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전히 실질적인 임신중지 권리보장을 위해 필수적인 법과 제도의 변화는 진척된게 전혀없어
많은 여성들이 병원에서 임신중지를 거절 당하고, 비밀 게시글과 비밀 상담으로 정보를 찾으며,
신속한 임신중지를 안전하게 할 수 있는 시기를 놓치고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안전한 임신중지 권리보장 책임을 방기한 보건복지부를 규탄하고
정부에 국정과제 이행을 촉구하였어요
📌일시 : 2026년 4월 11일(토) 오후 4시-6시 반
📌장소 : 탑골공원
📌주최.주관 : 모두의안전한임신중지를위한권리보장네트워크
낙태죄가 폐지되어도 살인죄로 처벌 받는 작금의 현실을 보면서, 성차별적 세상에서 법의 본질은 약자들을 처벌하는 것에 있는지 되물어보게 됩니다. 3월 4일, 서울중앙지법은 후기 임신중지를 이유로 살인죄로 기소된 여성에게 징역 3년과 집행유예 5년을 선고했습니다. 임신중지 수술 사실이 당사자의 SNS를 통해 퍼지면서 논란이 되자 보건복지부가 수사 의뢰를 한 것입니다. 임신중지가 절실한 여성에게 자원과 안전한 환경을 제공해야 할 복지부가 먼저 살인죄 수사의뢰를 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만큼 분노스럽습니다. 세계의 극우 세력들이 임신중지를 포함해 성적, 재생산권을 파괴하려는 정세에서, 여기 모인 우리는 내란 수괴를 몰아내고 약자들의 권리가 신장된, 차별 없는 평등한 세상에 대한 희망을 보여줬습니다. 그 투쟁으로 탄생할 수 있었던 정부는 공백을 채우려는 노력 없이, 또다시 임신중절을 이유로 살인죄를 적용하여 처벌하려는 성차별적 관행을 따르고 있습니다.
임신중지가 비범죄화된지 7년이라는 시간 동안, 정부는 책임 회피로 일관하며 임신중지를 여성 개인의 책임으로만 남겨왔습니다. 원치 않는 임신을 초래하고 책임지지 않는 성차별적 남성문화와, 불안정한 여성을 이용해 돈 버는 사람들은 묵인하면서, 임신중지가 절실한 여성들을 사각지대에 방치하고, 수평적 동의 역량을 기르기 위한 포괄적 성교육은 외면해왔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임신뿐만 아니라, 출산, 양육, 관계를 유지하는 감정과 돌봄, 이 모든 것들이 ‘여성의 역할’이라고 여기는 성차별적 사회입니다. 부여된 성별 역할을 거부하면 여성 개인이 이기적이라며 도덕적 결함으로 낙인찍고 처벌하려는 모습을 우리는 얼마나 많이 봐왔던가요. 규범 바깥 여성에 대한 처벌과 낙인은 성차별적 사회를 유지하는 원리입니다. 임신중지가 필요한 여성들을 사각지대에 방치하는 것도 마땅히 보장해야 할 권리를 국가가 회피하는 것과 다름 없기에 성차별입니다.
활동 현장에서 임신중지가 필요한 이들을 드물지 않게 만나게 됩니다. 성매매 여성들은 구매자에 의해 원치 않는 임신을 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성매매 과정에서 관계의 조건을 협상하기엔 성매매 여성과 성구매자의 관계가 매우 불균형하며, 구매자에 의한 스텔싱 범죄는 흔히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임신중지가 여성 개인의 몫으로 남겨져 있는 상황은 성매매 여성들을 더 열악한 상황으로 밀어넣습니다. 한편으로 출산을 원하는 성매매 여성은 ‘음란한’ 여성이기 때문에 자격이 없는 것처럼 여겨지고, 많은 여성들은 출산과 양육에 필요한 자원을 갖기 힘든 환경에 있습니다. 성매매 여성을 처벌하고 임신중지를 개인이 감당하게 만드는 사회는, 사회적 약자들을 고립시켜 폭력적이고 취약한 상황에 더욱 노출시킨다는 공통점을 가집니다.
정부와 복지부는 임신중지 권리보장 요구를 외면할수록, 당신들이 임신중지 혹은 출산을 희망하는 여성과 태아의 삶도 더 열악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출산할 수 있는 환경은 당사자가 안전하다고 느끼는 공간에서 만들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실 안전한 임신중지는 출산에 필수적입니다. 우리는 국가가 정한 협소한 조건 없이, 우리의 몸을 수단으로 사용하려는 강제 없이, 우리의 몸의 일들을 스스로 결정하고 그에 따른 건강, 안전, 재생산권을 보장받길 원합니다. 그래서 임신중지와 연결된 보건의료체계, 상담, 건강보험, 유산유도제 도입이 필요합니다. 정부와 복지부와 식약처가 7년동안 방치하면서 낙태죄 대신 살인죄로 또 처벌을 의뢰하는 동안, 우리는 우리의 요구를 더 탄탄하게 뒷받침할 힘을 만들어 왔습니다. 지금 이 집회에서 나오는 이야기로부터 비범죄화의 공백을 채워나갈 수 있길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