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량언니작업장의 첫번째 텀블벅 도전!

 

불량언니작업장의 첫번째 텀블벅 도전

 

작업장의 지속적인 운영을 위해서는 안정적인 판매처 확보가 필요하다며 이것 저것 오만가지를 고민해보던 이루머들은, ‘온라인 세계로 나아가보자!!!’고 결심했어요. 첫번째 기획이었던 ‘이달의 레몬청’ 8월 주문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고, 두번째 기획은 바로 이룸 안에서 해보자, 해보자 벼렀던 텀블벅입니다. 불량언니들은 이룸이 텀블벅도 하게 하네요. 이루머들과 불량언니들의 좌충우돌 첫번째 텀블벅에 많은 후원과 주변 홍보 부탁드립니다!!

 불량언니작업장 x 이룸이 텀블벅에?! 
불량언니들의 첫 여름, 손뜨개 텀블러 파우치를 소개합니다!!!
“여름 한정판 불량언니들의 패키지를 만나보세요!”

 손뜨개 텀블러 파우치

불량언니들이 한땀한땀 직접 뜬 텀블러 파우치 입니다. 알록달록 너무 예쁘죠?

“여름 한정 마지막 수량! 불량언니들과의 연대를 표현하는 텀블러 파우치로 텀블러의 예쁨·활용도·의미를 한번에 업그레이드 시켜보세요”

 수제비누

불량언니들이 좌충우돌 만들어낸 수제비누 입니다. 
천연화장품 전문 선생님의 지도 아래 화학성분 없이 피부에 좋은 재료만 썼습니다.

앞서 후원해주신 분들의 뜨거운 반응!
“향기가 좋고, 거품이 끝까지 잘 나요!” (영화 찍느라 자외선에 지치는 페미니스트 레나 님) 
“세수할 때마다 건강해지는 기분! 이건 내 생애 최고의 비누에요…(울먹)” (취업 성공이 코앞인 페미니스트 김예나 님)

 손뜨개 수세미

불량언니들이 한땀한땀 직접 뜬 손뜨개 수세미입니다.
불량언니 작업장 시작부터 함께 한 소중한 아이템입니다.
제작자별 개성을 살린 대표 아이템 2개씩을 선정, 세트로 구성하였습니다.

설거지를 할 때에도 페미니스트 정체성과 함께! 
주변인 -아빠, 오빠, 애인, 친구, 친척 등- 에게 가사노동을 적극적으로 할 것, 성구매에 반대할 것을 권하는 의미로 선물하기에도 좋습니다 

텀블벅 좌표 : https://www.tumblbug.com/badsis001

공지사항

[활동한꼭지] 태안여행(서로가 서로를 만나는 이 어려운 문제) _기용

태안여행(서로가 서로를 만나는 이 어려운 문제)

 

마음을 가라앉혀보아요

지난 4월 26-27일 1박 2일로 충남 태안으로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시원한 바다를 보고, 모래 장난을 하고, 바다 속으로 첨벙첨벙 뛰어 들어갔어요. 낮에는 수목원의 꽃과 나무들과 대화하다가 저녁에는 팀대항 게임으로 불타올랐고(비냉팀 vs 물냉팀) 노래방기계로 광란의 밤을 마무리 했습니다. 분명 즐겁고 신나는 시간이었어요. 여행은 이렇게 잘 다녀왔습니다. 그런데 다녀온 기분이 마냥 쌍큼하고 즐겁지만은 않은 것은 왜일까요.

작업장과 반상회에 참여하는 여성들의 수가 늘어났습니다. 여덟 분이 되셨는데 이에 따른 역동(분란, 난리 등등)이 한층 강화되었습니다. 쌓인 시간과 늘어난 사람만큼 그 수준이 깊어졌어요.(크하) 지난 제주 여행 때 친구로서 평생 가자고 약속했다던 두 분이 어느새 서로를 본체만체 하시고, 새로 들어온 분에 대해서 누군가는 싫어하고 누군가는 좋아해서 편이 갈리고 말았습니다. 그뿐인가요. 서로 싫어해서 활동가에게 교대로 찾아와서 서로를 욕하던 두 분이 세상에 둘도 없는 절친이 되었습디다.

아. 이를 어찌하면 좋을까요. 이룸이 만들어낸 자리를 통해 두 분이 평생 친구가 되셨다는 말에 기뻐했던 우리가 참 순수했구나 싶습니다. 50-60대 어른들이, 60살은 지천명이라면서요, 대체 왜들 이러시나 답답하기도 합니다. 누가 하는 짓이 별로 맘에 안 들어도 이제 청량리도 다 없어진 마당에 경쟁상대도 아니고, 내 서방 꼬셔간 것도 아니고, 내 돈 사기쳐 먹은 년도 아니건만 뭐 그렇게 미울 것은 또 뭐냐고요.

그리고 또 역시 연결된 고민은 구성원들 간의 파워게임…이랄까  게임이라기에도 민망한 독점체제가 유지되고 있단 말이죠. 활동가들이 보기에는 눈이 땡그래지는 광경들을 언니들은 편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단 말이예요. 그 모습에 걱정을 되면서도 언니들이 괜찮으시면 괜찮은 건가.. 헷갈리기도 했었어요. 그런데 이제는 그 도를 넘어선 때가 와버렸고요.

이런 튜-울립

같은 반으로 30년 동안 지낸 것 같은 것인가? 라는 생각이 듭니다. 가끔 누가 전학가기도 하고, 오기도 하지만 5학년 8반으로 계속 같은 반인 거예요. 그 세월이 30년인 거죠. 좋아하는 애들이랑 같이 놀고, 싫어하는 애들이랑은 본체만체 사는데 소풍날 싫어하는 애랑 강제로 같은 조가 된 것 같은 기분일까요.

하여튼. 이 관계들의 지형은 어찌나 꿈틀대는지 여행 뒤에도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운 소식들이 업데이트되었습니다. 이 변화의 속도에 또 한 번 어리둥절. 상황을 지켜보다 이룸은 반상회를 소집하였습니다. 터놓고 얘기…를 했다기보다는 우리 작업장, 반상회 안에서의 최소한의 규칙들에 대해 확인했어요. 이룸도 참 많은 고민이 됩니다. 싫어하는 사람과 소풍을 함께 가야한다는 건 누구에게도 쉽지 않은 일이니까요. 그리고 이런 상황은 예외적인 것이 아니라 우리가 더 많이 만나면 만날수록 더 가깝게 느낄 수밖에 없는 일이겠지요. 아마 앞으로도 갈 길이 많을 것 같습니다.^^;;

이 바다를 너~♬와 함께.. 걷고싶다…..
불량언니 작업장

불량언니 작업장 개시! 3.8 여성대회에 부스를 세우기까지 후기

불량언니 작업장 총회 수세미 완판!! 이후 붙은 자신감으로 수제과일청에 도전해 보았습니다. 3.8 여성대회에 나가 우리들을 알리고 20병 완판할 계획을 세웠다지요.

청량리 경동시장에서 레몬과 자몬을, 두레생협에서 유기농 설탕을, 유리병과 포장재료 등등을 구비하여 준비 완료!

 

레몬을 떨이로 더 넣어주신 사장님

 

만반의 준비를 하고 2월 26일 도도, 이호, 덤벙이, 공주, 멍퉁이, 내맘대로, 갱상도까지 7명의 불량언니들이 이룸 사무실에 모였습니다.

총회 때 완판한 수세미 가격을 정산하여 하얀 봉투에 이름을 써서 전달하였기에 아주 기분 좋은 마음으로, 뭐라도 하면 되는가보다 생각하셨는지 작업장 분위기는 따!봉! 이었구요.

일단 작업하기 좋을 트로트를 크게 틀어놓고, 머리캡과 마스크를 쓴 다음, 빡빡 레몬과 자몽을 씻은 다음, 칼질을 하고 껍질을 벗겼습니다.

레몬의 코팅을 녹이기 위해 데칩니다.

 

예쁘게 완성된 청을 사전홍보하는 웹자보도 뿌렸어요.

청 포장은 멍퉁이 언니의 아이디어!

 

드디어 대망의 여성대회 날~~

 

갱상도, 내맘대로 두분의 언니도 함께! 빼놓을 수 없는 소중한 자원활동가 이예지님도 함께! 부스에서 사람들을 맞이하며 일했습니다.

 

오전에 활동가 달래가 사무실에 왔다가 결석 증세로 응급실에 실려가는 ㅠㅠ 상황이 있었어요. 얼마나 신경을 썼으면 그랬을까 싶어서 안타깝고 짠한 마음을 안고 달래몫까지 더 열심히 홍보와 판매를 했지요.

(달래는 수술을 잘 마치고  회복중에 있습니다~ 얼른 나아라~)

 

 

내맘대로 언니는 촛불때부터 굉장히 많은 집회에 참석하셨었고 집회에 가면 힘이 나신다는(!) 집회 유경험자 이시기에 여유가 있으셨어요. 그럼에도 작업장의 일원으로 참여하신 것은 사뭇 달랐을듯 합니다.

 

갱상도 언니는 서울에 수십년을 사셨는데 광화문에 처음 와보셨대요. 청량리에서 종로를 지나 광화문까지 가는 길도 신기해하셨고, 광화문에 모인 사람들을 보시고는 동그란 눈이 더 동그래지셨습니다. 처음에는 얼음이 된 듯 해 보이셨지만 점차 세심하게 주위를 살피셨고, 저희들의 사진을 찍어주셨어요.

 

어느덧 점심시간이 훌쩍 지나 언니들  먼저 식사하시라고 보내고 나니 행진 할 차례가 되었더라구요. 또 이룸 깃발을 힘차게 들고 차별금지법 제정과 낙태죄폐지 구호를 외치며 달리고 왔지요.

 

해맑은 1인과 힘든 1인

 

그렇게 돌아온 부스에서 언니들과 재회를 했습니다. 아래는 오늘 하루가 어떠셨는지에 대한 언니들의 소감이에요.

 

갱상도 언니 :

처음와가 정신이 없어서 모르겠다.
여성단체라는게 좋은거야. 여러 사람에게 자신의 마음에 있는 말을 당당하게 할수 있으니깐.

안쓰럽기도 하고 기가 멕히기도 하고 슬픈 마음이 들지만은 그래도 여성들이 똘똘 뭉치니까 좋았어. 도와주는 남자들도 고맙고.

 

 

내맘대로 언니 :

마음을 같이 나눌 수 있으니깐 좋은거지. 우리 한거 여기 차려 놓고 부족한거 많은데도 감사하다고 해. 다음에는 더 가져와도 되겠다.

 

언니들의 말 한마디 한마디 뭉클하지 않나요?(벌써 또 뭉클한 1인) 갱상도 언니의 눈으로 본 3.8 여성대회 풍경도 첨부해요♡ 그럼 4.20 장애차별철폐의 날에 또 만나요 꼭 꼭이요~~

 

멋진 한컷!   
불량언니 작업장

스물넷에 들어와 어느새 환갑…’588 여성들’이 뜨개바늘을 손에 쥔 이유는(경향신문, 180218)

지난 7일 서울 동대문구 용두동에 있는 ‘반성매매인권행동 이룸’ 사무실에 ‘청량리588’에서 일하던 중장년 여성 다섯 명과 활동가들이 모여 털실로 수세미를 만들고 있다. 최미랑 기자
지난 7일 서울 동대문구 용두동에 있는 ‘반성매매인권행동 이룸’ 사무실에 ‘청량리588’에서 일하던 중장년 여성 다섯 명과 활동가들이 모여 털실로 수세미를 만들고 있다. 최미랑 기자

지난 7일 서울 동대문구 용두동, 가정집을 개조한 ‘반성매매인권행동 이룸’ 사무실에 작업장이 열렸다. 도도(52·이하 모두 별명), 갱상도언니(64), 이호(62), 멍퉁이(67), 내맘대로(59)가 코바늘을 잡고 거실 한가운데 놓인 탁자에 둘러앉았다. “낮이나~밤~이나 나는 너만 보고 싶어~” 카세트에서는 트로트가 흘러 나왔다.

앞앞이 색색깔 털실을 놓고 수세미를 만드는 중이었다. “나는 뜨다 보니 고만 모자처럼 되어부렀네.” “괜찮아요. 그런 모양이 큰 그릇 닦기에는 또 좋거든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이리저리 돌려 보는 ‘이호’에게 강사가 말했다. “이렇게 처음에 열 코, 그 다음엔 몇 코를 떠요?” “모양이 넓어져야 될 것 같은데 왜 좁아지죠?” 질문이 쏟아졌다.

이날 모인 다섯 명은 ‘청량리 588’에서 일하던 사람들이다. 스물 네 살에 거기 들어갔던 ‘내맘대로’는 이제 환갑을 바라본다. 형편이 나아지면 나갔다가 어려워지면 돌아오기를 거듭했다고 한다. 가정폭력, 이혼, 사연은 제각각이지만 모두 살 길을 찾으려 흘러들어가 거기서 반평생을 보냈다.

청량리588로 불려온 서울 동대문구 전농동 620번지 일대는 국내에서 가장 큰 성매매 집결지가 있던 곳이다. 젊은 시절 ‘유리방’에서 일했던 여성들은 나이가 들면서 점점 더 구석진 곳으로 밀려나는 것이 그 동네의 삶이었다. 중장년 여성들은 한 평이 채 못 되는 쪽방에서 먹고 자며 ‘영업’을 했다. 부엌도, 화장실도 제대로 돼 있지 않은 방에 머물면서 매달 200만~300만원의 ‘깔세’를 업주에게 내야 했다. 지난해 4월 청량리 재개발이 본격화되면서, 마지막까지 쪽방에 살며 버티던 이들까지 모두 다 그곳을 떠나야 했다. 일부는 서울역으로, 영등포역으로 떼밀려갔고 결국 다시 성매매로 되돌아갔다고 한다.

7일 오후 서울 동대문구 용두도의 반성매매인권행동 이룸 사무실에서 멍퉁이(67·별명)가 뜨개질을 하고 있다. 최미랑 기자.
7일 오후 서울 동대문구 용두도의 반성매매인권행동 이룸 사무실에서 멍퉁이(67·별명)가 뜨개질을 하고 있다. 최미랑 기자.

“그래도 내 세월 다 보낸 데가 거기야.” 딸기모양 수세미를 만들던 이호는 집결지가 철거돼 슬프다고 했다. “나는 거기 징하데이.” 옆에서 실을 뜨던 갱상도언니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차도 안 다니는 눈 오는 날에도 그 눈을 맞고 서 있어야 되고, 장대같은 소나기가 와도 서 있어야 되고.” 암에 걸린 아들 병원비를 벌기 위해 성매매를 그만두고 나서도 호객꾼으로 일하던 시절을 떠올리며 그는 진저리를 냈다. 아들은 지난해 세상을 떠났다.

청량리제4구역 도시환경정비사업 추진위원회와 동대문구에 따르면 이 지역에 2020년까지 65층짜리 주상복합건물과 호텔·백화점이 들어선다. 지금 사업은 지지부진하다. 재개발 사업에 개입한 폭력조직, 그들과 결탁된 사업자들이 비리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성매매업소를 보호해준다며 돈을 뺏던 폭력조직은 재개발 이권에 손을 뻗쳐 여성들을 쫓아내고 이주보상비마저 가로챘다.

이룸 활동가들은 2005년부터 의료·법률지원 상담을 하면서 이곳 성매매 여성들과 인연을 맺어 왔다. 철거를 앞두고 남은 이들이 마음에 걸려, 상담으로 인연을 맺은 활동가들이 연락을 했다. 그렇게 모인 사람들이 성매매가 아닌 다른 살 길을 찾기 위해 모임을 시작했다.

“처음엔 매달 한 번씩 만나서 같이 밥을 먹었어요. 삶터에서 쫓겨나니 다들 우울증이 온 거예요. 마음이 가라앉고 여름이 되자 ‘일자리를 구하는 걸 도와달라’고 하시더라고요.” 고진달래 활동가는 “노인복지관에도 연락을 돌려 보았지만 이들을 위한 일자리를 찾기는 어려웠다”고 했다. 정부가 한때 이룸같은 민간단체와 협력해 성매매를 그만두겠다는 여성들에게 월 40만원의 생계비를 주는 등의 지원을 하기도 했지만 학력이 낮고 만성적으로 가난에 시달려온 이곳 여성들이 다른 밥벌이를 찾기는 불가능에 가까웠다. 대부분 집결지에서 오래 있었던 탓에 건강도 좋지 않았다.

청량리588 일대 업소가 모두 문을 닫은 이후인 지난 7월 이룸 활동가들이 청량리에서 쫓겨난 중장년 여성들을 데리고 강원도로 여행을 떠났다. 수십 년 머물던 지역을 떠나게 된 여성들은 이 여행이 끝나고 활동가들에게 “일자리 구하는 것을 도와 달라”는 말을 처음 꺼냈다고 한다. 해변을 걷는 유나 활동가(왼쪽)와 이호(62)의 뒷모습. 고진달래 제공.
청량리588 일대 업소가 모두 문을 닫은 이후인 지난 7월 이룸 활동가들이 청량리에서 쫓겨난 중장년 여성들을 데리고 강원도로 여행을 떠났다. 수십 년 머물던 지역을 떠나게 된 여성들은 이 여행이 끝나고 활동가들에게 “일자리 구하는 것을 도와 달라”는 말을 처음 꺼냈다고 한다. 해변을 걷는 유나 활동가(왼쪽)와 이호(62)의 뒷모습. 고진달래 제공.
그래서 머리를 모아 생각해낸 것이 공동 작업장이다. 이날 수업에 참석한 5명을 포함한 8명이 성매매를 벗어나려고 분투 중이다. 이미 전주와 대구, 부산 등에 지방자치단체 지원을 받는 공동작업장이 있고, 서울에는 영등포구에 사회복지법인 ‘윙’이 운영하는 작업장이 있다. 하지만 고령의 성매매 여성을 지원하는 곳은 찾기 힘들었다.

“택배 왔습니다.” 세 시간 남짓한 수업시간 동안 털실 상자가 세 차례 배달됐다. 그때마다 다들 아이같은 얼굴로 짝짝 손뼉을 쳤다. 후원자들이 보내주는 이 털실이 이들의 희망이다. 이룸 쪽에서 페이스북에 털실을 후원받는다는 글을 올린 뒤, 이름 모를 이들에게서 이런 택배가 오곤 한다. ‘응원해요’라는 글귀가 적힌 상자를 여니 색색의 실이 가득하다. “누구신지 몰라도 빨리 고맙다고 전해 드려야 해. 꼭 좀 전해줘.” ‘내맘대로’가 한 활동가를 붙잡고 말했다.

수업이 끝나자 다섯 사람은 각자 마음에 드는 실을 골라 들고 집으로 돌아갔다. 설 연휴 동안 수세미를 만들어 오면 이룸 활동가들은 만든 사람의 별명을 꼬리표로 달아 판매하고 만든 이에게 수익을 모두 돌려줄 계획이다. 22일에는 다 함께 과일청도 담근다.

7일 반성매매인권행동 이룸 사무실에서 열린 손뜨개 작업장에서 참석자들이 만든 수세미. 모양은 제각각이다.
7일 반성매매인권행동 이룸 사무실에서 열린 손뜨개 작업장에서 참석자들이 만든 수세미. 모양은 제각각이다.

고진달래 활동가는 “액수가 크든 작든 우선 성매매가 아닌 일로 돈을 버는 경험을 해보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했다. “다른 일을 할 수 있고, 갈 곳이 있는 분들은 여기서 이미 다 떠났어요. 다른 일을 찾을 수 없는 사람들만 남아 있었던 거죠. 이들을 돕는 건 사회의 책임이 아닐까요.”

반성매매인권행동 이룸 홈페이지 ▶ https://e-loom.org
페이스북 ▶ https://www.facebook.com/eloom2003
후원계좌 ▶ KB국민은행 093437-04-010540 예금주 : 반성매매인권행동이룸
불량언니 작업장

[활동한꼭지] 영화 <공동정범> 그리고 청량리 반상회 – 우리의 장소는 우리가 함께 있는 곳 _별

한국도시연구소, 반빈곤운동공간 아랫마을 초청 공동정범 상영회와 GV를 다녀와서. 감사한 마음으로 담아뒀던 글을 씁니다.
공동정범 꼭 보세요! (관객 1인의 입소문)
이룸의 청량리 반상회 응원해주세요.

_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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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격의 시간

 

작년 청량리 집결지 재개발 대응이 한창이었을때 gate 22의 이태원 상영회에 갔던적이 있었고 질문을 했던 적이 있다. 가슴이 너무 답답해서 찾아갔다. 내가 이 공간을 둘러싼 상황을 단편적이고 납작한 몇개의 말들 외에는 이해할 역량이 없다고 느꼈다. 매일 상황은, 사건은, 장소는 쏟아져들어오는데 나는 터져나가고 넘치고 우그러졌다. 목격자라는 역할, 활동가라는 위치는 나에게 어떤 책무를 주었지만 그걸 수행할 나라는 자리는 계속해서 좁아지는 핀조명 같았고 나는 한발로 서 있었다. 조명이 꺼지고 내 발도 어둠속으로 사라졌다. 어둠속에 있는 발.

 

 

어떤 질문을 했었는지는 기억이 잘 안나는데 목격자의 윤리에 관해서 였다. 이태원의 세 여성들을 보듯, 평택의 마마상과, 그리고 청량리의 우리들. 김일란 감독님은 질문을 남겨야 한다고 했다. 그 과정들을 다 겪고 나서 버티고 나서 질문들을. 질문을 부르는 질문들을. “마음을 앞지르지 않”아 시간이 필요한.

 

졸업전 학교에서 몸담았던 공간을 잃고 뒤이어 리모델링이 시작되었고 거칠게 페인트로 그림이 그려져있던 갈라진 나무문은 유리문으로 교체되었다. 여닫이였나 미닫이였나 아니면 자동문이었는지.. 그 문의 소거는 그 시기 우리들에게 퇴거를 선언하는 확실한 증거였다. 오래되고 낡았기에 바뀌어야한다. 낡고 오래되어 불이 잘 붙는 물질들 틈에서 조심조심 살아서는 안된다. 불이 난다면 소방차는 좁은 골목길에 가로막혀 제때 도착하지 못할것이다. 안전 미관 편리성 우리는 그런 가치들이 우리를 소거한다는 듯 더욱 엉망으로 살아져야 했다. 더 얼기 쉬운 곳으로 물이 배어나는 곳으로 이동해야 했다.

 

우리는 청량리에서 작년 겨울부터 초여름까지 파쇄된 종이위의 글자들처럼 잘게 나뉘어 의미를 표면에 고정시킬수 없는 말로 되어갔다. 철거가 진행중인 청량리를 배회하는 일을 했다. 마지막 남은 사람에게 마지막 물품을 전해주려고. 마지막 남은 유리방 맞은편 마지막으로 고립된 여성들이 거주하는 달방 모텔에서 타로로 점을 쳤다. 카드위에 각자가 어디로 가게될지 적혀있었을까.

 

 

증언의 모순, 모순의 증언

 

그 시기 이룸은 갈등을 겪었고 소진이 왔다. 다 타고 남은 잿불로 움직였다. 공간에 대해 생각하고 공간의 사람들 – 쪽방 여성들과 제주 먼 섬의 바다에 갔다. 바닷가의 그림같이 잔디밭이 깔리고 흔들그네가 있는 숙소에서 십년전 청량리의 사진들과 그날 우리의 얼굴들을 찍은 사진들을 같이 펼쳐놓고 기억을 얘기했다. 우리의 장소는 우리가 있는 곳이야 라고 말하듯. 우리는 그 모진 곳에서 살아남았고 이렇게 만났다고 기억을 얘기했다. 아이를 낳았었고 늙었다고. 숲이 된 남일당 터의 운명과 청량리 588의 운명은 고층 타워팰리스를 향해 간다. 빈 땅을 차지하며 쇠락하는 것들. 철거와 강제퇴거 이후의 폐허, 그곳을 저도 압니다. 저도 그곳에 살았어요. 살고 걸었어요. 네개의 큰 지류로 나뉘는 길, 넷째 골목 초입의 유리방과 그 다음 길로 연결되는 여관골목, 그 입구에 서있던 큰 나무와 고양이, 택시로 메워져있는 두번째 길과, 청과시장 옆의 붉고 컴컴한 불빛, 굴다리를 끼고 올라가면 만나는 쪽방 언니들의 믹스커피. 좋은일 하느라 수고가 많네요 하는 인사.

 

현장활동가들에게 청량리 집결지 공간은 그리움이나 아쉬움 안타까움이 아닌 다른 감정으로 그려져야 하기에 우리는 수렁에 빠진다. 고립된다. 여성들을 동원하는 철거투쟁에 각을 세우며 빈민/철거민/노동자화의 남성중심성에 반대했고 바뀌지 않은 사회에서 여성들만이 피해를 보게 되는 재개발과 폐쇄 정책에 반대했기에 이룸은 계속해서 결정을 유보했고 할수 있는 일을 했고 청량리 반상회라는 소규모의 쪽방 여성 그룹만이 남았다. 그래서 우리의 장소는 이곳이다. 우리가 겪은 일로 우리는 국가에 의한 폭력을 개인적이고 구체적으로 내밀하게 알게되었고 폭력이 벌어지고 있는 곳, 벌어질 곳에서 함께할수 있다는 바람을 가진다. 우리가 수렁으로 빠지는것은 그 감정이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질문이. 망루위의 감정들이 산란하듯 그 화염 이후의 감정이 화염에 머물러있기 때문이다. 집결지라는 트라우마의 공간을 상실하며 여성들이 맞닥뜨리게 되는 절대적 빈곤의 불안을 어떻게 묘사할수 있는가. 사고를 조금도 누그러뜨리지 않으면서 어떻게. 트라우마는 상실될수 있는 성질의 것인가? 이건 그런 이상한 주장이야? 그렇지 않다. 삶의 관점에서, 공간과 인권의 관점에서, 모순되는것은 다른 문턱을 암시한다. 우리는 여성들이 집결지에서 계속 일하게 해달라는 주장을 함께 할수 없었고 그런 운동은 없다고 여겼다. 공간의 관성이었을뿐. 그러나 여성들이 대책없이 쫓겨나는 사람들이 되지 않아야 한다고 말하며 단속의 형태로 이뤄지는 퇴거 – 퇴거로 완성되는 단속을 증오했다.

 

그러므로 딜레마, 모순을 드러내는 것까지. 그게 우리가 할수 있는 일이다. 우리는 모순에 집요하다. 우리는 증언의 모순이 아닌 모순의 증언으로 다음의 폭력을, 재난을 다른 방식으로 견딜 것이다. 폭력의 핵심으로 더 뚫고 들어갈 것이다.

 

ⓒ 반성매매인권행동[이룸]
불량언니 작업장

다큐 <이태원>을 함께 보았습니다 & 청량리 집결지 반상회 사진전

지난 2017년 12월 20일에 이룸과 강유가람 감독이 함께 주최한 영화 ‘이태원’ 상영회가 이룸의 이웃단체인 역사문제연구소에서 있었습니다.

또한 이날은 이태원과 청량리에서 찍은 사진들의 전시도 있었는데요, 영화 시작 전에 마련된 전시에도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져주셨습니다.

 

감독x활동가와의 대화시간도 30분을 훌쩍 넘겼는데도 자리를 뜨지 않으시고 진지한 눈빛과 질문으로 하나되는 시간이었습니다.

영화 상영을 먼저 제안해주신 강유가람 감독님께 깊이감사드립니다. 덕분에 많은 분들과 함께 만날 수 있었습니다.

아래는 이룸 활동가의 영화 이태원을 보고 드는 생각과 고민입니다.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영화 이태원을 보고.

 

작성 : 성지윤(기용)

 

청량리588과 후커힐은

나키 언니를 처음 만났을 때를 기억한다. 병원 앞에서 만나기로 한 날 70대시라는 얘길 들었고 나는 한 할머니에게 다가가 혹시?…라고 물었다. 그분은 아니었고, 멀리서 걸어오는 나키언니를 보자마자 한 눈에 알아보면서도 그전에 다른 분께 아는척 한게 괜히 머쓱해졌다. 난 너무 전형적인 70대 노인을 생각한거다. 영화에도 나오는, 공들여 손질한 앞머리와 쏟아질 것같이 빽빽한 속눈썹, 열손가락 파란 매니큐어까지. 청량리 언니들과는 또 다른 모습이었다. 나키 언니가 워낙에 특별한 사람인 것도 있지만, 괜히 ‘역시 이태원인가!’ 그랬다. 칙칙한 청량리와는 다르게 힙하고 화려한 곳이었다. 이룸에서 처음 이태원 아웃리치를 가던 날도 조금은 그랬던 것 같다. 후커힐을 나와서 화려한 불빛을 보자 괜히 기분이 흥청망청해지는 것이 왠지 술을 마셔야할 것만 같은.

 

다양한 성매매 업종에 따른 여성들 사이에 선긋기, 혹은 위계가 존재한다. 룸살롱 여성들은 집결지 여성들에 대해 ‘거긴 진짜 막장’이라거나 반대로 집결지 여성들은 룸살롱 여성들에게 ‘나는 깔끔하게 연애만 하지 지저분하게 술 먹는 거 안 한다’라는 식이다. 이것의 이태원 버전이 ‘나는 드런 한국 놈들 상대 안 한다’ ‘미국은 한번 가봐야한다’일테다.

 

청량리588은 성매매를하는 것이 확실한 곳이고 이태원은 노골적으로 하는 곳은 아니라는 점이 차이가 있는데 그것이 어떤 분위기가 된다. 이태원이 덜 성매매적인 곳이라는 듯, 청량리의 청소년통행금지 푯말은 24시간인데 이태원의 통행금지는 저녁 7시부터 다음날 아침 6시까지다. 이태원에 처음에 콘돔을 갖고 들어갔을 때, 마치 콘돔을 보며 키득거리는 중학생처럼 ‘어머 콘돔이야~’ 라며 웃으시는 통에 당황스러웠다. 왜 이런 걸 우리에게 주냐는 거다.

 

청량리든 이태원이든 집결지라는 공간의 특징 중 하나는 동네 밖을 나가지 않고 모든 일상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정말 말 그대로 그 곳에 일하는 공간인 가게에서 숙식까지 모두 해결하거나 매우 가까운 곳에 주거를 두고 있다. 사는 동네와 직장이 구분되는 것이 일반적이라면 이것은 분명 특별한 상황이다. 집에서 자고 나와서 일하는 내내 가게에 있다가 지척거리의 집으로 돌아가고. 멀리 나가는 일 없이 안에서만 맴맴 도는 까닭에 여성들에게 이 동네가 주는 의미가 훨씬 더 특별해진다. ‘가정 동네’가 아닌, 일반적이지 않은 동네 안에서 살면서 ‘이태원이라면 택시기사도 드러운 소리만 하는’ 외부의 시선 때문에 이 동네 사람이 아닌 척을 하기도 한다. 그래도 ‘입구에만 들어오면 마음이 편안한’ 공간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어떤 착취를 견뎌야하는 곳이다. 이룸이 이태원 아웃리치를 3년째 나가면서 개별적으로 상담하는 여성이 있어도 가서도 여성들에게 아는 척을 할 수가 없다. 사장의 눈치와 다른 아가씨들의 눈치가 보이기 때문에 처음 상담이 연결될 때 절대 이태원 와서도 아는 척 하지 말 것을 몇 번이나 당부한다. 그리고 이태원에서 연결된 여성들의 많은 수가 정신과 약을 복용중이다. 그녀들의 일과 이 높은 유병률은 어떻게 설명이 될까.

 

 

부동산을 가진 자와 아닌 자

영화를 보고 나서 참 부적절하게도 ‘역시 한국에서는 집을 사야하나..’라는 생각을 한건 나뿐이었나. 나는 세 여성들의 공통점보다는 차이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삼숙은 ‘웨이츄레스’가 아닌 사장님이고, ‘내가 양갈보가 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렇게 오해해도 ‘내가 아니면 그만’이다. 그리고 다만 외로울 뿐, 가게를 사두었던 덕에 가난하지는 않다. 하지만 나머지 두 여성은 상황이 좀 다르다. 인터뷰의 배경이 되는 그녀들이 살고 있는 집은 각자의 경제상황을 짐작할 수 있게 해준다.

 

한국 정부는 미군을 대상으로 하는 기지촌을 적극적으로 관리·운영한 바 있다. 미군들에게 ‘깨끗한’ 여성들을 제공하기 위해 여성들에 대해 주기적으로 성병검진을 실시했고 여성들에게는 당신들이 외화벌이의 주역이라고 추켜세웠다. 이에 대해 나키언니는 ‘엉덩이 국보’라는 단어로 정리한다. 또한 그 동안 당신이 이 나라에 외화를 벌어다 준 공로가 있기 때문에 본인이 받는 복지 지원에 대해서도 이것을 받을 만한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신다.

 

다양한 이방인들이 드나드는, 왠지 좀 무섭고 위험한 우범지역이던 이태원은 이미 옛말이 되었다. 이제는 그 다양성 때문에 매력적인 곳이 되었고 그 매력은 예술가들, 트렌디한 가게들을 끌어들였다. ‘나키’가 낮게 읊조렸듯 이미 이태원은 땅이 꺼질 것처럼 많은 사람들이 몰려드는 곳이다. 그리고 영화 속 젊은 예술가들은 이 동네가 더 유명해지질 않기를 바라고 있다. ‘영화’는 재개발 안 된다는 소문이 돈다고, 재개발되면 갈데없는 못 사는 사람은 어딜 가냐고 말한다. 하지만 아마 그녀도 알고 있을 것이다. 사실 그건 그녀의 바람이고 당위일 뿐 개발은 사람의 사정을 보지 않는다. 가난한 사람에게 더 가혹할 뿐이다.

 

청량리도 그랬다. 이미 십수년 전부터 헐린다는 소문만 있고 그대로 유지되어 왔지만 어느 순간 정말로 다 헐려지는 때가 왔다. 업주들은 보상금의 액수를 두고 서로 싸우고 등을 돌렸고 여성들은 오늘 당장이라도 나가라면 나가야되는 상황을 하루하루 버텼다. 아마 얼마나 빨리 진행되느냐의 문제일 뿐 갈 곳도 없는데 밀려나야하는 때가 올 것이다. 안타깝고 억울한 마음 외에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 영화가 그 고민의 단초가 될 수 있길 바라는 마음이다.

 

왜인지 ‘영화’님은 영화를 보지 않으셨다고 했다. 이룸에서 노년 성매매 인터뷰를 했을 때가 떠올랐다. 순자 언니는 인터뷰가 끝나고 ‘그거 들춰보면 쓸만한 게 없을거다’라면서 자신의 인생이 한심하다 하셨다. 언니의 낮은 한탄에 내가 좋은 대답을 찾지 못했던 그 순간이, 나에게 너무나 인상적이고 복잡한 마음이 들었던 순간으로 남아있다. 정확한 이유야 알 수 없지만 혹시 ‘영화’님도 순자언니와 비슷한 마음은 아니었을까. 이태원에 사는 세 여성들의 이야기를 다룬 이 영화가 나온다고 했을 때 참 놀랐던 것이 모자이크가 없을 거라는 점이었다. 참 소중한 이 영화를 탄생하게 해준, 영화에 출연할 용기를 내준 여성 세분께 감사드린다.

불량언니 작업장

[상담한꼭지] 재회 그리고 시작 _고진달래             

상담 한꼭지_ 재회 그리고 시작 

고진달래

 

10년 만에 다시 만난 그녀는, 눈에 띄게 달라져있었다.

 

내 기억 속 그녀는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데 주저함이 없었고, 다소 냉소적인 반응을 보일만큼 ‘쎈’ 언니였다. 도도한 말투와 표정으로 분위기를 제압했던 그녀는 바람빠진 풍선처럼, 눈은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고, 삶의 의욕은 남아있지 않았다. 헝클어진 머리, 둔한 반응, 때에 맞지 않은 대답 등..이 상태로 시간이 흐른다면 왠지 그녀는 다른 세상을 만들어서 살것만 같았다.

 

10년 사이 그녀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그녀와 그렇게 재회를 한 후 위기 의식이 느껴졌다. 일상적인 끈을 계속 만들면서 사람과의 접촉 할 기회를 계속 만드는 수 밖에 없었다. 처음에는 청량리 주변에서 만나다가 차츰차츰 사무실로 초대하고, 여행하는 모임에 초대하면서 반상회 멤버가 될수 있도록 으쌰으쌰 펌프질을 하고, 같이 밥을 먹고 같이 커피를 마시면서 조금씩 그녀에게 이룸의 존재 도장을 찍었다.

 

2018년 이룸의 큰 사업중 하나로 이룸은, 청량리 중장년 여성들과 작업장 만드는 것을 준비하고 있다. 어떤 아이템으로 시작을 해볼까 하던 중에, 그녀가 떠올랐다. 그녀와 1대 1로 손뜨개를 해보자! 손뜨개를 한다고 일주일에 한번씩 사무실로 찾아오다보면, 활동가들과 이야기를 하다보면, 손뜨개를 한다고 머리를 많이 쓰다보면, 그리고 그녀의 작품을 우리가 팔고 그 돈으로 용돈을 벌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되면…그녀는 조금씩 나아지지 않을까? 잃어버린 사회성을 되찾을수 있지 않을까? 예전만큼의 도도함과 생기를 되찾을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오늘 드디어 첫 손뜨개 모임을 진행했다. 우리는 수세미를 만들어서 총회때 판매를 하겠다는 거창한 목표를 세웠다. 손뜨개를 배우다 힘들어서 ‘나 이거 안하고 여기와서 청소하면 안돼?’라고 했지만 오늘의 이 시간이 싫지 않은 모양이다. 활동가들에게 눈을 맞추고 인사하는 모습을 처음 봤기 때문이다. 힘들어서 포기할줄 알았는데도 ‘그래도 해야지’라면서 느릿하고 엉성하게 손을 움직이는 모습을 봤기 때문이다.

 

엉성한 수세미가 만들어진다해도 어떠랴. 우리가 이 하나를 만들기 위해 시간을 내어 만났고, 이야기를 나눴고, 애를 썼고, 공을 들였다는 것 자체로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닐까.

 

왠지 하나의 수세미가 만들어지면 마음이 찡해질것 같다.

불량언니 작업장

청량리 반상회 X 이룸 ‘아듀2017 헬로2018’ 송년회 후기

청량리 반상회 X 이룸 ‘아듀2017 헬로2018’ 송년회 후기

12월 22일 이룸 사무실에서 청량리 반상회X이룸의 송년회를 진행했어요!

엘리베이터가 없어서 언니들이 오시기 불편하지 않을까 자리가 비좁지 않을까 걱정반 설렘반으로 언니들을 기다렸어요. 반상회 모임 장면을 사진으로 담아 작은 전시도 마련하였고, 요가할 때 쓰던 매트와 다락에 고이있던 교자상을 펴 편안한 자리도 만들고 크리스마스 장식으로 송년 느낌의 공간 세팅 완료!

드디어 언니들, 도착! 바로 맛있는 점심을 두둑히 먹고 디저트를 나누며 마니또 뽑기를 하며 송년회의 막은 올랐습니다!!

1부 ‘아듀2017’에서는 주옥같던 제주, 양양, 남이섬 여행과 반상회의 추억을 사진슬라이드로 감상하는 시간을 가졌고, 힘들었던 일, 좋았던 일, 칭찬할 일을 떠올렸어요.

이어 ‘황성음악단(feat. 별)’의 특별 초청 공연으로 분위기는 후끈 달아올랐습니다.

2부 ‘헬로2018’에서는 몸풀기 게임으로 시작했습니다. 이어 이룸, 반상회 마니또 친구, 나에게 주는 카드를 뽑아 선물 증정식을 하며 카드의 뜻을 이야기하며 서로가 서로에게 어떤 의미이고 관계인지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어요. 아! 물론 마니또 친구 발표도 자연스럽게 이어졌습니다.

여느 때보다 이룸 사무실에는 편안함과 따뜻한 분위기가 감돌았습니다. 모두들 감동에 젖어 사무실에서 신년회를 하자며 설레는 마음을 가지고 송년회는 마무리되었어요.   “언니들~ 내년에도쭉쭉쭉~ 뵈어요!”

 

불량언니 작업장

[청량리 쪽방 반상회 11차 소식] 영화 <아이캔스피크> 관람 후 역사문제연구소 방문기

[청량리 쪽방 11차 반상회 소식] ‘아이캔 스피크’ 관람 후 역사문제연구소 방문기
 – 고진달래

10월 청량리 쪽방 반상회에선 ‘아이캔 스피크’ 영화를 같이 봤어요. 지난 9월 반상회 때 ‘수요집회’ 참석하자고 결정이 된 뒤 언니들끼리 수요집회 가서 인사할 말들을 준비하고 있다고 하셨어요. 때 마침 할머니 관련한 영화가 나왔다고 하여 ‘아이캔 스피크’를 함께 보고 난 뒤 5명의 언니들과 함께 역사문제연구소를 방문하여 장원아 선생님과 함께 간담회를 진행하였어요.

처음 영화관을 간다는 언니들도 있고 나이 들어서는 자주 영화를 봐야겠다면서 영화관에 온 것만으로도 너무 즐거워하셨어요. 간담회 자리에선 언니들과 처음으로 진지한 이야기를 나눠보았고요, 언니들과 종종 이런 자리를 만들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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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을 좋아하는 언니: 처음에는 코믹하면서도 재미있으면서도 끝에 같은 여자로서 너무 안된거야. 13살에 끌려가서 성노예로 이렇게 일본 사람들이 그게 너무너무 어우~ 슬펐고 일본이 미웠어요. 때려 죽이고 싶었어요. 한마디로. 너무 짓밟았잖아 어린 나이에 그게 너무 슬펐어요 속이 상했고. 감동 있게 좀 봤어. (어느 장면에서요? )그냥 뭐라고 그럴까. 얘기가 안 나와. -쑥스러워하시면서 웃음- 생각이 안나.

우리를 웃게하는 언니: 하여튼 재미있게 봤다고. 눈물이 안 나오더라고. 나이가 먹어서 그런가 눈물이 메말랐어. 속으로 울고 (어느 장면에서 좋았어요?) 할머니가 귀싸대기를 확 갈겼을 적에 -모두 웃음- 그 장면을 너무 감정있게 봤어. 그 사람을 찰싹 때릴 때 그걸 감정있게 봤어요 -모두 웃음-

: 누구 귀싸대기 때려주고 싶은 사람이 있으세요?

우리를 웃게하는 언니: 아이 그런 사람 없는데도 그 순간에 내가 굉장히 마음이 그거 하더라고. 그렇더라고. 감동있게 재미있게 잘 봤어요. 확 갈겼잖아요. 거기에서 내가 막 마음이 슬픈거야. 근데 속으로만 울었지 겉으로는 내가 눈물이 뚝 떨어지지 않고 끝까지 내가 봤어요. 잠 안자고 – 하하하하 모두 웃음- 꾸벅 졸지 않고 끝까지 봤어요. 생전 처음 내가 그런거 보면은 끝날 때까지 눈 땡글땡글해서 본다고

유나: 옆에서 (의리가 넘치는) 언니가 거기 나오는 노래들을 따라하고 계시더라고요. 그래갖고 -일제히 노래를 부르기 시작. 생~각난다~ 꽃~반지끼고 시끌시끌-
이게 내 나이 대 말고 연배가 있으신 분들이 보면 되게 다른게 보일 수 있겠다.

의리가 넘치는 언니: 우리 나이 대에 보면 슬프고도 어둡고 참 암울한 시기에. 나라를 빼앗기고 살았다는 선조들이 그게 있었구나를 느꼈다.

유나: 영화 속 그 시장이 철거 위기인데 우리 이야기와 겹쳐지는 그런 얘기 있어서. 난 전혀 모르고 봤는데

소녀 춤을 추는 언니: 나는 그게 청량리를 위해 만들어진 줄 알았어. 그것도 우리꺼고 저것도 우리꺼고 우리 철거에 대해서 말해서..

기용: 그렇게 눈물이 나더라고. 제일 많이 울었던 것은 처음에 신문에 나고 시장 사람들이 알게 되고 시장에 돌아왔을 때 진주댁이 외면을 하잖아요. ‘왜 외면을 하지?’ 이게 현실을 그리는건가 했는데 나중에 나한테 말하지 않은게 섭섭했다고 하면서 둘이 막 우는데.. 그게 처음으로 그 할머니한테 ‘고생했다’고 말을 건네는 사람이, 이 할머니에게 이 말을 하는 최초의 사람이였겠지. 진주댁이 그러니까 어린 친구가 고생했다라고 말하는거 보면서. -다시 울컥- 그 할머니 인생에서 그 한마디를 해준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는거. 당신이 얘기 하지 않아서이기도 하겠지만 처음으로 엄마도 안 받아줬는데 무덤 앞에서 말할 때 펑펑 울었어.

소녀 춤을 추는 언니: 영화에서 감옥 앞에서 머리 잡고 그런 장면에서 나는 6.25 전쟁인줄 알았어. 그건 줄 모르고 전쟁 영화를 보여주는지 알았어.

우리를 배려하는 언니: 일본 장면 나올 때 까지 졸았어. -모두 웃음- 이게 뭔가 뭔가 졸았는데 어 막 시장 사람 나와서 엎을 때 눈 뜨고 정신 차리고 본거야. 시장 아줌마 진주댁이 거기서 조금 마음이 뭉클해져가지고. 근데 옛날 사람들은 그런 걸 정조 같은걸 많이 찾아서 그럴 수밖에 없다고 하는데 지금 현실적으로 보면 우리나라는 후진국이잖아요. 지금까지도 매듭이 안 풀리고. 매듭이 안 풀어지고 엉켜있는거 아니야. 근데 나문희 나오는 마지막 장면에 그때 보고 그 외국 사람과 통해서 그 때부터 감동이였어. 남동생 만날 때 조금 슬퍼가지고.

의리가 넘치는 언니: 무덤에서 한 거 보면 부모도 안 받아준거야. 부모도 내 자식이 아니라고 너 혼자 죽든지 살든지 알아서 인연은 여기까지라고. 그러니까 더 숨겨지고 가려지고 왜곡되고 그러는거지. 처음부터 가족들이 나서고 누가 옆에서 나서주고 했으면 이렇게까지 안됐지. 일본에서 저렇게까지 안 할 수도 있지.

소녀 춤을 추는 언니: 처음에는 6.25 영화 보여준지 알았고 나중에는 우리를 보여주는지 알았고 그리고 또 청량리 588인줄 알았어. 처음에 영화 본다고 해서 러브 사랑도 하고 -모두 웃음- 그런 건 줄 알았지. 볼수록 이게 청량리 우리 보라고 하는건가. 내 얘기 하나 싶어서. 자꾸 그런 게 보이고 나중엔 그게 와 닿기는 와 닿더라고 대신해주는거 같아.

의리가 넘치는 언니: 치매 친구가 치매 걸린거 대신해서 거기에 대해서 자기가 대신하려고 마음을 먹었던거에 대해서. 혼자서 영어를 배워서 그거를 해야된다고 생각을 하다가 찾은거지 가르쳐줄 사람을. 그런거에 대해서 대단하다고 생각했어. 대단하지 않으면 그거 못 하는거지. 주위에서도 인정을 받는거지 나중에는.

달래: 근데 할머니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알리는게 왜 그렇게 중요했을까요?

의리가 넘치는 언니: 당연히 중요하지. 영화에서도 자기는 직접 겪어서 몸으로 보여주잖아. 내가 증거니까 보라. 그런거를 함으로써 자기를 찾는거지

소녀 춤을 추는 언니: 죽기 전에 찾고 싶은거지. 나를. 다. 내 입장의 대표로.

의리가 넘치는 언니: 처음엔 나라를 생각했을 것이고, 가장 먼저 자기를 찾는거지. 자기가 하기 싫어도 한거잖아. 그래서 죽을려고 한거잖아. 친구가 살려주고 여러번 그랬을거 아니야. 영화에서는 한번만 나오지만 그 사람이 거기를 끌려가서 당할 때마다 그 생각을 했을거야. ‘죽자 죽자’하고 그랬는데 친구가 옆에서 평생을 저기하잖아. 그런거를 많이 생각을 한거지. 할머니는 소원 풀이는 일단 한거지. 내가 가서 국제 사회에 가서 떳떳하게 얘기할 수 있었고, 보여줄 수 있었고, 나라가 지배를 당해서 이런 일이 있었고, 우리는 내가 하고 싶어서 한게 아니라는 것을 알렸잖아. 여러 나라에서 수긍을 했잖아. 여러 나라에서 지금 많이 옛날보다 나아졌어. 옛날에는 그런 얘기 나오면 콧방귀도 안 뀌었대. 지금은 안 그러잖아. 소녀상도 세우고 도와줬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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틈틈이 역사문제연구소 장원아 샘이 할머니들이 겪은 일들과 배경에 대한 설명도 해주시고 언니들은 그동안 궁금했던 것들을 물어보시면서 우리는 그렇게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을 가졌어요.

곧 ‘수요집회’를 함께 갈 날이 기다려져요!

불량언니 작업장

청량리 쪽방 반상회 소식 : 강원도 양양 여름여행 후기 _ 고진달래

청량리 쪽방 반상회 소식 : 강원도 여행 후기

고진달래

 

청량리 집결지 쪽방 여성들과의 반상회는 여전히, 더 잘 되고 있답니다. 8월 달에는 바다여행을 함께 했지요. 여행 마지막 날, 우리들의 평가를 어떻게 남기면 좋을지 이야기를 하던 중에 언니들의 평가를 담기로 했지요. 글을 잘 못 쓰는 언니에게 짧은 인터뷰를 따서 언니의 목소리를 전달하면 되겠다 싶어, 언니 옆에 딱 붙어 앉아 어땠는지 물었답니다. 두런두런 여기저기서 언니들이 모여들었고 다 함께 만들어진 평가 시간. 다시 듣고 있는 녹음기 속 목소리들. 작고 소박한 우리들의 추억. 불과 2주전 그 시간으로 돌아가니, 여전히 그 시간은 아름답네요. 시간이 지나면 이리 추억이 되나봅니다.

 

Q 우리의 여행이 오늘 끝이 났어요. 어땠어요?

*꽃을 좋아하는 언니: 너무 좋았어요. 구경도 잘하고 잘 먹고 행복했어요
*소녀 춤을 추는 언니: 동심으로 돌아간 것 같았지.
*꽃을 좋아하는 언니: 동심으로 돌아간 것 같았고 몸이 아픈 것도 잊어버리고, 머리도 확 스트레스도 풀어졌고 날린 기분.

 

Q 어떤게 그런 영향을 준거 같아요?

*꽃을 좋아하는 언니: 절에서도 그렇고 산도 그렇고 물도 그렇고 그런 면에서
*소녀 춤을 추는 언니: 이 언니는 새로운 것이 많았을거야. 우리보다. 소나무보고도 그렇게 좋대잖아. 마음이 항상 소녀같은데 나오기가 힘드니까.
*꽃을 좋아하는 언니: 나는 울타리에서만 살았지 생전 이렇게 해봤겠어요. 저로서는 굉장히 행복했어. 나는 건강이 안 좋으니까 갑자기 다리가 아파지면 부담을 주기 싫어서 내가 내 몸 상태를 알기 때문에. 근데 여행을 통해서 가보니까 어머 그게 아니였어.

 

Q 여행을 해보니까 뭐가 좋았어요?

*꽃을 좋아하는 언니: 경치도 좋고 인간관계 대화를 나눠보니까 좋았고. 몸이 건강해지는 것 같아서 그걸 느꼈어. 새로 태어난 기분 같았어. 그렇게 행복한 적은 없었어요. 내가 생애 살면서 10대때가 가장 즐거웠던 과정이야. 20대부터는 내가 행복한 적이 없었어. 여행을 통해서 여기 언니, 친구들, 선생님들이 있구나. 내가 인간관계를 사귀지를 못 해. 마음은 그게 아닌데 말 주변이 없어요. 말도 할 줄을 모르고 사람한테 다가가기가 그런 저기가 있어. 여행을 통해서 사람에게 다가갈수가 있었고 즐거웠고 행복했어. 하나의 추억을 만들어가잖아. 이런 추억은 다시는 못 만들거 같아.

*소녀 춤을 추는 언니: 나는 여행을 다녔어도 내가 가면 가는가보다 하고 돌아다녔고 이렇게 나를 필요로 해서 기다려준 데는 없었다 이거지. 상대방이 나를 기다려준데는 없었어. 이 단체 생활에서 한다는게 좋은거지. 같이 할 수 있다는 것하고 누군가가 있다는 게 좋아. 여기는 한쪽 눈 감고도 올 수 있고 편하다는 것. 내가 못 났어도 기다려주고 내가 올수 있다는 거. 내 약점을 털어놓을 수 있다는 거. 얼마든지 뭐 있어도 나 이거뿐이요 해도 받아주고. 그래서 좋아.

 

Q 저희는 어리고 그러면 세대갈등이 있을수 있잖아요. 애네들이 이해를 못한다 이런건 없어요?

*소녀 춤을 추는 언니: 오면은 된다는 것. 동생인데도 창피한지도 모르고 세대도 잊고. 나이로는 우리가 따라가도 머리는 못 따라가니까. 힘들고 그런 것은 알지만은 우리를 위해서 하고 있으니까. 우리 동생이 힘들면 안되는데.. 동생으로 보이다가 노인정에 어른들 모시는 사람으로도 보이고.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아. 여기 오니까 이 사람도 만나게 해주고 저 사람도 만나게 해주고 와서 손해나는 것도 없고. 도움을 주든 안주든 내가 존재할 수 있다는거. 나를 필요로한다는거. 내가 저 사람이 좋다는 거. 여기에 온 그 시간에는 집이고 절이고 가정이고 생각이 안 나서 좋아.

 

Q 여기서 사람을 만나고 같이 울타리가 되어준다는 것이 좋은가봐요. (꽃을 좋아하는) 언니는 그동안 배신 많이 당했다는 말을 많이 했는데 그 마음이 녹아지기도 해요?

*꽃을 좋아하는 언니: 많이 위로가 되요.

*소녀 춤을 추는 언니: 우리가 직업이 이렇잖아. 이러다보니까 부모 형제 자식 가까운 사람을 멀리하게 하고 옆에 있어도 거짓말 하고 이중생활을 하게 돼. 탄로 안 나기 위해서. 친구들도 동창들도 이래 만나 한번씩 만나도 ‘뭐하냐?’ 그러면 ‘나 놀아’ ‘뭐하고 노냐? 그 나이에?’ 그러면 ‘나 간간이 식당일 해.’ 라고 해. 어차피 솔직히 말하면 따돌림 당하니까 말 차라리 안 해. 가정에는 ‘간병인 한다’라고 말하고. ‘어디 병원에서 하니?’ 그럴까봐 그렇게 거짓말을 하고 있는거야. 여기 다니면 여기 거짓말, 저기 다니면 저 거짓말. 그러니까 머리가 아프지. 그런데 여기서는 터놓고 전화가 와도 편하고 잘못을 해도 편하고. 가정에서는 전화도 마음대로 못 해. 친구들이 놀러가자고 해도 ‘나 친정왔어 나 휴가 왔어’ 이렇게 말해. 자꾸 피하게 돼.

 

Q 너무 조마조마 하겠어요 마음들이

*소녀 춤을 추는 언니: 화장도 못해. 왜 그렇게 뭘 메이크업을 하냐. 욕을 안 먹을려고 정신 바짝 하고. 친정에 가도 전화 한 통화를 받아도 ‘잘 못 온거야 이거 모르는 사람이야’ 하룻밤 자는게 길어. 길어. 그러니까 가족들이 온다고 하면 좋으면서도 부담스러. 아프다고 오지 말라고 할 때도 있고. 이중생활을 하게 돼. 그래서 내가 언제고 뭐가 어떻게 될지 몰라서 항상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다고. 내 스스로가 좋은 면도 있지만 최악을 생각해보는거지. 사는 거는 나라에서 해주고 어디에서 해주고 다 좋아 그런데 마음이 그게 아니야.

 

Q 저희는 1박 2일, 2박 3일 가면 너무 좋은데 언니들이 일을 못 하니까 피해를 주는게 아닐까 걱정도 했었어요

*꽃을 좋아하는 언니: 이럴 때 머리 한번 식히지 언제 하겠어요.

*소녀 춤을 추는 언니: 우리가 돈이 안 되면 우리 돈을 내서라도 가자 그랬다니까. 한번씩 가면 어떨까 이렇게 우리끼리 이야기 했어. 이렇게 놀고 나면 마음이 풀어지고. 혼자 이렇게 안 나와지니까 놀아도 그 속에서 놀아야되니까 힐링이 되는거 같애.
꽃을 좋아하는 언니: 개인으로 가면 못 가요 쉽지가 않아요. 얼마나 좋아요.

 

Q 어제 (꽃을 좋아하는) 언니가 자신의 이야기를 할 때 마음이 많이 두근두근 거렸는데도 왜 그런거에요?

*꽃을 좋아하는 언니: 괜히 죄지은 것처럼 그래요. 한번씩 이상한 병이 있어요. 이런 병이 없었는데 병원만 가도 두근두근 거리고. 말을 할려고 하면 두근두근거려요.

 

Q 두근두근 거리는 마음이 막상 말하면서는 어땠어요?

*꽃을 좋아하는 언니: 속이 확 트인 기분이야. 이걸 어디서 못하고 처음 한거고. 언니들 동생들 친구들 앞에서 처음으로 해본거야. 원래 나 이런 얘기 안했어. 마음이 트이고 속이 후련해

*소녀 춤을 추는 언니: 상담 받은 기분이지. 다 각자 이야기를

*꽃을 좋아하는 언니: 눈만 뜨면 일터만 가니까 잘 모르는거야. 내가 평생을 20대부터 눈이오나 비가 오나 그렇게 살았었어. 울타리에 갇혀서. 여행도 처음 해봤다니까. 이 인연 큰 인연이네.

*소녀 춤을 추는 언니: 일을 그렇게 해서 돈이라도 남아있으면 좋은데 그것도 없는데다가 집순이만 했잖아

*꽃을 좋아하는 언니: 내가 인생을 잘 못 살았나. 이것도 복이라면 복이요. (의리가 넘치는) 언니랑 오래 됐어도 친해지지가 않았어요. 쌀쌀맞고 그래서. 막상 다가가니까 편하고 좋더라고요. 작년도 내가 봄부터 내가 ‘야 너랑 나랑 비슷하니까 친구하면 어떻겠냐’ 내가 그랬어요 그래서 친구가 된거야. ‘야 한번 맺어지면 끝까지 가야지’ 그러더라고. ‘야 돈이 있고 없고 떠나서 평생 몸만 건강해라. 몸 좀 생각해라’고. 막상 다가가니까 너무너무 좋은거야 편하고. 성격도 맞고. 내가 성격이 급하다고 그랬잖아요. 재한테 내가 고민도 얘기하고 왜 내가 이렇게 살았는지 모르겠다 남은건 병밖에 없고. 진짜 열심히 살았다고 자부했는데 진짜 악바리로. 내가 생활력이 강해요. 한 저기로 취직을 하면 거기밖에 몰라. 청량리 밖에 몰라. 외곬수라. 그래도 가게에서 쓰러질 만정 근무시간만큼은 그 시간을 지키는 사람이야. 죽어도 저기서 죽자하고 남한테 아효. 피해주지 말자고.

*우리를 웃게하는 언니: 나도 내 자신이 한심스러웠는데 서울에 살았어도 생전 놀러도 안 다니고 그렇기 때문에 내가 가는 길만 가고 거기만 가고 집에만 가고. 여기도 생전 처음 온거라니까. 기분이 좋죠. 누가 나를 강원도로 놀러오게 생겼냐고. 제주도도 죽었다해도 못 오고. 내가 63세동안 처음이고. 진짜요. 내 평생 못한다니까. 속으로 항상 울고 다녀. 서로가 옛날에 청량리 있던 사람들이 못 볼 줄 알았는데 여기서 만나고.

 

Q 우리 모임은 어떤 식으로 앞으로 가면 좋을까요?

*의리가 넘치는 언니: 지금처럼 한 달에 한 번씩 만났으면 좋겠고 그 날만 손꼽아. 우리 다섯명은. 그 날만 손 꼽고 밥을 먹든 커피를 마시든. 우리 만나는 것에 대해서 하루에 한번씩 얘기한다고 보면 돼. 전화 하면 ‘우리 언제지 어디서 보지?’ –웃음– 이번 왔다 가면은 ‘우릴 또 데리고 갈건가 안 데리고 갈건가. 안 데리고 갈건가.’ 우리끼리 얘기해. 하는 말이 가을에 단풍 구경 한번 가고 싶은데 나보고 얘기하라해. –웃음– 그런거지. 그것만 기다린다니까 진짜로. 한 달에 한번 잡히면 그 날짜만 기다리고 있는거야. 낙이 되어버린거야. 한 두시간 같이 앉아서 얘기한다 그것만 머릿 속으로 그 생각만 하는거야.
지금 언니들이랑 이야기를 나누면서 나는 그런 상상도 해봐요. 우리가 나중에 해외여행을 한번 같이 갈수 있을까요? 한번 가면 좋겠다. 이 멤버가. 가까운 데라도…

언니들은 ‘에이~ 설마..설마’ 하시겠지. 우리가 해외로 놀러 갈수 있을거라고는 상상도 못하시겠지. 나도 그 순간 왜 그런 장면들이 상상이 되었는지 모르겠다. ‘꽃보다 청춘’의 한 장면처럼 좌충우돌하면서 새로운 도시, 새로운 땅을 휘젓고 다니는 그런 우리들이 번뜩 떠올랐다.

마음으로 바라고 그것을 간직하고 있으면 언젠가, 그것이 꼭 이루어진다는 주문같은 믿음이 나에겐 있다. 때가 되면, 원하는 것은 이루어지기 때문에 성실히 기다리면 된다는 그런 자신이 있다. 그러기에 아마도, 우리의 여행도….해외 여행도 가게 될 거야^^

불량언니 작업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