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몹시] 이태원, TG, 성매매 _별

올해 첫 번째 몹시에서는, 지난해 소수자 성매매 보고서의 기억을 가지고 이태원 아웃리치/별별신문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읽어보고 싶어진 글들을 나누었습니다. 막달레나의 집 드랍인센터 이태원 사랑방을 경유해서 생산된 텍스트들을 중심으로, 성매매 그리고 규범성 및 공간성에 관한 논의를 엮어나가는데 아이디어를 던져주는 글들을 한데 모아 보았습니다.

루인 님의 캠프 트랜스: 이태원 지역 트랜스젠더의 역사 추적하기”, 막달레나 공동체 현장상담센터에서 제작한 <이태원의 수상한 사랑방><동네사람>, 그리고 <성의 정치 성의 권리>에 수록된 한채윤 님의 엮어서 다시 생각하기: 동성애, 성매매, 에이즈를 읽었답니다.

이룸의 소수자 성매매 보고서에서는 이성애/이원젠더 규범으로 성매매 현장을 인식할 때 성소수자 성매매가 아예 드러나지 않거나 규범에 끼워 맞춰져 해석되는 현상을 지적합니다. 보고서는 성매매에 특정한 한계를 지어 기존의 규범을 위태롭게 하지 않는 선에서 수용하고 재생산하려는 움직임에 저항하면서 성매매 현장과 만나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성애자 비트랜스 여성이라는 강요된, 고정된 젠더와 섹슈얼리티만으로 다종다양한 성판매가 경험되지 않는다는 것을 적시하려고 했습니다. 또한 젠더와 섹슈얼리티를 구성하며 살아가는 경험 안에는 이미 성적인 피해, 착취, 거래, 교환, 노동, 자본, 친밀성 등이 착종되어 있음을, 역으로 그 착종된 양상 그 자체에서 유동하는 몸과 정체성을 읽어내야 함을 요구하려고 했습니다. 이것이 여성주의적인 성매매 담론과 실천의 일환이라고 여겼기 때문일 것입니다.

캠프 트랜스에서는 이태원이라는 공간, 그리고 그 공간 안에서 가능했던 관계들을 발명/복원/재창조하고자 시도합니다. 그렇게 이태원은 폐쇄되어야 하는 기지촌/집결지 또는 외국에서 들어온, 유교랜드의 미풍양속을 해치는 풍속들이 고여 있는 이상한 동네로 해석되는 것 이외의 새로운 역사를 확보합니다. 그리고 이태원은 트랜스젠더라는 정체성과 치환 가능한 은유가 됩니다. 의료적, 법적으로 규정되는 좁은 의미의 트랜스젠더는 여성이나 남성 어느 하나로 분류되어야만 하고, 그 스스로 분류되기를 욕망하는 존재로 그려집니다. 그러나 캠프 트랜스는 규범적인 인식체계 안팎을 끊임없이 배반하고 탈출하는 것들이 우리에게 주어져있음을, 우리가 그것들을 경험할 역량을 지닌 존재임을 상기시킵니다. 캠프 트랜스는 규범의 재생산에 봉사하는 기관이면서 동시에 규범을 위협하는 질병 또는 장애로 가시화되지만 실상 비규범적 존재들이라는 등재되지 않은 종들이 거주해온 비무장지대와도 같은 역사성과 잠재성의 영토였더라는 이야기를 써내려갑니다.

이처럼 하나의 정황, 풍경을 바라보며 쉬이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것들의 편에서 우리는 부재하는 것이 아니라 누락된 것이라고 발화하는 일은 언제 다시 읽어도 굉장한 에너지를 느끼게 하는 것 같습니다. 이 저항이 막달레나의 집 현장상담센터가 현장활동의 형식으로 이태원 지역에 다가간 기록에서 역시도 변주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태원이라는 공간이 불경기와 쇠락의 흐름에 놓여있는 상황에서 그 공간의 용도가 다 했으니 이제는 폐기처분하자는 것이 아니라 이전의 삶을 계승하는 새로운 삶의 공간으로 전이시켜나가겠다는 움직임의 기록이었죠. 공간과 관계가 축적해온 자원들이 분명히 있을 것이라는 신뢰, 그것을 발굴하고 연계하며 유통시키는 것이 의미 있는 결과를 낳을 수 있을 것이라는 신뢰를 함께 쌓아 나가자는 이야기로 들려왔습니다.

이러한 이야기들은 한편 공간이나 관계가 아닌 개인을 중심으로 하는 상담소의 구조를 떠올리게 했습니다. 상담소의 형식상 내담자들은 개인으로 분절될 수밖에 없지만, 이들의 삶이 요청하는 것은 개인의 경제적, 의료적, 법적, 정서적 회복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내담자들이 진정 필요로 하는 것은 성판매경험을 포함한 나 자신의 시간이 선택이나 비밀, 한때의 실수로 조각나고 봉인되고 삭제되지 않는 것, 그 자체로 통합된 사회적 삶으로 동등하게 평가받고 이해되며 회복해나가는 것일테니까요. 그러기 위해서 엮어서 다시 생각하기에서 시도한 바와 같이 낙인을 만들어내는 전략에 제 발로 포섭되어버리지 않는 운동이 필요한 것이겠죠.

이러한 논의들은 굉장히 추상적으로 느껴지기도 합니다. 게다가 이성애/이원젠더에 도전하지 않고도 어떻게든 성매매를 언어에 기입할 수 있기는 한데, 그렇다면 왜 이 시도를 해야 할까, 아니 더 정확히 하자면 여성운동의 공고한 이분법과 제도화 내부에서 어떻게 이 시도를 설득할 수 있을까 하는 물음이 남습니다. 소수자 성매매를 성매매의 특수한 사례로 다루지 않고, 성매매 담론 전체가 소수자성, 타자성, 비규범성으로 좀 더 정향할 수 있는 방식은 어떤 것일까요. 루인 님은 다른 글에서 젠더폭력을 젠더화하는 폭력으로 바라보기를 제안하는데요. 정체성을 향한 단 한 가지 해석만을 체화하도록 하는 폭력이라는 정의가 아직은 아리송하지만 이 짧은 제안이 어쩌면 실마리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하여 이룸은 왜 트랜스젠더 언니들을 만나고 싶었던 걸까요? 소수자 성매매에서 트랜스젠더 언니들을 인터뷰하면서 즐겁고 재미있었던 기억으로부터 그 서사를 더 듣고 싶다는 마음, 정보전달자/연계자/지원자로서 언니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 싶다는 마음, TG 성매매에서 성매매와 성적 실천의 경계에 관해 고민해보고 싶은 마음 등등!!! 우리의 마음을 하나씩 꺼내어보고 분명하게 해보는 (아니 더 혼란스러워지는?!) 시간이었습니다. 정말이지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는 품이 많이 든다는 깨달음을 얻고, 앞서 그런 작업을 한 사람들을 기억하고 이룸의 맥락으로 끌어들여 소화하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다음 몹시도 몹시 기다려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