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대기자회견] 정부의 임신중지 권리 방치는 인권침해다! 복지부와 식약처의 임신중지 권리 보장 책임 방기로 야기된 권리 침해에 대한 국가인권위원회 진정서 제출 기자회견

정부의 임신중지 권리 방치는 인권침해다!

– 복지부와 식약처의 임신중지 권리 보장 책임 방기로 야기된 권리 침해에 대한 국가인권위원회 진정서 제출 기자회

 

일시: 2023년 8월 31일 오전 11시

■ 장소: 국가인권위원회 앞

사회 : 안나(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 발언
나영(성적권리와재생산정의를위한센터셰어)
이동근(건강사회를위한약사회)
김성이(시민건강연구소)
유랑(한국성폭력상담소)

** 기자회견 후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서를 제출하였습니다.

발언 1: 나영(성적권리와재생산정의를위한센터셰어)

오늘 우리는 국가인권위원회에 보건복지부 장관과 식품의약품안전처장을 피진정인으로 하는 진정서를 제출합니다. 

두 부처는 ‘낙태죄’의 효력이 상실된지 3년여가 되어가도록 실질적인 노력을 전혀 기울이지 않아 여성의 자기결정권, 평등권, 건강권, 행복추구권을 계속해서 침해하고 있습니다. 

특히 현재 임신중지 관련 의료서비스에 대한 건강보험 비급여대상 적용과 유산유도제의 도입 지연이 계속해서 권리 침해를 야기하는 시급한 사안이기에, 국가인권위원회가 복지부와 식약처의 책임 이행을 촉구하고, 현재 이로 인해 야기되는 심각한 차별과 권리 침해를 시정할 것을 결정하여 주시기를 요청합니다. 

세계보건기구는 2022년 3월 8일 발간한 임신중지 가이드에서 임신중지의 완전한 비범죄화와 함께 양질의 임신중지를 위한 지원 방향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 가이드에 따르면 각국의 보건당국은 임신의 유지 여부에 대한 상담 지원부터 임신, 임신중지, 출산에 대한 지원이 포괄적으로 연계되도록 해야 하며, 특히 임신중지 지원에 있어 경제적인 부담이 없이 가까운 보건의료 기관에서 보건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연계하고, 임신중지의 전후 및 임신중지의 진행에 있어 자신에게 필요하고 잘 맞는 방법을 선택하여 정보와 안내를 받을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기본적으로 건강보험을 통한 보장과 특히 임신 초기의 경우 유산유도제를 통해 편한 환경에서 임신중지를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체계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러나 현재 한국에서는 복지부와 식약처가 계속해서 책임을 방기하고 있는 동안, 여전히 임신중지를 고민하고 시행하는 많은 이들이 차별과 건강권, 평등권 침해의 현실을 겪고 있습니다. 

아직도 많은 병원이 모자보건법 상의 허용사유를 이유로 들어 관련 진료와 서비스의 제공을 제한, 또는 거부하거나 이를 빌미로 진료비를 과도하게 책정하는 등의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의료서비스를 이용하는 당사자의 입장에서는 먼저 찾아간 의료기관에서 이렇게 잘못된 정보의 제공과 거부, 제약 등을 경험하는 경우 다음 의료기관을 찾아가는 일 또한 위축되어 병원에서 차별적인 대우와 부당한 진료비 청구를 하더라도 이를 수용하게 됩니다. 이 과정 자체가 차별적이고 심각한 자기결정권과 평등권, 행복추구권의 침해이며, 건강권 침해입니다.

또한 현재 모자보건법 제14조에 해당하는 경우 외에는 임신중지에 대한 건강보험 보장이 적용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모자보건법 제14조는 그 자체로 우생학적 이유에 근거하고 있으며, 법적 실효가 만료된 형법 조항에 따른 위법성 조각사유에 해당하는 것으로 계속해서 적용될 이유가 없고, 매우 제한적인 사유에 불과하여 양질의 안전한 임신중지에 대한 접근성을 제약하는 데에 매우 큰 영향을 미쳐왔습니다. 양질의 안전한 임신중지는 임신중지의 시기 뿐 아니라 한 사람의 생애주기에서 성·재생산 건강을 관리하고 유지하는 데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영향을 미치며, 성·재생산 건강은 그 자체로 전반적인 건강권에 유기적으로 연결된 바, 이를 방관하는 것은 건강권에 대한 심각한 침해라고 보아야 합니다. 

남성의 여성형 유방 수술의 경우 건강보험을 통해 의료비가 보장되는 반면, 양질의 시술과 사후 관리가 건강에 더욱 지속적인 영향을 미치는 임신중지의 경우 건강보험 적용이 되지 않고 있는 것은 평등권에 대한 침해에도 해당한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건강보험 보장에 대한 결정은 법 개정과 상관 없이 보건복지부 고시를 통해 시행할 수 있는 일인만큼 이를 책임있게 추진하지 않고 건강권과 평등권의 침해를 지속하고 있는 보건복지부의 행위가 반드시 시정되어야 합니다. 

아울러, 유산유도제의 도입 지연으로 인한 건강권 침해 역시 계속되고 있습니다. 

초기 임신중지의 경우 미페프리스톤과 미소프로스톨을 함께 사용하는 경우의 성공률이 95~98%입니다. 심각한 후유증 없이 의료기관에서의 처방을 통해 개인이 편안한 곳에서 복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전 세계적으로 약을 이용한 임신중지의 비율이 더욱 높아지고 있는 추세입니다.

그럼에도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미소프로스톨은 의료인이 오프라벨(적응증 외 처방)로 사용하고 있으며, 미페프리스톤은 공식 도입이 되지 않아 의료기관에서조차 보다 양질의 안전한 약을 이용한 임신중지를 제공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미페프리스톤을 공식적으로 사용할 수 없어 미소프로스톨 단독 요법으로 시행하는 경우 두 약을 함께 사용하는 경우에 비해 성공률이 떨어지며 임신 기간이나 상태에 따라서는 약의 복용 이후 불완전 유산으로 수술을 해야 하는 경우가 발생합니다. 

또 일부 의료기관에서는 메토트렉세이트 등 공식 유산유도제가 아닌 약을 사용하여 건강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실정입니다. 온라인에서든 병원에서든 약의 성분이나 복용법, 사후관리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얻기 어려워 또 다른 건강권 침해로 이어지고 있기도 합니다. 

유산유도제 도입은 복지부와 식약처가 의지를 가지고 추진하기만 하면 되는 일인데, 언제까지 이런 현실을 두고만 볼 것입니까.

지금 국회에서는 영아유기를 방지하겠다는 명목으로 보호출산제 법안을 통과시키려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진정 아동과 여성의 권리를 모두 생각한다면 익명으로 출산한 자녀를 떠나보내는 상황을 만들기 이전에, 되도록 이른 시기에 어떤 비용이나 낙인에 대한 걱정없이 안전하게 임신을 중지할 수 있는 여건을 먼저 구축해야 합니다. 

바로 몇 주 전에도 경제적으로 어려운 여건에 있는 한 분이 병원에서 모자보건법 핑계를 대며 성폭력으로 인한 임신이 아니면 임신중지를 할 수가 없다고 해서 결국 진료를 받지 못하고 나왔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임신의 유지는 한 주, 한 주의 시간이 큰 영향을 미치는 일입니다. 이런 식의 어려움으로 인해 결국 시기가 계속 미뤄지고 임신 중기 이후에 임신중지를 하게 되거나, 양육이 어려운 현실에서 시설에 출산한 아이를 보내게 되는 것이 과연 누구에게 어떤 도움이 될까요. 익명으로 보내면 여성인권이 더 나아집니까? 아동인권은 어떻게 되나요? 

임신중지의 권리를 보장하고, 이를 위한 양질의 보건의료 체계를 구축하는 일은 임신과 출산, 양육, 피임에 관한 제반의 정책과 동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왜 양육이 어려운지, 양육을 하기 어려운 환경에서 왜 결국 출산까지 하게 되는지 근본적인 문제에 관심을 두고 출산, 양육지원과 임신중지 지원 여건을 같이 만들어가야 합니다. 시설이 아니라 여성들이 처한 여건에 더 관심을 두어야 합니다. 

오늘 우리는 복지부와 식약처를 피진정인으로 하여 진정을 제출하지만 지금의 현실은 총체적으로 국가가 성·재생산 건강을 차별적으로 대우하고 있는 현실임을 보아야 할 것입니다. 국가인권위원회에서 명확하고 힘있는 시정 권고와 입장 성명을 내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발언 2: 이동근 (건강사회를위한약사회)

안녕하세요. 건강사회를위한약사회에 이동근 활동가입니다.

약물적 임신중지는 기존 수술적 방법에 비해 더 이른 주수에 시행할 수 있으며, 몸에 덜 침습적이고, 본인이 편하게 느끼는 장소에서 시행할 수 있기 때문에 많은 여성들의 임신중지 권리를 보호하는 데 핵심적인 약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보건기구도 임신중지약물, 유산유도제를 핵심 필수의약품 목록으로 지정하고 국가들에게 접근성을 보장할 것을 권고하는 것입니다.

헌법재판소의 낙태죄에 대한 헌법 불합치 결정 관련한 정부 보도자료에서 보건복지부와 식약처도 2021년부터 유산유도제 도입이 가능하며, 허가 신청이 있는 경우 신속하게 허가하겠다고 공언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 2021년 2월부터 한 회사가 유산유도제의 허가를 받기 위한 심사를 요청하고 나서자 정부는 그러한 공언을 순식간에 뒤바꾸게 됩니다. 아무리 최신 신약이라도 1년이내에 해결되는 허가과정이 18개월이나 지연되었고, 결국 안전 및 품질에 관한 자료가 미비하다는 이유로 허가가 사실상 반려된 것입니다.

당시 허가를 받으려 했던 제품은 영국, 호주, 캐나다, 일본에서도 허가된 제품이었습니다. 그리고 세계보건기구도 한국 식약처 처럼 중요한 약물에 대한 안전성 등의 평가를 통해 제품 사용을 보증하고 있는데, 그 제품은 세계보건기구의 인증도 이미 받은 제품이었습니다. 그리고 유산유도제 자체가 이미 30년 동안 전 세계에서 안전하게 사용되고 있으며 한국 규제당국이 주로 참조하는 국가에서 모두 허가된 의약품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식약처가 유산유도제를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허가를 반려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다른 국가들이 정말 이상하고 믿기 힘든 결정일 것으로 생각할 것입니다.

정부가 유산유도제의 도입을 정치적 이유로 지연시켰다는 의심을 키우는 정황도 있습니다. 2022년 국정감사에서 국무총리실이 작성한 것으로 알려진 국정감사 컨닝페이퍼에서 유산유도제는 안정적 법체계 하에서 허가하는게 가장 바람직하다는 답변을 하도록 기술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결국 낙태죄 대체 입법이 통과되지 않으면 유산유도제는 안된다는 내용입니다.

약물은 임신 초기에 임신중지를 시행할 수 있는 가장 안전한 방법입니다. 임신 중기에 시행되는 수술들도 많이 이뤄지고 있는데 약물만 안된다고 하는 건 임신중지를 고민하는 많은 여성의 건강권에 대한 침해입니다.

많은 시민들, 의사들 , 약사들은 이미 유산유도제의 필수의약품 지정 및 신속도입을 촉구하는 진정서를 식약처에 제출한 바 있습니다. 약사법에 명시된 필수의약품의 안정공급에 대한 정부의 의무를 다할 것을 요구하는 진정서였습니다. 하지만, 식약처는 이해당사자간 합의가 선행되어야 한다며 이를 거절하였습니다.

시민들은 집회를 통해, 기자회견을 통해, 민원을 통해, 여러 방법으로 정부에게 유산유도제를 사용할 수 있도록 문제를 개선할 것을 요구하였지만, 단 한번도 책임있는 답변을 듣지 못했습니다.

정부가 유산유도제를 도입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 정부는 필수의약품센터라는 기관을 통해 정식 허가를 받지 않더라도 환자의 치료접근권을 보장하기 위해 여러 약물들의 도입을 보장하고 있습니다. 이외에 코로나19 백신 처럼 정식 허가절차가 아니더라도 긴급 도입을 추진할 수도 있습니다. 제약회사의 허가신청 이외에도 다양한 방식의 도입이 가능합니다.

이번 진정서를 통해 국가인권위원회가 임신중지서비스를 안전하게 받을 권리가 있는 시민들의 건강권을 침해하고 있는 보건복지부와 식약처의 만행을 철저히 조사하여 진상을 밝혀주시기를 기대하겠습니다.

발언 3 : 김성이 (시민건강연구소)

2019년 4월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헌법불합치 판결에는 우리 헌법 제10조가 개인의 자기운명 결정권이 전제되는 인격권과 행복추구권 보장을 규정하고 있다고 명시하며, 이 자기운명결정권에는 임신과 출산에 관한 결정에서 여성의 특별한 희생을 강요당하지 않을 자유가 포함되어 있다고 지적하였습니다. 

따라서 낙태죄 폐지 판결의 후속 조치는 사실상 임부가 임신과 출산 여부에 대하여 전인적인 결정을 내릴 수 있고, 그 결정을 지원할 수 있도록 하는 포괄적인 사회적 제도를 구축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특히  임신과 출산 또는 임신중지에 대한 결정을 내리고, 그것을 이행함에 있어 합법적이고 안전하며 경제적으로 지불가능한 양질의 보건의료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것은 매우 중요한 조치입니다. 

그러나 현재까지도 임부에 대한 신체적, 사회적 보호는 임신을 유지하고 출산을 결정한 여성에게만 제공되고 있고, 임신을 중지하기로 결정한 여성에 대해서는 아무런 공적 개입도 없는 반쪽짜리의, 심각한 의료체계의 공백 상태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세계보건기구(WHO)와 세계산부인과학회(FIGO)는 합법적이고 안전한 임신중지는 여성의 건강과 인권을 보장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강조하며, 각 국가들이 임신중지를 필수의료서비스(essential healthcare service)로 보장할 것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임신중지가 허용된 많은 국가들은 국민건강보험으로 임신중지 의료비를 보장하거나, 공공의료시설에서 무상으로 임신중지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건강권의 관점에서 현재 한국의 임신중지에 관련한 의료서비스에 대해 평가하자면, 임신중지 수술을 할 수 있는 의료기관과 의료인을 찾기 어려운 이용가능성 문제, 건강보험 급여를 보장하지 않음으로서 발생하는 경제적 부담 문제, 임신중지 서비스의 제한이나 거부/ 차별적 대우같은 수용성 문제, 양질의 안전한 서비스 측면에서 모두 건강권 보장이 매우 불충분한 상황입니다.      

특히 건강보험 급여체계에 포함된다는 것은 단지 경제적 비용부담의 경감 차원만이 아니라, 나머지 임신중지 서비스의 접근성, 수용성, 질을 이미 국민들이 이용하고 있는 여타 보건의료서비스 수준으로 크게 개선시키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정부와 복지부는 건강보험 급여화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습니다. 

입법공백을 핑계로 들지만, 2018년 신설된 “국민건강보험 요양급여기준에 관한 규칙” 제1조 2항에 따르면, 보건복지부장관은 “의학적 타당성, 의료적 중대성, 치료효과성, 비용효과성, 환자의 비용부담 정도 및 사회적 편익 등을 고려하여” 요양급여 대상 여부를 결정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보건복지부장관이 임신중지서비스에 대한 급여결정의 책임자임이 명백한데도, 이 책임을 내던지고 있는 것입니다.

의료적 중대성과 환자의 비용부담의 어려움에 대해서는 정부산하 연구기관들의 많은 조사결과와 당사자 여성들의 수많은 보고가 존재합니다. 임신중지서비스를  안전한 의료서비스로 이용할 수 없는 상황은 일부 산부인과 병의원들이 온라인에서 비급여수가, 다시 말하면 부르는게 값인 수술 홍보를 통해 환자의 알 권리 보장 차원보다 필수의료서비스를 상업적 경쟁을 통해 구매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특히 청소년이나 장애여성, 이주여성 등 임신 관련 서비스 접근에 어려움이 있고, 비용부담이 커서 임신중지가 지연될 수 있는 취약집단의 고위험 임신중절 수술의 부담이 온전히 임신 여성에게 가중되는 상황입니다.

한국의 2021년 국민건강보험의 의료보장 적용인구는 5293만명으로 사실상 전국민을 아우르고 있으며, 의료보장 진료비는 105조를 넘을 만큼 국민들의 건강한 삶을 위한 큰 사회적 지출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 여성과 가족의 삶과 건강에서 매우 중요한 결정이자 사건인 임신과 출산 그리고 임신중지와 피임을 포괄하는 성재생산건강에 대한 제도적 불완전성은 우리  보건의료체계의 크나큰 결함일 뿐만 아니라, 국민의 건강권을 보장해야 하는 국가의 막대한 책임을 방기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임신중지를 결정하는 여성들의 건강권과 인권이 보호받을 수 있도록  국가인권위원회에서는 “국민건강보험 요양급여기준에 관한 규칙” 에 따라 지체없이 법령에 따른 급여대상 결정이 내려질 수 있도록 조처해주실 것을  강력히 요청합니다. 

■ 발언 4: 유랑 (한국성폭력상담소)

안녕하세요, 한국성폭력상담소의 유랑 활동가입니다.

제 또래인 2~30대의 여성들이 많이 이용하는 인터넷 커뮤니티를 가보면 임신을 했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며 불안해하는 글,임신중지 후기, 미프진 양도를 구한다는 글이 넘쳐납니다. 임신중지 수술 비용은 병원마다 천차만별에, 유산유도제를 공식적으로 구할 수 없는 상황에서 여성들이 임신중지에 대한 정보를 얻고자여러 키워드를 넣어 검색하는 장면을 쉽게 상상할 수 있습니다. 여성의 생애주기에 큰 영향을 미치는 임신과 출산에 대한 결정을 조각조각 흩어진 인터넷 정보를 모아 겨우 해나가는 것입니다.

헌법은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고 명시합니다. 행복추구권 조항은 모든 인간이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권리가 있다는 자기결정권을 포함합니다. 임신여부를 결정한다는 것은 내 몸에서 일어나는 일, 나의 삶, 운명을 결정하는 것과 같습니다. 자기결정권이 제대로 보장되려면, 임신중지를 할 때와 임신을 유지해 출산을 할 때 각각의 선택이 개인의 삶에 구체적으로 어떤 영향을 주는지에 대해 명확히 이해되어야 하고, 임신중지 또는 출산을 하는 방법 모두에 안전하고 쉽게 접근이 가능해야 합니다. 그러나 현실은 이 모든 선택지가 동등하게 고려되고 지원되는 것이 아니라 정상가족 제도에 포섭되는 출산만이 ‘허용’됩니다. 미등록 아동의 문제가 드러난 후, 재생산권을 근본적으로 보장하지 못하는 보호출산제 도입에는 박차가 가해지는 와중에 임신중지 권리 보장에 대한 논의진전은 보이지 않습니다. ‘낙태죄’가 폐지된 지 벌써 2년이 지났는데도 말이죠. 임신중지에 대한 건강보험 적용과 유산유도제 도입은 법 개정과 상관없이 의지를 가지면 진행시킬 수 있는 것임에도식약처와 복지부는 ‘입법공백’이라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안전을 담보할 수 없는 임신중지 약물이 비공식적으로 유통되고 있고 임신중지수술에 대해 병원마다 다른 비용을 제시하고 다른 정보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이런 정보에조차 접근할 수 없는 경우에는 결정이 계속 유보되어 임신중지 시 고려할 사항이 더 많아지거나 스스로 결정하지 않은 출산을 하게 되는 것으로까지이어지게 됩니다. 이는 명백한 자기결정권, 행복추구권, 건강권 침해입니다.

임신중지 권리보장에 대한 책임을 방기함으로써 인권을 침해하는 보건복지부와 식약처는 조속히임신중지에 대한 의료비 지원을 건강보험으로 보장하고 유산유도제 도입을 승인하십시오. 임신유지 여부를 결정하는데 필요한 정보와 상담.의료체계를 마련하십시오. 보건복지부와 식약처는 책임을 자각하고 이와 같이 성.재생산권을 보장하는 구체적인 조치를 시행하기 바랍니다.

 

 

복지부와 식약처의 임신중지 권리 보장 책임 방기로 야기된 권리 침해에 대한 국가인권위원회 진정서

[진정 이유]

2019년 4월 11일 헌법재판소는 형법 27장 ‘낙태의 죄’ 중 269조 1항 자기낙태죄와 270조 1항 의사낙태죄에 대하여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습니다. 또한 이 결정에 따라 헌법재판소가 설시한 개정입법 시한인 2020년 12월 31일이 경과함에 따라 해당 조항은 법적 효력을 상실한 상태입니다. 세계보건기구는 2022년 3월 8일 임신중지 가이드를 통해 임신중지의 전면적인 비범죄화를 강력히 권고하였으며, 안전한 임신중지를 넘어 ‘양질의’, ‘통합적인’ 임신중지 케어로 나아가야 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배경과 근거를 바탕으로 할 때, 보건복지부(이하 복지부)와 식품의약품안전처(이하 식약처)는 세계보건기구의 국제적 가이드와 헌법에 근거하여 온전히 보장되어야 할 자기결정권과 평등권, 건강권, 행복추구권을 위해 양질의 안전한 임신중지 지원을 위한 보건의료 체계를 마련하는 데에 적극적으로 힘을 기울여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낙태죄’의 효력이 상실된지 3년여가 되어가도록 실질적인 노력을 전혀 기울이지 않고 있기에, 복지부와 식약처의 자기결정권, 평등권, 건강권, 행복추구권 침해에 대한 진정서를 제출합니다. 

임신중지의 비범죄화에 따른 조치로서 자기결정권과 평등권, 건강권, 행복추구권을 온전히 보장할 수 있도록 복지부와 식약처는 다음과 같은 역할을 해야 합니다.

  • 국민건강보험을 통한 임신중지 의료비 지원 보장과 의료수가 지정
  • 전 세계 95개 국가에서 이미 안전하게 사용되고 있으며 세계보건기구의 필수의약품으로 지정되어 있는 유산유도제(미페프리스톤과 미소프로스톨의 콤비팩) 승인과 공급
  • 임신의 유지 여부와 지원에 대한 편견 없고 근거에 기반한 상담 체계의 마련과 정보 제공 시스템 마련
  • 임신, 임신중지, 출산, 피임, 성건강에 대한 종합적이고 포괄적인 지원 연계 체계 마련
  • 1차 의료기관부터 3차 의료기관까지 양질의 안전한 임신중지를 위한 보건의료 연계 체계 마련 및 각 지역에서 접근 가능한 보건의료 기관에 대한 정보 제공
  • 임신중지 관련 보건의료 현황에 대한 정례 실태조사와 지속적인 보완 추진 체계 마련

이 진정서에서는 특히 현재 가장 시급한 건강보험 비급여대상 적용과 유산유도제의 도입 지연이 계속해서 권리 침해를 야기하고 있다고 보고, 이에 대해 복지부와 식약처의 책임 이행을 통해 심각한 차별과 권리 침해를 시정할 것을 결정하여 주시기를 요청합니다. 

[진정 내용에 따른 근거]

  1. 임신중지에 대한 온전한 권리 보장이 헌법상 자기결정권 보장에 해당한다는 헌법재판소의 판단

2019년 헌법재판소 결정 중  헌법불합치 의견에서는 

(1) ‘낙태의 죄’ 조항이 여성의 자신의 존엄한 인격권을 바탕으로 자신의 생활영역을 자율적으로 형성해 나갈 권리를 침해한다고 보았으며

(2) 자기결정권이 보장되려면 임신한 여성이 임신 유지와 출산 여부에 관하여 전인적 결정을 하고 그 결정을 실행함에 있어서 자신을 둘러싼 사회적·경제적 상황 및 그 변경가능 여부를 파악하며, 국가의 임신·출산·육아 지원정책에 관한 정보를 수집하고, 주변의 상담과 조언을 얻어 숙고한 끝에, 만약 낙태하겠다고 결정한 경우 낙태 수술을 할 수 있는 병원을 찾아 검사를 거쳐 실제로 수술을 완료하기까지 필요한 기간이 충분히 보장되어야 한다고 판단하였습니다. 

또한, 

(3) 모자보건법이 정한 일정한 예외에 해당하지 않으면 모든 낙태가 전면적·일률적으로 범죄행위로 규율됨으로 인하여 낙태에 관한 상담이나 교육이 불가능하고, 낙태에 대한 정확한 정보가 충분히 제공될 수 없을뿐만 아니라 낙태 수술과정에서 의료사고나 후유증 등이 발생해도 법적 구제를 받기가 어려우며, 비싼 수술비를 감당하여야 하므로 미성년자나 저소득층 여성들이 적절한 시기에 수술을 받기 쉽지 않다는 점을 지적한 바 있습니다. 

한편, 재판관 3인의 단순위헌 의견에서는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임신한 여성이 임신의 유지 또는 종결에 관한 의사결정이 원칙적으로 임신기간 전체에 걸쳐 보장되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습니다.

이와 같은 헌법재판소의 결정 근거를 바탕으로 볼 때, ‘낙태죄’가 법적 실효를 상실한 지금 임신중지에 대한 온전한 권리 보장을 위해 보건의료 체계를 마련하는 일은 지난 역사에서의 권리 침해를 반복하지 않고, 자기결정권을 온전히 보장하기 위해 복지부와 식약처가 책임있게 추진해 나가야 할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 양질의 임신중지 지원 체계 마련에 대한 세계보건기구의  권고

세계보건기구는 2022년 3월 8일 발간한 임신중지 가이드(https://apps.who.int/iris/handle/10665/349316)에서 임신중지의 완전한 비범죄화와 함께 양질의 임신중지를 위한 지원 방향을 강조한 바 있습니다. 

이에 따라, 보건당국은 임신의 유지 여부에 대한 상담 지원부터 임신, 임신중지, 출산에 대한 지원이 포괄적으로 연계되도록 해야 하며, 특히 임신중지 지원에 있어 경제적인 부담이 없이 가까운 보건의료 기관에서 보건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연계하고, 임신중지의 전후 및 임신중지의 진행에 있어 자신에게 필요하고 잘 맞는 방법을 선택하여 정보와 안내를 받을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합니다. 이에, 건강보험을 통한 보장과 특히 임신 초기의 경우 유산유도제를 통해 편한 환경에서 임신중지를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체계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3. 복지부와 식약처의 책임 방기로 인한 권리 침해의 지속

이와 같은 근거가 충분히 마련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복지부와 식약처가 계속해서 책임을 방기하고 있는 동안, 여전히 임신중지를 고민하고 시행하는 많은 이들이 차별과 건강권, 평등권 침해의 현실을 겪고 있습니다. 

(1) 임신중지 관련 의료서비스의 제약, 거부, 과도한 진료비 청구로 인한 권리 침해

먼저, ‘낙태죄’의 법적 실효 만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많은 병원들이 모자보건법 상의 허용사유를 이유로 들어 관련 진료와 서비스의 제공을 제한, 또는 거부하거나 이를 빌미로 진료비를 과도하게 책정하는 등의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의료서비스를 이용하는 당사자의 입장에서는 먼저 찾아간 의료기관에서 이렇게 잘못된 정보의 제공과 거부, 제약 등을 경험하는 경우 다음 의료기관을 찾아가는 일 또한 위축되어 병원에서 차별적인 대우와 부당한 진료비 청구를 하더라도 이를 수용하게 됩니다. 이 과정 자체가 차별적이고 심각한 자기결정권과 평등권, 행복추구권의 침해이며, 나아가 건강권 침해로 이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환자가 임신중지의 전후 과정과 임신중지 관련 의료행위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얻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임신중지 후 필요한 건강 관리를 위해 다음 진료를 계획하거나, 다른 의료기관을 찾아가는 데에도 제약이 되기 때문입니다. ‘낙태죄’가 존속해온 오랜 역사에서 이러한 현실로 인해 후유증을 안고 지내온 여성들이 많았으며 현재도 지속되고 있는 바, 공식적이고 실질적인 보건의료 연계 체계의 구축과 지원 체계 마련을 통해 이를 반드시 시정해야 할 것입니다. 

(2) 건강보험 보장 제약으로 인한 권리 침해

현재는 모자보건법 제14조에 해당하는 경우 외에는 임신중지에 대한 건강보험 보장이 적용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모자보건법 제14조는 그 자체로 우생학적 이유에 근거하고 있으며, 법적 실효가 만료된 형법 조항에 따른 위법성 조각사유에 해당하는 것으로 계속해서 적용될 이유가 없고, 매우 제한적인 사유에 불과하여 양질의 안전한 임신중지에 대한 접근성을 제약하는 데에 매우 큰 영향을 미쳐왔습니다. 양질의 안전한 임신중지는 임신중지의 시기 뿐 아니라 한 사람의 생애주기에서 성·재생산 건강을 관리하고 유지하는 데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영향을 미치며, 성·재생산 건강은 그 자체로 전반적인 건강권에 유기적으로 연결된 바, 이를 방관하는 것은 건강권에 대한 심각한 침해라고 보아야 합니다. 

한편, 남성의 여성형 유방 수술의 경우 건강보험을 통해 의료비가 보장되는 반면, 양질의 시술과 사후 관리가 건강에 더욱 지속적인 영향을 미치는 임신중지의 경우 건강보험 적용이 되지 않고 있는 것은 평등권에 대한 침해에도 해당한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건강보험 보장에 대한 결정은 법 개정과 상관 없이 보건복지부 고시를 통해 시행할 수 있는 일인만큼 이를 책임있게 추진하지 않고 건강권과 평등권의 침해를 지속하고 있는 보건복지부의 행위가 반드시 시정되어야 합니다. 

(3) 유산유도제 도입 지연으로 인한 권리 침해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유산유도제는 세계보건기구가 지정한 필수핵심의약품에 해당하는 것으로, 1988년부터 사용이 시작되어 2023년 현재 전 세계 95개국에서 안전하게 사용되고 있습니다. 특히 초기 임신중지(임신 10주경까지)의 경우 미페프리스톤과 미소프로스톨을 함께 사용하는 경우 95~98%의 성공률을 보이며, 심각한 후유증 없이 의료기관에서의 처방을 통해 개인이 편안한 곳에서 복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전 세계적으로 약을 이용한 임신중지의 비율이 더욱 높아지고 있는 추세입니다. 

그럼에도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미소프로스톨은 의료인이 오프라벨(적응증 외 처방)로 사용하고 있으며, 미페프리스톤은 공식 도입이 되지 않아 의료기관에서조차 보다 양질의 안전한 약을 이용한 임신중지를 제공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미페프리스톤을 공식적으로 사용할 수 없어 미소프로스톨 단독 요법으로 시행하는 경우 두 약을 함께 사용하는 경우에 비해 성공률이 떨어지며 임신 기간이나 상태에 따라서는 약의 복용 이후 불완전 유산으로 수술을 해야 하는 경우가 발생합니다. 또 일부 의료기관에서는 메토트렉세이트 등 공식 유산유도제가 아닌 약을 사용하여 건강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실정입니다. 한편 이런 현실에서 여전히 온라인으로 약을 구매하는 경우 약의 성분이나 복용법, 사후관리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얻기 어려워 또 다른 건강권 침해로 이어지고 있기도 합니다. 전 세계적으로 이미 오랫동안 사용되어 온 안전한 유산유도제를 공식적으로 승인하지 않고 지연시키고 있는 복지부와 식약처의 행위는 건강권에 대한 침해일 뿐만 아니라 여성의 성·재생산 건강에 대한 국가 기관의 차별적 대우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유산유도제 도입 지연과 건강보험 보장 제약 따른 권리 침해의 세부 근거]

  1. 유산유도제의 필수의약품 지정 및 신속도입에 대한 책임 방기

헌법재판소가 형법상 낙태죄에 대한 헌법불합치 결정에서 제시한 개선입법 기한이 경과됨에 따라, 보건복지부와 식품의약품안전처(이하 식약처)가 관련 보도자료를 배포하였습니다. 배포된 보도자료에 따르면, 인공임신중절 의약품(유산유도제)이 현재 없으나 2021년 1월 1일부터 인공임신중절 의약품 도입이 가능해졌으며, 제약회사 등의 허가 신청이 있는 경우 식약처에서 유산유도제의 허가 심사를 신속하게 하겠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이후 현대약품은 영국의 라인파마와 판매·수입 계약을 맺고 유산유도제 미프지미소의 허가를 위해 식약처와 논의를 시작하였습니다. 2021년 2월 10일 허가 전 사전검토를 시작하였고, 7월 2일 미프지미소 허가를 신청하였습니다. 지난 보도자료에서 신속하게 허가를 심사하겠다고 밝혔지만, 식약처는 유산유도제의 허가심사를 500일 가까이 지연시켰습니다. 통상적으로 다른 약제들은 300일 이내에 심사를 마치는 것에 비해 매우 지체된 것입니다. 게다가 허가심사 대상인 유산유도제는 이미 30여년 전부터 외국에서 쓰이고 있으며, 한국 규제당국의 주요 참조국가를 포함하여 90개가 넘는 국가에서 정식 허가를 받았기 때문에 엄밀한 안전성·유효성에 관한 검토를 요구하는 대상 의약품도 아닙니다. 그로인해 식약처가 허가 심사를 의도적으로 지연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었으며, 2022년 국정감사에 많은 국회의원들이 유산유도제의 도입지연에 대한 질의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국정감사 과정에서 국무총리실이 작성한 ‘국정감사 컨닝페이퍼’가 폭로되었고, 컨닝페이퍼  현안 쟁점사항으로 유산유도제의 도입 관련 내용을 언급하고 있었습니다. 남인순 의원실이 밝힌 컨닝페이퍼의 내용에 따르면, 허가절차가 지연되고 있는 유산유도제에 대해 ‘식약처가 안정적 법 체계 하에서 허가하는게 가장 바람직한 판단’이라고 답변하도록 적혀있었습니다.

2023년 5월 4일 172명의 약사, 6월 21일 59명의 의사, 6월 26일 1625명의 시민들이 각각 유산유도제의 필수의약품 지정과 신속한 도입을 촉구하는 진정서를 식약처에  제출하였습니다. 현장에서 유산유도제의 필요성을 공감하는 보건의료인들과 실제 사용을 원하는 시민들이 필수의약품의 안정공급에 대한 의무를 가진 식약처에 의무를 다할 것을 요구하는 진정서였습니다. 유산유도제는 이미 2005년부터 세계보건기구(WHO)가 필수의약품으로 지정하고 접근성을 확보할 것을 권고하고 있으며, 미국, 영국, 중국, 일본을 포함하여 전세계 90여개 국가에서 정식 허가되어 사용하고 있는 약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식약처는 진정서 답변을 통해 유관부서간의 협의와 이해당사자 간 사회적 합의가 선행되어야 한다며 이를 거절하였습니다. 시민사회는 과거 보건복지부와 식약처가 유산유도제에 대해 신속한 도입을 약속했음에도 이를 지키지 않고 있으며, 국민들의 건강권 보장을 위한 책임있는 대처를 내놓지 않고 있음에 대해 비판하며 그동안 수차례 집회, 기자회견 및 성명서를 통해 문제를 개선할 것을 요구하였지만 어떠한 책임있는 답변도 내놓지 않고 있습니다.

정부는 수차례 진료에 필수적인 치료제에 대하여 긴급도입 등을 통해 의약품 접근권을 보장해 오고 있습니다. 그동안 희귀·필수의약품센터(이하 센터)는 환자의 치료접근권을 보장하기 위해 약 80개 약물을 긴급도입하였으며,  정식 허가를 받은 의약품이 아니더라도 환자와 의료진의 요구 등으로 의약품을 도입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구매 가능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유산유도제의 해외약품 가격 조사를 요청하였으나 센터는 유산유도제는 모자보건법 등의 법 개정이 완료된 후에 구입이 가능하다고 답변하였습니다. 이 또한 유산유도제  도입에 대한 책임을 국회의 입법절차에 미룬 것입니다.

  • 소결

한국에서 원하지 않는 임신을 중단할지 고민하는 많은 여성들은 임신중지를 선택할 수 있는  체계적인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국제적으로 안전하고 효과적이라고 인정받고 있는 유산유도제(미페프리스톤과 미소프로스톨의 콤비)에 대한 접근은 여전히 보장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유산유도제인 미페프리스톤과 미소프로스톨은 하루속히 필수의약품으로 등재되어야 하며, 안전하고 품질이 보장된 의약품을 사용할 수 있도록 행정적 조치를 취해야 합니다.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임신중지를 결정하고자 하는 여성들의 건강권과 인권이 보호받을 수 있도록 유산유도제 접근을 가로막고 있는 보건복지부와 식약처를 철저히 조사하여 진상을 밝혀주시기를 강력히 요청합니다. 

  1. 임신중지 서비스에 대한 건강보험 급여 대상 결정 요청

2019년 4월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헌법불합치 판결에는 우리 헌법 제10조가 개인의 자기운명 결정권이 전제되는 인격권과 행복추구권 보장을 규정하고 있다고 명시하며, 이 자기운명결정권에는 임신과 출산에 관한 결정에서 여성의 특별한 희생을 강요당하지 않을 자유가 포함되어 있다고 지적하였습니다. 아울러 헌법의 같은 조항에 따르면, 국가는 태아의 생명 보호에 대한 의무도 가지는 바, 태아에 대한 국가의 보호의무에는 출산을 방해하는 요소를 제거하는 것 뿐만 아니라, 여성이 임신 중 또는 출산 후 겪게 되는 어려움을 도와주는 것까지 포함되어야 한다고 판시하였습니다. 국가의 태아의 생명보호 책임은 임부의 신체적, 사회적 보호를 포함할때 실질적인 의미를 가진다는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낙태죄 폐지 판결의 후속 조치는 사실상 임부가 임신과 출산 여부에 대하여 전인적인 결정을 내릴 수 있고, 그 결정을 지원할 수 있도록 하는 포괄적인 사회적 제도를 구축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여성이 임신 사실을 인지하고, 임신/출산/육아지원정책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수집/활용하며, 임신과 출산 또는 임신중지에 대한 결정을 내리고, 그것을 이행함에 있어 합법적이고 안전하며 경제적으로 지불가능한 양질의 보건의료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현재까지도 임부에 대한 신체적, 사회적 보호는 임신을 유지하고 출산을 결정한 여성에게만 제공되고 있고, 임신을 중지하기로 결정한 여성에 대해서는 아무런 공적 개입도 없는 반쪽짜리의, 심각한 의료체계의 공백 상태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합법적이고 안전한 임신중지는 여성의 건강과 인권을 보장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강조하며, 각 국가들이 임신중지를 필수의료서비스(essential healthcare service)로 보장할 것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또한 세계산부인과학회(FIGO)는 안전하지 않은 임신중지는 만성적인 공중 보건 문제이자 인권 문제라고 규정하며, 안전한 임신중지에 접근할 권리는 보편적 건강보장에 필수적으로 포함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렇지만 현재 한국은 임신중지에 관련한 의료서비스 이용에서 안전하게 임신중지 수술을 할 수 있는 의료기관과 의료인을 찾기 어려운 접근성(accessibility)의 문제가 있으며, 또한 임신중지 서비스에 대한 건강보험 급여를 보장하지 않음으로서 발생하는 경제적 부담의 적정성(affordability) 문제가 매우 큰 상황입니다.      

 

2018년 신설된 “국민건강보험 요양급여기준에 관한 규칙” 제1조 2항에 따르면, 보건복지부장관은 “의학적 타당성, 의료적 중대성, 치료효과성, 비용효과성, 환자의 비용부담 정도 및 사회적 편익 등을 고려하여” 요양급여 대상 여부를 결정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의료적 중대성과 환자의 비용부담 정도에 한해 정부 산하 연구기관들의 조사를 살펴보면,  2020년에만 약 3만 2천 건의 임신중지가 이루어졌고, 인공임신중지 비용은 ‘16~’17년에 주로 40~80만원 사이에 몰려 있었던데 반해 ‘20~’21년에는 80만원 이상을 지불했다는 응답자가 과반이 넘었습니다

더욱이 임신중지서비스를  안전한 의료서비스로 이용할 수 없는 상황은 일부 산부인과 병의원들로 하여금 온라인에서 비급여수가 고시를 통해 임신중절 수술을 홍보하면서 환자의 알 권리 보장 차원보다 병의원의 상업적 경쟁을 부추기게 만듭니다. 사실상 의료기관에서 부르는게 값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에  청소년이나 장애여성, 이주여성 등 임신 관련 서비스 접근에 어려움이 있고, 비용부담이 커서 임신중지가 지연될 수 있는 취약집단의 고위험 임신중절 수술의 부담을 온전히 임신 여성에게 가중시키고 있습니다.

한국의 2021년 국민건강보험의 의료보장 적용인구는 5293만명으로 사실상 전국민을 아우르고 있으며, 의료보장 진료비는 105조를 넘을 만큼 국민들의 건강한 삶을 위한 큰 사회적 지출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 여성과 가족의 삶과 건강에서 매우 중요한 결정이자 사건인 임신과 출산, 임신중지와 피임을 포괄하는 성재생산건강에 대한 제도적 불비는 보건의료체계의 크나큰 결함일 뿐만 아니라, 국민의 건강권을 보장해야 하는 국가의 막대한 책임을 방기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 소결

국가의 공적 개입과 관리에 의하여 임신중지 서비스가 필요한 모든 사람들에게 합법적이고 안전하게 제공되고, 건강보험 요양급여 대상으로 포함되어 경제적으로 부담가능한 수준에서 이용할 수 있게 되는 것은 개인의 인격권 및 존엄과 가치, 건강권을 보장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우리 사회가 아이를 낳을 권리와 낳지 않을 권리 그리고 키울 권리를 함께 보장하는 재생산 정의(reproductive justice)와 이어지는 것입니다. 임신중지를 결정하는 여성들의 인권이 보호받을 수 있도록  국가인권위원회에서는 “국민건강보험 요양급여기준에 관한 규칙” 제1조 2항에 따라 급여대상의 적정성 여부를 판단하고, 지체없이 법령에 따른 급여대상 결정이 내려질 수 있도록 조처해주실 것을  강력히 요청합니다. 

 

< 참고자료 >

진정인과 시민사회단체들이 배포한 성명 및 기자회견, 집회, 캠페인, 언론기고

 

  • 모두의안전한임신중지를위한권리보장네트워크(이하 모임넷), 2022년 8월 17일, [집회] “비범죄화부터 권리보장까지, 오로지 직진!” 출범식
  • 모임넷, 2022년 9월 5일~12월 31일 [캠페인]임신중지 건강보험 적용, 유산유도제 도입촉구 “일해라 복지부!” 서명운동
  • 모임넷, 2022년 9월 28일, [기자회견] 9/28 안전하고 합법적인 임신중지를 위한 국제행동의 날 맞이, 임신중지 건강보험 적용 및 유산유도제 도입 촉구 기자회견 [집회] 보건복지부 앞으로 달려가는 권리보장 버스 & 보건복지부 면담
  • 모임넷, 2022년 10월 12일, [논평] 임신중지는 건강권과 평등권의 문제다. 건강보험 적용, 유산유도제 도입에 관한 복지부와 식약처의 책임을 분명히 하라
  • 모임넷, 2022년 11월 25일, [성명] “세계 여성폭력 추방의 날을 맞이하여, 다시 한번 우리의 요구를 전한다”
  • 모임넷, 2022년 12월 16일, [성명] 유산유도제 도입 지연과 신청 철회, 식약처의 책임이다. 보건당국에 안전한 임신중지를 위한 빠른 대책을 요구한다
  • 모임넷, 2022년 12월 28일, [기자회견] “정부는 더 이상 기업과 국회 핑계 말고 유산유도제 도입, 건강보험 적용 확대로 재생산 권리 보장하라!”
  • 모임넷, 2023년 4월 9일, [집회] ‘낙태죄’ 폐지 2주년 4.9 공동행동 “우리는 더 이상 비밀이고 싶지 않다. 국가는 임신중지를 건강권으로 보장하라”
  • 모임넷, 2023년 5월 18일~6월 15일 [캠페인] 미프진 필수 의약품 지정 촉구 민원액션
  • 모임넷, 2023년 [오마이뉴스 연속기고] 모두를 위한 유산도유제 도입을! 
    • 5월31일, 성폭력 피해자에게도 재생산권 보장이 필요하다
    • 6월  7일, ‘낳을 권리’와 ‘낳지 않을 권리’는 다르지 않다
    • 6월14일, 장애여성의 임신중지, ‘권리’의 차원에서 접근해야
    • 6월20일, 유산유도제 도입, 임신중지 건보 적용은 그 시작일 뿐이다
    • 6월28일, 모두를 위한 유산유도제 도입, 식약처는 응답하라.
  • 모임넷, 2023년 [한겨레21 연속기고] 유산유도제 도입 촉구
    • 5월31일, 일본도 도입한 유산유도제, 한국선 안돼… 도대체 언제까지?
    • 6월12일, 유산유도제는 위험하다? 코로나19가 그 생각을 바꿨다
  • 모임넷, 2023년 6월 26일 [기자회견] 유산유도제 도입, 필수의약품 지정 촉구 다수인민원 제출 기자회견 “안전한 임신중지 지금 당장!”
  • 모임넷, 2023년 7월 21일 [성명] 우리에게 필요한 건 익명 출산이 아니라 권리 보장이다. ‘보호출산제’ 추진 논의를 중단하고 안전한 임신중지와 임신·출산, 양육 지원 체계를 강화하라.
  • 모임넷, 2023년 7월 26일, [기자회견] 유산유도제 필수의약품 지정 촉구! 이것이 우리의 ‘사회적 합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