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 우리를 도울 사람들이 많아요"
성매매 피해여성의 탈출 후기
이정은 기자 leeche2001@hotmail.com
월간 『말』 12월호의 성매매 기사들 중 이 꼭지는 특별히 '언니(성매매 피해여성)'들의 궁금증을 풀고 불안감을 지우기 위해 기획됐다. (취재과정에서야 그 의도를 충족시키기가 쉽지 않겠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그 동안 취재 과정에서 만난 성매매 피해여성들은 성매매처벌법이나 여성단체에 대한 심한 편견 안에 머물면서 '또 다른 세상'에 대한 막연한 공포를 키워가고 있었다.
이들은 ‘고위층의 병역비리가 터지자 이를 무마시키기 위해 만든 것이 성매매 특별법이다’ ‘여성부와 여성단체는 조리퐁 판매 금지운동이나 벌이는 할 일 없는 단체다’라는 등 출처를 알 수 없는 이야기들을 진지하게 털어놓았다. ‘누구’에게 들었는지 짐작이 가는 대목이었다. 업주들의 화법을 고대로 베낀 이들의 주장을 들으면서, 정보가 차단된 상태의 성매매 피해여성들이 법에 기댄 '탈성매매' 보다 업주에 기댄 '성매매 합법화'를 먼저 주장한 것은 어쩌면 당연할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가운 비를 뿌리고 내달린 가을 뒤로 겨울이 성큼 다가선 11월 11일,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집결지(성매매 업소들이 밀집한 지역을 일컫는 용어) 여성 종사자'들의 세 번째의 대규모 집회가 열렸다. 이 날로 열 하루째 단식농성을 벌여 온 이들을 하루 전날 만나 입장을 전해들은 기자는 집회 당일에는 여의도 대신 그곳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한 쉼터를 찾았다.
말지 지면에서 이름을 지우고, 쉼터를 드러내지 않고, 사진을 찍지 않는 조건으로 탈성매매한 여성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우선 같은 시각 한창 집회 중인 성매매 여성들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자 이들은 "나는 다만 먼저 나온 사람일 뿐 우리는 한 식구"라고 답하며 성매매 여성과 탈성매매 여성간의 선긋기를 거부했다. 그리고 인터뷰 틈틈이 "우리가 여기서 언니들을 기다리고 있다"고 전해달라고 부탁했다. 몇 번이고 같은 말을 반복했다.
이정은 기자 jelee@digitalmal.com
"누군들 그곳에서 빠져 나오고 싶지 않겠어요. 결근하면 결근비, 지각하면 지각비를 물어야 하는 게 그 세계 '법'이니 빚은 계속 늘 수밖에 없어요. 도망이요? 도망가는 언니들도 있어요. 하지만 그래봤자 업주가 동원한 폭력배들한테 다시 붙잡혀 와요. 그런 언니들은 섬이나 3종(여성들을 감금하고 음주와 성매매를 강요하는 곳으로 군산 화재사건이 발생한 업소도 이런 형태였다. 섬과 3종은 일단 '팔려 가면' 업주의 감시와 통제로 문 밖을 나설 수조차 없다. 탈출이 원천 봉쇄된 무법지대, 성매매 피해여성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곳이기도 하다.)으로 팔려 가요. 그걸 눈앞에서 보는데 어떻게 시도를 하겠어요. 나올 수가 없어요. 휴대폰은 '쁘락치'가 돼 있지. 업주들이 내 번호랑 같은 휴대폰을 하나 더 만들어서 통화내용을 다 듣는다구요. 그 휴대폰 사용할 때는 손님 부를 때뿐이에요. 사람들은 우리가 '그 짓'을 하고 싶어서 만날 전화를 돌린다고 하는데, 그렇게 안 하면 벌금이 올라가요. 빚 갚고 하루라도 빨리 나가려면 손님한테 죽어라 전화하는 수밖에 없어요."
제 얼굴에 '현상금' 걸렸어요
아직 '그 곳'에 남아 있는 여성들의 '이유'에 대해 자신의 경험에 빗대 자세한 설명을 이어 간 오진희씨(가명·26)도 집결지에서 8년이란 긴 시간을 보냈다. 오진희씨는 '그 곳'을 탈출해 이 곳 쉼터로 온지 벌써 일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집에는 들어 갈 수 없는 처지라고 했다. 그 지역 폭력배들에게 오씨의 '현상금'이 걸렸기 때문이다. 업주들 짓이다. 그가 아는 여성 중에는 탈출 후 아예 사진이 붙은 전단지가 돌려진 경우도 있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업소를 탈출하기 위해 집어 탄 택시 기사가 다시 그 여성을 업소로 돌려보내는 일도 비일비재하다고.
"그것뿐인가요. 언니들끼리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게 만들어요. 서로 맞보증을 세워놔서. 얘가 도망가면 내 빚이 올라가는데 감시 안 하겠어요?"
"그런 것도 있고. 친구들끼리 맞보증을 세워두면 '어떻게 나 혼자만 도망가나' 하는 생각도 해요. 내가 도망가면 이 친구한테 내 빚까지 모두 얹혀지는데…. 항상 우리가 (업주로부터) 듣는 얘기가 있어요. 도망가면 죽는다, 하늘 끝까지 쫓아간다, 너 결혼할 때 가서 폭로한다, 너네 엄마아빠 일하는데 가서 불어버린다…. 이런 이야기를 수도 없이 들으니까 세뇌가 되더라구요. 도망가야지 해도 막상 그 장면이 떠올라서 발이 안 떨어져요. 결혼식 때 업주가 나타날까봐, 엄마아빠가 망신당할까봐. 그러면 그냥 나 하나 희생하고 말자며 체념하고 마는 거죠."
오진희씨의 말을 이은 이은수(가명·27)씨는 업소에서 탈출하고도 6년을 숨어살았다. 동생의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를 제 것처럼 둘려대면서. "너무 어려서 그때는 뭐가 뭔지 몰랐다"는 그가 말한 '노예 같은 삶'은 17세에 시작됐다. 이후 3년간 허리 한 번 펴지 못하고 죽도록 일했지만 그가 만져본 돈은 달랑 50만원. "처음 소개소에 가니까 옷 사 입고 화장품 사라고 주더라구요." 그런 그에게 어느 날 업주가 다가와 이렇게 말했다. "넌 나에게 1600만원의 빚을 지고 있다."
"가끔 단속한다고 경찰들이 돌아다녀요. 말은 못했지만 정말 간절하게 쳐다봤죠. '나 좀 꺼내죠, 나 좀 제발 데려가, 나 미성년자야, 나 좀 구해죠' 하구요.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었지만 누구도 제게 관심을 갖지 않았어요. 하. 나중엔 그 사람들이 업소에 찾아오더라구요. 자기 딸 보다 어린 저를 어떻게 하려고…."
에누리없이, 이것이 성매매 현장의 '현실'이다. 바로 보고 뒤집어 볼 필요도 없다. 현장에서 탈출한 여성들 대부분은 성산업이나 성매매를 지칭할 때 '그 곳' '그 짓'이라고 표현한다. 다시 입에 담고 싶지도 않은 그 시간을 견뎌내고 탈성매매한 오진희씨와 이은수씨는 현재 쉼터에서 성매매 피해여성들을 구출하는 현장 활동가로 일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 말마따나, 어쩔라고 법이 바꼈지만 여전히 피해여성들이 모든 짐을 훌훌 털고 걸어 나오기엔 역부족이다. 수십, 수백 년간 이어져 온 성매매는 이미 성매매 피해여성들을 옴짝달싹할 수 없도록 전방위에서 포위한 상태라고 한다. 말을 멈추고 이은수씨가 한숨을 내쉰다. 그리고 며칠 전 만난 한 여성의 이야기를 했다. 집회에 앞장섰던 집결지 성매매 여성 한 명과 상담을 했단다. 업주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그들이 다급하게 묻더란다. 어떻게 도와줄 거냐, 자기를 어떻게 해줄 수 있느냐고.
생계보장 주장, 귀담아 들어야
그렇다면 집회에서 등장했던 이야기들이 모두 업주의 관리·감독 하에 짜고 친 고스톱인 셈일까. '생존권 보장'을 요구하는 여성들의 주장에 대해 오진희씨는 "왜 그럴까"를 묻지 말고 "어떻게 도울까"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고 말한다.
"맞아요. 그 안에 있는 언니들, 집이 다 어려워요. 그렇다고 지금 나오는 말처럼 집에 돈 보낼 수 있는 것도 아니에요. 그곳에 있으면 있을수록 빚은 계속 쌓이는데 무슨 수로…. 선불금 뿐이 아니에요. 사채, 카드 빚, 일수. 뭐 그런 걸로 모자라면 대출까지 받게 하죠. 가까운 사람을 보증 세워서. 그거 아세요? 언니들, 자기 때문에 다른 사람 힘들 게 만드는 거 죽기보다 싫어해요. 자기가 잘 아니까요. 그게 얼마나 힘든 건지. 언니들을 꽁꽁 싸 메고 있는 빚이나 위협에 대한 대책은 없이 무조건 나오라고 하면 당장 '생존권'을 주장할 수 밖에요."
오진희씨를 비롯 두 사람에게도 빚은 여전히 큰짐이다. 이미 업주와의 채무관계는 법적 정리가 끝났지만 은행이나 사채에서 얻은 빚은 고스란히 개인의 책임으로 남겨졌다. 탈성매매 여성 대부분이 업소에서 얻은 신용불량으로 시달리고 있지만, 이에 대한 대책은 전무한 상태. 이들은 이구동성으로, "이것이 바로 재유입의 원인"이라고 꼽았다.
"어렵게 탈성매매 해놓고 다시 업소에 들어가는 언니들이 있어요. 밖에서는 뭐라고 하나요. 제네 들은 '그 짓'을 못하면 죽는다고 그래서 지 발로 다시 기어들어 간다고 하잖아요. 그 사람들 눈에는 언니들 어깨를 누르는 '짐'이 보이지 않는 거에요. 사채업자들이나 카드사 직원들이나 얼마나 무서워요. 여기저기서 협박당하다 보면 이번에는 꼭 돈 벌어서 나와야지 하면서 들어가는 거에요. 하지만 어디 그게 마음처럼 되나요. 또 다시…."
그렇게 '빚'이 있으니 자연히 먹고 살 '집'을 구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이들처럼 쉼터를 소개받아 몸을 눕힐 '집'을 얻었다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이제 이들에겐 '일'이 문제다.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건 일자리 에요. 공공근로든, 저희처럼 상담소에서 활동을 하든 작은 월급이라도 정기적인 수입이 있어야죠. 전 탈성매매한 언니들이 바깥 생활에 적응할 때까지 일정기간 저희 같은 상담직을 할 수 있도록 정부가 도왔으면 좋겠어요. 요즘 성매매 피해여성으로부터 상담전화가 늘어서 상담원도 많이 모자란다면서요. 우린 그 여성들의 사정을 잘 알잖아요. 그 언니들에게 어떤 말을 건네야 할지, 언니들이 무엇 때문에 힘든지 잘 안다구요. 나와 똑같은 아픔을 가진 사람들을 구조하다 보면 제 상처를 치유하는데도 큰 도움이 되구요."
이들이 성매매 피해여성들을 구조하는 과정에서 애를 태우게 되는 부분은 또 있다. 성매매 피해여성들이 '말'을, '사람'을 믿지 않는다는 것. 이미 탈성매매한 후 상당 시간을 보낸 두 상담원도 여전히 사람을 믿는 게 힘들다며 스스로도 이를 치유하는 과정에 있다고 말한다. 성매매 현장에 있는 여성들을 만나면 자신의 경험부터 털어놓게 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힘들죠. 여전히 힘들어요. 빚도 남아있고, 태어나 처음 해보는 사회생활이 익숙하지도 않고요. 지나다 (업주와) 비슷한 사람이 지나가면, 비슷한 차만 지나가도 깜짝깜짝 놀라요. 하지만 죽기살기로 도망쳐 나온 곳이에요. '일어나라' '들어와라' '문 걸어 잠가라'하는 명령에 항상 노예처럼 '네'하고 따르며 살았어요. 죽어도 그곳으로 다시 돌아가긴 싫어요. 언니들도 저랑 똑같은 마음일 거에요."
자기 딸이라면 그런 말 나오겠어요?
성매매처벌법 시행 한 달을 고비로 성매매에 대한 논란은 이제 한풀 꺾인 듯하다. 여의도에서 단식농성을 한다해도 별 관심이 없고, 거듭되는 집회에 언론의 반응도 시들하다. 한때는 성산업의 구조에서부터 해결 방안까지 입 달린 사람 치고 제 의견 안 내본 사람이 없을 정도로 말이 많이 나도는 주제가 아니었는가. 그 과정에서 흘러나 온 몇가지 궁금증들을 물어보았다. '성매매'하면 이렇게 토다는 사람, 꼭 있었다.
"알선·매매, 그건 당연히 범죄고. 그런데 정말 좋아서 하겠다는 사람은 어쩔 거야. 자기가 하겠다는 데, 먹고살기 위해서 하겠다는 데 어쩌냐고."
업주를 제외하고 두 사람이 '합의'에 의해 하는 성매매까지 막을 수 있겠냐는 가정의 가정이 술자리를 어지럽히는 일이 예사다. 기자의 경험에 의하면.
쉼터에서 만난 여성들의 경험에 의하면, "현실에서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고 했다. 최근에는 성매매 여성들의 일이 자발적인 냥, 자영업 형태인 냥 위장하기 위한 신종수법들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고 한다. 성매매 피해여성이 직접 카드 단말기를 들고 다니거나, 아예 그녀 이름으로 사업자 등록증을 내는 업소도 늘고 있다고 했다.
"제가 일하는 동안 '이 일이 너무 좋아'라고 하는 언니는 단 한 명도 못 봤어요. 모두 빨리 빚 갚고 나가고 싶어하죠. 하지만 아직도 이 세계를 잘 모르는 사람이 많아요. 언니들은 돈을 벌기 위해 하는 게 아니라 빚은 갚기 위해 일을 한다구요."
"제가 일할 때는 결혼 못한 농촌 남성들이 다방에 와서 한 달치 티켓을 끊고 여성들을 데리고 가는 게 유행이었어요. 그렇게 데리고 살다가 한 달이 되면 다시 다방으로 돌려보내고 다른 언니를 데리고 가요. 그렇게 사는 우리가 사람이에요? 그게 일이에요? 여성은 상품이에요, 상품."
이왕 말나온 김에 한가지 더 '무식한 소리'를 했다. "룸사롱같은 곳은 그래도 좀 낫다던데." 역시 술자리 논쟁 단골메뉴다.
"룸은 무조건 2차를 가야해요. 그거 안가면 그날 술값이 다 빚으로 남아요. 또 남자들이 그런 데 혼자 오는 거 봤어요? 여럿이 뭉쳐서 와서는 2차 가자고 하는데 만약 내가 싫다고 분위기 깨서 2차가 틀어지면 그날 손님이 돈을 내든 안 내든 그 자리 술값을 내가 다 물어내야 하는 거에요. 그러니 월경 중에도 솜을 틀어막고 2차 나가는 거죠. 룸이건, 안마 시술소건, 다방이건, 집결지건 업소 안에서 이루어지는 건 다 똑같아요. '성매매'에요. 벌금을 메기고 빚을 더하는 구조도 똑같다구요. 그런데 누가, 왜 이런 식의 구분을 하는 거죠. 현장 조사를 나가면 경찰도 다방이나 룸사롱에서는 증거가 필요하다고 강조해요. 집결지에서는 다 하는 줄 아니까 필요 없지만, 이런 곳은 좀 다르지 않냐면서."
'논란거리'라는 핑계를 대고 마지막으로 한 가지를 더 물었다. "그곳에서 일하는 여성을 위해 직업화를 해야 한다고 하는데." 이른바 ‘성매매 합법화’ 혹은 ‘공창제‘ 주장이다. 오정희씨가 정색을 하며 말을 매듭짓는다.
"부탁하나 할께요. 제발 모여서 공창제 이야기 좀 하지 마세요. 어떻게 도와야할지 의논을 해도 시원찮을 판에, 공창제하자고 하는 사람들, 그렇게 좋을 것 같으면 자기가 직접 해보라고 하세요. 그 안에서 언니들, 정말 노예처럼 짐승처럼 살고 있어요. 자기가, 자기 딸이, 자기 부모형제가 그곳에서 일하고 싶어한다면 '어, 그럇 공창제 해라∼'하는 말이 나오겠어요?"
기다릴께요.
인터뷰를 마치려고 하는데 오정희씨가 꼭 한마디를 넣어달라고 하며 녹음기를 붙잡았다. 언니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라고 했다.
"언니, 전 아직도 그 곳의 꿈을 꿔요. 언제까지 이렇게 시달려야 하는지… 힘이 들어요. 지금도 두려워요. 만약 업주가 결혼식장에 나타나면 어떻게 하나. 길가다 마주치면 어떻게 하나. 하지만 언니, 저는 예전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삶을, 제 인생을 찾아가고 있어요. 언니들도 할 수 있어요. 언니와 나는 다른 사람이 아니에요. 나는 다만 먼저 밖에 나온 식구일 뿐이에요. 다시 만날 그 날까지, 정말 끝까지 노력할 거에요. 언니들이 무엇 때문에 그렇게 절절히 생존권을 외치는지 알아요. 만약 지금껏 제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언니들보다 더 심하게 외쳤을 지도 모르죠. 그런데 밖에 나와보니 우리를 도와주려는 사람이 많더라구요. 언니, 밖에 나와보니 그 안에서 몰랐던 사회가 있더라구요. 기다릴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