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집→PC방→노숙 떠돌아 남 ‘구걸’ 여 ‘성매매’ 돈벌이
한겨레 | 기사입력 2007-07-04 20:39
[한겨레] 청소년위 점검단 실태조사
#1 반년도 넘었다. 기영(17·여·가명)이가 집을 나와 피시방, 찜질방, 길거리 등을 쏘다니기 시작한 건 겨울. 어느덧 봄을 지나 여름이 됐다. 노란색 민소매 티셔츠와 청바지는 빛이 바랜 채 때가 덕지덕지했고, 슬리퍼를 신은 발에서는 악취가 났다. 호주머니에는 돈은커녕 소지품 하나 없었다.
국가청소년위원회 중앙점검단이 지난달 19일 새벽 0시50분께 서울 은평구 구산역 출구에서 서성이던 기영이를 발견했을 때의 모습이다. 기영이는 초등학교 5학년 때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뒤 서울의 외삼촌 집에서 지냈지만, 그 곳도 형편이 어려워 집을 나왔다. 처음 한동안 머물던 친구 집에도 오래 있을 수는 없었다. 결국 거리로 나와 피시방, 찜질방 등에서 잤지만 돈이 떨어졌다. 가끔 시간당 1만원씩 받고 모르는 남성에게 입맞춤을 해주는 ‘키스 알바’로 돈을 마련했다. 돈이 없을 때는 거리에서 잤다. 점검단의 유태권 경사는 “돈을 마련하면 피시방이나 찜질방을 갔고, 안 그러면 ‘난장(길거리 노숙의 속어)을 깠다’고 한다”고 전했다.
#2 지난달 26일 밤 경기 안산의 ㅎ유흥주점. 짧은 치마를 입고 화장을 했지만 앳된 흔적이 역력한 청소년 4명이 술접대를 하고 있었다. 이들은 같은 10대인 ‘오빠’가 운전하는 승용차를 타고 이곳까지 왔다. 모두 16~18살이었다. 전남 해남, 경기 인천, 시흥 등에서 집을 나온 뒤 잠잘 곳으로 술집에 나오기 시작했다.
점검단의 이광섭 경사는 “화장을 했지만 앳된 티가 역력했다”며 “집을 나온 지 얼마 안 된 아이들은 유흥주점을 드나드는 것을 꺼리지만 6개월쯤 넘어가면 이런 일에도 익숙해지곤 한다”며 “부모들이 인계를 거부해 쉼터에 보내는 경우가 많은데, 그러면 다시 거리로 나와 똑같은 행위를 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국가청소년위가 지난 5월부터 2달 동안 수도권 지역 가출·노숙 청소년 실태(〈한겨레〉 6월7일치 12면·11일치 15면)를 점검한 결과, 돈을 벌기 위해 남자 청소년들은 이른바 ‘앵벌이’(구걸), ‘삥뜯기’(갈취) 등을, 여자 청소년들은 이른바 ‘키스 알바’나 성매매 등을 하고 있었다. 이들은 돈이 떨어지면 교회나 공사장 등 은밀한 장소에서 노숙을 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국가청소년위는 가출·노숙 청소년 9명을 발견해 쉼터로 보내는 한편, 청소년을 유흥업소에 소개한 김아무개(19)군 등 4명과 유흥주점 업주 임아무개(44·여)씨 등 35명을 경찰에 넘겼다.
박은정 국가청소년위 중앙점검단장은 “서울과 경기 시흥·안산만 단속했는데도 이런 문제가 나왔다”며 “경찰은 해마다 10만~15만명의 가출 청소년이 발생한다고 추산하고 있는데, 이들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체계적 보호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이정훈 기자 ljh9242@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