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몹시]여성영화제 <우리삶의이야기들> 보고왔어요~

더위가 기승을 부리기 시작하던 유월의 첫 날, 이루머들은 상콤하게 오전회의를 마치고 여성영화제로 향했다. 일찌감치 신촌에 도착해서 맛있는 점심을 먹고, 유명하다는 ‘호00’ 팥빙수집에 가서 팥빙수도 한 판 때리고 나니 어느새 영화시간! 우리의 선택은 케냐에 있는 예술 집단 ‘네스트’의 창작 작품인 <우리 삶의 이야기들> 이었다. 2015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테디심사위원상과 파노라마 관객상을 받았다는 정보에 혹하기도 했고, 케냐 영화를 볼 기회가 또 언제 있을까 싶은 마음도 있었던 것 같다. ^^
 

영화는 참여한 이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5개의 에피소드로 이루어져 있었다
. 학교에서 동성애를 이유로 정학을 받고는 호기심에 남자와 섹스를 해봤다가 관계가 틀어지고 마는 레즈비언 커플 이야기, 뒷골목에 있는 게이 바를 찾아갔다가 친구에게 발각되어서 도망가는 게이의 이야기, 농장에서 함께 일하는 베프를 사랑하지만 그가 여자 애인와 함께 하는 모습을 지켜봐야 하는 한 게이의 이야기…첫 세 에피소드를 보면서는 한국의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상황과 이야기들에 한숨이 나오기도 하고, 워낙 익숙한 이야기들인 탓에 살짝 지루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런데 중간 중간 삽입되는 영화 음악과 이미지들이 흥미를 돋궈주었다. 게이바 출입을 들켜 친구에게 구타를 당하다가 도망가는 장면에서는 쿵쿵쿵 박자가 강한 음악이 함께 흘렀는데 평소 내가 들을 수 있는 음악과 매우 달랐다. 아마도 북소리를 베이스로 하는 아프리카 음악(아프리카로 통칭되는 것을 싫어한다고 하지만 달리 아는 정보가 일천하여ㅠㅠ)일 것 같았는데, 심장을 울리는 그 소리가 너무 좋았다. 영화 중간 중간에 들어간 ‘아프리카 음악’ 들과 케냐의 목화농장, 숲, 들판 등의 장면들이 신선하고 좋아서, ‘아 이런 게 다른 문화권을 접하는 묘미이구나!’ 생각했다.
 
네 번째 에피소드는 젠더, 인권 등을 공부하는 케냐 게이(^^;)가 포럼에 참석하기 위해 영국에 갔다가 백인 성판매 남성과 성매매를 하는 이야기인데, 처음엔 성구매자와 성판매자로 만났다가 대화 끝에 로맨스로 이어지는 것 같은 암시를 하면서 끝이 났다. 그걸 보고 ‘성매매를 너무 낭만화 한 것 아니야?’ 라며 같이 본 친구와 성토를 하기도 했다. 평소 이룸에서 ‘소수자 성매매’ 사업을 했다고는 하지만 흑인 게이 성구매자와 백인 성판매자가 나오는 씬은 기존에 내가 갖고 있던 상상력의 범위를 넘어선 것이었다. 그것만으로도 이 영화를 본 이유가 충분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했다. 
 
개인적으로는 마지막 에피소드가 가장 재밌었다. 정부에서 ‘동성애는 아프리카의 것이 아니다’라며 이웃에서 동성애를 신고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발표를 하는 뉴스를 보고는 잠들지 못하는 레즈비언 커플의 이야기이다. 그 중 한 명은 뒷걸음으로 마을에 있는 영험한 나무를 7바퀴 돌면 남자가 된다는 설화를 떠올리며, 정말 자신이 그 나무를 7바퀴 돌아서 남자가 되면 모든 게 해결될 것 같다는 상상을 하며 잠을 뒤척인다. 한국에도 지역마다 잊혀져가는 설화들이 참 많다는데, 성별이 바뀌는 내용이나 동성애에 관련된 것도 하나쯤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이런 상상력을 자극하는 내용은 언제나 흥미롭다.
 
책을 읽고 열띤(?) 토론을 하는 ‘몹시’도 좋지만, 간만에 용두동에서 벗어나 바깥바람을 쐬는 이런 ‘몹시’도 좋다. 영화제 곳곳에서 반가운 얼굴의 페미 언니들을 마주치는 것도 좋았고, 이루머들과 함께 퀴어영화를 보는 것도 좋았다. 내년에도 여성영화제 기간에도 ‘몹시’의 외도가 계속되길 바라면서! 이번 ‘몹시’ 후기 끝~~
 
<우리 삶의 이야기들> 영화가 궁금하신 분은~
http://www.siwff.or.kr/wffis2015/program/program_view.php?sang_no=1789&code=213&cook=2307195549b6e72da0f201505060338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