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관객 울린 '성매매 여성' 이야기
[부산일보 2006-11-23 12:12]
다큐멘터리 `언니(unnie)' 시사회
한국전쟁이 끝나자 '양공주'로 불리었다. 1961년 '윤락행위등방지법'이 제정되면서 '윤락녀'라고 정부가 작명했다. 지난 2004년 '성매매방지법'이 생기면서 '성매매 여성'으로 개칭됐다. 2006년 11월, 대한민국에서 현재 이 이름을 가슴 한켠에 붙이고 사는 사람은 '33만명'이나 된다.
다큐멘터리 '언니(unnie)'는 33만명, 그 중에서도 부산의 대표적인 집창촌 '완월동'에서 탈출한 여성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영화다.
"탈 성매매 여성과 관련 활동가의 목소리를 통해 '성매매'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임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언니(unnie)' 시사회가 열린 지난 22일 저녁 7시 부산 국도극장. 연출을 맡은 계운경 감독(부경대 겸임교수)의 눈시울은 시사회 전부터 젖어 있었다.
지금껏 여러 다큐멘터리를 만들었지만 이번 작품은 가장 힘들었다. 등장인물은 과거 성매매를 했고, 이제 거기서 벗어나 새로운 삶에 맞닥뜨린 사람들. 인터뷰도 쉽지 않고, 말을 건네기도 쉽지 않았다. 촬영하다 몇번을 울었다. 그렇게 1년이 지났다. 결과물은 80분짜리 영화로 탄생했다.
▲"성매매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문제죠" 계운경 감독
"오죽하면 제가 다시는 이런 노가다를 안 한다고 외쳤을까요. 누가 이기나 해보자라고 이를 악물었죠." '거의 고해 하듯' 작업을 했다는 게 계 감독의 설명이다.
"성매매 여성들이 좋아서 성매매를 한 게 아니라, 어쩔 수 없이 했다는 점을 보여 주고 싶었죠. 소재 자체가 다분히 선정적이라 이 부분에 많은 신경을 썼습니다."
그래서일까? 영화에 출연한 '언니(성매매 단체에선 '탈성매매 여성'들은 언니라고 부른다)'들은 얼굴도 없고, 이름도 안 나온다. 자막도 없다. 오직 목소리뿐이다. 애니메이션으로 언니들의 모습을 처리했다가 끝내 포기했다. 선정적으로 해석될 여지도 있고 무엇보다 언니들에겐 '삶'이 걸린 문제였다.
영화는 휘모리와 진양조를 오간다. 휘모리 부분은 관객들의 웃음을 자아낸다. 하지만 진양조로 가면 관객들은 이내 숙연해진다. 언니들이 '아픈 경험'을 얘기할 땐 객석 곳곳에서 눈물을 훔치는 소리가 났다.
대학생 김성진 씨(23)는 "영화를 보는 내내 남자인 제가 부끄러웠습니다. 이제껏 성매매는 단순히 그들이 선택하거나 피치 못해서 간 '직업'정도로 생각했거든요. 저도 울었습니다. 반성도 많이 했습니다"라며 소감을 말했다.
▲`언니' 시사회 현장. 이날 400명의 관객들이 자리를 꽉 메웠다.
지난 제11회 부산국제영화제 다큐멘터리상을 수상한 '언니'는 여성부가 지원하고, 성매매피해여성 지원센터 '살림'이 제작했다. 오는 28일 서울 아트선재센터에서 두번째 시사회를 가진다.
계 감독에 따르면 `언니'는 추가로 편집과 촬영작업을 해, 내년 제12회 부산국제영화제 독립영화 부문에서 상영된다고 한다.
'뉴스푼'은 이날 영화가 끝난 뒤 가진 '관객과의 대화'의 현장을 동영상에 담았다. 전대식기자 manbal@
/ 입력시간: 2006. 11.23. 1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