 할 영역, 저 ‘사생활’은 ‘사생활’대로 보호받아야 할 영역이라 ‘주장’한다. 다른 일하는 사람들이 모두 그러하듯이 우리도 출퇴근을 하고 공과 사가 분리되며 이 일(성매매)은 단순히 공적인 일일 뿐이라는 설명은 성노동을 ‘노동’으로 ‘인정’하지 않는 사회적 분위기, 오히려 무시하고 혐오하는 낙인에 대항하는 전략이다. 그리고 소피 데이는 이러한 성노동자들의 이분법 전략이 인간을 두 부분(밖과 안, 몸과 정신, 중심과 주변, 공과 사… 남성과 여성까지)으로 구분해 온 전통적인 관념과 상통하며 이에 기대어 있고, 이를 강화하는 데에 일조한다는 분석으로 나아간다.

 

성노동자는 공사분리 전략으로 이 일을 설명함과 더불어 이 전략을 스스로에게도 엄격하게 적용한다. 공과 사는 어떻게든 차이가 있어야 하기에 대조점들은 필수적이다. 우리 모두는 그렇게 사고하고 행동하고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공과 사의 이분법은 ‘자연스럽고’ ‘당연’하니까. 직장에서의 일을 집으로 끌고 오면 안 되고, 집안일을 시끄럽게 떠들면 안 된다. 일로 만나는 관계와 사적 관계를 섞어버리면 미성숙한 사람이라는 평가를 듣는다. 책에는 사회의 낙인을 피하고 ‘인정’받기 위한 성노동자들의 대조점 만들기 전략이 길게 서술된다. 손님과는 콘돔을 끼기 때문에 사적 관계에서는 절대 콘돔을 끼지 않는다거나, 심할 정도로 씻는다거나, 끊임없이 세탁을 하고 냄새를 제거하는 등 소독행위에 집중한다거나…. 낯설지 않다. 이룸의 내담자들에게 자주 들어 온 전략들이다.

 

영국과 한국의 성산업의 형태, 법 제도의 차이를 넘어 여성과 남성이라는 성별의 차이와 무관하게 성판매자들은 자신의 일에서 구분하기 전략을 사용한다. 소피데이는 위생, 청결에 집중하는 전략 이외에도 상업적이고 공적인 성노동에 감정‧쾌락을 전혀 섞지 않기, 상업적인 섹스 상대와 개인 섹스 상대의 인종, 성별 등을 분리하기, 오럴‧키스‧삽입‧애널 중 상업적인 섹스에서 하는 행위는 개인적인 섹스에서 하지 않기 등을 나열한다. 이 역시 성판매경험여성들로부터 흔히 들을 수 있는 구분하기 전략들이다. ‘성적소수자 성매매 연구보고서’에서 남성으로서 남성을 상대로 성판매를 했던 인터뷰 참여자 중 1인은 성매매를 지속하는 과정 중에는 절대 연애를 하지 않는다고 밝히기도 했다. 나를 이 공간과 행위로부터 구분하는 온갖 전략과 애씀은 성판매자들의 ‘해리’현상과 중첩된다. ‘여기서 20년 넘게 있었지만 우리 사이는 여기서 나가면 끝이야.’라고 단언했던 청량리 집결지 여성의 목소리가 겹쳐진다. 공사 구분이 명확할수록 사회적 가면을 많이 자주 쓰게 되고 그럴수록 심리적 불균형이 따라온다. 실상 명확할 수 없는 영역을 의도적으로 구분하려할수록 인간은 아프다.

 

공/사는 무얼까? 집은 사적인가?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 집, 가족이라는 공간은 공적 영역과 또렷이 구분되지 않는다. 공적인 영역을 창출하기 위해 사적인 영역을 만들어낸다. [자본주의와 가부장제]에서 마리아미즈는 자본주의는 ‘자유’임금노동자와 자본과의 관계만으로 유지되지 않고 언제나 ‘식민지’를 필요로 한다고 설명한다. 소피 데이 역시 마르크스의 생산/재생산 구분이 공/사 구분의 유구한 전통에 기대고 있다 말한다. 이 유구한 전통의 이분법을 깨는 존재 중 하나가 성판매자이다. 사적인 ‘성’을 파는 행위는 공적인 경제와 사적인 사회관계의 구분을 당황스럽게 한다. 그 구분을 오염시키고 교란시키는 자. 성노동자는 성노동을 향한 사회적 낙인과 혐오, 몰인정을 돌파하고자 ‘이것은 단순한 일’이라고 말하지만 이분법 자체를 돌파하지 않고 이 두 구분을 답습하는 한 절대 ‘단순한 일’은 없다. ‘단순한 일’의 영토를 구축하기 위한 공/사 구분하기 전략이 성노동자 스스로를 겨누는 창이 되어 버린다. 물론 이는 성노동자에게만 해당하지 않는다. 공사구분을 요구받고 역할로 살아가기를 권유받는 현대 사회 대부분의 사람들 허황된 투 트랙에 갇혀있기는 매 한가지이고, 매 순간 대조점을 기준으로 공과 사를 구분하기는 불가능한 과제이다.

 

직접적인 신체 간의 대면행위로서 성매매가 성판매 여성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한 염려가 있다. 소피 데이 말처럼 몸은 단순히 고정된 장소가 아니다. 몸이 중성적인 멸균 상태의 죽어있는 공간이라면 연구 참여자들은 그렇게까지 자신의 몸을 소독하고 청결하게 유지하고 정액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콘돔을 이중으로 착용하고, 그러고 나서도 불안하여 필요 이상으로 세척해야 할 이유가 없다. ‘몸’은 끊임없는 순환과 교환을 통해 매 순간 새롭게 만들어지고 그런 ‘몸’이기에 ‘몸’이 교환되는 성매매 현장에서 성노동자들의 불안은 계속 된다.

 

몸이 그렇다면 ‘감정’은 또 어떠한가? [친밀성의 거래]에서 비비아나 A. 젤라이저는 감정 중 하나인 친밀성이 경제활동에서 혼합되어 온, 그러나 그 둘을 자의적이고 주관적으로 구분하려 애쓴 역사를 훑으며 친밀함과 경제는 서로를 훼손하기 보단 서로를 촉진하고 상호보완이 가능하다 분석한다. 비비아나 A. 젤라이저의 적대적인, 그러나 허구에 기반한 돈과 친밀감 두 영역의 구분과 유지해야 하는 사회의 의도로부터 만들어진 화폐화 된 사회관계에 대한 비난과 두려움에 대한 지적은 소피 데이의 공사구분에 대한 지적과 통한다.

 

나는 두 사람의 공통된 지적에 동의한다. 그리고 간병/가사노동/결혼/돌봄노동/성노동 등 자본의 끊임없는 확장과 상품화, 삶이 임금자본관계에 포섭되는 흐름을 경계하고 날 세워 비판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소피데이는 공/사구분에 기댄 성노동자들의 ‘단순히 일하기’ 맥락을 밝힘으로써 어느 방향으로 나아갔을까?

 

‘simply work’를 붙들어보았듯 ‘여기서 계속 일하게 하라.’를 붙들어보고 싶다. [on the game] 읽기는 이룸이 2018년 상반기를 청량리 재개발 토론회, 청량리 여성들과 함께 하는 작업장 구축, 청량리 집결지 기록화에 집중하기로 하면서 잠시 중단될 예정이다. [on the game]을 읽을 때면 재차 다짐하게 되는 사건의 역사적인 맥락 살피기, 당연히 여겼던 이분법 경계하기, 내 안의 ‘자연스러움’ 의심하기라는 태도를 벗 삼아 청량리 재개발 관련된 사업들에 임해야지. 그 이후 하반기에 다시 시작 될 on the game 읽기가 더 기대된다.

활동

[번역모임] 3회 후기

Sophie day 의 ‘On the game : Woman and Sex Work'(2007) 번역 모임 3회 후기

 

저자 소피데이는 이번 파트에서 자신이 클리닉에서 만난 성판매 여성 2명의 서사를 간단히 소개합니다. 대개 사회적 낙인으로 인하여 성매매경험을 생애 초기 외상사건으로 인한 자학심리로 인하여 나쁜 길로 유입된 개인적인 문제로 이야기 된다는 점(청량리 반상회에서 한 언니가 ‘우리 팔자’라고 했던 여러 버전의 말들이 스치네요.), 여성들이 성매매를 일상에서 계속 분리시키는 전략, 구매자와 마주치면서 생긴 두려움을 이야기하며 성매매 경험은 극복되어야 할 ‘개인의 과거’ 문제로 인식되는 패턴, 그로 인하여 오히려 저자는 여성들과 성매매 경험과 건강에 대한 이야기를 충분히 하지 못하였다고 이야기합니다. 또한 여성들의 극복이나 성공서사로는 ‘종속된 부분’에 대한 정치적인 해석이 어려워지는 문제를 언급합니다.

 

그러면서 의료인류학 연구자로서 개별 서사, 일화, 사례에 ‘다양한 문맥적 장치를 구축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합니다. 연구에서 개인적 서사/진술이 과잉 일반화되는 문제를 경계하는 연구 논의들을 언급하며, 민속지학에서 개인 서사와 참여한 사람들의 상호작용, 문제의 변화 등을 재현하기 위하여 사회적 해석을 하고 있다고 소개하며 개인 진술에 대한 복합적인 해석의 가능성과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해석은 말하는 자와 듣는 자의 상호작용의 결과(데이터)이며, 해석에는 듣는 자의 존재 그 자체와 이차적인 개입, 작용, 반응이 반영되어 있다는 것이죠.

 

그래서 소피데이는 여성들의 서사에 대한 역사를 조사하거나 반복하여 만나 신뢰를 쌓고, 클리닉 외의 공간에서 여성들을 만나오지 못했던 과정으로 인하여, 연구에 서사를 충분히 반영할 수 없었던 한계가 있었다고 평가를 하게 됩니다.

 

이러한 1990년대 초반 경험 이후 소피데이는 1997년에 다시 클리닉에 와 에이즈가 이전에 비하여 ‘효과적으로 관리’되고 있으며 성판매 여성에 대한 낙인이 여전한 사회, 이주여성으로 성산업이 재편된 현실을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소피데이는 과거에 만난 여성들에게 관심을 두고 다시 여성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느낀 상호 이해와 역사를 공유한 감각을 ‘시간성’이라는 개념으로 소개하며, 이것이 자신의 연구에서 본질적인 부분이라 언급합니다. 연구자와 연구 참여자로의 관계와 더불어 동시대의 정치경제적 장 속에서 어떻게 서로 상호간 연루되어 왔는가를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또한 저자는 연구자로 타인의 삶에 참여하기 위하여 친밀감을 가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루머들은 이와 같은 내용을 읽으면서 소수성을 가진 타자에 대한 연구, 타자의 목소리를 재현하는 과정에서의 성찰과 윤리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되새겼던 것 같습니다. 이룸의 상담현장에서 성매매 경험 당사자를 지속하여 만나면서, 지원활동 외에도 상호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이를 바탕으로 다양한 연구나 사업 등 다양한 일종의 사회적 해석/가시화하는 작업을 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더불어 제도적인 지원에 국한되기보다 동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가령 청량리 반상회를 하면서 오랜 시간 언니들과 지속하여 만나며 이야기를 나눌 때나 이태원 아웃리치를 나갈 때, 청량리 재개발이 한창 일 때 별별신문을 기획할 때 순간순간 무엇으로 어떻게 당사자와 소통할 것인지 고민하게 되기도 하고요.

 

언니들을 타자화하지 않는 방식으로 잘 관계 맺고 신뢰를 구축하며 만날 수 있을까는 일상적인 이루머들의 고민이자 무게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이루머 유나의 말대로 ‘남의 밭에서 몸을 조심’하게 되거나 ‘마음이 쫄리는 순간’을 계속 품을 수 밖에 없는 것으로 드러나기도 하나 싶습니다.

 

이렇게 개별적인 관계를 잘 구축함과 동시에 언니들의 서사 속에서 정치와 구조적 힘을 읽어내고, 성매매에 대한 다양한 의제들을 발굴하고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고 성매매에 대한 관심과 소통이 이어지기를 바라는 이루머들의 바람을 전하며 후기를 마치고자 합니다. 다음 번역 모임 후기에서 만나요~~~~

 

 

활동이야기

[번역모임] 2회기 후기

on the game 번역모임 2회기 후기_유나

on the game 중 1장 A London Clinic: Anthropology and health 중 일부를 함께 읽었습니다. 날아가 버린 기억력을 붙들고 최대한 적어보려 노력했는데.. 글이 한 번 날아갔어요.. 다음 모임부터는 꼭 처음부터 속기를 하고 이루머들 같이 읽으며 쌓인 고민과 의견을 제대로 정리해보겠습니다. 엉엉…..

서문에서 보았듯이 영국 런던은 1984-5년부터 성판매여성은 등록되어야만 하고, 검진을 받아야만 했다고 합니다. 저자 소피데이는 에이즈의 주위험군으로 간주되어 위험한 통제의 대상이 되어버린 런던 성노동자들이 정말 hiv를 갖고 있고 전염시키는 위험군인 것인지 그 전제 자체에 질문을 던집니다. 그리고 사생활을 보호한다고 하면서도 공공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클리닉의 기록을 요청할 수 있고 감염여부와 상관없이 무조건 주기적으로 검사를 받아야 하는 여성들을 따로 분류하고 관리하는 시스템에 따라 은연중에 진료 받으러 온 이들 중 성판매자임이 드러나는 상황, 감염이 될 경우 환자의 의사와 상관없이 파트너에게 알리게 되어 있는 규칙… 들의 모순을 지적합니다. 왜 감염되지 않은 여성들도 성판매를 한다는 이유만으로 계속 검사를 받아야 하는지, 그 검사의 과정이 과연 이 여성들의 건강을 위한 것인지 여성들을 관리함으로써 타인을 보호하기 위한 것인지를 질문하지요. 소피 데이가 묘사한 클리닉의 모습들은 검사와 관리의 목적이 전적으로 후자에 있음을 보여줍니다. 담당 의료진의 퇴사 후 진료 받는 환자들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다른 의사에게 인계되는 과정에서도 소피데이는 질문합니다. 만일 이 여성들이 성폭력 피해자였다면? 그래도 이런 조치가 취해졌을까?

정말 여성들의 건강을 염려한 조치라면 오랫동안 진료 받아온 의사의 퇴사를 미리 알리고 해당 의사에게 계속 진료를 받거나 다른 의료진을 택할 권한을 여성에게 주어야 했겠죠. 그러나 클리닉은 그러한 과정을 생략합니다. 한국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유흥업소 종사 여성의 성병검사는 그 자체로 모순덩어리지만 (한국은 영국 런던과 달리 모든 성매매가 불법이고 유흥업소는 그 불법인 성매매가 없다는 이유로 합법인 공간이죠. 성매매 단속하겠다고 함정단속 유지하는 그런 나라 한국에서 성매매 안 하는 유흥업소 종사자의 성병을 관리한다니.. 모순!!) 모든 걸 차치하고 나서라도 유흥업소 종사자들에게 필수인 3개월마다의 성병검진은 여성들의 건강을 위한 조치가 아닙니다. 성매개 전염병의 매개로서 이들을 국가가 관리하고 통제하기 위한 조치이지요. 건강을 위한 조치라면 업소 대기실 한 켠에 보건증 이모가 와서 검사를 한다거나 제대로 된 설명 없이 성병검사만 하는 이런 방식으로 진행되어서는 안 됩니다. 20세기 런던의 정책과 21세기 한국의 정책이 겹쳐지네요.

한편 소피데이의 중요한 질문, ‘정말 런던 성노동자들은 위험군인가?’에 이루머들은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사실 최근 보도된 기사들의 잘못된 방향과 별개로 정말 이룸에서는 질문이 생겼거든요. 진짜 유난히 한국의 성매매 현장에 HIV/AIDS감염이 빗발치는가? 정말 성산업은 HIV/AIDS감염의 위험공간인가? 이러한 기사들을 접하고 두려움을 느끼는 남성들, 그리고 성판매 여성들의 감각은 현실적인 감각일까? 이런 질문을 던지게 된 이유는 이룸의 상담지원내용 중 매독, HPV바이러스 감염, 자궁관련 질환 등 각종 다양한 성매개 질환은 찾아볼 수 있어도 HIV/AIDS감염은 찾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이룸의 상담이 전체 성매매피해지원상담의 일부이고 실제로 감염되더라도 여성들이 성매매상담소를 찾아오기 보다는 다른 공간을 찾아갈 확률이 높을 수도 있겠지만.. 성매매과정에서 발생한 질병에 대해 치료비를 지원한다는 말이 실질적으로 잘 이해가 안 되기 때문인지 실제로 ‘의료지원’을 첫째 지원욕구로 안고 오는 여성들은 많지는 않긴 한데…. 이러한 조건들을 고려해본다 해도 어떻게 이렇게 지원사례가 적을 수 있나…. 흠… 기사가 난 뒤 에이즈 검사에 대한 문의가 들어오긴 하는데 이건 기사의 영향인 것 같고요… 그래서 한국 성산업과 에이즈 관련된 정확한 데이터들을 찾아보고 더 공부해야겠다는 의지도 나눴습니다. 이룸 내담자 한 분은 괜히 만만한 성매매 여성 건드리는 거라고 말씀하셨지요. 정말 그런 건지 앞으로 알아보겠어요.

HIV/AIDS 공부하라는 계시인지 늦춰진 번역모임 덕에 에이즈에 대한 혐오적이고 선정적인 기사들을 읽었던 터라 좀 더 풍부한 논의를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럼 다음 번역모임까지 안녕~~

 

 

활동이야기

[번역모임] 1회 후기

이룸의 세미나 번역모임 오늘 재개하였습니다 ^×^

Sophie day 의 <On the game : Woman and Sex Work> (2007) 서문 “public woman” 을 읽었어요.
이루머들의 짧은 영어로 ㅋㅋ 읽었습니다 두둥

서문에서는… 19~20세기 영국에서 “public woman” 의 구성에 관여한 의료와 법정책을 중심으로 이 용어에 함축된 공과 사의 구분이 다루어졌어요. 저희는 또 공적인 성매매는 모고 사적인 성매매는 모냐… 에서부터 각종 토론을 했지요. 활동력 수혈.

다양한 자료들을 비판적 성찰적으로 읽으며, 가부장제 자본주의 구조와 결탁한 성산업의 실체와 그속에서 성판매여성이 감당해야하는 딜레마들을 드러낼수있는 운동의 언어를 모색중입니다. 쭉~~~

2주 후에는 1장을 읽을거에요. (다짐)
경험당사자 레이첼 모랜의 저서 등도 읽을 계획!
그외 이룸이 읽어줬으면 하는 책 추천 환영합니다 

이미지: 사람 1명, 앉아 있는 중, 테이블, 실내

자동 대체 텍스트를 사용할 수 없습니다.

 

활동이야기

[몹시] <복지의 배신> 후기

[몹시] <복지의 배신> 후기_별

이번 몹시에서는 <혼자 살아가기>에 이어 <복지의 배신>을 읽었습니다. 신자유주의 금융 위기의 시대, 여성의 삶을 이해하면서 성매매 이슈를 이야기하고자 하는 공부입니다. 올해 초 읽었던 <대출 권하는 사회>와도 이어지는 책읽기이기도 합니다. 상담 지원 과정에서 부딪치는, '페미니스트 활동'과 '사회복지'의 딜레마들을 이야기할 수 있는 언어를 모색합니다.

 
책은 김대중 정부, IMF 위기를 거치며 '생산적 복지' 즉, 신자유주의적 노동 복지 국가가 성립한 과정을 분석합니다. 연구는 당시 서울시 산하의 <청년여성실업대책 모니터링 팀>에서 1년여간 근로했던 경험을 토대로 하고 있습니다. 정부는 가부장 중심의 정상가족의 틀 안에서 이에 맞지 않는 사람들을 선별해내는 방식으로 복지를 했습니다.'IMF 노숙자'나 '신지식인'에 들어가지 않는, 취업과 재활 가능성이 없는 부랑인이나 백수들은 복지의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일례로 여성 노숙인은 "가정이 있다면 집을 나올 수 없으며, 혼자 사는 여성이라면 성매매를 해서 먹고 살수 있"기 때문에,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여겨졌고, 여성 해고 또한 당연하게 여겨졌습니다.
 
현재에도 여성이 가족과 성매매가 아닌 다른 방식으로 생존할 수 없다는 것은 가난이나 빈곤, 복지의 필요로 구성되지 않습니다. 여성이 남성, 가족과 무관하게 독립적으로 살려는, 살아야하는 움직임에는 사회적 지지와 지원이 없습니다. 내담자들이 복지 수혜를 받을 수 있는 조건을 충족할 수 있는 경우는 참 드뭅니다. 그마저도 단순히 남성과 주소지가 같다는 이유로 사실혼으로 간주되어 급여 수혜가 끊길 정도로 위태롭습니다.        
 
저자는 이런 복지의 배신이 민주화 시기를 거치며 진보적이고도 자유주의적으로 성장해온 주체들의 행보와 무관하지 않다고 봅니다. 정부와 시민단체들의 민관협력은 정치 주체와 소비 주체가 중첩되는 자본주의적 자유시민의 양태를 육성하였고, 권위주의적인 개발국가의 유산과 구별되는 자본주의 체제를 구축하는데 이바지하였다고 평가합니다. 좋은 자유주의가 자본의 운동에 맞설 수 있고 맞서야만 한다는 생각은 교묘한 사기라는 것입니다.
 
국가와 여성운동 사이에 놓인, 페미니스트이자 사회공학 실행자의 위치에 놓인 이루머들이야말로 무엇을 해야하는지 묻고 또 얘기해야하는 사람들인 것 같습니다. 이 책을 읽는 동안 아주아주 불편하기도 했지만 동시에 동일시하지 않고 거리를 둘 수 있는 시원한 자극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언제 우리와 비슷한 위치에 있는 페미니스트들과도 이 주제로 이야기할 수 있는 판을 꾸릴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렇게 올해 마지막 몹시를 마칩니다! 내년에 만나요~!
 
활동이야기

<일탈> 첫번째 후기

<일탈> 세미나 첫번째 후기_별

"현재에 관해 사유할 수 있다면 우리가 가진 지적인 도구를 모두 사용해야 한다."

 
현재를 사유하기 위하여 게일 루빈의 <일탈> 서문부터 2장까지를 함께 읽었습니다.
 
2016년 한국의 페미니스트들 사이에서 이 책은 왜 이렇게 핫한걸까요. 이 책을 출처로 한 말들로 성매매를 논할 때, 그 말들 사이에 감추어진 행간과 의도는 무엇일까요. 페미니즘, 성매매, 퀴어, 젠더와 섹슈얼리티를 둘러싼 현재의 지형 속에서 이러한 질문들을 끌어 안고 일단 읽기를 시작하였습니다.
 
1, 2장의 내용상, 저자가 '가부장제'의 상정 및 이에 기반한 '반포르노그라피 정치'를 비판함으로서 펼치고자 했던 저자의 정치는 과연 무엇이었는지에 초점이 맞추어졌습니다. 서문부터 2장까지의 내용만으로는 쉽사리 감이 잡히지 않았고 의구심이 더해갔습니다. 에마 골드먼이 <여성거래>에서 "매춘의 인과론", "여성이 거래되는 진짜 원인", "여성의 경제적 기회와 사회적 영향력을 제약하는 (일상적) 조건들을 고심"하자고 했던 이야기는 저자에게서 "반성매매, 반포르노그라피 여성 운동은 보수주의 우파 정치이다, 십자군이다"라는 단언으로 비약 합니다. 
 
여기서 저자는 구조적인 성적 억압과 착취를 법과 제도라는 수단을 포함하여 공적으로 다루고자 하는 시도를 국가의 성에 대한 낙인 및 불법화와 완전히 동질하게 파악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저자에게 성에 있어서 '노예제와 인신매매의 수사'를 배척하는 것은 곧 국가 통제에 대항하는 성전쟁의 첨단으로 내세워지게 됩니다.

이런 방식의 프레임이 만들어지게 된 역사적 배경은 무엇이었을까요. 그동안 저자의 삶에는 무슨 일들이 벌어졌던 것일까요. '상업적인 성'과 '인신매매'는 각기 다른 장에 놓여있으며 반드시 서로를 동반하지는 않는다, 성서비스의 거래와 성거래에 의한 이주 현상 자체를 젠더를 비롯한 권력 위계에 의한 폭력과 차별로 진단할 수 없다는 이해는 실제로는 현장의 경험들을 어떻게 해석하고 있으며 어떤 사회적 효과를 낳을까요. 섹스/젠더체계를 해체해서 나타날 새로운 문화현상과 인격은 누구의, 무엇을 위한 해방인걸까요. 이를 읽어내기 위하여 앞으로 계속 읽어나갈 예정입니다.

 
지금으로선 포르노그라피 및 젠더폭력에 관한 운동과 국가폭력을 한데 묶어 내던져버리는 일로 "여성을 여성으로 순치하는 체제"를 무너트리는 일이 막 한층 더 가능해질 것 같아 보이지는 않습니다. 처벌과 폐기에 그치며 구조 자체를 냅두는 것을 경계하는 정치는 필요할 것입니다. 그렇담 이 정치를 위해서 남성, 남성성, 가부장제 등에 관한 논쟁을 보다 깊이있게, 폭넓게, 다양하게 해나가자는 제안을 하는 걸로는 안되었을까요. 안된다고 보았던 근거와 의도가 무엇이었을까요.
 
이런 책읽기로 이룸이 경계하고자 하는 것은 구조와 체제, 존재와 가치에 대한 인식의 계보와 변별점을 상실한채로 신자유주의적 개인들의 서사, 정서, 소비의 흐름에 휩쓸리는 일인 것 같습니다. '성 공황'과 '도덕적 구원' 이후의 모색은 아무도 구원조차 할 수 없을 무결함이 아닌 더 많은 관계와 돌봄과 평등, 더 많은 실패와 상처로 가닿을수 있을 거니까요. 그러기 위하여 이룸이라는 작고 구체적인 공간과 얼굴들에 단단하게 발을 디디고 이룸의 시선과 방식으로 공동의 삶을 모색할 수 있기를 바라봅니다. 
 
<일탈>의 왜곡과 달리, 2016년 한국에서는 '일탈'한 비규범적 존재들의 긍정과 '여성'의 침해, 착취, 억압에 대한 저항의 목소리가 연결되며 어느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기로에 놓인 것처럼 얘기되지 않았음 합니다. 우리들의 목소리들에서 모아낼 수 있는 이야기가, 공통의 의제가 개별적인 권리로 한정되는데 그치지 않고 더 멀리 갔으면 좋겠습니다. 낙태죄 폐지의 움직임이 여성의, 모든 약자들의 삶의 보장을 위해서인 것처럼, #000_내_성폭력 해시태그 운동이 성 자체에 내재한 폭력을 사유해야 하는 것처럼 성매매에 대한 담론 역시도 마찬가지의 궤도에 올라야 할 것입니다.

 한 해, 우리는 강남역 10번 출구와 올란도를, 세월호를, 백남기 농민을 추모하였습니다. 인간의 몸을 지닌 유한한 자유, 사랑과 애도를 끊임없이 발굴하고 복원하는 일이 활동이 되기를. 지배와 거래를 비껴나가는, 이윤을 내기를 어려워하는 몸, 포섭되지 못하고 남아있는 한줌의 쾌락, 그것이 '우리'의 정의이기를. 오늘 또 내일 우리가 각자의 장소들에서 바라고 있는 세계에 대한 대화를 나누고 연대할 수 있기를 기원해 봅니다.

 
활동이야기

[몹시] <혼자 살아가기-비혼여성, 임대주택, 민주화 이후의 정동> 을 읽었습니다.

송제숙씨의 책 「혼자 살아가기」와 「복지의 배신」을 함께 읽으려 했으나, 역시 책 한 권만으로도 시간이 훌쩍 지나버렸습니다.
 
이 책은 비혼 여성들의 삶과 언사를 통해 이들이 공통적으로 지니고 있는 욕구, 정동이 어떻게 이 사회의 특정한 경향/흐름과 접속하고 있는지 분석합니다. 더불어 비혼 여성의 경제적 빈곤을 한국 사회가(금융이) 어떻게 조장하고 활용하는지, 비혼 여성 스스로는 이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대응하는지를 설명합니다. 이루머들은 제2장 비혼 여성의 불안정한 주거와 재정의 내용을 꼼꼼이 훑었고, 다른 장들에 대해서는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 2 장을 읽으며
한국사회의 전세시스템은 완벽하게 집 장만 과정으로 침투했고 대안적인 메커니즘의 상상자체가 불가능하다는 부분을 주의깊게 읽었고요. 현금과 고소득일자리를 가질 수 없는 사람들을 차별하는 이 전세시스템의 기이함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업소여성들을 타겟으로 한 대출 상품 중 참 오래 된 상품으로 ‘방일수’가 있지요. 높은 이자와 기이한 셈법을 자랑하지만 높은 보증금을 내야 하는 풍토가 사라지지 않는다면 방일수도 사라질 일이 없겠지요.
 
공식적인 금융시장은 빈곤한 자를 차별합니다. 정규직-담보가 있는-남성 이 아닌 모두에게 폐쇄적입니다. 복지체계는 이성애 핵가족 바깥의 사람들을 고려하지 않습니다. 임대할 집이 있는 사람, 화폐 목돈이 있는 사람 등 이미 화폐 자본이 있는 사람들은 이를 바탕으로 빈곤한 자를 착취해서 자산을 증식합니다. 공식적인 금융과 복지체계의 차별을 문제삼아야겠지만 우리는 대체로 문제를 각개격파하려 노력하죠. 어떻게든 돈을 벌고, 어떻게든 돈을 모아 화폐 자본이 있는 사람이 되어 또 다른 빈곤한 자를 착취하려 노력합니다.
 
평생고용을 기대할 수 없는 사회에서 제테크는 필수적인 것이 되었고 이를 제대로 이용할 줄 모르면 무능력한 사람이 되는, 국민연금에 대한 불신으로 사보험과 연금을 드는 한국 사회.
아무래도 다 바꿔야겠어요.
 
# 책 안의 연구참여자들의 위치는 이루머들과 많은 부분이 겹쳤기 때문에 머리를 맞대고 앉아 우리의 삶, 욕구, 정동을 나눴습니다.
평화롭기 위한 소비, 나를 지키기 위해 카드를 긁는 생활
자유로웠던 내가 어느새 비루해진 이유
자유, 그 놈의 자유, 어떤 자유와 경제력
자본주의 사회에서 즐거운 삶을 구사하기 위한 조건들
노후와 이직, 활동과 생계, 나이듦, 우리가 하는 활동이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
 
이런 것들이요. 우리는 불안해서 회피하고, 탐독하고, 안부를 묻고, 다독이고, 그렇게 계속 살아가겠지요. 온전히 내 것이라고 생각했던 나의 욕망과 욕구가 사회의 커다란 흐름 위에 올라타 있음을 인지하는 계기였습니다. 그리고 성산업도 그 흐름과 같이 변형되고 교묘해지며 정상화되고 있음을 다시 확인했습니다.
다음 몹시에서는, 이번에 함께 못 읽은 복지의 배신을 읽기로 했습니다.
이루머들은 과연 신자유주의에서 어떤 행위자로 기능하고 있는지 직면하는 시간이 될 것 같아요. 그리고 또 우울해지겠.. 지요? 하하
 
 

활동이야기

[몹시] 그들은 왜 여성에게 돈을 빌려줄까?

[활동가세미나 '몹시' 후기]

그들은 왜 여성에게 돈을 빌려줄까?

완두


<무지개론> 광고
 

지난 달 은행에 방문했다. 3년 전 4%대 금리로 들었던 적금 만기 해지를 위해서였다. 소액으로 겨우겨우 3년을 유지하며 채웠지만 요즘 금리를 떠올리니 좀 더 일찍, 많은 금액을 저축 하지 못했던 지난날들에 괜히 속이 쓰렸다. 번호표를 뽑고 30분 이상 기다려 마주한 은행 창구 직원은 ‘투자’니 ‘공격상품’이니 하며 알아들을 수 없는 낯선 용어들을 섞어가며 아주 빠른 속도로 내게 ISA통장개설을 권했다. 종종 1%대 예금 금리에 대해 하소연 섞인 목소리로 안타까워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왜 이렇게 금리가 낮은 거예요?”라고 그녀를 진정시키기 위해 던진 내 물음에, “다 대출 때문에 그렇죠 뭐, 대출업무가 많아요.”라며 목소리를 낮춰 답했다. 적금 들러 왔다가 대출을 받는 고객도 많단다. 하지만 이것도 초저금리 시대에 ‘빚테크’라는 신종 자산관리 흐름에 발맞춰 제1은행권 대출이 가능한 소위 돈 좀 있는 사람들의 얘기다.
 

저축으로 돈을 모은다는 건 옛말이 된 지 오래다. 언론은 틈틈이 가계부채 심각성을 보도하며 서민경제를 크게 우려 하는 듯 보인다. 하지만 지난 4월 하향 조정된 법정 최고이자율(기존 34.9%에서 27.9%로 인하)에 대해 "대부업계의 대출심사가 까다로워지면 서민들이 불법 사금융 업체로 내몰릴 수 있다"라는 금융계, 경제학자들의 목소리를 연일 보도했다. 그간 합법적 테두리 안에서 선심 쓰듯 상환능력이 없는 가난한 이들에게 돈을 빌려주고 고리대자본을 축적한 거대 자본가들의 무책임함이 드러나는 대목이라고 한다면 과언일까. 최고이자율 인하를 서민경제에 타격을 주는 부작용이라고 지식인의 언어로 포장하고 선전하는 모습에서 ‘고양이 쥐 생각한다’는 격언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고리대금과 추심에 대한 적극적 규제와 단속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채무자에 대한 보호 장치가 전무한 현실에서 소득이 불안한 개인에게 ‘대출’은 권리이자 복지인양 그 무엇보다 폭발적, 전략적로 접근을 확대해왔다. 내 앞가림은 내가 한다는 어른들의 조언을 신조 삼은 ‘도덕적이고 합리적 주체’인 개인은 미래소득을 담보로 ‘대출’이라는 하나의 선택지 안에서 주거‧의료‧교육‧복지‧생계 문제를 감당하며 현재를 저당 잡힌 채 누구보다도 성실하게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부채경제 말단엔 노동시장에서 소외되고 저임금 산업으로 내몰리는 여성이 있다.
 
 

이룸은 ‘대추: 대출은 추심!’사업의 밑 작업으로 지난 3월부터 1980년대 금융자본의 세력 확대와 신용의 증가로 이전 시기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대출을 받게 된 흐름에 주목하고 있다. 이번 [몹시]에서는 <가난을 팝니다>(라미아 카림, 오월의 봄, 2015)를 읽고 ‘금융의 세계화’가 진행되던 시기 최빈국 방글라데시를 틈새시장으로 발견한 금융의 검은 속내와 전략을 꼼꼼히 들여다봤다.
 

방글라데시는 서구 원조기구에 의존하며 필수서비스를 NGO에 아웃소싱한 탈식민지국가이자, 전체 인구 80%가 농업에 종사하고 1일 1달러 소득 미만인 극빈자가 전체 인구의 41.3%를 차지하는 최빈국이다. 그런 땅에서 그라민은행은 어떻게 ‘소액 대출’로 세계적인 "빈곤 퇴치와 젠더 전략을 위한 주요 원조정책" 모델로 각광받으며 노벨평화상까지 받을 수 있었던 걸까.
 

그라민은행은 누구보다도 ‘빈민여성’을 가치창출의 주요한 고객으로 삼았다. “소외계층 삶의 개선에 헌신한다”라는 윤리적 주체이자 농촌사회에 자원을 공급하는 권력을 가진 NGO로서 그라민은행은 농촌여성에 대한 기존의 관습과 통제를 자신들의 손실은 막는 위험관리로 제도화했다. 결과적으로 빈민여성과 금융서비스라는 이 어울리지 않는 조합은, 여성이 금융자본에게 그 무엇보다 ‘선’하고 ‘합법적’으로 이윤을 내기에 탁월한 시장임을 증명해보였다.
 

그라민은행을 비롯해 마이크로파이낸스 정책, 간단히 말해 ‘무담보’ ‘무보증’을 내세운 소액대출 서비스를 하는 이들 NGO는, 이 같은 대출이 “여성역량강화와 가난을 구제하고 공동체를 개발한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이들은 상환능력을 묻지 않고 가족 생계를 지탱할 만한 토지를 살 정도의 금액보다 훨씬 적은 액수만을 가계경제에 결정권이 없는 빈민여성에게 무작정 대출해주었다.

 
저자가 연구한 그 실상을 좀 더 살펴보면 이렇다. 여성들은 대출자그룹을 형성해야 돈을 빌릴 수 있었는데, NGO는 이들 그룹을 통해 일일이 손대지 않고도 대출금 회수에 상호 압력을 강요해 대출자를 통제할 수 있었다. 이른바 연대보증이다. 뿐만 아니라, NGO는 정해진 이자에서 대출 상품의 종류와 기관에 따라 다양한 추가 비용(고정이자+그룹회비+의무저축+가입비+통장발행비+취소수수로+의무적으로 상품을 사게 하는 끼워 팔기 등)을 통해 발생 가능한 연체를 대비한 안전장치를 두었고 저축을 해야 대출자격이 생기는 규칙은 상환금을 연체할 시 담보역할을 했다. 특히 이들 NGO의 ‘공개적 망신주기’, ‘집부수기’ 심지어 감금하거나 대출자를 고발하는 방식의 강압적인 추심은 농촌 사회의 명예와 수치관념 하에 지배받는 취약한 여성의 지위를 이용하여 채무를 변제하도록 스스로 규율하게 했다. 즉, 여성은 대출로 가족과 공동체 차원 모두에서 새로운 형태의 종속과 억압에 놓이게 된 것이다.

앞서 나열한 NGO대출은 우리가 주목하고자 하는 ‘여성전용대출’의 고객 선정과, 마케팅, 위험관리 전략에서 매우 유사한 점을 보였다. 먼 나라 이웃나라에서도 여성은 금융이 이윤을 창출하기에 가장 손쉬운 먹잇감이었다.

 
성매매피해지원상담소에서 많은 비율로 과다채무와 고리대, 강압적인 추심으로 어려움을 겪는 여성을 만나는 우리가 성매매를 이야기하면서 금융, 복지, 노동, 기본 소득을 함께 고민해야 할 필요를 느끼는 것은 이 때문이다. 금융자본의 질주는 성별 성차별 제도 없이는 가능하지 않다는 인식에서다. 
 


<웰컴론>광고
 
“넌 자유로운 선택을 할 수 있는 자율적이고 합리적인 주체야”
“네가 필요해서 빌린 거잖아”
“네가 선택했기 때문에 감수해야 해”
 

신자유주의에 대한 맹목적인 신념은 담합과 뒷거래를 통해 몸을 불리는 자본권력을 은폐하며 우리들의 경제관념에 교묘하게 파고들어 행동을 규율한 지 오래다. 그사이 법은 채권자들에게 추심의 결정타로 기능하고 있고 비현실적이고 차별적인 금융자본의 설계에 말미암은 위기와 과제는 개인의 문제로 축소되어 발화되고 있다. 이 같은 현실에서 나는 고금리, 강압적인 추심, 폭력과 같은 행위를 합법/불법이라는 틀에서 겨우 볼 수 있을 뿐이었다.
 

우리의 ‘자발’, ‘선택’, ‘필요’라는 언어 속엔 ‘누구에’의해 ‘특별히 누구의 필요’가 만들어 지는지 그리고 이를 통해 이익을 얻는 자들이 누구인지는 없다. 금융자본은 이윤에 따라 움직인다. 개인의 부주의를 탓하고 서로가 서로를 단속하게 하는 질문과 논의 속에서 이 움직임에 대응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왜, 빈곤한 여성들이 갚을 능력도 없이 돈을 빌릴까?”
“왜, 그렇게 많은 빚을 지고도 또 돈을 빌릴까?”라는 질문에 다시 질문해 보려고 한다.

 

“그들은 왜 여성에게 돈을 빌려줄까?”

 
그리고 이 같은 질문이 필요한 현실에는 경제적 불평등에 따른 비정규직 저임금 여성노동의 대안으로 성매매가 존재하는 문제가 함께 있다.
 

“돈이 없어서 배우지 못하고, 돈이 없어서 집을 못 사고, 돈이 없어서 병원에 가지 못하고, 돈이 없어서 성매매를 한다는 이들에게 정말 필요한 건 ‘자본’이었을까?”
“이들이 말하는 어려움은 어디서부터 시작됐을까?”
“그 어려움이 이들에게 미친 영향을 무엇일까?”
“빚이 늘어난 이들이 ‘돌려막기’,‘사채’, ‘카드깡’ 등의 동일한 경로를 경험하는 건 왜일까?”
“돈을 빌리지 않고도, 성매매를 하지 않고도 생존권, 노동권이 보장되는 현실에 대해 같이 목소리를 낼 수는 없을까?”
여러가지 질문이 꼬리를 문다…

 
이제 “왜?”라는 질문은 돈을 빌릴 수 있는 능력을 ‘신용’이자 ‘권리’라고 말하는 이들에게로 향해야 하지 않을까.
신용은 정책을 만들고 집행하는 권력자들이 불평등을 해소하고 국민의 복지와 자활에 필요한 자원을 모으고 배분하는 ‘능력’으로 우리에게 심사받아야 할 책임으로서 기능해야 하지 않을까.

 
얼마 전 내담자가 일수업자로부터 반복적인 추심협박에 시달려 상담소를 방문했다. 상환방법을 묻는 질문에 그녀는 “돈을 빌린 후 연대보증인의 카드를 일수업자에게 주고 비밀번호를 알려준 후 본인과 연대보증인이 해당 계좌로 매일 돈을 입금한다.”고 말했다. 법적 대응이 필요하거나 다툼이 생겼을 때 돈을 갚았다는 사실을 입증할 방법이 없는 것이다. 채무자의 책임만 지나치게 강조하는 사이 불공정한 관행은 지금도 우리의 상식 밖에서 새로운 상품들로 둔갑에 둔갑을 거듭하고 있다.
 
 

활동이야기

[몹시] <대추: 대출은 추심!> 준비 세미나


올해의 두 번째 몹시에서는 <대추: 대출은 추심!> 사업의 밑작업으로 관련 글을 읽었습니다.

<대추> 사업은 작년 김주희 님의 논문 발표 및 토론회, <이상한 성매매 나라의 경제 이야기: ‘자유로운’, ‘파산불가능한’ 여성들>을 이어가는 이룸의 새로운 사업이에요.

이룸은 <대추>를 통해 ‘여성특화대출’을 파고들어 그 문제성을 알리려고 합니다.
또한 대출을 비롯, 이룸에게 익숙하고도 새로운 키워드들을 가지고 놀면서 성매매를 사유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는 <성산업 지형도>를 그리려고 하고 있어요.

 


 

그러려면 많은 공부가 필요할텐데……

우선 대출을 공부해보았습니다. <대출 권하는 사회>(김순영, 2011)와 <대출 천국의 비밀>(송태경, 2011), 그리고 영화 <인사이드 잡>(2010)을 통해서 왜 금융은 이토록 돈을 빌리게 하려고 하는지, 왜 대출이 늘어날수록, 그 대출이 불안정할수록 이윤이 높아지는지를 이해해보았습니다.

 
<인사이드 잡>에 따르면 현재의 금융공학 기법은 한개의 집에 오십개의 보험을 드는, 즉 한개의 집에 오십명이 투자하는 일을 가능하게 만들어 놓았다고 해요. 그럼 이윤은 오십배 그 이상으로 불어나겠죠. 만약 이 집이 불타 없어진다면 손해도 오십배 그 이상일 거구요.
 
세계의 권력자들은 규제를 하나씩 하나씩 풀면서 이윤과 손해의 균형을 맞춰주던 안전장치들을 없애버렸고 최대의 이윤을 얻을 수 있다면 어떤 손해를 감수하던 상관없다는 마인드였습니다. 어차피 그 손해는 자기들이 감수하는 게 아니니까요.

 

 
     
 
 
내가 잃을 게 있으면 몸을 사리겠지만, 카드를 걸어도 신중하게 최악수를 대비하면서 걸겠지만, 본인은 잃을 게 없는 도박판에서 도박꾼은 얼마나 무서운 게임을 펼칠까요. 이들은 도박을 하듯 이윤추구라는 쾌락의 법칙에 순종하는 체제를 구축했습니다. 순수하고도 무서운 세계를요.
 
그 결과가 2008년도의 서브 프라임 모기지 사태라고 합니다. 금융공학에 의해 탄생한 증권의 연쇄 고리가 무너지면서 그 충격은 갑절로 몰아닥쳤지요. 미국이라는 제국의 은행, 보험사 등 주요 금융 주체들이 줄줄이 도산할 정도였으니까요. 정작 그곳에서 일했던 책임자들은 다 빠져나갔고 재임용되고 있지만요.

 

<인사이드 잡> 중 부채의 증권화에 관한 설명 부분

 

1997년 한국에 경제 위기 바람이 불어 닥쳤을 때 IMF는 구제 금융을 해줄 테니 위와 같은 신자유주의적 경제 정책을 따르라고 했다고 합니다. 저도 뉴스에서 구조조정이라는 말을 귀가 따갑게 들었던 기억이 나요. 여기서도 구조조정, 저기서도 구조조정. 그 구조가 무엇이고 조정이 무엇이었는지는 나중에야 알게 되었네요. 
 
2000년 전후, 경제 위기로 실업이 발생하고 소득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정부는 빼어든 카드는 신용카드였습니다. 하지만 신용카드회사들은 그리 공공적인 원칙에 따라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저신용, 저소득자들에게 카드론과 현금서비스를 쓰게 하여 높은 이자율과 수수료를 물게 하는 게 더 이득이 된다는 걸 알고 그걸 실천했지요. 신용카드는 곧 대출이었고, 고리, 연체, 돌려막기라는 삼중주의 전주곡이었습니다. 그렇게 신용카드대란, 즉 연체율 급증으로 신용불량자가 만들어지고 신용카드사가 위기에 처하는 사태가 벌어졌죠.  
 

"부~자 되세요"
 

<대출 권하는 사회>는 이러한 사태를 초래한 김대중 정부의 신자유주의적 경제 정책을 분석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 정책의 효과로 어떠한 사회가 만들어졌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현재의 성산업은 이러한 사회적 맥락 속에서 성장했음을 또한 알 수 있습니다. 이전의 성매매가 식민지배, 군사주의, 냉전, 독재 등의 맥락 속에서 존속해왔듯이 IMF 이후 신자유주의적 개편, 서비스 노동 산업으로 자본이 흘러드는 흐름 등의 움직임 속에서 소위 산업형 성매매가 늘어났습니다. 산업형 성매매는 거리에 즐비한 룸싸롱, 키스방, 안마방, 보도방, 티켓다방, 안마방 등을 말합니다. 
 
이렇게 금융은 저신용, 저소득자들에게 고리로 돈을 빌려주겠다고 한 다음 추심을 통해 이윤을 회수했습니다. 성별불평등한 사회구조속에서 채무자들은 자연히 여성이었을거라는, 성산업과 연결되었을거라는 추론을 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대부업자 카페 등에 들어가보면 여성이 추심하기 쉽고, 연체율이 낮다는 것은 공공연한 상식입니다. 그리고 만일 20대 여성 채무자가 큰 빚을 지고 직업소개소에 간다면 너무 업소를 소개해주지 않을까요? 수천만원의 빚(자기것이든, 가족의 것이든)을 업소 일을 해서 다 갚았거나 갚고 있다는 얘기를 들으면 그 시간이 얼마나 고되었을지, 그 과정에서 몸이 얼마나 축났을지를 상상하게 됩니다. 그렇게 지하와 지상을 막론하고 금융에게 서비스 노동 시장의 전면에 서 있는 성산업 공간들은 제 몸과도 같았습니다.
 
이러한 고리대와 추심이 어떻게 기능하는지 <대출 천국의 비밀>은 잘 보여줍니다. 고리대는 저신용자, 저소득자의 연체율을 보상해줄 정도로 강력한 이윤 추구를 가능하게 해주기에 대부업자는 대출 받게 하는 데 거리낌이 없어집니다. 연체율이라는, 대부업자를 주저하게 만드는 요소를 무력화시키는 것이죠. 또한 고리대는 채무자에게 카드나 일수 돌려막기, 즉 더 고리로 더 돈을 빌리게 만드는 좋은 수단입니다. 
 
시장자유론자들은 이자율이 높아야 가난한 사람들도 돈을 빌릴 수 있다고 합니다. 최근의 이자법 개정에 대해서도 이자율이 낮으면 제1금융권이 가난한 사람을 기피하여 사채를 빌릴 수밖에 없다는 우려를 표합니다. 이건 성산업 알선자들이 하는 말이랑 똑같은거 같아요. 너 하나 믿고 빌려주는 거니까 선이자 먼저 떼도, 엎고 새로 써도, 다 너를 위해서 하는 일이라며. 

이 고리대와 추심이 어떤 것인지 채무자들이 정확히 안다면 돈을 안 빌리려고 하겠죠. 그래서 대부업체 광고들은 사기와 속임수를 씁니다. 여자만을 위한 핑크빛 혜택으로 치장, 이자율 속이기는 예사죠.  

 

 

여성특화대출은 이렇게 아름답지 않아

 

요즘 전세 대란으로 울며 겨자먹기로 대출을 받아 집을 사는 3040세대나 학자금 대출을 갚기 위하여 야간알바 노동을 하는 20대들에 대한 기사들, 금융상담이나 부채탕감, 신용회복 절차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는 등 부채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고 있는 것 같아요.

성매매를 가능하게 하는 사회이기에 이러한 부채의 범람 또한 가능하다는, 반대로 부채의 범람은 성매매와 같은 일상의 '담보화'를 전제로 하고 있음을 우리 모두가 알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활동이야기

[몹시]‘제도화’ 톺아보기_넌 누구? 이룸은 무엇?


‘제도화’ 톺아보기_ 넌 누구? 이룸은 무엇?

 

제도화. 이룸에게 긴 고민을 안겨주는 말이다. 새해를 맞아 첫 몹시로 그 고민을 파보기로 했다. 그래서 읽은 글은 <법제화 운동을 중심으로 본 한국여성운동의 위기론/ 김경희, 2007> 과 <제도화 과정과 갈등적 협력의 동학: 한국 반성폭력 운동과 국가정책/ 신상숙, 2008>.
 
두 글 모두 ‘제도화’ 개념의 모호함과 군더더기를 지적. 김경희는 제도화가 아닌 법제화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신상숙은 제도화 개념을 정리하여 내용을 전개한다. 몹시에서만이라도 습관적으로 사용하던 ‘제도화’를 멈췄다.
 
김경희와 신상숙은 공통적으로 2000년대를 여성운동의 제도화, 정책화, 법제화와 위기가 대두, 드러난 시기로 본다. 90년대까지 이어져 온 여성운동의 성과로서의 정책/법에 대한 내부 성찰과 비판이 있었다는 거다. 총선 출마 논란도 있었고.
그리고 제도화 아니면 급진, 제도화 아니면 자율성의 이분법적 관점을 벗어나야 한다고 역설한다.
 
신상숙에 따르면 국가와의 접촉과정에서 여성운동의 자율성은 운동의 자율역량에 따라 달라지는데 그 중 여성폭력추방운동의 핵심적인 역량요소는 현장, 담론, 연대 세 가지이다.
 

이룸은 여성단체들의 연대체, 성매매단체들의 연대체, 서울 여성폭력지원시설들의 연대체 그 어느 곳에도 속하지 않는다. 연대기구에 함께 하지 않는 데에는 이러저러한 이유들이 있는데, 그 중 하나는 이룸의 운영방식 때문이다. 이룸에는 직위가 없고, 연대 기구에 참석한 활동가 1인이 이룸을 대표할 수 없다. 다른 단체들의 네트워킹은 대체로 대표들을 중심으로 지속된다. 그러나 이루머는 회의에 참석한 사람이 대표로서 네트워킹을 할 의무도 없고, 그 회의에 한 사람이 계속 참석할 이유도 없다. 이슈를 중심으로 힘을 모으는 연대체들에 이룸도 함께 하지만, 작고 동원할 자원이 별로 없으며 업무량을 최대한 안 늘리고자 하는 이룸의 특성상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많지 않다.

우리는 ‘연대’ 활동을 활발하게 하기 위해 이룸의 운영방식을 바꿀 마음이 없다. 다만 성매매를 구성하고 성매매가 구성하는 여성, 빈곤, 대출, 십대, 장애, 노동, 복지 등의 영역에 적극적으로 손을 뻗고 연결되어야 한다는 의지가 있다. 올 해 진행 할 여성대출피해사례 수합 및 대안 모색 사업 ‘대출은 추심’과 움직이는 청소년 센터 EXIT와 함께 하는 신림 아웃리치가 이룸의 ‘연대’ 역량을 키워줄 수 있지 않을까?
 
성매매 공간에서의 동원, 정치적 세력화, 당사자 역량강화는 어떻게 가능할까? 사업을 구상하고 기획할 때 당사자 역량강화를 언제나 중점에 두고 구체적인 안을 만들어 가면 좋겠다. 성산업 종사자들의 커뮤니티, 정보 공유를 바탕으로 당사자 모임을 기획하고 시도해봤으나 오프라인 모임으로 지속되기 어려웠다. 이룸의 활동에 당사자가 함께 할 수 있는 공간을 의식적으로 만들어 보자.
 
거슬러 올라가다보니 ‘운동은 무엇일까?’ 질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의 활동을 왜 우리는 여성운동이라고 생각하는가? 상담은 운동인가, 여성주의적 상담은 여성운동인가, 왜 상담이 아니라 운동이라고 하는가… ‘운동’ 역시 모호하고 군더더기가 많은 개념이다.

이야기가 길어지며 이룸 운영방식으로 주제는 넘어갔다. 이룸의 비전은 무엇인가? 이루머들은 어떤 전망을 갖고 있나? 활동가들이 자주 바뀌면서 단절되는 조직운영방식에 대한 논의, 1년 단위로만 사업을 구상하고 운동해 온 습관, 우리 안의 차이를 존중한다는 원칙이 주는 힘과 가로막는 가능성…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끝없이 이어지게 했던 2016년 첫 몹시. 다른 여성폭력추방운동을 하는 단체 활동가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다.

 

활동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