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식 8일째 맞은 어느 윤락녀의 일기
[ 2004-11-08 11:52 스포츠 조선 ]
'무시하는 시선에 눈물만…'
지금 여의도 국회의사당앞에서는 '성매매특별법'에 반대하는 집창촌 성매매여성들의 단식 농성이 한창이다. 지난 1일부터 8일째다. 단식단을 이끌고 있는 김문희씨(가명ㆍ여ㆍ27)는 단식 농성을 주도하면서 틈틈이 일기를 작성했다. 일기장 안에는 단식하는 동료들을 보면서 느끼는 안타까움이 녹아있었다. 본지가 단독 입수한 일기내용을 날짜별로 정리해본다.
◇ '단식투쟁 8일째.' 전국에서 올라온 성매매 여성 대표들이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단식 투쟁중이다
◇ 김문희 대표의 일기(오른쪽)를 단독 입수해 공개한다.
여성부 - 여성단체 외면에 꿈, 희망 잃어
'과거의 잣대로 몰아세워 마음까지 무너져'
▶1일째(11월1일)
각 지방의 대표들이 평택에서 모여 국회의사당에 도착한 시간은 낮 12시 무렵. 단식 농성에 들어갈 준비를 마치자 여러 기자분들이 오기 시작했다.
한데 단식 첫날부터 비가 오다니 이게 웬 날벼락인가? 우린 어쩔 수 없이 단식단을 인근 누각 안으로 대피시켰다. 비가 계속 오는 바람에 누각에서 첫날밤을 보냈다.
▶2일째(11월2일)
어김없이 비는 내렸다. 오전 9시30분쯤 한나라당 국회의원 여덟분이 찾아오셨다.
국회의원님께서 단식 투쟁의 이유를 묻길래 우린 '집에서 죽으나 여기서 죽으나 마찬가지다. 우린 이 자리에 죽을 각오로 왔다'고 말씀드렸다. 김문수 의원님께서 후원금을 전달해주셨다.
▶3일째(11월3일)
단식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서 마음이 너무 아팠다. 이렇게까지 해서라도 우리의 절실한 마음을 전달해야 한다는 현실이 너무 싫었다.
서로 대화로 잘 풀어가며 타협을 찾을 수 있는 문제인데…. 주위에서 알고 있는 사실과는 전혀 다른 우리들 세계를 과거의 잣대로만 재며 너무 몰아세우는 것 같아 마음이 무너져 내리는 기분이다.
▶4일째(11월4일)
단식하는 동료들이 현기증 증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청량리 대표와 원주 대표가 쓰러져 앰뷸런스에 실려갔다. 하지만 그들은 치료도 받지 않고 단식 투쟁에 다시 참가했다. 마음이 괴로웠다. TV로만 보는 시위모습들은 지나칠지 모르지만 이곳에서 시위하는 분들을 직접 보면 정말로 이렇게까지 길에 나올 수 밖에 없는 입장을 모두 동감하리라 생각한다.
▶5일째(11월5일)
단식 시위하면서 뒤에서 많이 울었다. 우리를 무시하는 시선과 발언들이 너무 화가 났다. 정작 우리랑 대화를 나눠야 할 여성부나 여성단체에서는 아무런 변동 없이 우리에게 눈길조차 주질 않았다. 우리들은 무력하지만 꿈과 희망 그리고 진정한 웃음은 지니고 있었지만,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 때문에 꿈과 희망, 그리고 웃음을 잃어버렸다.
▶6일째(11월6일)
단식하는 동안 차가운 길거리에서 생일을 맞이한 사람들이 있었다. 미역국 한번 주지 못하고 촛불을 끌 수 있는 기회조차 주질 못했다. 너무 미안하다. 차가운 길거리에서 살기 위해 시위라는 것까지 하게 만든 정부나 여성부, 여성단체에게 묻고 싶다.
이렇게까지 우리들을 매몰차게 길거리로 나오게 해야만 하는지를….
▶7일째(11월7일)
시간이 갈수록 제대로 걷지 못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사람의 생명은 소중한 것인데 우리가 만나보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우리 목숨이 어떻게 되든 상관하지 않는 것 같다. 재활 지원금 250억원? 그 돈은 다 어디서 나오나? 국민세금이겠지. 우리는 누구 도움도 원하지 않는데 그들은 왜 세금을 남용하면서까지 재활 지원금을 주려는지 의문이다. < 정리=이정훈 기자 dangy@>
단식단 대표 인터뷰
'성매매법' 2007년까지 유예해 달라
기자가 8일 만난 김문희씨(사진)도 지친 표정이 역력했다. 1일부터 단식을 하는 농성단을 이끌면서 몸도 마음도 지쳤다고 토로했다. 그는 수원 대표로 농성단에 합류한 뒤 22명의 농성단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몇명이 단식 농성중인가.
▶처음에 단식인원 15명, 보조인원 7명 등 총 22명으로 출발했다. 하지만 단식을 하는 동안 코피를 계속 흘리는 이도 있었고, 아기 돌잔치가 있는 사람 등이 빠져 현재는 단식인원 12명, 보조인원 4명 등 총 16명이 참가하고 있다.
-요구사항은.
▶첫째는 우리가 전업 등을 준비할 수 있도록 2007년까지 유예기간을 달라는 것이다. 둘째는 손님이 오지 않으면 장사를 할 수 없으니 성 구매자-판매자에 대한 법적인 처벌을 완화 또는 폐지시켜 달라는 것이다.
-업주가 사주했다는 의혹도 있는데.
▶웃긴 발상이다. 시민들이 도와줄 리가 없으니 업주에게 물질적인 도움만 받는 것이다. 업주와 우리와의 관계는 착취하는 것이 아닌 상부상조하는 것이다.
-여성단체 등과 토론회를 열 의향은.
▶여성부나 여성단체는 법률을 제정해놓고 책임지지 못하고 있다. 한발씩 물러나 서로 대화로 이번 일을 해결했으면 좋겠는데, 계속 법안 준수를 고집하고 있다.
-단식을 하면서 느낀 점은.
▶여성단체나 국회의원 가운데 우리에게 관심을 보이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또 많은 사람들이 우리들을 찾아오고 조금씩 알려고 노력하는 것 같아 보람을 느낀다.
< 이정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