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모임] 4회차 ‘단순히 일한다.’ 는 수사를 붙들어보았습니다.

[on the game 읽기] ‘단순히 일한다.’는 수사를 붙들어보았습니다.

 

유나

 

 

2장 simply work를 읽었습니다.

 

저자 소피데이는 성노동자들이 나는 그저 ‘단순히 일하는 것’이라 말할 때 이 ‘단순히 일한다(simply work)’는 수사의 맥락을 탐색한다. 연구 참여자인 성노동자들은 ‘일’과 ‘사생활’을 분리하여 이것은 ‘일’에 불과하므로 ‘일’로서 보호받아야 할 영역, 저 ‘사생활’은 ‘사생활’대로 보호받아야 할 영역이라 ‘주장’한다. 다른 일하는 사람들이 모두 그러하듯이 우리도 출퇴근을 하고 공과 사가 분리되며 이 일(성매매)은 단순히 공적인 일일 뿐이라는 설명은 성노동을 ‘노동’으로 ‘인정’하지 않는 사회적 분위기, 오히려 무시하고 혐오하는 낙인에 대항하는 전략이다. 그리고 소피 데이는 이러한 성노동자들의 이분법 전략이 인간을 두 부분(밖과 안, 몸과 정신, 중심과 주변, 공과 사… 남성과 여성까지)으로 구분해 온 전통적인 관념과 상통하며 이에 기대어 있고, 이를 강화하는 데에 일조한다는 분석으로 나아간다.

 

성노동자는 공사분리 전략으로 이 일을 설명함과 더불어 이 전략을 스스로에게도 엄격하게 적용한다. 공과 사는 어떻게든 차이가 있어야 하기에 대조점들은 필수적이다. 우리 모두는 그렇게 사고하고 행동하고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공과 사의 이분법은 ‘자연스럽고’ ‘당연’하니까. 직장에서의 일을 집으로 끌고 오면 안 되고, 집안일을 시끄럽게 떠들면 안 된다. 일로 만나는 관계와 사적 관계를 섞어버리면 미성숙한 사람이라는 평가를 듣는다. 책에는 사회의 낙인을 피하고 ‘인정’받기 위한 성노동자들의 대조점 만들기 전략이 길게 서술된다. 손님과는 콘돔을 끼기 때문에 사적 관계에서는 절대 콘돔을 끼지 않는다거나, 심할 정도로 씻는다거나, 끊임없이 세탁을 하고 냄새를 제거하는 등 소독행위에 집중한다거나…. 낯설지 않다. 이룸의 내담자들에게 자주 들어 온 전략들이다.

 

영국과 한국의 성산업의 형태, 법 제도의 차이를 넘어 여성과 남성이라는 성별의 차이와 무관하게 성판매자들은 자신의 일에서 구분하기 전략을 사용한다. 소피데이는 위생, 청결에 집중하는 전략 이외에도 상업적이고 공적인 성노동에 감정‧쾌락을 전혀 섞지 않기, 상업적인 섹스 상대와 개인 섹스 상대의 인종, 성별 등을 분리하기, 오럴‧키스‧삽입‧애널 중 상업적인 섹스에서 하는 행위는 개인적인 섹스에서 하지 않기 등을 나열한다. 이 역시 성판매경험여성들로부터 흔히 들을 수 있는 구분하기 전략들이다. ‘성적소수자 성매매 연구보고서’에서 남성으로서 남성을 상대로 성판매를 했던 인터뷰 참여자 중 1인은 성매매를 지속하는 과정 중에는 절대 연애를 하지 않는다고 밝히기도 했다. 나를 이 공간과 행위로부터 구분하는 온갖 전략과 애씀은 성판매자들의 ‘해리’현상과 중첩된다. ‘여기서 20년 넘게 있었지만 우리 사이는 여기서 나가면 끝이야.’라고 단언했던 청량리 집결지 여성의 목소리가 겹쳐진다. 공사 구분이 명확할수록 사회적 가면을 많이 자주 쓰게 되고 그럴수록 심리적 불균형이 따라온다. 실상 명확할 수 없는 영역을 의도적으로 구분하려할수록 인간은 아프다.

 

공/사는 무얼까? 집은 사적인가?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 집, 가족이라는 공간은 공적 영역과 또렷이 구분되지 않는다. 공적인 영역을 창출하기 위해 사적인 영역을 만들어낸다. [자본주의와 가부장제]에서 마리아미즈는 자본주의는 ‘자유’임금노동자와 자본과의 관계만으로 유지되지 않고 언제나 ‘식민지’를 필요로 한다고 설명한다. 소피 데이 역시 마르크스의 생산/재생산 구분이 공/사 구분의 유구한 전통에 기대고 있다 말한다. 이 유구한 전통의 이분법을 깨는 존재 중 하나가 성판매자이다. 사적인 ‘성’을 파는 행위는 공적인 경제와 사적인 사회관계의 구분을 당황스럽게 한다. 그 구분을 오염시키고 교란시키는 자. 성노동자는 성노동을 향한 사회적 낙인과 혐오, 몰인정을 돌파하고자 ‘이것은 단순한 일’이라고 말하지만 이분법 자체를 돌파하지 않고 이 두 구분을 답습하는 한 절대 ‘단순한 일’은 없다. ‘단순한 일’의 영토를 구축하기 위한 공/사 구분하기 전략이 성노동자 스스로를 겨누는 창이 되어 버린다. 물론 이는 성노동자에게만 해당하지 않는다. 공사구분을 요구받고 역할로 살아가기를 권유받는 현대 사회 대부분의 사람들 허황된 투 트랙에 갇혀있기는 매 한가지이고, 매 순간 대조점을 기준으로 공과 사를 구분하기는 불가능한 과제이다.

 

직접적인 신체 간의 대면행위로서 성매매가 성판매 여성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한 염려가 있다. 소피 데이 말처럼 몸은 단순히 고정된 장소가 아니다. 몸이 중성적인 멸균 상태의 죽어있는 공간이라면 연구 참여자들은 그렇게까지 자신의 몸을 소독하고 청결하게 유지하고 정액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콘돔을 이중으로 착용하고, 그러고 나서도 불안하여 필요 이상으로 세척해야 할 이유가 없다. ‘몸’은 끊임없는 순환과 교환을 통해 매 순간 새롭게 만들어지고 그런 ‘몸’이기에 ‘몸’이 교환되는 성매매 현장에서 성노동자들의 불안은 계속 된다.

 

몸이 그렇다면 ‘감정’은 또 어떠한가? [친밀성의 거래]에서 비비아나 A. 젤라이저는 감정 중 하나인 친밀성이 경제활동에서 혼합되어 온, 그러나 그 둘을 자의적이고 주관적으로 구분하려 애쓴 역사를 훑으며 친밀함과 경제는 서로를 훼손하기 보단 서로를 촉진하고 상호보완이 가능하다 분석한다. 비비아나 A. 젤라이저의 적대적인, 그러나 허구에 기반한 돈과 친밀감 두 영역의 구분과 유지해야 하는 사회의 의도로부터 만들어진 화폐화 된 사회관계에 대한 비난과 두려움에 대한 지적은 소피 데이의 공사구분에 대한 지적과 통한다.

 

나는 두 사람의 공통된 지적에 동의한다. 그리고 간병/가사노동/결혼/돌봄노동/성노동 등 자본의 끊임없는 확장과 상품화, 삶이 임금자본관계에 포섭되는 흐름을 경계하고 날 세워 비판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소피데이는 공/사구분에 기댄 성노동자들의 ‘단순히 일하기’ 맥락을 밝힘으로써 어느 방향으로 나아갔을까?

 

‘simply work’를 붙들어보았듯 ‘여기서 계속 일하게 하라.’를 붙들어보고 싶다. [on the game] 읽기는 이룸이 2018년 상반기를 청량리 재개발 토론회, 청량리 여성들과 함께 하는 작업장 구축, 청량리 집결지 기록화에 집중하기로 하면서 잠시 중단될 예정이다. [on the game]을 읽을 때면 재차 다짐하게 되는 사건의 역사적인 맥락 살피기, 당연히 여겼던 이분법 경계하기, 내 안의 ‘자연스러움’ 의심하기라는 태도를 벗 삼아 청량리 재개발 관련된 사업들에 임해야지. 그 이후 하반기에 다시 시작 될 on the game 읽기가 더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