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개월간 얻은 것은 ‘신뢰’ -완월동 성매매집결지 현장시범사업 평가

6개월간 얻은 것은 ‘신뢰’

완월동 성매매집결지 현장시범사업 평가

조이여울 기자
2005-06-07

2004년 9월 23일 성매매특별법이 시행된 이후, 한 달여 만인 10월 27일 부산 완월동과 인천 숭의동 집결지 여성들이 여성단체와 공동 기자회견을 가졌다. 이들 여성들은 업주들로부터 빚 포기 각서를 받아냈으며, 여성단체와 자신들이 ‘생계대책 모색과 지원’이라는 공통의 목적을 가졌음을 확인하고, 여성부의 성매매집결지 현장시범사업을 실시하기로 합의했다.

그로부터 6개월이 지난 지금, 전국적으로 대규모 집결지로 알려진 이 곳 완월동의 상황은 어떻게 변했을까.

‘빚 탕감’은 탈성매매의 전제조건

“우리가 지금까지 한 번도 못해본 것, 부당한 대우 받아도 말 못하고 참아야 하고, 주눅 들어 살아왔지만 이젠 업주들이 우리와 동등하고 대등한 입장에서 서로 협력과 타협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서는 단독적으로 처리하지 않게 되었다. 정부 지원금이 고마운 게 아니라 이 사업이 들어옴에 따라 (여성)단체가 24시간 우리와 함께 하니까, 시범사업으로 인해 타 지역과는 다르게 투명한 집결지 조성이 되어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김지은/‘해어화’ 고문)

완월동 성매매집결지 여성들의 대표단체인 ‘해어화’. 성매매특별법 시행 앞두고 ‘해어화’가 만들어졌을 때만 해도 이 단체활동의 목적은 ‘성매매특별법 반대, 여성단체 타도!’였다. 그러나 시범사업 실시 이후 ‘해어화’는 성매매피해여성지원센터 ‘살림’과, 여성단체에 극도의 불신을 쌓아왔던 집결지 여성들을 연결시켜주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왔다.

‘해어화’의 김지은(33)씨는 “우리가 성매매하면서도 궁극적인 목표는 탈성매매가 아니겠는가. 바람직한 형태의 전업, 다 똑같은 마음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정부는 대책이 없었다. 쉼터에 입소하길 희망하는 여성이 50명만 된다 하더라도 부산 전역에서 갈 곳이 없을 정도였다”고 말했다. ‘해어화’는 정부에 실효성 있는 생계대책을 촉구하며 “똘똘 뭉쳤고”, 몇 차례의 시위를 통해 업주들로부터도 빚 탕감을 약속 받기에 이르렀다.

1천~3천만 원의 빚을 떠안고 있는 집결지 여성들에게 있어서 ‘빚 탕감’은 탈성매매의 가장 기본이 되는 요건이다. 그래야 “학원도 다니고, 직업훈련도 받고, 새로운 생각을 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16살 때부터 성매매 현장에 유입된 이후, 완월동 집결지에서 나와 쉼터로 올 때 1천8백 만원의 빚을 지고 있었던 이수진(24)씨는 “우릴 위해 법이나 정책이 생기는 것보다, 나이 들면 빚을 다 못 갚아도 얼마 돈을 쥐어주고 집으로 보내주면 좋겠다. 나이 먹어서 계속 밀려서 팔려가는 것이 최악이다”라고 말한다.

'해어화'는 시범사업 과정을 통해 업주들과 서로의 의견을 타진할 수 있는 단체로 자리매김했고, 그렇게 되기까지 든든한 방패이자 보호막이 되어준 것은 '살림'과 '해어화' 임원들의 참여였다. 성매매피해여성지원센터 ‘살림’은 아웃리치(out-reach) 서비스(정기적으로 성매매 현장에 찾아가 여성들에게 탈성매매와 자립에 관련한 상담 및 정보를 제공하는 것)를 통해 여성들과 만나갔다.

이외에도 시범사업의 내용을 보면 월 3회 이상 상담을 받는 사람들에겐 자립지원금으로 40만원이 6개월간 지급되고, 직업훈련비, 의료비, 법률지원, 창업자금 지원 등이 제공되고 있다. 이 시범사업은 실질적으로 탈성매매하기엔 많은 시간과 자원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다른 대안이 제공되면 성매매 여성들은 성매매에서 떠날 것이다”라는 전제하에 시행된 스웨덴의 말모 프로젝트를 모델로 삼았다.

‘살림’의 최강혜진 상담교육부장은 그러나 “시범사업을 수행하기 위한 과정은 험난하고 예측할 수 없는 과정들”이었다고 말한다. 가장 큰 이유는 “업주들과 니까이(삐끼 이모)들, 인근 상인들이 각종 루머를 퍼뜨려 여성들로 하여금 상담소를 불신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지난 6개월간은 성매매 여성들과 여성단체와의 ‘신뢰’를 쌓는 과정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서로 포기하지 말자”

“처음엔 상담원들이 그저 쏟아내는 욕설과 하소연만 듣고 왔다.” ‘살림’의 박김혜정씨는 시범사업에서 중요한 것은 여성들이 현장에 있으면서도 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이라고 강조했다. “가족이나 자기 지원망을 잃어버린 상태다. 그리고 성매매 사회가 워낙 특수하기 때문에 다른 사회 적응하기 어렵다. 생계비를 지원해주고, 옆에서 지지해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언니’들이 알게 되면서 조금씩 그러나 큰 변화가 생겨났다.”

여성단체와 집결지 여성들과의 신뢰관계는 시간이 흘러 저절로 쌓인 것은 아니었다. 시범사업 초기엔 집결지 여성들이 경찰병력 증가이유가 여성단체 때문이라고 생각해 아웃리치를 저지하기도 했고, 업주자살 사건이 일어났을 때 업주들은 상담소에 시신을 들여오겠다며 험악한 분위기를 만들기도 했다. 그러나 ‘살림’은 경찰의 인권침해적인 단속방식에 함께 항의하고, 새벽까지 아웃리치 서비스를 실시해 꾸준히 여성들을 위한 정보를 제공하며 여성들 곁에 다가섰다.

50대 중반의 성매매 여성인 자영씨는 “조용히 살고 있는 우릴 왜 짓밟느냐”며 ‘살림’ 측에 적극 항의했던 장본인이다. 자영씨는 “억수로 욕 많이 했지만 이젠 이 사람들에게 이해가 가고 고마움을 느낀다”고 말했다. “여기 아가씨들 보호해주고 존경해주고, 저런 데서 누가 우릴 인간으로 보나, 밖에선 쓰레기 취급하는데 여기 오면 대우해주는 게 고맙다. 약도 주고 병원비를 준다. 포주들 병원 한 번 안 데려가 주고 다 빚으로 얹었는데, 그래도 여기 선생님들은 우리 생각해주니까….”

‘살림’이 공식적으로 밝히지는 않았지만 수많은 여성들이 아웃리치 서비스를 통해 생계비를 지원 받고 있고, 시간을 쪼개 학원수강, 운전강습, 직업훈련을 받고 있다. 그러나 탈성매매란 요리학원에서 자격증 취득시험을 봤다가 떨어진 자영씨에게도, 쉼터에서 마음의 안정을 찾으며 작은 꽃가게를 내고 싶어하는 이수진씨에게도 쉽지 않은 길이다.

‘살림’ 정경숙 소장은 “정부지원이 언제까지 계속될 지 모르기에, 가만히 있는 여성들이 전업의 희망을 가지도록 들쑤셔놓고 끝까지 책임지지 못한다면 죄책감에서 헤어날 수 없을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살림’은 또, 쉼터가 이미 포화상태인 상황에서, 여성들의 자립을 위해선 무엇보다 ‘주거’가 필요하고 ‘그룹 홈’이 필요하다고 요구하고 있다.

시범사업 6개월, 그 성과를 묻기는 어렵다. 성매매특별법 시행 이후 이 곳은 언제나 살얼음판이었다. 그러나 ‘살림’의 시범사업부장 황순미씨는 “사업의 승패를 떠나 미스방에 앉아 졸고 있는 언니들 만날 때, 아침에 교육 받으러 다니느라 헬쓱해진 얼굴로 웃어주는 웃음 속에서 희망을 본다. 다른 삶을 준비하고 있는 그들에게 힘이 보이기 때문이며, 쉽게 포기하지 않으리란 믿음을 확인했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해어화’의 김지은씨도 “상담소 선생님들과 버스 타고 여기까지 나오는데 이만큼 시간이 걸렸다. 정부 지원은 끊길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가 원하는 한, 이 분들이 먼저 우리의 손을 놓지는 않겠구나, 상담소 선생님들이 우리를 외면하지 않겠구나 하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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