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이태원 아웃리치 후기

– 2023년 10월 26일(목) 21시 – 

이태원 아웃리치 후기

김주희(반성매매인권행동 이룸 운영위원)

 

이태원 참사 1주기를 목전에 둔 때라, 지하철역이 있는 대로변은 고요했다. 해밀톤 호텔을 반쯤 가린 커다랗고 화려한 전광판이 허공에 번쩍이고 있었다. 이룸 활동가들을 따라 ‘후커힐(hooker hill)’에 진입해서야 조금 익숙한 공기를 감지할 수 있었다. “이룸에서 나왔어요”라는 말이 끝나기 무섭게 클럽의 여성들은 “기다렸어”, “날이 춥지?”라며 반갑게 맞아주었다.

‘아웃리치’라는 이름으로는 대략 15년 만에 이태원을 다시 찾았다. “이룸에서 나왔어요”라는 말로 이태원 ‘양키 클럽’과 ‘트랜스젠더 클럽’의 문을 두드릴 수 있는 건 오랜 시간의 정기적인 아웃리치 활동을 통해 이룸이라는 이름이 이태원 골목에 알려졌기 때문일 것이다. 여성들은 곤란한 일이 생기거나 힘든 상황에 있을 때 이룸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긴 시간을 길에서 보냈을 활동가들을 생각하며, 이룸 활동가들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를 찾아보고자 내내 귀를 쫑긋 세우고 있었다.

‘소리기억’이라 할 수 있을까. 다른 장소도 마찬가지겠지만 이태원, 그중에서도 ‘후커힐’은 특유의 소리로 기억된다. 클럽 라디오에서 울려 퍼지는 반야심경 독경 소리, 무당집에서 새어 나오는 징 소리, 비욘세의 노랫소리, 거기에 빼놓을 수 없는 언니들끼리 싸우는 악다구니 소리까지. 때마침 어제 들은 것처럼 익숙한 U여사의 목소리가 골목 가득 들렸다. “왜 콘돔을 문밖에 걸어두냐, 업소에서 떡 치는 것 소문내는 거냐”며 나를 처음 보았던 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던, 20여 년 전의 그 목소리 그대로였다. U는 옆 가게의 어린 여성에게 화를 내며 욕지거리를 퍼붓고 있었다. ‘이 언니 그대로네’ 생각이 들었다.

가게에 들어가 씩씩거리며 앉아있는 U를 바라보면서, “언니 저 기억해요?” 물어봤다. U는 나를 슬쩍 보더니 갑자기, 이태원에 온 지 30년이 넘은 자기는 이제 늙었고 온몸을 여기저기 들춰 보이며 아프지 않은 데가 한 곳도 없다는 한탄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사실은 그동안 거짓말을 했고 이 업소엔 아가씨도 한 명 뿐이라며, 묻지도 않은 말까지 술술 했다. 그간 다른 아가씨들을 챙겨준다며 아웃리치 물품들을 ‘넉넉하게’ 챙겨왔지만, 사실 업소에 아가씨는 한 명 뿐이라는, 난데없는 진실 고백이었다. 이룸 활동가들은 “주희샘을 만나더니 언니가 갑자기 안 하던 말을 하네”라며 의아해했는데, 아마도 ‘그간 별 볼일 없이 지냈다’는 심드렁한 인사가 아닐지.

건너편 가게에서도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마스크걸>에서 김모미가 입었을 법한 반짝이는 미니 원피스를 입은 N언니였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어요?” 물었더니 반갑다고 함박웃음을 지으며 특유의 터프한 목소리로 “나? 나는 그동안 산전수전 공중전을 겪었지!”라고 답했다. 밀린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었지만, 나도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지만, 들러야 하는 클럽이 많아서 다음을 기약하며 작별인사를 나눴다. 손님이라고는 코빼기도 안 보이는 을씨년스러운 골목에서 옷 빼입고 가게에 나와 있던 N언니는 그날 손님을 받았을까, 다음에 만나면 이것부터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트랜스젠더 클럽에서는 ‘소식지 퀴즈’가 화제로 떠올랐다. 지난 아웃리치부터 이룸은 소식지에 퀴즈를 실으면서 문자로 정답을 보내준 여성들에게 기프티콘을 보내주었다고 한다. 시끌벅적한 분위기의 한 트랜스젠더 클럽에서 어떤 여성이 본인이 지난 소식지 퀴즈의 답을 맞혔다며 자랑을 하니, 다른 여성들이 갑자기 눈빛이 돌변하며 ‘문제가 어딨냐’며 경쟁적으로 소식지를 뒤지기 시작했다. “그럼 소식지 읽어보시고 문자 주세요”라고 말하며 도도하게 돌아서는 이룸 활동가에게 지난 문제가 뭐였냐 슬쩍 물어봤다. ‘빈곤철폐의 날’을 맞추는 퀴즈였다고 하던데, ‘과연, 이룸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트랜스젠더 클럽의 여성이 얼마 전 직접 쓴 책을 출간했다는 소식을 전해준 것도 인상적이었다. 『내겐 너무 예쁜 손님들』이라는 그간 수많은 여성에게 들었던 이야기와 사뭇 다른 톤의, 핑크핑크한 제목의 책이었다. (지금 확인해보니 온라인 서점에서도 구할 수 있는 듯하다.) 이룸이 조촐한 출판 기념회를 해주면 어떨까 생각이 들었는데, 아마도 “작가님~” 불러드리니 손사래를 치며 기뻐하던 여성도 마다하진 않을 것 같았다.

길었던 아웃리치 시간 동안 딱 한 번 손님을 만났다. 대로변 트랜스젠더 클럽에서였다. 한국인 남자는 “제가 이런 덴 잘 모르지만, 밖에 친구들이 기다리고 있다”는 말을 횡설수설 반복했고, 영업에 방해가 될까 우리는 주섬주섬 짐을 챙겨 나왔다. 언니는 뒤편에 있던 작은 방으로 남자 손님을 구겨 넣었다.

15년 전과 비교해서? 때가 때이니만큼 전반적으로 이태원 클럽 경기는 위축돼 보였고, 언니들이 내어주는 커피는 익숙하게 싱거웠고, 많은 양키 클럽은 트랜스젠더 클럽으로 변해 있었다. 외국인 남성에서 한국인 남성으로, 주로 찾는 이들의 변화가 있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여성들은 이곳저곳 클럽을 옮겨 다니지만, 외국인 남성과 한국인 남성은 같은 업소를 이용하지 않는다. 그야말로 호시절에 비해 이태원 클럽 지역은 쇠락한 듯 보이지만, 한국인 남성들의 성시장으로서의 이태원은 확대되었다.

아웃리치를 마치고 활동가들과 함께 ‘10·29 기억과 안전의 길’에 들러 희생자들의 명복을 빌었다. 한 중년 여성이 노티드 도넛을 벽에 붙이는 것을 지켜보다가 문득, 이태원 언니들이 건강하게 행복하게 지내길, 어디론가 간절한 기도를 올렸다. 특히 한참 나이가 들어버린 언니들, 늘 자신들의 고향이라 말했던 이태원에서 평안하시길. 또 만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