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몹시] ‘한국 성매매 산업의 금융화와 여성 몸의 ‘담보화’ 과정에 대한 연구’ 를 읽었습니다.

몹시 후기(별)

0. 들어가며

이번 몹시에서는 베프 김주희님이 이루머 한사람 한사람의 이름을 적어 손수 부쳐주신 여섯권의 책, [한국 성매매 산업의 금융화와 여성 몸의 ‘담보화’ 과정에 대한 연구]를 2회에 걸쳐 나누었다. 지난 겨울 베프 때는 아직 세상에 없던 책이 여름 베프가 되자 이렇게 사무실에 도착했다니 논문의 탄생과정을 함께 하기라도 한 듯 무지 감동스러웠다. 조금이라도 더 꼭꼭 씹어 소화하지 못하는 것이 아쉬울 따름이었다.

이 논문은 2차, 접대라 불리우는 여성들의 몸-노동이 화폐의 순환을 떠받치고 있는 현실의 밑그림을 그려낸다. 화폐, 담보, 부채관계와 같은 경제와 실증의 단어들로 빼곡히 서술된 '구조적인 억압과 착취'의 밀도 높은 현장감은 뒷골을 서늘하게 할 만치 생생하다. 논문을 읽은 이루머들이 무력감에 휩싸일만도 하다. ㅠㅠ
 

1. 금융화된 성매매 공간과 여성들의 담보화

 
'신용의 민주화'는 가진 거 없는 자에게 선뜻 돈을 준다. 빌렸다 갚을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하는 신용이 제 의미가 무색하게도 갚을 수 있는 능력이 없는, 여성을 비롯한 빈곤한 자들을 채무자로 만드는 까닭이 무엇일까. 인간의 정치적, 윤리적 존재 및 행위의 근본 단위를 이름하여 ‘부채관계’로 소급 재편하기 위함이다.

‘부채관계’는 비노동, 무임금으로 치부된다고 여겨지는 여성으로서의 상품가치를 화폐로 전환하는 실천에 이미 합리성과 도덕성을 부여하고 있다. 자본의 힘은 이자청구와 채권추심의 합법성을 매개로 성매매에 대한 낙인이든 성매매 불법 여부든 개의치 않고 ‘채무자-여성’의 ‘몸-가치’를 투시하고 회수해가지만 아무런 법이나 제도의 제재를 받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권장된다.

그런만큼 여성들의 행위성, 자발성, 자유는 그 힘의 자장 안에 있다는 점이 중요하게 고려되어야 한다. 여성들은 자본을 대리하여 자신의 몸-가치를 계산하고 단기간에 고수익을 낼 수 있는 전략을 실행하는 동시에 그 리스크를 개인의 몫으로 부담하고 있다. 이처럼 여성들은 자신의 몸을 '담보화'해야만 자신의 삶이 가능한 현실을 살고 있다.

담보화의 실천은 필연적으로 성매매 공간 안에서 이루어진다. 성매매 공간은 자원이 없는 여성에게 가능한 최대치의 신용을 주는 한편 그에 뒤따르는 고리를 감당할 수 있는 유일한 노동시장이다. 금융 공간이 성매매를 주요 이익 회수원으로 인정하자 여성에게 주어지는 수많은 대출 자체가 선불금과 동일한 효과를 낳게 되었다. 판례에서는 채권이 성매매를 전제로 했다는 사실보다는 그 채권이 위조되었다는 점이 더 불법적인 것으로 간주된다. 업소의 벌금이나 임금체불, 건강에 유해한 노동환경으로 인해 지출한 병원비로 인해 생활비가 부족하게 된 여성이 대부업체 대출이나 카드빚으로 채무가 쌓여 파산을 한다고 해 보자. 이 여성의 대출은 채무부존재소송에서 누락되어 파산이나 개인회생으로만 변제가 가능하게 되어버린다.

이처럼 성, 즉 남성 성욕의 충족이라는 것은 그만큼 높은 가치로 거래되고 있다는 사실을 이 사회는 광범위하고도 완전하게 신뢰하고 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러한 신용과 대출들이 발생할 수가 있을까. 언니들은 자신이 번 액수를 실제보다 훨씬 높게 잡거나 얼마인지 기억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성매매 공간으로의 진입비용, 성매매 공간에서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드는 비용, 선불금 및 대출 수수료와 원리금을 갚는 과정 전체가 수익에 이미 포함되어 있으나 이를 당연히 자신이 지불해야 하는 비용으로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장기라야 한번 떼어먹으면 그만이지만 성노동은 나이 들거나 병들어 더 이상 그 일을 할 수 없어질 때까지 자발적 재생산이 가능하니 이익 회수에 더 유리하다. 여성들은 추심도 더 쉽다. 가족한테 알리겠다 한마디에 알아서 갚는다. 안갚아도 되는 돈인걸 알아도 끝까지 갚는다. 이토록 '안전한' 선불금 차용증은 ‘증권화’ 과정에서 제2, 제 3의 신용과 대출, 이윤을 겹겹이 발생시키는 밑거름이 된다. 현금없이 룸싸롱 다섯개를 굴리는 사례를 보자.

이러한 사회구조 안에서 여성들은 이성적인 계산에 입각해 ‘매춘화된 성’, 성별불평등의 재생산으로서의 성을 '선택'한다. 그러한 종류의 성이야말로 상품성이 있는, 거래될 수 있는 자신의 유일한 몸-가치로서 합리적이고 합법적인 소유자-시민의 지위를 주기 때문이다. 역으로 이 교환이 이러한 성적 관계를 정당화하면서 이것을 재생산할 수 있는 주체들을 양산해낸다. 이러한 효과를 낳는 대출들이 여성 개인의 채무 형식으로만 인식되면서 성매매 정치학에서 누락되어 왔음을 논문은 분석한다.

2. 이루머들의 대화

2,1 부채의 형성과 조절

이루머들은 업소들이 대형화되는 한편 언니들이 소액의 선불금을 갚지 않고 계속 안고 가는 동향을 이해할 수 있겠다는 이야기를 나눴다. 이 돈을 갚을 필요가 없고 업소에서 갚게도 안 한다. 업소는 여성이 그만큼을 땡기게 한 다음, 그 빚을 안고 가게 한다. 그 빚을 유지하게 하기 위해 더 많은 빚을 지게 한다. 연대보증과 맞보증 등으로 채권을 묶어 한 사람이 손실을 내도 나머지 사람이 메꾸게 한다. 이것이 성매매의 경제 공식이다. 이때 부채가 여성을 통제, 억압한다는 생각이 일반적인데 오히려 통제를 많이 하면 부채가 줄어드는 경향이 있다. 부채와 통제가 정비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삼종 방석집에서 계속 갇혀서 일을 하면 돈이 모아지고 부채가 줄어든다. 이처럼 성매매 경제 안에서 부채는 늘어나기도 하지만 줄어들기도 한다. 부채가 너무 크면 언니들을 다른 업소로 못보낸다. 즉 팔릴 수 없는 몸이 된다. 여성들이 성매매를 해서 성산업에 기생하는 여러 사람들을 먹여 살리게 하기 위해 부채는 유지되고 조절된다는 것이다.

잘 그려진 다혜의 부채 그래프가 이러한 부채의 조절의 역학을 보여준다. 어떤 업소에서도 일억짜리 언니를 받아주지는 않는다. 일억의 부채는 여성들을 성매매에 묶어두면서 상품으로 순환시킨다는 본래의 목적과 의미를 잃어버린다고도 얘기할 수 있겠다. 부채의 연결망은 거미줄처럼 촘촘하게 성매매에 남을 수밖에 없는 여성 인구를 확보하면서 다음, 다음의 여성을 끌어들이는 성격의 것이지 여성들 개인의 씀씀이에 의한 개인적 채무가 아니다. 논문은 부채에 대한 시각을 개인적인 것에서 관계적인 것으로 전환한다. 이렇게 신용의 민주화가 젠더화 되어 있음을 밝힌다.

하지만 막상 언니들이 사기죄로 재판을 받을 때 판사가 이 돈 받아서 어디 썼어요? 물어보면 진짜 이상한데 썼다는 함정… 논문에서는 성매매를 하기 위해서 꼭 다 사야하는거였던 걸로 증명을 하기는 하지만, 본인들도 내가 받아서 내가 썼다고 하는데 어떻게 구조로 책임을 전가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논문의 논리가 실제 어떻게 적용될 수 있을까 하는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2.2 풀링 기법과 부실채권, 추심

한편 ‘풀링’ 기법을 이해하기 위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금융화 이후의 성매매에서 풀링으로 위험요소가 분산된다는 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 사례를 통해서 이해해보려고 했다. 대형 룸에서는 한 업소당 막 백명씩 있는데 열명의 여성이 비슷한 조건으로 열개의 대출을 한다면 관리하는게 쉽고, 상환이 안되서 처리할때도 연대보증을 서고 있으니 다른 금융기관에 팔 때도 쉽고, 받은 기관이 채권을 회수하기도 쉽고, 동시에 추심할 수 있다는 뜻이 아닌지!

뿐만 아니라 일억짜리 차용증이 신용쪽에 십퍼센트, 천만원의 가격에 팔린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은행쪽에서는 천만원 내고 일억을 추심할 수 있으니 이익이지만 업주는 왜 직접 일억을 추심하지 않고 구천의 손실액을 감수하는지에 대한 평소의 의문을 해소해보려고 했다. 그 구천이라는게 상당부분이 선이자, 벌금 등 성매매 운영비용일거라고 추정된다. 관리하는 언니들이 많으니 비용을 계산해서 텄다 싶으면 추심할 시간에 업소를 굴리고 술을 파는게 낫다. 업주들은 진짜 손해를 안보고 사나보다 싶은… 업주 당사자가 추심하는걸 본 적이 없다. 그걸 보면 별로 손해가 아닌 모양이다. 하지만 이걸 돈 주고 산 신용정보회사는 다르니 추심이 고약해진다. 추심업체 피라미드가 재미있었는데 추심행위들이 밑으로 갈수록 많아지고 지저분해진다. 불법추심금지법이 있고 언니들에게 그 법을 언급할때가 많지만 사실 처벌된 판례는 없다. 이런 추심이 이 경제의 필수적 요소라는 반증이다. 학자금 대출을 갚고 있는 이루머들은 지하경제 추심으로 안전한 상품을 대출받을 수 있었다는 점에서 또 한번 우울해지고 말았다.

2.3 업소서열화와 수입서열화

업소 서열화와 수입 서열화가 일치하지 않는다는 부분에 대하여서도 이야기를 나누었다. 텐과 삼종은 기본이 다른데 정말 그런지 이루머들에게 바로 와닿지는 않았다. 순자산이 일정하다고 하면 동의가 될 수는 있을거 같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젊은 여성들의 업소만 보면 어느정도 일정하다 얘기할 수도 있겠는데 지역대와 나이대가 개입하면 또 다른 분석이 나올 수도 있을 것 같다. 어쨌든 정말 경제적 자립을 한 언니들을 본적이 없다는 점에서는 동의가 쉬웠다! 스폰이 경제적 자립은 아니니까? 성매매 시장 안에서 계속 활용되는 한에서만 경제인으로 살 수가 있다는 사실. 언니들이 수중에 들어온 돈이 적다는 설명만이 아니라 왜 돈을 못모으고 왜 못나오는가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용의 착시효과 만으로 명쾌하게 이해되는 것은 아니었다. 앞으로 상담사례를 모아나가면서 좀더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논문에서 제시되는 업소 서열화를 보면 사이즈가 더 중요하지 성적 서비스는 부차적이다. 그걸 보면 성적행위, 기술이라는 상품이 판매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몸을 파는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상품성의 기준이 성적인 서비스가 아니라 몸, 외형으로 결정되니까.

2.4 갚을수 없는 돈, 갚지 않아도 되는 돈

다혜라는 아웃로의 사례가 흥미로웠다. 여자들이 어떻게 돈을 버냐고 되묻는, 눈먼 돈을 집어삼키는 그녀는 날카로운 동물적 직감으로 성매매 공간의 본질을 꿰뚫고 있는 사람이다. 그녀만이 자본의 논리를 거부하는 존재로 나온다. 하지만 그녀 역시 지금 스폰이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점에서는 다른 여성들과 운명을 공유하고 있다.

3. 상담소에서

몹시를 마치고 난 후 상담전화를 받았다. 언니는 수년 전 맞보증 선 동료 언니가 파산할 때 이룸을 알게 되었는데, 그때는 상담원의 파산 권유를 거절했었다고 한다. 자신이 굴릴 수 있는 규모의 부채라고 판단했고 그 부채를 유지해야만 업소에서 계속 일을 하면서 미래의 시간성을 유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후 언니는 그 부채를 유지하는데만 계속해서 새로운 부채를 졌다. 그리고 당장 오늘, 원리금 상환이 불가능한 상황에 맞닥뜨리게 되었다. 수년간 매일, 매주 돌아오는 상환일과 추심이 자살시도를 할 정도의 스트레스였음에도 언니에게는 어떻게 오늘만 막으면 앞으로 해결을 볼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남아있었다.

언니의 사례는 담보화 논문과 이어진다. 소득이냐 부채냐의 이분법적 프레임으로는 언니의 일상을, 이 행위성을 설명할 수 없다. 9월 23일 열린 성판매경험당사자네트워크 뭉치의 토크콘서트에서는 내가 번 돈이 장부에만 기록되어 있고 선불금 빚은 줄어들지 않는 비상식적인 상황에서도 언니들이 쉽게 그만두지 않는 현상에 대한 이야기들이 나왔다. 토크 참가자들과 관객들이 머리를 맞대었지만 언니들을 성산업에 고착화 시키는 구조는 쉽게 말로 정리되지 않았다. 업주와 알선자의 감금, 협박, 세뇌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 언니들은 자신도 설명할 수 없는 자발성으로 성매매에 머무른다.

수화기 속의 언니에게 자신이 더 이상 부채를 갚을 수 없는 사람임이 주위에 알려져 업소에서 맺어온 관계들, 나를 믿고 돈을 빌려준/빌려줄 사람들을 잃게 되는 것은 가족에게까지 추심이 들어가 성매매 사실이 알려지는 것만큼이나 수치스럽고 겪고 싶지 않은 일이다. 언니가 파산과 탈성매매를 미룬 까닭 역시 이 수치심과 공포심 때문이다. 언니는 좋은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게 되었다는 말을 반복했다. 그 좋은 사람들은 하나같이 돈을 빌려준 사람들이었다.

언니들은 선불금이 갚지 않아도 되는 돈이라는 사실을 알더라도 끝까지 돈을 갚으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돈을 떼먹은 사람이 되고 싶지 않기 때문에, 신용을 잃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이 신용이 언니들을 성산업으로 유입시키고 고착시키는 것이다. 이 신용이 언니들의 부채관계를 형성한다. 어떤 힘이 언니들에게 이러한 자발성을 주는가? 토크 콘서트에서 한 관객은 자신이 성매매가 나에게 적합한 노동환경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고수익으로 인해 선택을 고민하게 되는 상황 자체가 폭력으로 다가왔다고 이야기했다. 여성들에게 이러한 선택이 주어지는 상황 자체에 대한 분석이 없이는 성매매 구조를 파악할 수 없다는 반증이다.

나, 를 지탱하는 핵심이 나의 신용이 되었을 때 그 신용을 포기하는 것은 삶이 무너지는 것과 같다. 여성들에게 내가 나를 이 신용과 동일시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하고 이 신용에서 비롯한 성매매 경험을 이야기할 수 있는 인식틀을 주는 것이 이 논문이다. 이 인식틀은 언니들의 경험, 이야기가 성매매를 새로운 사회적 현실로 구성할 수 있도록 매개가 되어준다. 여성들이 자신의 행위성으로 성매매에 발을 들여놓고 머무른다는 사실과, 이것이 착취이자 억압이라는 발화를 동시에 긍정하면서 어떻게 설득력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이 설득력을 만들어내는 것이 여성주의적 의미투쟁이라고 생각된다.

자활의 문제는 이 신용을 재생산한다는데 있다. 이 사회가 허락하는 주체성과 자유가 신용일진데, 그리고 여성들에게는 이 신용과 자유가 성매매를 전제로 할 것일진데 파산, 개인회생, 워크아웃, 채무부존재소송을 통한 부채 탕감이 반성매매의 근본적인 대책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일이 주 업무인 상담소의 입장에서는 난감한 상황이다…

4. 여성주의적 의미투쟁?!

여성운동이 언니들에게 탈성 자활에의 성공, 신용 이외의 새로운 주체성, 새로운 삶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제도화된 국내 여성운동이 금융 자본주의 사회를 향한 비판력을 상실한 것일 수 있다는 논문의 일갈! 어디서 이 힘을 길어올 것인가? 젠더권력관계는 금융화로의 신변종을 겪고 있다. 여성이라는 성적 타자의 몸과 섹슈얼리티가 화폐제조기가 되었다. 이 구조에 개입하지 않는 이상 현재의 반성매매 정책을 비롯한 여성운동은 헛발질이 될 수 있다… 아아…

캐슬린 배리는 계급으로서의 여성을, 이진경은 죽음정치적노동에 포섭된 자들로서의 여성을 이야기했다. 여성들이 성매매를 하지 않으면 화폐가 금융권으로 흘러 들어가지 않는다. 금융은 어떤 식으로든 여성들이 성매매를 하게 만들것이다. 그것은 자동차, 주택담보대출이고 성형대출이며 풀옵션원룸, 강남에서 텐으로 살기 위해서라면 필수적으로 지불해야 하는 비용들에 포함되어 있다. 이 비용이 없는 성매매를 상상하는 것은 최소한 그 비용을 지불할 수 밖에 없는 여성들을 위한 일은 아니다. 쉽게 버는 돈이 나쁜 것이 아니라는 말도, 성매매가 쉽게 돈버는 일이 아니라는 말도 충분하지는 않다. 왜 여성들이 이 돈을 벌어야 하는가? 이룸의 노년여성 인터뷰에서 여성들은 이 돈을 가족 재생산에 투입했다. 논문에서는 가족과 친구에게 무언가 해주기 위해, 금융 신자유주의 사회가 제시하는 자유롭고 독립적인 소유자로서의 삶을 사는데 투입했다. 이 삶에 개입하지 않으면서 성매매라는 단일 이슈에만 개입하고 성매매를 제거하는데만 집중하는 여성운동은 비판적 실천의 힘을 상실한다.

이런 의미에서 가루가 앰네스티 논평에서 앰네스티 정책을 포주의 언어라고 지적하는 것은 유효하다. 전면 비범죄화는 이러한 삶을 용인하는 실천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성매매가 합법화되면 성노동자 대상으로 보험상품이 많이 개발되지 않을까? 이런게 규제로 다 될까? 자본가들 입장에서는 성노동자를 인정하는게 이익이 되므로 그렇게 될텐데 빈틈을 알리고 작업을 하는 자체가 성노동을 인정하는 것으로 여겨지는게 답답하다. 우린 뭘 할 수 있을까?

 
5. 나가며

성매매 경험을 새로운 사회적 현실로 재편하는 작업으로서 이 논문은 큰 의미가 있다. 이러한 이야기가 더 많이 알려지고 읽히는데 이룸도 보탬이 되었으면 좋겠고, 이룸의 활동에 녹여내었으면 좋겠다. 이룸에서 김주희님과 논문읽기 자리를 마련해보자는 희망찬 계획으로 몹시를 마무리하였다! 

활동이야기

[몹시] <영자의 전성시대>, 도대체 누구의 전성시대?

몹시 후기  

영자의 전성시대’, 도대체 누구의 전성시대?

 

가루


(스포일러 매우 많습니다)


 

몹시 세미나에서 ‘영자의 전성시대’를 함께 보기로 했다는 말을 듣고 의아했다. 나는 이 영화가 성매매에 관한 것인지 모르고 ‘얄개 시리즈’처럼 철없는 10대의 연애담에 관한 옛날 영화라고 생각해왔기 때문이다. ‘전성시대’라는 단어가 그런 혼란을 가져왔던 것 같다. 성매매하면서 고생한 시절을 ‘전성시대’라고 부르는 것은 아무래도 좀 이상하지 않은가. ‘이룸’에서 노년 성매매 연구 관련해서 이 영화를 본다는 것을 알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제목 때문에 이 영화가 그다지 무겁지 않을 것이라고 기대했던 것 같다. ‘성매매를 선정적인 소재로 활용했겠지’ 정도로 생각했다. 이 영화가 굉장히 유명한 영화이고 개봉되었던 1975년 당시에 엄청난 흥행을 했던 작품이기에 더욱 그런 기대를 했던 것 같다. ‘무거운 영화면 흥행을 했겠어? 성매매 여성의 암울한 이야기를 사람들이 많이 보려고 했겠어?’
 
나의 이러한 기대는 영화 시작 10분 만에 깨졌다. 시골 가난한 집의 장녀로 밑에 줄줄이 동생을 달고 있던 영자가 도시로 올라와 돈을 많이 벌어 집에 보탬이 되겠다는 포부를 품고 한 부잣집의 식모 일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그 집 아들로부터 강간을 당하고 쫓겨난다. 아니, 이건 너무 리얼하잖아? 그러나 영자의 고난은 이제 막 시작된 것이다. 공장에서 봉제일을 해보지만 열악한 작업 환경에서 장시간의 고된 노동을 한 달간 견디고 월급을 받아 손에 쥐었을 때, 영자는 피식 웃음을 터뜨린다. 그리고는 곧 “하하하” 배꼽을 잡고 방바닥을 구르며 히스테리컬하게 웃는다. 영자에게 잘 곳을 제공해 주던 고향 언니는 술집을 다니고 있었고 영자에게 줄곧 “술집에서 일하라”고 조언을 했던 터라, 이 언니도 영자와 함께 배꼽을 잡고 웃는다. 영화는 이 상황의 희극성을 놓치지 않고 극적으로 잡아냈다. 식모살이를 해도 어차피 성폭력을 당해서 몸 버리고, 공장 일을 하면 건강 상하면서 죽어라고 일 해봤자 버는 돈은 입에 겨우 풀칠이나 할 정도이지 시골에 돈을 보내줄 수도 없는데, 몸 귀하게 여겨 뭐하겠다고 술집 일을 마다하고 이 고생을 했나? 술집에서 일하면 똑같이 몸은 버리겠지만 그래도 방이라도 하나 얻고 집에 적은 돈이라도 좀 부쳐줄 수 있었을 텐데. 이 돈을 받겠다고 이 일을 하는 건 말이 안 된다! 이런 의미의 자조적인 웃음이 아니었을까? 

 

 

그래서 영자는 술집에 발을 들여놓게 된다. 그러나 잘 못 마시는 술을 마셔가며 남자손님 비위를 맞추는 일은 쉽지 않았고, 영자는 마음을 다잡고 택시운전기사가 되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일단 버스차장으로 취업을 한다. 버스차장 일은 엄청 위험하다. 꽉 찬 버스에 승객들을 밀어넣고, 달리는 버스의 열린 차 문에 매달려 앞뒤 교통 상황을 파악한다. “오라이! 오라이!”를 외치며 열심히 일하던 영자는 어느 날 열려 있는 차 문에 노출된 팔이 지나가던 차량에 부딪히면서 팔을 잃는 사고를 당한다. 육체노동만이 살 길이었던 영자는 절망한다. 그도 그럴 것이, 이때까지도 영자는 몸을 누일 방 한 칸 마련하지 못한 상태였다. 그런데 팔을 잃었으니 식모 일도, 공장 일도, 버스차장 일도, 택시기사 일도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장애인에 대한 낙인이 심한 사회에서 도시에서 기댈 사람 하나 없던 영자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 삶의 희망을 잃어버린 영자는 정신적으로 피폐해진다. 술에 의존하기 시작하고, 사고 보상금으로 받은 거액은 고향에 다 보낸다. 난 영자가 죽어 버리려나 싶었다. 아직도 지낼 곳이 없었던 영자는 어느 날 잘 곳이 없을 때 종종 가던 여인숙에 간다. 이 여인숙은 전에도 영자가 왔을 때 주인이 “쯧쯧쯧. 혼자 온 남자손님 하나 있는데 연결해줄까?”라고 선심 쓰듯 성매매를 제안했던 곳이다. 추운 겨울 날 몸 누일 곳이 없어 불구가 된 몸으로 이 여인숙에 온 영자는 지친 목소리로 “남자 손님 방에 넣어주세요. 돈 안 주셔도 돼요. 안아주시기만 하면 돼요.”라고 주인에게 말한다. 나는 이 장면에서 영자의 마음에 너무나 공감이 갔다. 의지할 사람 없는 큰 도시에서 추운 겨울에 불구의 몸으로 몸 누일 곳도 없는 신세. 따뜻한 방에서 체온을 나누어줄 사람이라면 그 사람이 성구매자든 누구든 무슨 상관이 있었겠는가. 
 
이렇게 영자는 성매매 일을 하게 된다. 결국. 이 영화는 110분인데 영화 시작하고 반도 지나지 않아서 영자는 이미 성매매 일을 하고 있다. 여기까지도 너무 끔찍한데 나머지 한 시간 동안 도대체 무슨 일이 더 일어나려는 거지? 우리는 이구동성으로 “십 분 쉬고 봅시다! 제발!” 이라고 외쳤다. 도대체 영자의 전성시대는 언제 나오나?
 
영화의 후반부도 제목처럼 발랄하지는 않다. 영화는 영자를 짝사랑하는 순박한 청년인 창수의 시각에서 전개되는데, 그는 영자를 매우 좋아하지만 월남전에 갔다 온 후 변변한 일자리가 없어 목욕탕에서 세신사로 일하기 때문에 집한 칸 마련할 돈도 없고, 그래서 영자에게 선뜻 결혼하자는 이야기를 하지 못한다. 영자의 성매매업소로 가끔 찾아가 돈을 지불하고 밤을 보내며 영자가 쉴 시간을 줄 따름이다. 영자는 점점 더 몸과 마음이 망가져간다. 성병에 걸리고, 술에 의존해서 생활한다. 창수가 영자에 대한 자신의 진심을 고백하면서 둘이 잘 되는가 싶더니, “영자는 플러스 1이 되는 사람이 아니라 마이너스 1이 되는 사람”이라는 창수 지인의 충고(?)를 들은 영자가 창수를 떠나고야 만다. 
 
영자는 왜 마이너스 1인 여자가 된 것일까. 젊은 빈곤 여성에게 안전한(성폭력으로부터, 산업재해로부터) 노동환경과 적정 보수가 제공되는 일자리가 없었던 당시 시대상황 때문일까. 아니면 자기는 몸 누일 방 한 칸 없는 상황에서도 집에 돈 먼저 부쳐주며 장녀의 의무를 다하려 한 영자의 판단착오 때문일까. 아니면 술을 마시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도록 만드는 성매매 일의 특성 때문일까. 이 영화의 포스터에 적힌 문구에서는 영자를 “우리가 만난 여자. 우리가 사랑한 여자. 우리가 버린 여자”라고 표현한다. 그래, 우리가 버렸지. 당시 붕괴되어가는 농촌에서 도시로 올라와 집안을 일으켜 세우기 위해, 또는 살아남기 위해 온몸으로 버텼던 그 수많은 여공들, 성매매 여성들을 우리는 버렸다. ‘시대의 한계’라며, 개발과 성장의 논리 아래 부차시했던 다른 수많은 소수자들의 인권과 함께 스스로 알아서 살아남도록 버려버렸다. 
 
영자가 그래도 살아남기를, 그래서 그 시대가 얼마나 비참했는지를, 말이 안 되었었는지를 이 시대에 이야기해줄 수 있기를 바랬다. (영화 결말에 대한 스포일러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에서 보여주는 영자의 마지막 모습은 뜬금없게 느껴졌다. 자신처럼 신체 장애를 가진 남성과 결혼하여 딸을 낳고 허름한 빈민촌에서나마 건강한 모습으로 열심히 살아가는… 집창촌에서의 원인 모를 화재로 사망하는 원작 소설의 결말과는 매우 다른… 원작의 결말이 더 사실성있게 다가오는 것은 나의 편견일까? 내가 너무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일까? 
 
영화는 기대보다는 훨씬 당시 시대 상황과 성매매 여성의 처지를 구체적으로, 사실적으로 보여주었다. ‘전성시대’라는 제목은 아무래도 역설적인 의도였던 것 같다. 아니면, 영자같은 사람들을 저버린, 개발과 성장에 동참하여 계층 상승을 이루고 눈부신 경제 성장을 한 나머지 우리들의 전성시대였다는 의미일까? 
 
활동이야기

[몹시] <한국인 ‘군 위안부’의 주체성 재현>과 <고령 성매매여성들의 생애사 연구: 가족, 일, 나이듦의 의미를 중심으로>를 읽었습니다.

 
노년 성판매 여성과의 인터뷰를 더 알차게 진행하기 위한 몹시.
이루머들은 <한국인 ‘군 위안부’의 주체성 재현>이라는 양현아님의 글과 <고령 성매매여성들의 생애사 연구: 가족, 일, 나이듦의 의미를 중심으로>라는 신그리나님의 논문을 열심히 읽었습니다.
 
 
양현아님의 글에서 군위안부 생존자들이 스스로 ‘정조관념’이라는 한국사회의 성규범을 내면화하고 있기도 하나 이것에 수동적으로 끌려 다니지만은 않았으며, 이들의 복잡하고 다양한 생애의 흐름을 ‘정조관념’으로 틀 짓고 읽는 것은 위험할 수 있다는 부분이 인상 깊었습니다. 노년 성판매 여성의 말하기가 내면화 된 사회의 성적 규범에 기대 자신의 경험을 표현하는 것으로만 들리더라도 말하기의 빈 공간을 채우는 주체성, 복잡하고 다양한 흐름을 포착하는 일이 중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참.. 어렵겠더라고요.
 
그리고 ‘생존자의 재현은 군 위안부 제도 속에서 피해자 여성들을 자리매김하는 것이고 그것은 다시 한국의 역사 속에 군위안부 제도를 자리매김하는 작업에 해당한다는 점에서 ’생존자가 누구인가‘는 역사의 핵심이다.’ 라는 문장을 읽으며 드러나지 않던 목소리를 드러내는 작업의 의미를 재차 되새길 수 있었습니다.
 
신그리나님의 논문은 이루머들이 하려는 작업과 유사한 목적과 질문을 갖고 있어서(우왕) 반가웠습니다. 논문의 서론을 똑 떼서 인용하고 싶을 만큼 ^^.. 연구윤리와 방법론적 고려를 읽으며 이루머들이 인터뷰하면서 염두에 둘 점을 정리할 수 있었고요.
이야기된 생애를 중심으로 개별생애를 이해하는 장과 살아온 생애 안에 드러나지 않은 이면의 이야기를 비교분석하는 장이 구분되어 있는 점도 흥미로웠습니다. 말하기의 빈 공간들을 촘촘히 어루만진 글 덕분에 고령 성매매 여성의 생애가 가족, 일, 젠더-나이체제, 생애전망과 어떻게 교차하는지 쉽게 따라가며 읽을 수 있었어요.
 
‘성매매 공간 내부의 통제력이 향상될수록 외부와의 접촉이 줄어든다는 점은 종사기간이 길수록 사회적 고립감이 깊어진다’는 부분에 공감했습니다. 연구 참여자가 생활하는 성매매 공간 내∙외부에서의 협상력, 통제력, 주체성을 포괄적으로 보아야만 연구참여자의 경험을 총체적으로 볼 수 있겠구나 싶었습니다.
 
두 글을 읽고 이렇게 꼭 필요하고 더 이야기되어야 하는 경험들을 논문보다는 가벼운 부피로, 그러나 여전한 무게를 갖고 알려내는 작업이 바로 우리의 노년성매매여성인터뷰가 되어야 한다!!!!고 … 다짐.. 아니 그냥 그런 욕심.. 아니 그냥 그런 생각..을 해보면서 몹시를 마무리했습니다. 

활동이야기

[몹시]여성영화제 <우리삶의이야기들> 보고왔어요~

더위가 기승을 부리기 시작하던 유월의 첫 날, 이루머들은 상콤하게 오전회의를 마치고 여성영화제로 향했다. 일찌감치 신촌에 도착해서 맛있는 점심을 먹고, 유명하다는 ‘호00’ 팥빙수집에 가서 팥빙수도 한 판 때리고 나니 어느새 영화시간! 우리의 선택은 케냐에 있는 예술 집단 ‘네스트’의 창작 작품인 <우리 삶의 이야기들> 이었다. 2015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테디심사위원상과 파노라마 관객상을 받았다는 정보에 혹하기도 했고, 케냐 영화를 볼 기회가 또 언제 있을까 싶은 마음도 있었던 것 같다.
 

영화는 참여한 이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5개의 에피소드로 이루어져 있었다
. 학교에서 동성애를 이유로 정학을 받고는 호기심에 남자와 섹스를 해봤다가 관계가 틀어지고 마는 레즈비언 커플 이야기, 뒷골목에 있는 게이 바를 찾아갔다가 친구에게 발각되어서 도망가는 게이의 이야기, 농장에서 함께 일하는 베프를 사랑하지만 그가 여자 애인와 함께 하는 모습을 지켜봐야 하는 한 게이의 이야기…첫 세 에피소드를 보면서는 한국의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상황과 이야기들에 한숨이 나오기도 하고, 워낙 익숙한 이야기들인 탓에 살짝 지루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런데 중간 중간 삽입되는 영화 음악과 이미지들이 흥미를 돋궈주었다. 게이바 출입을 들켜 친구에게 구타를 당하다가 도망가는 장면에서는 쿵쿵쿵 박자가 강한 음악이 함께 흘렀는데 평소 내가 들을 수 있는 음악과 매우 달랐다. 아마도 북소리를 베이스로 하는 아프리카 음악(아프리카로 통칭되는 것을 싫어한다고 하지만 달리 아는 정보가 일천하여ㅠㅠ)일 것 같았는데, 심장을 울리는 그 소리가 너무 좋았다. 영화 중간 중간에 들어간 ‘아프리카 음악’ 들과 케냐의 목화농장, 숲, 들판 등의 장면들이 신선하고 좋아서, ‘아 이런 게 다른 문화권을 접하는 묘미이구나!’ 생각했다.
 
네 번째 에피소드는 젠더, 인권 등을 공부하는 케냐 게이(^^;)가 포럼에 참석하기 위해 영국에 갔다가 백인 성판매 남성과 성매매를 하는 이야기인데, 처음엔 성구매자와 성판매자로 만났다가 대화 끝에 로맨스로 이어지는 것 같은 암시를 하면서 끝이 났다. 그걸 보고 ‘성매매를 너무 낭만화 한 것 아니야?’ 라며 같이 본 친구와 성토를 하기도 했다. 평소 이룸에서 ‘소수자 성매매’ 사업을 했다고는 하지만 흑인 게이 성구매자와 백인 성판매자가 나오는 씬은 기존에 내가 갖고 있던 상상력의 범위를 넘어선 것이었다. 그것만으로도 이 영화를 본 이유가 충분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했다. 
 
개인적으로는 마지막 에피소드가 가장 재밌었다. 정부에서 ‘동성애는 아프리카의 것이 아니다’라며 이웃에서 동성애를 신고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발표를 하는 뉴스를 보고는 잠들지 못하는 레즈비언 커플의 이야기이다. 그 중 한 명은 뒷걸음으로 마을에 있는 영험한 나무를 7바퀴 돌면 남자가 된다는 설화를 떠올리며, 정말 자신이 그 나무를 7바퀴 돌아서 남자가 되면 모든 게 해결될 것 같다는 상상을 하며 잠을 뒤척인다. 한국에도 지역마다 잊혀져가는 설화들이 참 많다는데, 성별이 바뀌는 내용이나 동성애에 관련된 것도 하나쯤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이런 상상력을 자극하는 내용은 언제나 흥미롭다.
 
책을 읽고 열띤(?) 토론을 하는 ‘몹시’도 좋지만, 간만에 용두동에서 벗어나 바깥바람을 쐬는 이런 ‘몹시’도 좋다. 영화제 곳곳에서 반가운 얼굴의 페미 언니들을 마주치는 것도 좋았고, 이루머들과 함께 퀴어영화를 보는 것도 좋았다. 내년에도 여성영화제 기간에도 ‘몹시’의 외도가 계속되길 바라면서! 이번 ‘몹시’ 후기 끝~~
 
<우리 삶의 이야기들> 영화가 궁금하신 분은~
http://www.siwff.or.kr/wffis2015/program/program_view.php?sang_no=1789&code=213&cook=2307195549b6e72da0f20150506033831


활동이야기

[몹시] 노년성판매경험여성을 만나자 – 구술생애사 논문들과 <15소녀표류기>(최현숙)

1.

지난 4월 몹시와 5월 몹시는 시리즈물입니다. 주제는…….. 노년!!! 이룸은 요즘 노년 여성들을 만날 궁리를 하고 있습니다. 그 시작은 매우 사사로운 것이었습니다. 신년 워크샵에서 ‘나는 갑자기 할무니들을 만나고 싶어졌어. 노년?’이라고 툭 뱉은 것이 화근이 되어(제가 왜 그랬을까요…) ‘노년 여성 인터뷰 사업’이 뚝딱 기획되고 말았습니다.
‘우왕 할무니 조아, 이야기 재밌쪙’ 했던 처음 마음과는 달리.. 아직도 노년 사업은 번지르르한 이름하나 얻지 못하고 그저 ‘노년 노년’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지못미…..)

4월, 5월 몹시는 이 노년 사업을 위해 기획되었습니다! 사업과 사업간 MOU랄까요, 혹은 노년 아래의 산하 사업으로서 몹시랄까요. 여튼 여성들을 만날꺼고, 이야기를 듣고 싶으니까 그럼 구술사 작업을 하는 것일까?? 근데………………….. 그럼 구술사가 뭐징?-0- 알아보잣! 해서 만들어진 뽑아본 자료들입니다.

보이지 않는 ‘경계’에서 – 용산 성매매 집결지 중‧노년층 여성의 이주체험을 중심으로(원미혜, )
‘과정’으로서의 구술사, 긴장과 도전의 여정(이나영, 2012)
여성주의 연구에서의 구술자료 재구성 – 탈성매매 여성의 생애체험과 서사구조에 대한 사례연구를 중심으로(이희영, 2006)

얘네들을 함께 읽는다고 뾰로롱 뭔가 잘 하게 되는 건 아니겠지만.. 그래도 대충 구술사가 뭔지 맛은 본 것 같습니다.

2.

그리고 4월에 읽은 구술생애사 방법론에 관한 논문들에 이어서 5월에는 최현숙씨의 <15소녀표류기> 1,2권을 읽었어요.

표류기의 여행기/이야기들은 자못 거칠고 날것이어서, 소설이나 영화를 읽을 때의 미끈한 쾌락과는 다른 감각들을 던져 줍니다. 표류기의 작가는 듣는 자이며 받아쓰는 자, 번역하는 자입니다. 그는 작품의 미학이 아니라 ‘할머니’들이 전시하고 구술하는 늙고 낡은 육체와 언어의 시간성, 그 혼란스러운 법칙을 따르고자 합니다. 이렇게 구술자와 청자는 이 이야기만을 위한 한 쌍의 임시적이고 즉흥적인 기관을 형성합니다. 이 공동의 이야기꾼들은 익숙했던 서사들을 비껴나가며 몸과 자아로 놀이를 합니다. “왜 하필 그런 내용을 그런 방식으로 말하는”가는 그녀들 고유의 권한이자 역량으로 그녀들에게 돌려주어집니다.

독자는 이렇게 존재하게 된 이야기의 공간 안에서 자신의 몸이 겪는 느낌들, 감정들과 대면합니다. 다른 형식은 다른 주체를 요청하기에 독자는 세상에서 가장 비루한 노파의 모습을 한 예언자, 샤먼, 마녀를 해석하는 방법을 스스로 훈련해 나가야 합니다. “구술 자체가 정치적 에너지이자 연대의 제안”이기에, “듣고 쓴 사람과 읽는 사람들의 구체적인 실천”을 고민하게 됩니다.

이야기하는, 이야기된 할머니들은 때로 노동 그 자체가 됩니다. 페이지들은 빼곡히 쌔가 빠지는 노동의 기록으로 채워집니다. 여성은 노동으로만 만들어진 정체성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입니다. 여성은 관계로 수렴해버리는, 관계로 결정되는 오직 타자를 향한 헌신에의 욕망만을 지닌 존재로 자신을 재현하기도 합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그녀들은 반짝이는 것에 홀려 길을 잘못 들기도 하고, 거짓 이력을 만들어 내며, 자신을 정당화하기 위해 말을 꾸며냅니다. 이들의 “노동과 살림과 놀이와 투쟁”을 목격하는 일은 참 체력을 요하는 일이었습니다. 같이 숨차하고 같이 버거워하다간 에라 모르겠다 삶 그 자체를 인정해버리곤 하면서요.

서사/내러티브는 이야기하는 존재, 이야기되는 존재로서의 인간을 나타내는 오랜 흔적일 것입니다. 우리는 서로에 관해 이야기하고 이야기되면서, 그렇게 서로를 이야기 속으로 짜 넣어가면서 존재합니다. 우리가 서로를 부르는 이름은 이야기가 담긴 항아리 위에 붙여진 라벨 같은 것이 아닐까요? 인간은 이야기의 그물코, 모자이크 안에서 그의 이름으로 언급되고 회자되고 기억될 때 그저 흙덩어리가 아니라 일말의 깊이를 유지하고 있는 입체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처음 김미숙이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 그 이름은 그냥 납작합니다. 그녀의 주름을 본다 할지라도 아무도 그것에 관해 말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습니다. 그녀의 이름이 더 이상 어디에서도 어떤 방식으로도 인용되거나 참조되지 않을 때 그 삶은 윤회도 부활도 없이 사라질 것입니다. 하지만 김미숙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김미숙이라는 이름은 한 개별자의 총체를 상기시킬 수 있는 마법의 단어로 변모합니다.

내러티브의 어원은 말하기이고, 이해하기라고 합니다. 왜 인간은 ‘순서대로’ 말할까요? 왜 인간은 단 한 순간 모든 생을 모든 곳에서 동시에 살거나 알거나 할 수 없고, ‘차례대로’ 자신의 가능한 모습들을 하나씩 하나씩 경험할까요? 그 이유는 죽을 때까지 알 수 없을 것이고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이유일 것입니다. 다만 이러한 인간의 시간적 조건은 노인을 중요한 인물로 만듭니다. 노인은 곧 완전히 펼쳐져 펼쳐짐이 중단될 한계까지 아슬하게, 그리고 돌이킬 수 없이 펼쳐진 사람입니다. “팔순의 몸을 빌려 입은 다섯 살배기 여자아이” 라는 표현처럼 이야기하는 동안 그의 몸은 생의 어떤 순간으로도 회귀할 수 있습니다. 대화는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아주 오래된 의식이 아닐까요.

이렇게 15소녀표류기를 읽으며 앞으로 만나게 될 할머니들이 몹시 기다려지게 되었습니다!
최현숙 씨가 “(가난한) 사람은 무엇으로 행복해지는가?”를 탐구하며 여성들을 만나셨듯이, 이룸의 탐구를 해 나가보겠습니다!

활동이야기

[몹시] 이태원, TG, 성매매 _별

올해 첫 번째 몹시에서는, 지난해 소수자 성매매 보고서의 기억을 가지고 이태원 아웃리치/별별신문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읽어보고 싶어진 글들을 나누었습니다. 막달레나의 집 드랍인센터 이태원 사랑방을 경유해서 생산된 텍스트들을 중심으로, 성매매 그리고 규범성 및 공간성에 관한 논의를 엮어나가는데 아이디어를 던져주는 글들을 한데 모아 보았습니다.

루인 님의 캠프 트랜스: 이태원 지역 트랜스젠더의 역사 추적하기”, 막달레나 공동체 현장상담센터에서 제작한 <이태원의 수상한 사랑방><동네사람>, 그리고 <성의 정치 성의 권리>에 수록된 한채윤 님의 엮어서 다시 생각하기: 동성애, 성매매, 에이즈를 읽었답니다.

이룸의 소수자 성매매 보고서에서는 이성애/이원젠더 규범으로 성매매 현장을 인식할 때 성소수자 성매매가 아예 드러나지 않거나 규범에 끼워 맞춰져 해석되는 현상을 지적합니다. 보고서는 성매매에 특정한 한계를 지어 기존의 규범을 위태롭게 하지 않는 선에서 수용하고 재생산하려는 움직임에 저항하면서 성매매 현장과 만나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성애자 비트랜스 여성이라는 강요된, 고정된 젠더와 섹슈얼리티만으로 다종다양한 성판매가 경험되지 않는다는 것을 적시하려고 했습니다. 또한 젠더와 섹슈얼리티를 구성하며 살아가는 경험 안에는 이미 성적인 피해, 착취, 거래, 교환, 노동, 자본, 친밀성 등이 착종되어 있음을, 역으로 그 착종된 양상 그 자체에서 유동하는 몸과 정체성을 읽어내야 함을 요구하려고 했습니다. 이것이 여성주의적인 성매매 담론과 실천의 일환이라고 여겼기 때문일 것입니다.

캠프 트랜스에서는 이태원이라는 공간, 그리고 그 공간 안에서 가능했던 관계들을 발명/복원/재창조하고자 시도합니다. 그렇게 이태원은 폐쇄되어야 하는 기지촌/집결지 또는 외국에서 들어온, 유교랜드의 미풍양속을 해치는 풍속들이 고여 있는 이상한 동네로 해석되는 것 이외의 새로운 역사를 확보합니다. 그리고 이태원은 트랜스젠더라는 정체성과 치환 가능한 은유가 됩니다. 의료적, 법적으로 규정되는 좁은 의미의 트랜스젠더는 여성이나 남성 어느 하나로 분류되어야만 하고, 그 스스로 분류되기를 욕망하는 존재로 그려집니다. 그러나 캠프 트랜스는 규범적인 인식체계 안팎을 끊임없이 배반하고 탈출하는 것들이 우리에게 주어져있음을, 우리가 그것들을 경험할 역량을 지닌 존재임을 상기시킵니다. 캠프 트랜스는 규범의 재생산에 봉사하는 기관이면서 동시에 규범을 위협하는 질병 또는 장애로 가시화되지만 실상 비규범적 존재들이라는 등재되지 않은 종들이 거주해온 비무장지대와도 같은 역사성과 잠재성의 영토였더라는 이야기를 써내려갑니다.

이처럼 하나의 정황, 풍경을 바라보며 쉬이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것들의 편에서 우리는 부재하는 것이 아니라 누락된 것이라고 발화하는 일은 언제 다시 읽어도 굉장한 에너지를 느끼게 하는 것 같습니다. 이 저항이 막달레나의 집 현장상담센터가 현장활동의 형식으로 이태원 지역에 다가간 기록에서 역시도 변주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태원이라는 공간이 불경기와 쇠락의 흐름에 놓여있는 상황에서 그 공간의 용도가 다 했으니 이제는 폐기처분하자는 것이 아니라 이전의 삶을 계승하는 새로운 삶의 공간으로 전이시켜나가겠다는 움직임의 기록이었죠. 공간과 관계가 축적해온 자원들이 분명히 있을 것이라는 신뢰, 그것을 발굴하고 연계하며 유통시키는 것이 의미 있는 결과를 낳을 수 있을 것이라는 신뢰를 함께 쌓아 나가자는 이야기로 들려왔습니다.

이러한 이야기들은 한편 공간이나 관계가 아닌 개인을 중심으로 하는 상담소의 구조를 떠올리게 했습니다. 상담소의 형식상 내담자들은 개인으로 분절될 수밖에 없지만, 이들의 삶이 요청하는 것은 개인의 경제적, 의료적, 법적, 정서적 회복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내담자들이 진정 필요로 하는 것은 성판매경험을 포함한 나 자신의 시간이 선택이나 비밀, 한때의 실수로 조각나고 봉인되고 삭제되지 않는 것, 그 자체로 통합된 사회적 삶으로 동등하게 평가받고 이해되며 회복해나가는 것일테니까요. 그러기 위해서 엮어서 다시 생각하기에서 시도한 바와 같이 낙인을 만들어내는 전략에 제 발로 포섭되어버리지 않는 운동이 필요한 것이겠죠.

이러한 논의들은 굉장히 추상적으로 느껴지기도 합니다. 게다가 이성애/이원젠더에 도전하지 않고도 어떻게든 성매매를 언어에 기입할 수 있기는 한데, 그렇다면 왜 이 시도를 해야 할까, 아니 더 정확히 하자면 여성운동의 공고한 이분법과 제도화 내부에서 어떻게 이 시도를 설득할 수 있을까 하는 물음이 남습니다. 소수자 성매매를 성매매의 특수한 사례로 다루지 않고, 성매매 담론 전체가 소수자성, 타자성, 비규범성으로 좀 더 정향할 수 있는 방식은 어떤 것일까요. 루인 님은 다른 글에서 젠더폭력을 젠더화하는 폭력으로 바라보기를 제안하는데요. 정체성을 향한 단 한 가지 해석만을 체화하도록 하는 폭력이라는 정의가 아직은 아리송하지만 이 짧은 제안이 어쩌면 실마리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하여 이룸은 왜 트랜스젠더 언니들을 만나고 싶었던 걸까요? 소수자 성매매에서 트랜스젠더 언니들을 인터뷰하면서 즐겁고 재미있었던 기억으로부터 그 서사를 더 듣고 싶다는 마음, 정보전달자/연계자/지원자로서 언니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 싶다는 마음, TG 성매매에서 성매매와 성적 실천의 경계에 관해 고민해보고 싶은 마음 등등!!! 우리의 마음을 하나씩 꺼내어보고 분명하게 해보는 (아니 더 혼란스러워지는?!) 시간이었습니다. 정말이지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는 품이 많이 든다는 깨달음을 얻고, 앞서 그런 작업을 한 사람들을 기억하고 이룸의 맥락으로 끌어들여 소화하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다음 몹시도 몹시 기다려집니다~!

활동이야기

[몹시]우리들의 삶은 동사다

우리들의 삶은 동사다


141128 몹시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설 열림터에서 발간한 책입니다. 친족성폭력생존자들의 이야기인데요, 이 책의 출간기념회이자 열림터 20주년 자리에도 이룸은 함께했었습니다. 저희로서는 낯설지가 않은 책이죠.(왠일인지~ 낯설지가 않아요~♬)

책은 총 6장으로 이뤄져있고 각 장마다 쉼터, 고소 재판과정, 자립, 후유증, 엄마, 가해자 등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이루머 각자의 마음에 가장 와닿은 장은 조금씩 달랐습니다만 성매매피해여성을 지원하는 입장으로, 아이를 양육하는 엄마로, 생존자를 지지하는, 뭐든 간에 다들 절절한 마음으로 책을 읽었습니다.

‘아버지’를 고소하는 과정은 순탄치 않았습니다. 다른 가족구성원들로부터 ‘가족인데 용서해라’는 압박을 받기도 하고, 형사사법절차 내내 정말 피해를 당했고 ‘성폭력을 유발’한 잘못이 없다는 사실을 증명해야 합니다. 어버이날 카드에 “세상에서 가장 좋은 사람, 사랑하는 아빠에게”라고 쓴 내용이나 다정하게 보낸 카톡 메시지가 ‘장기간 성폭행을 당한 피해자가 취할 수 있는 태도가 아니’라며 성폭력이 없었다는 증거물이 되기도 합니다.
생계 부양자인 가해자의 보호에 기대어 살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자기 삶을 지키려고 한 행동들이 법정에 오르자 ‘피해자다움’에서 벗어나는 것으로 여겨지는 것이죠.
 
고소하는 과정이 쉽지는 않지만 많은 힘을 얻게 됩니다. 한편 궁금해졌습니다. 모든 고소 건이 승소로 이어지지는 않을 텐데 가해자가 처벌받지 않는 것으로 결론이 났을 때는 그 분노와 억울함을 어떻게 추스르는지 말입니다. 법이 피해자를 외면할 때가 많은 게 현실이니까요…………..ㅠㅠ 이룸에서의 기억을 더듬어보자면 가해자가 처벌받았을때의 기쁨보다 처벌받지 않았을때 피해자가 받게되는 상처가 훨씬 컸던 것 같습니다. 처벌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면 처벌받지 않았을 때는 정말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달까요.

지난 몹시에서 가해자에 대한 이야기를 한참해서인지 우리의 관심은 자연스럽게 가해자에게로 갔습니다. 도대체 무슨 마음(!)인 것일까 이런저런 추측을 해보았습니다. 

책을 읽고 발제를 하려고 컴퓨터 앞에 앉았을때 참으로 난감했습니다. 이야기가 중심인 이 책에서 주요 요점을 뽑아낸다는게 무슨 소용일까 싶어서요. 그냥 읽어보시기를 권합니다. 많은 분들이 읽었으면 좋겠고 그래서 널리 알려졌으면 좋겠습니다. 용기내 이야기해준 생존자들에게도 고맙고 책의 형태로 만들어내어 함께 나눌수 있게 해준 열림터에게도 고맙습니다.

올해의 몹시는 이렇게 끝입니다!! 꺅 아마 내년에도 별일 없으면 계속될 것 같습니다. 

활동이야기

[몹시]괴물이 된 사람들

 
지난 10월 28일, 따끈따끈한 신작 책을 가지고 몹시를 진행했습니다~한국성폭력상담소 부설연구소 ‘울림’이 번역한 <괴물이 된 사람들>인데요! 9월에 출판기념회를 한 책인데 우리는 10월이 되자마자 공부했어요! 홍홍~ 발빠른 이룸!>_<
 
<괴물이 된 사람들> 은 ‘아홉명의 아동 성범죄자를 만나다’라는 부제가 달려있어 우리의 관심을 단숨에 사로잡았습니다. 처음엔 가해자의 이야기를 읽는다는 게 마음이 무거웠지만 막상 시작하고 나니 가해자의 생애사에 몰입해서 쭉 읽어 내려가게 되더라고요. 공감하면서 가슴 아파하면서 읽게 되기도 하고, 또 어떤 때는 가해자가 자신을 너무 변명하는 것 같아서 불편한 마음이 들기도 했고요.
 
저자는 가해자들의 서사가 진실인지 아닌지 여부는 중요치 않다고 얘기합니다. 인터뷰는 여러 요인들로 인해 오염된 정보일 수 있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저자는 이 사회가 아동 성범죄자들을 단순히 괴물로 취급하기 보다는 이들의 목소리를 통해 알게 되는 여러 정보들을 통해 우리가 나아가야할 방향을 알아갈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것이 저자로 하여금 이 힘든 연구를 끌고 나갈 수 있게 한 원동력인 것 같더라고요.

다 읽고 나서 9명의 서사의 시작이 대체로 비슷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린 시절에 가정에서 폭력에 노출되거나 방치되는 비중도 높았고요. 그리고 대부분 매우 어린 시절에 성적 경험을 시작했다고 나오는데요. 10대 혹은 그보다 어린 시절에 사촌들과 혹은 이웃과 성적 경험을 시작했다는 이야기가 생경해서, 이게 미국이어서 그런건지 아니면 인터뷰이들의 가정환경과 연관이 있는 건지 모르겠다는 얘기를 했습니다. 그리고 가해자들은 이러한 경험이 자신이 나중에 성적인 가해자가 되는 것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어린 시절 성적인 피해를 겪거나 이른 성적 경험을 했다고 해서 꼭 가해자가 되는 건 아니지 않냐!’는 얘기도 나왔지요.
 
책 속의 많은 가해자들은 이렇게 얘기합니다. 출소한 이후에 자신의 가해행위를 멈출 수 있을 지 모르겠다고요. 물론 지금 받고 있는 교정치료가 도움이 되고 있다면서 자신의 감정과 행동을 컨트롤하는 법을 배울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가해자들이 출소한 이후의 재범율의 수치를 보는 것은 의미가 없을 것 같습니다. 한 명이라도 사회로 복귀해서 다시 자신의 행동을 컨트롤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면 그것은 또 다른 가해로 이어질 테니까요. 이런 얘기를 하다가 미국의 메건법(아동 성범죄자가 출소한 후에 이 사람에 대한 정보를 지역 주민에게 제공하는 법) 얘기가 나왔는데요. 이 정보를 아는 것이 대체 어떤 효과를 낳는가, 피해를 정말 방지할 수는 있는 것이냐라는 이야기부터 마음 한 켠 이 법에 대해 옹호(?)하게 되는 마음이 드는 것에 대한 토로도 있었지요. 이런 것에 대해 딱 어느 하나의 입장을 갖는 것이 참 어려운 일인 것 같습니다.


마지막에는 이런 얘기도 나왔어요. 많은 가해자들이 자신의 가해 충동을 컨트롤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말을 하는 걸 읽다 보니, ‘이런 사람들이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창구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가해 충동을 느끼는 사람들을 위한 상담소가 가능할 수 있을 것인가에 아이디어로 꽃을 피웠습니다.

그런 상담소를 만들 수 있다면 지하철에 ‘가해충동을 느낄 때 이쪽으로 전화주시면 상담할 수 있습니다~’ 라는 홍보문구를 만들어 붙일 수 있겠지요. 지하철에 ‘성추행에 노출되지 않는 방법’ 이런 스티커들만 나붙잖아요. 피해자더러 예방하라는 내용으로 가득한!

그래서 가해 충동을 느끼는 사람이 예방해라~ 이런 방향으로 가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물론 가해 충동을 느끼는 사람이 과연 전화를 할는지, 장난 전화가 엄청 많지는 않을는지 이런 생각이 들기도 했고요. 아무튼 마지막에는 이런 저런 아이디어들로 꽃피우면서 달뜬 분위기로 마무리를 했습니다~ 가해자에 대한 이야기를 읽은 후의 무거운 마음이 덜어지는 것 같아서 좋았어요!
 
원래 다음 달 몹시 커리도 성폭력에 대한 책이었는데, '가해자' 하고 나니 지쳐서 다음 달 커리를 바꾸자는 의견이 나왔어요. 두 달 연속 힘든 주제로 하려니 몸도 마음도 힘들힘들 ㅠㅠ 과연 다음 달 몹시는 어떤 커리로 바뀔 것인가?!!
기대해주세용! 채널~고정!!! (응?)

활동이야기

[몹시] 퍼킹 베를린 FUCKING BERLIN

소니아 로시, [퍼킹 베를린 FUCKING BERLIN], 프로네시스, 2009

천유로 세대의 위험한 선택


1. 프롤로그

제목이 눈에 확 띈다. 2009년에 나온 책이라지만 나는 이제야, 이룸 세미나 발제를 맡고서야 책을 잡았다. 그러고도 개인적인 일들이 많아서인지, 집중력이 현저하게 떨어져서인지 책을 가방에 넣고 다닌 지 일주일 만에 펼쳐들었다. 그런데 웬걸 하루 만에 다 읽을 수 있었다! 워낙에 책을 너무 느리게 읽는지라 발제를 할 수 있을까 걱정하던 하루 전이어서 그게 그렇게 신났나보다.

프롤로그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 대부분의 남자들은 내 앞에서 한없이 나약한 존재로 보였다. 그들은 사랑 때문에 괴로워하며 그런 자신을 최고로 대해주는 창녀에게 위안을 받는다. 그들은 내 입에 사정을 하고 몇 초 뒤엔 나에게 내 인생을 살라고 충고한다. 내가 입을 열었다. “얼마나 많은 여자들이 이 일에 종사하는지 안다면 아마 당신은 까무라칠 거예요, 이보세요, 우리는 하르츠4시대에 살고 있다고요. 우리에겐 다른 방법이 없어요.”

하르츠4시대는 뭐지? 실업수당을 대폭 줄여서 실업자들을 일자리로 내보내려는 새로운 노동법안이라고 한다. 퍼킹 베를린,, ,, 2000년대의 베를린에 대해 좀 알아야 하나보다. 하지만 책 안에서 이미 충분하고 쉽게 그때그때 설명해주고 있어서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었다.

2. 소니아의 이야기

책의 저자인 소니아는 이탈리아 시칠리아 군도의 작은 섬에서 그리고 전형적인 소시민 가정에서 평범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작은 호텔 주인인 아버지, 도서관 사서 엄마가 있고, 열여덟살 불현 듯 세상이 너무 좁다는 생각과 가족으로부터의 구속감을 느끼고 자유와 모험을 동경하다가 2001년 여름 베를린을 향했다.

그 뒤에 당시 매춘을 했던 폴란드인 애인 라드야를 만나고, 라드야와 같이 클럽 알바를 했지만 불법체류자였던 애인과 함께 밀린 급여도 못 받고 쫓겨난다. 처음부터 매춘부로 태어난 것도 아니고 매춘부가 될 거라고 상상하지도 않았던 소니아가 새롭게 찾은 것은 가볍고 에로틱한 인터넷 일자리였다. 이후 소니아는 다양한 성매매 업소에서 일을 하게 된다. 그만두고 싶고 그만두는 것이 쉬워보였지만 늘 그렇듯 현실은 달랐다. 학교에 다니느라 낮 시간에 일할 수 없어 다시 밤일을 하게 됐다. 그러면서 늘 되뇌이던 것은 넌 스스로를 분리하는 연습을 해야해. 네가 손님과 함께 있을 때는 넌 더 이상 소니아가 아니고 낸시야. 네 몸을 그냥 내맡기면 될 일이라고라는 말이다.

안정된 생활을 위해 라드야와 결혼을 하지만 생활고는 여전하다. 라드야는 여전히 실직상태고 새로 일하게 된 마사지숍 오아시스는 일하는 사람들끼리 정을 나누고 음식을 나누며 인간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곳이었다. 그러다가 진정한 사랑을 만나기도 하고 다른 지역(성매매가 불법인 독일의 다른 지역)으로 원정 가서 돈을 벌어오기도 한다. 하지만 남편과의 사이에서 아이를 낳으면서 여전히 생활에 무관심한 남편과 헤어지고 독립적인 삶을 찾기 시작한다. 학업도 마치고 취업도 하지만 회사 사람들과 잘 어울린다는 느낌을 받았다고는 해도 다른 사람들은 예상치도 못하는 깊은 웅덩이가 사람들과 소니아의 사이를 갈라놓는다고 느낀다. 온전한 세상은 있을 수 없다는 확신을 하며 인생은 아름답고 쓰라린 것이며 앞으로 무엇이 또 다가올 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고 되뇌이며 책을 마무리하고 있었다.


3. 김애령의 이야기

그리고 책의 말미에는 막달레나 공동체의 용감한여성연구소 김애령님이 쓴 이해를 돕는 글 : 독일의 성매매법과 섹스워커라는 직업이 실려 있다. 독일의 성매매 합법화 과정과 지난하고 발전적인 논의들, 법으로 해결하지 못하는 한계들을 개괄적이고 정돈된 문장으로 안내한다. 평등한 노동과 사회보장의 권리를 위한 법으로서 성매매가 합법화 되었지만 실효성에 대한 논란은 여전하며 성판매자들의 현실을 무시한 소득세 징수가 대표적 문제라고 한다.

김애령에 의하면 소니아의 경험은 극히 일부일 것이며 천 명 중의 하나라고 불리는 성매매공간 벗어나기 성공에 대한 모험담일 수 있다고 한다. 소니아의 바람대로 과거와의 결별은 중요하지만 이중생활을 할 수밖에 없는 성판매 경험자의 삶이 아려온다고 한다. 이 책이 베스트셀러가 된 것은 40만의 섹스워커가 있는 독일에서도 여전히 성매매는 낯설고 특별한 것이기 때문이며, 기사들의 제목도 여전히 선정적이고 무례하다고 한다. 한국사회는 더 그럴 수도 있다면서 통탄해서도 안되고 비웃어서도 안되며 혐오해서도 안 된다. 오직 이해하는 것만이 필요하다는 스피노자의 말을 인용한다.

4. 이룸의 이야기

이루머들은 이 책을 읽고 어떤 이야기들을 했을까? 소니아가 반복되는 생활고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실업자/이주민에 대한 정책이 퇴보한 베를린에서 무기력한 이주노동자 라드야와 가난한 여성 소니아가 함께 산다는 것 자체가 가장 큰 핸디캡일지도 모른다.

베를린이 가장 성매매 가격이 낮다고는 해도, 또 선불금과 업소 체계가 구속하지 않더라도 다른 어떤 일을 하는 것 보다 수입이 크다면 소니아가 아무리 싫어도 일을 그만두기는 힘들 거 같다. 한편 아무리 성매매가 합법화된 국가라고 해도 여성들의 성판매에 대한 낙인과 차별이 공고하다면 성판매 여성으로서 사회보장제도가 구축되어 있더라도 직업으로 등록하기 힘들 거 같다. 어차피 등록하지 않으면 소득세 안 내는데 합법화가 된다고 대부분의 성판매 여성에게 법적인 이득이 있을까. 독일은 연방체계라 지역법이 작동할 거고 규제하는 범위도 다를 것이다. 각 지역마다 규제 입법 및 현황은 다르겠지만 사실 상 규제 안하는 곳은 없다.

합법화 전제 하에서 일하다가 생긴 구매자에 의한 성폭력 피해는 인정이 되는가? 성폭력에 대한 스펙트럼을 규정할 수 있나? 성희롱에 노출되지 않도록 관리를 할 수 있는가? 그런 성산업이 존재하는가? 여성이 성적 행위 수준을 정하고 요구할 수 있는 사회인가?

소니아의 퍼킹 베를린이 베스트셀러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무엇일까? 독일 자체에서 성매매는 매우 핫한 이슈였을 것이다. 그렇기에 책도 베스트 셀러가 되고 그 전에 이미 합법화 논쟁도 뜨거웠던 것 아닐까. 한국사회에서는 성매매가 공적인 논의의 영역으로 확장되지 못하는 것 자체가 어려움을 주는 것 아닐까
 

이룸 몹시_20140930
 

http://blog.naver.com/gogodragon/30044582020
-> 잘 정리된 한 블로거의 글입니다^^

활동이야기

[몹시] 8월 몹시에는 영화 <커피 한잔이 섹스에 미치는 영향> 을 봤어요~

8월 몹시를 준비하다가 한 이루머가 말했어요.
 
' 어떤 영화에 레즈비언 여성이 주인공인데 그 여성이 레즈비언 성판매를 한다고 하더라.'
한창 소수자 성매매 연구 작업으로 끙끙 대던 이루머들은 ‘옳다구나!’ 싶은 마음으로 그 영화를 보았습니다.
 
영화 제목은 <커피 한잔이 섹스에 미치는 영향>이었어요. 원래 제목인 Concussion은 뇌진탕, 충격 이라는 뜻이라고 하는데, 영화를 보고 나니 원래 제목이 좀 더 와 닿습니다.

 

영화에는 아이를 키우며 동반자적 관계를 맺은 레즈비언 커플이 등장합니다. 주위로부터 커플로 인정받으며 중산층의 삶을 살고 있는 이 중년 레즈비언 커플은 두 여성 중 한 명이 레즈비언 성판매를 시작하면서 새로운 관계로 접어듭니다.
(구체적인 내용은 생략~)
 
전반적으로 이루머들은 주인공의 상황에 이입이 안 된다는 평이었습니다. 오히려 감독이 관객들이 주인공에게 이입이 안 되도록, 주인공이 이미지로만 인식되는 걸 의도한 건 아닌지 의심이 갈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성매매는 주인공의 일탈의 도구로 사용되었을 뿐이며 그래서인지 성매매에서의 역학관계가 세련된 판타지로만 포장되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성판매를 하기 전이면 커피 한잔을 하자는 판매자의 희한한 요구를 별 말없이 따르고 투덜거리기만 하는 구매자의 모습, 성매매를 알선하는 여성이 성매매를 알선하게 된 계기를 ‘자기 주위에 이상하게 사람이 많이 따르는데 그러다보니 별의별 사람을 다 만나게 된다.’ 정도로 일축하는 장면에서 특히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네요.
그 외에도 여성 구매자가 이렇게 많다는 점을 보며 이게 모두 감독의 상상인지 어떤 현실에 근거한 내용인지 궁금했습니다. 이야기 끝에는 영화에 대해 전반적으로 신뢰도가 떨어지다 보니 감독의 상상, 판타지일 것이라는 방향으로 입이 모아졌던 것 같아요. (기억이 가물가물..)
 
감독이 성매매 현장이나 성산업 안에서의 역학관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성매매를 주인공 여성의 일탈 도구로 이용하기만 해서 좀 화가 난다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소수자 성매매 연구와 관련된 빛나는 통찰을 얻었으면 좋았으련만… 허허.. 기대가 너무 컸어요~ (그래도 배우들은 정말 멋지더라고요. 무게감이 느껴지는 연기력!)
 
성매매에 대한 ‘이미지’, ‘판타지’가 범람하는 사회에서 이룸은 더더욱 구체적인 현실에 발을 딛고 있어야겠다는 아름다운 다짐을 남기며 8월 몹시 후기를 마무리하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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