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반성매매인권행동 이룸 대중강좌] ‘성매매에 대한 여성주의 개입이란?’ <1강 - 성매매, 폭력과 노동의 아포리아 후기>_신성연이

지난 2023년 10월 11일은 반성매매인권행동 이룸의 ‘성매매에 대한 여성주의적 개입이란?’ 연속강좌가 진행된 첫 날이었습니다. 👏

강좌의 첫막은 정희진 선생님께서 ‘성매매, 폭력과 노동의 아포리아’라는 주제로 열어주셨어요.

많은 분들이 관심을 보여주셨고, 또 많은 분들이 참석을 해주셨는데요.

실제로 강좌 현장에서는 참여자 분들이 질문시간을 통해 성매매에 대한 날카로운 사유와 고민들을 나눠주시기도 하셨답니다.

참여자 분들의 열기 때문에 담당자의 몸이 녹아버릴 뻔 했다는 소문이….데헷 ><

 

 

 

진지하고 깊은 고민을 통해 항상 저희에게 힘이 되어주는 동료,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신성연이 님이 바쁘신 와중에도

<1강 성매매, 폭력과 노동의 아포리아>의 후기를 작성해 주셨어요. ✏️

 

  

정희진, 〈성매매, 폭력과 노동의 아포리아〉 강연 후기

다른 얼굴들의 경험을 그나마마주하려면

신성연이(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지난 10월 11일 이룸에서 열어주신 정희진 선생님의 강연 〈성매매, 폭력과 노동의 아포리아〉를 들었습니다. 그날 들려주신 여러 이야기 가운데 ‘성찰(reflection)’ 개념에 관한 대목으로부터 후기를 시작해봅니다.

성찰과 반성은 때로 혼용되는데, 반성이 자신의 잘못이나 부족함을 돌이켜 보는 것을 가리킨다면 성찰의 핵심은 구체적인 나 자신의 몸으로 재귀한다는 데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무엇을 성찰한다는 의미는 사회적·문화적·정치적·경제적 위치에 따라 형성된 나의 몸에서 사유의 한계가 비롯함을 알아차리고,

그 무엇이 무엇임을 알아보는 ‘앎’이 나의 편향적인, 애초에 전체를 조망할 수 없는 아주 부분적인 지식임을 인정하는 데로 이어지는 것이라고 이해합니다.

 

어디서 어떻게 태어났는지, 나고 자라는 동안 어떤 배경이 강력했는지, 어떤 방식으로 생존하고 있는지, 사회 구조 속 자신의 위치성을 깨달아 가는 과정은 손쉽지 않습니다.

나의 위치는 전 생애를 통틀어 고정되지도 않고, 그 위치가 모든 관계에서 동일할 수도 없으니까요.

그렇다면 우리의 몸은 서로 다르고 성찰의 지점 역시 같지 않을 테니 서로에게 말 보태지 말고 각자의 방식대로 갈 길을 가야 하는 것일까요?

그러나 위치성은 겸양을 가장한 기권을 택하거나 양분된 입장을 강화하기 위한 근거가 아니라, 삶의 상이한 조건을 성찰하며 대화 가능한 질문을 벼리는 바탕이라고 생각합니다. 무척 고단한 일이지만요.

 

성매매에 대한 여성주의적 ‘개입’이 과연 무엇인지 고민하는 장에 이번 강의는 성매매가 “폭력과 노동의 아포리아”라고 진단하며 생각의 틀을 비집고자 했습니다.

폭력과 노동에 대해 이미 가지고 있던 이해를 비우고 성매매를 생각하자는 것은 구체적인 삶을 소거해버리는 ‘객관적’ 뜻풀이에 의존하기보다, 삶들의 맥락에 더욱 주목하자는 제안이 아닐까 합니다.

성 산업의 다종다양함과 스펙트럼은 폭력 아니면 노동이라고 양분할 수도, 폭력이자 노동이라고 단순히 결합시킬 수도 없는 여성의 경험을 만들어냅니다.

‘폭력’은 아니지만 ‘폭력적’인 경험, 섹슈얼리티를 자원으로 ‘어떤 일’을 했으나 ‘노동’이라고 해석되지는 않는 경험, 이 과정에서 무엇을 침해당했지만 ‘피해’로 인정받지 못한 경험,

반면 ‘피해자’로 호명되나 이것만으로 설명하기에는 석연치 않은 경험 등 무수한 체험들이 ‘폭력’과 ‘노동’에 관한 지금의 틀에서 미끄러져 침잠합니다.

이 아포리아의 상태는 실재하는 이들을 설명 불가능한 위치로 소외시켜 보이지 않게 만들고, 위험하고 낙인찍힌 노동에서 비롯하는 사회적 고통은 ‘자유로운 개인’이 선택한 결과가 되면서

경험자의 말하기 가능성을 더욱 희박하게 만듭니다. 혹은, 어느 곳에서 누군가 아무리 말해도 들리지 않고 전해지지 못하는 상황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한편 성매매 현장에 사회 구조가 복합적으로 반영되어 있는 측면을 “로컬라이즈(localise)”라는 표현으로도 설명하셨는데요, 이것은 디지털 공간의 성 산업을 근본적으로 고민하는 데도 무척 유용하다고 느꼈습니다.

디지털 공간은 남성의 남성되기 장으로서 역할하는 만큼 성 산업이 깊은 뿌리를 내리고 있습니다. 성적 이미지 착취로 막대한 부를 쌓기도 하고, 합성 이미지를 몇 천 원에 판매하기도 하는 등

이미지 기반 성폭력의 산업화 양상은 그야말로 대중적입니다. 이를 ‘지하경제’라고 부를 수 있다면 합법적 시장경제 영역도 존재합니다.

신체 이미지, 목소리, 감정 등 여성의 성 역할이 플랫폼 경제 구조에서 교환가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여성성이 자원으로 작동하는 젠더 시스템 아래에서 성 산업의 ‘성’은 어떤 의미인지 더욱 탐구돼야 한다고 느낍니다.

디지털 공간에서의 쟁점을 파고들 때 오프라인의 ‘변종’으로 이해하기보다는 여성에게만 주어지는 노동이 각각의 장소에서 어떻게 ‘로컬라이즈’되는지의 맥락에서 들여다보는 편이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이 틀을 바탕으로 꾸준히 생각해보고 싶습니다.

 

강연의 구절구절마다 생각할 거리가 무척 많았고, 마무리에서 건네신 말씀에는 활짝 웃게 됐습니다. 저는 ‘너무 겁내면서 살지 말자’는 메시지로 받았는데요, 기분이 참 환해지는 말이었습니다.

최선을 다해 말을 고르되 서로의 씩씩함을 북돋으면서, 동일하지 않은 얼굴들의 생각과 경험과 주장을 들을 수 있기를 기대하는 마음을 놓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필요한 강의를 만들어주신 이룸과 아무리 들어도 더 듣고 싶은 강의를 해주시는 정희진 선생님께 참 고맙습니다. 다른 분들께서는 어떻게 들으셨는지 무척 궁금합니다. 그럼 마지막 4강에서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