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 “성매매특별법=좌파정책” 이라는 코미디

[분석] “성매매특별법=좌파정책” 이라는 코미디

성매매 특별법을 둘러싼 논란이 마침내 색깔론으로 점화됐다.

“최근 통과된 성매매 특별법 등 도덕적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법들을 보면 인권과 개인의 자유를 제약하는 성향이 강하다. 자신이 믿는 도덕적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남의 자유를 규제하려는 것은 좌파적 생각이라고 본다.”

지난 13일 좌승희 한국경제연구원 원장이 이 연구원 주최 포럼에서 했다는 말이다. 그의 발언은 이한구 한나라당 정책위원회 의장이 노무현 정부에 대해 “사회주의 성향이 강화되고 관료주의 체제가 심화되는 문제를 안고 있다”며 ‘좌파의 득세’를 경계하는 내용의 강연을 한 뒤 나왔다.

50대 후반의 대한민국 남성, 재벌들이 모여 만든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부설 연구원 원장…. 성매매와 좌파에 대한 좌 원장의 발언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그의 프로필이다. 그의 이런 생물학적, 정치경제학적 아이덴티티에 비춰 볼 때, 그의 발언은 한국사회의 지배적 기득권 세력을 대변한다고 볼 만하다. 그만큼 영향력 또한 막강하다고 봐야 한다.

그러나 그는 최근 여론시장에서 뜨거운 이슈가 되고 있는 ‘성매매’와 ‘색깔론’을 공론의 장에서 모두 건드리고도 이렇다 할 여론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이런 선정적 소재에 대한 반응이 이토록 무심한 건 무엇 때문일까. 좌 원장의 발언이 겨냥했을 법한 경제학자들과 여성학자들의 첫 반응은 대개 “언급할 가치가 없다”는 거였다. 도대체 그는 ‘성매매 특별법은 자유를 규제하는 좌파 정책’이라는 명제를 어떻게 이끌어낸 것일까.

마약도, 무기거래도 금지해선 안된다? ‘자유를 규제하는 건 좌파 정책’이라는 그의 명제에는 자유에 대한 어떤 규제도 나쁘다는 판단이 전제돼 있다. 그래서 성매매에 대한 규제도 나쁜 것이다.

유철규 성공회대 교수(경제학)는 “그런 논리로 따지면 마약이나 무기거래에 대한 규제도 모두 나쁘다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런 논리 속에서 성매매할 자유와 마약할 자유, 무기를 거래할 자유는 자유의 이름으로 하나라는 얘기다.

그러나 박진도 충남대 교수(경제학)는 “아무리 신자유주의자라고 해도 일정한 도덕성에 기반하고 있다”며 “인간이 추구해야 할 가치를 모두 방기하고 성매매를 시장경제에 맡기라고 하는 건 경제학적으로도 설명할 가치가 없다”고 말했다.

유철규 교수도 “과연 사회적, 역사적 가치관으로부터 완전히 독립되거나 고립된 자유의 체계가 있는지가 의문”이라며 “상당수 자유주의자들은 자유주의가 사회적 가치와 규범 안에서 존재하는 것으로 받아들인다”고 지적했다.

좌 원장의 발언에 어이없어하기는 여성학자들도 마찬가지다. 여성학자 권김현영씨는 “성욕이든 식욕이든 인간의 본능 자체를 도덕적 가치로 재단해서는 안 된다”고 전제한다. 언뜻 “도덕적 가치 실현을 위해 남의 자유를 규제해서는 안 된다”는 좌 원장의 논리와 닿아 있는 듯하다.

하지만 권김현영씨는 “성매매 금지는 자유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라고 못박는다. “욕구를 어떤 형태로 해결할 것이냐 하는 데는 마땅히 규범적 가치가 들어가야 한다. 남이 먹어야 할 걸 빼앗아오는 건 욕구를 해소하는 자유가 아니다.” 그는 “권리로서 자유는 모든 인간에게 평등하게 주어진 기회균등의 상태에서 경쟁논리를 인정하는 것인데, 성매매에서 남성과 여성은 결코 평등하지 않다”고 말했다.

성매매를 관둘 자유는 보장돼 있나?

여성학자들은 왜 성을 파는 젠더(사회적 성)의 압도적 다수는 여성이고, 성을 사는 압도적 다수는 남성인가라고 묻는다. 또, 여성들에게 성을 팔 자유가 있다면 성을 팔지 않을 자유, 성매매를 관둘 자유도 있는가 하고 묻는다. 성매매 여성들이 성매매를 중단하지 못하는 이유가 ‘생계’에 있다면 그 여성들은 성매매가 아닌 다른 노동을 할 자유를 보장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여성학자 정희진씨는 “성매매 여성은 몸을 파는 게 아니라 몸이 팔리는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좌 원장의 발언이 설령 인간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한 것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나왔다고 해도, 성매매 특별법에 색깔론을 들고나온 건 자충수였다. 경제학자들과 여성학자들은 좌 원장의 ‘좌파 규정’이 자신들보다는 오히려 수구보수파를 겨냥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권김현영씨는 “박정희 정권 땐 산아제한정책을 쓰면서 국가가 당근과 채찍으로 남성의 정관과 여성의 자궁까지 관리해왔다”며 “국민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통제해온 건 정작 우파들”이라고 설명했다.

좌 원장의 논리대로라면 국정감사장에서 미혼 청년들의 성욕 해결 문제와 성매매 여성들의 생계 문제를 국가가 제도적으로 보장하고 뒷받침할 것을 주장한 김충환·김기춘 한나라당 두 의원도 느닷없이 좌파로 몰리고 만다.

김기원 방송대 교수(경제학)는 “미국 대부분의 주에서 성매매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고, 우리나라가 성매매 특별법을 시행하기 전보다 훨씬 강력한 단속을 해왔다”며 “그럼 부시 미국 대통령도 좌파인가”라고 되물었다. 우파 처지에서 좌 원장의 발언은 심각한 ‘명예훼손’감인 셈이다.

성매매 문제에 관한 한 좌우파 구분은 성립하지 않는다고 여성학자들은 말한다. 정희진씨는 “좌파 안에도 성매매를 여성의 노동권 문제로 보고, 이를 금지하기보다는 노동권이 침해당하지 않도록 보호장치를 강화해야 한다는 태도가 있다”며 “성매매 문제는 성을 파는 여성뿐 아니라 성매매로 상징되는 여성에 대한 억압과 불평등의 문제”라고 주장했다.

박정희도, 전두환도 좌파? 개인자유 침해 보안법은 좌파법 아닌가?

자유주의 시장경제론자를 자처하는 좌 원장의 이번 발언은 한국 보수들의 가난한 이성과 합리성의 기반을 드러낸다.

“출자제한제도를 좌파 정책이라고 공격하는 게 그들이다. 출자전환제도는 전두환 대통령 때 도입했고, 김영삼 대통령 때 강화했는데, 그들 말대로라면 전두환은 좌파고 김영삼은 극좌파인가. 그들은 자기보다 왼쪽에 있다는 이유로 중도우파에도 좌파의 딱지를 붙이는 색맹 수준의 인식 무능력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김기원 교수는 “더 큰 문제는 그들의 이런 태도는 신념이나 철학의 문제이기 전에 매우 정치적인 목적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이들은 조금이라도 개혁적인 정책에 대해서는 끝없이 색깔 공세를 퍼부어 사회 전체가 색깔 논란에 에너지를 쏟아붓게 하고 사회 의제가 개혁 과제로 옮겨가지 못하게 묶어두고 있다”고 지적했다.

유철규 교수는 “지금은 건강하지 못한 극우세력이 자유주의의 이름을 붙들고 일관성도 없이 극단적인 행동을 표출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보수의 임무가 현재 사회의 유지시키는 것인데, 이들은 지금은 한국사회를 존립 불가능한 상태로까지 몰아가며 스스로 보수의 임무를 망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희진씨는 “노무현 정부가 아무리 미워도 다른 식으로 비판해야지, 왜 애먼 성매매 특별법을 걸고 넘어지는지 모르겠다”고 꼬집었다.

성매매 특별법에 대한 좌 원장의 태도가 ‘성매매’에 대한 ‘자유주의자’의 신념을 드러낸 것이라면, 그의 신념은 이런 질문 앞에서 일관된 대답을 내놓아야 한다. “당신의 가족이 성매매업에 종사하는 것도 자유의 문제인가?” “당신은 국민의 자유를 심각하게 규제하는 좌파적 국가보안법을 철폐해야 한다고 믿는가?”

좌승희 원장. 그의 성(姓)은 좌(左)씨다.

<한겨레> 온라인뉴스부 안영춘 기자 jon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