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아리 텍사스 ‘화재’ 5명 숨져

27일 낮 12시36분께 서울 강북구 하월곡1동 성매매 업소 밀집지역인 이른바 ‘미아리 텍사스’촌 4층짜리 건물에서 불이나 업소 안에서 잠자고 있던 여성 5명이 숨졌다.

이날 숨진 여성들은 모두 가명을 쓰고 있어 경찰이 신원 확인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경찰은 이들이 내부 집기가 탈 때 나오는 유독가스를 마시고 질식해 숨진 것으로 보고 정확한 사망 원인을 조사하고 있다.

사고 현장을 목격한 주민 이미선(45)씨는 “잠옷 차림의 여성들이 ‘불이야’라는 소리를 지르며 건물에서 빠져 나오길래, 골목으로 나와 보니 건물 3층에서 시꺼먼 연기가 쏟아 나와 숨을 쉬기가 힘들 정도였다”고 말했다.

이날 업소에 머무르고 있던 여성은 모두 9명이었다. 이 가운데 4명은 그 자리에서 숨진 채 발견됐으며, 1명은 병원으로 옮겨 치료받다가 숨졌다. 1명은 현재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 받고 있으며, 나머지 3명은 건물을 무사히 빠져 나왔다.

건물을 무사히 빠져 나온 여성 3명은 “새벽 6시께 일을 끝내고 피시방에 다녀와 보니, 3층에 사는 ㄱ씨가 술에 취해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고 말했다. 경찰은 불이 3층에서 시작해 4층으로 번진 것으로 미뤄, 술에 취한 ㄱ씨가 담배 꽁초를 바닥에 떨어뜨려 불이 커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날 불이 참사로 연결된 것은 여성들이 대피할 수 있는 건물 비상구의 높이가 1m에 불과한 데다, 여성 대부분이 새벽 6시에 일을 마친 뒤 잠을 자고 있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성매매특별법 비웃듯 27일 새벽까지 성매매 영업…잠자다 참변

이날 불이 난 업소는 ‘성매매 처벌 특별법’ 시행 이후에도 계속 영업을 계속 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서울 종암경찰서는 사고가 터지기 하루 전인 26일 오후 9시께 이 업소에 대한 단속을 벌여 업주 고아무개(54)씨를 불구속 입건했지만, 업주는 이에 아랑곳 하지 않고 영업을 계속한 것으로 밝혀졌다. 경할 관계자는 “당시 업소 안에는 성매매 여성 9명이 있었지만 손님은 없어 업주를 불구속 입건했다”고 말했다.

이 건물 지하에는 여성들이 손님을 받는 방 7개가 마련돼 있었고, 2~4층에는 여성들이 생활하는 방 10개와 창고·화장실 등을 갖추고 있었다. 이 건물에는 성매매 여성들이 도망가는 것을 막기위한 감금 장치 등은 발견되지 않았다고 경찰은 밝혔다.

주민 박아무개(46)씨는 “성매매 특별법 시행 이후 최근까지도 영업을 계속했지만 손님이 많지는 않아 영업시간이 평소보다 늦는 때가 많았다”며 “영업을 일찍 마쳤어도 피해가 줄어들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2000, 2002년 군산 성매매밀집지에서 불 ... 성매매 여성들 탈출 못하고 사망

성매매업소 밀집지역에서 불이 나, 성매매여성들이 집단으로 숨지는 일은 지난 2000년 이후 군산 지역에서 잇따라 일어나 큰 사회적 파장을 불렀다. 성매매가 업주들의 주장과 달리 감금된 상태에서 자행되고 있다는 현실이 화재 현장을 탈출하지 못하고 숨진 성매매여성들로 인해 입증되었기 때문이다. 화재 현장을 탈출하지 못하고 숨진 성매매 여성들의 불에 탄 일기장과 편지 등은 성매매 자체를 금지하는 성매매처벌법이 필요하다는 여론에 불을 붙였다.

2000년 9월19일 군산시 대명동 속칭 ‘쉬파리골목’의 무허가 성매매업소에서 발생한 화재사건으로 인해 성매매여성 5명이 목숨을 잃었으며, 이후 감금된 상태에서의 성매매는 사라졌다는 성매매 업주쪽 주장을 반증하는 화재가 2002년 1월 군산시 개복동에서 일어나 성매매 여성 14명이 숨지는 참사가 발생했다.

이곳에서 발견된 바깥과 안에서 모두 잠글 수 있는 ‘2중 자물쇠’는 이들 무허가 성매매업소가 2중3중 특수감금장치로 되어 있어, 평상시는 물론 화재와 같은 위급상황에도 탈출이 불가능한 구조임을 드러냈다.

이로 인해 성매매 자체를 금지시켜야 한다는 성매매처벌법 입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더욱 높아졌고 성매매방지 특별법 입법의 계기가 되었다.

2005-03-27
<한겨레> 길윤형 김남일 기자, 온라인뉴스부 charism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