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씨의 나라, 미인공화국을 만드는 사람들
천박한 강남문화로 위화감만 조성하는 엽기적 지역 미인선발대회
비나리
지역마다 축제가 활성화되고 이 축제의 꽃이라고 대충 사람들이 불러대는 것이 미인선발대회다. 얼마나 많은지 한 번 찾아봤더니, 많기는 엄청나게 많다. 약간 길어도 한번 죽 늘어놔보자.
경기도부터 보자.
부천시 복사꽃 아가씨
고양시 고양 꽃아가씨
시흥시 시흥포도아가씨
이천시 설봉아가씨
평택시 평택아가씨
가평군 가평아가씨 6개다.
강원도는 홍천군의 무궁화아가씨, 철원군의 철원쌀아가씨가 있다.
경상북도
경주시 버섯아가씨, 선화공주... 2개나 있다
김천시 포도아가씨
안동시 안동한우아가씨
영천시 포도아가씨
영양군 고추아가씨
영덕군 복사꽃아가씨
성주군 수박참외아가씨
충청남도
천안시 능소아가씨
보령시 보령아가씨
금산군 인삼홍보사절
연기군 복사꽃아가씨
충청남도
청원군 약수아가씨
보은군 대추아가씨
옥천군 포도아가씨
영동군 감아가씨
괴산군 청결고추아가씨
단양군... 여기는 3개나 된다. 철쭉여왕, 평강공주 (이건 자유총연맹에서 한다), 마늘아가씨
증평 충북인삼아가씨
전라남도
담양군 딸기아가씨
곡성군 효녀심청
구례군 지리산녀
보성군 차아가씨
무안군 양파아가씨
영광군 굴비아가씨
신안군 머드아가씨
전라북도
군산시 벚꽃아가씨
남원시 춘향
장수군 논개
임실군 사선녀
순창군 고추장아가씨
부안군 미스변산
이게 대충 2002년에 지방자치단체 지원을 받은 지방의 미인대회들이다. 여기에 이것보다 더 많고 다양한 미인대회가 정부의 지원없이 자체적으로 개최된다. 대충 이름들도 비슷비슷하고, 하여간 축제와 곁들여서 미인대회를 엄청나게 치루어댄다.
고양 꽃아가씨 선발기준을 잠깐 보자.
* 고양 꽃아가씨- 심사기준(총점 100점): 얼굴전체 20, 목과 가슴 20(가슴의 크기, 선, 위치 등에 유의), 하체 20)배는 나오지 않았는가, 히프의 선모양이 처지지 않았는가, 다리의 선이 곧아야하며 탄력성이 있어야 한다), 화훼상식 20, 홍보사절 자격 20.
고양시의 꽃아가씨 선발기준이 전체 미인대회 중에서는 가장 엽기적이다.
우리나라의 문화가 얼마나 천박하고 아무 내용을 가지고 있지 않은가에 대해서 생각해보면서 지방미인대회에 대해서 잠깐 생각해봤다.
현재 지방 미인대회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지자체들은 지역경제활성화라는 명분을 가지고 있다. 그야말로 천박한 시대를 건너가고 있다는 생각을 지우기 어렵다. 삐에르 부르듀의 ‘상징적 자본’이라는 복잡다단한 개념 같은 걸 사용하지 않더라도, 도대체 미인대회와 지역경제와의 관계와 같은 논쟁 같은 걸 해야 한다는 상황 자체가 끔찍하다. 게다가 지역의 미인대회에 대해서 지자체의 지원금이라는 항목을 걸어서 비판해야 한다는 상황 자체가 끔찍하기 짝이 없다.
▲미스코리아 대회를 패러디해서 여성의 상품화와 외모 지상주의를 배격한 안티미스코리아대회 ©대자보
문화가 경쟁력이라고 잘도 떠들어대는 그 잘난 지역에서 미인대회 같은 걸로 문화 경쟁력을 만든다는 발상에 대해서 정말 천박한 한 시대를 건너가고 있다고 밖에는 생각할 수가 없다.
1. 천박한 사회
가난한 사람도 같이 살 수 있는 사회를 꿈꾼다.
내가 그리워하는 사회는 진리가 강물처럼 흐르는 그런 멋진 나라도 아니고,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아름다운 나라도 아니다. 실제로는 진리가 강물교가 만들어내는 위선도 싫고, 정의강물교가 강조하는 지적 허영도 싫다. 그저 가난해도 죽음으로 내몰리지 않는 그 정도의 여유를 가지고 있는 사회 정도를 꿈꾼다.
그런 면에서 보면 우리나라는 지옥과 비슷하다. 가난하면 죽는다. 경제적으로 죽는 것이 아니라 문화적으로나 정서적으로 그리고 실질적으로 주위에서 내버려두지를 않는다. 우리나라보다 더 국민소득이 높은 나라에서도 이런 일은 잘 벌어지지 않지만, 우리나라보다 훨씬 못사는 곳이라고 해서 그렇게 못사는 사람들을 달달 볶지는 않는다. 요즘은 잘 쓰지 않는 표현이지만, 천민자본주의가 만들어낸 지옥 같은 곳에서 살고 있다는 생각을 종종 할 때가 있다.
▲미인공화국 신드롬 속에 성형괴물을 양산해 내는 것은 아닌가? © 인터넷 합성 이미지
마찬가지 관점에서 못생기면 - 도대체 뭐가 예쁘고 못생겼다는 건지 사실 잘 모르겠지만 - 도저히 살 수 없도록 만드는게 또 이 나라이다. 정신의 풍성함과 포용력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보기가 어렵다. 이것... very korean, 대단히 한국적인 현상이다. 그래서 동북아 3국 중에서 우리나라의 성형수술이 경쟁력으로는 단연 최고라고 한다. 성형수술 많이 해서 나라 튼튼해질까? 성형수술을 많이 해서 기술이 늘은 건지, 성형수술 먹고 살자고 성형을 부추키는 건지 인과관계가 흔들릴 정도로, 하여간 내버려두지 않는 사회를 살고 있다.
사회적 포용력과 다양성, 한 마디로 꽝이다.
한국의 혼이라는 표현을 쓸 수 있다면, 뿌리부터 천박으로 물들고 썩어있는 것이 한국의 혼이라고 할 수 있다.
2. 위화감
지방의 미인선발대회는 지방의 자존심과 문화를 세우는 길이 아니라 TV가 전파해준 서울의 썩은 영혼이 전파되는 통로라고 생각된다. 농업 문제 때문에 농촌에 자주 내려가고, 귀농한 사람들의 집에서 잠을 자는 경우가 많다. 사실 같이 앉아서 TV를 보는 일이 벌어지면 민망하다. TV가 뿌려대는 강남 문화를 보면서 아이들이 무슨 생각을 할까라고 잠깐 생각해보면 머리가 아득해진다. 그들이야말로 이상한 공화국의 외톨이들이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미스코리아가 중앙을 지배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지방의 미인선발대회는 작은 분소처럼 천박을 흩뿌린다. 그 사이에 문화적 완충지대라고는 없다.
그리고 난 이 사람들이 겪어야 할 위화감이 싫다. 자기 땅에서 자기 농사짓고 사는 사람들이 부당하게 느껴야 할 문화적 위화감이 싫다.
농촌지역에만 그런 일이 벌어지는 것은 아니다. 영등포 한 구석에서 고등학교를 나왔지만, 연립주택으로 가득 찬 서울의 빈민 지역 어느 곳이나 그런 위화감들은 슬프게 재생산된다. 부모의 가난 때문이 아니라 사회가 가지는 문화적 천박함으로 인하여 그렇게 슬프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이 더 슬픈 일들이 벌어진다.
3. 문화는 사회의 일이다
르네상스, 다시 르네상스에 대해서 생각을 해본다. 피렌체의 작은 지역에서 일어난 문예부흥이 가지고 있는 정신에서 아직도 건질 것이 있을까? 신으로부터 인간을 해방시킨다는 그 르네상스가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잘은 모르겠다. 그러나 어쨌든 수 백년 동안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농노들이 자신도 인간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과정이 르네상스의 과정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언제나 문화는 사회의 일이다. 그래서 천박한 문화에 대해서는 사실은 모두들 공범이 되는 셈이다. 미인대회 하나 없애는 것이 뭐가 그렇게 어려운 일이라고, 거기에 또 지방경제 활성화라는 구구한 이유를 대는 걸 허용해야하는 사회인지 모르겠다.
불과 30년 전만 해도 그야말로 첩을 두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았던 사회였다는 것을 상기한다면, 문화 구석구석 물들어 있는 압축성장이 남겨준 천박함을 털어내는 것이 그렇게 불가능하다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 논설위원
* 필자는 <초록정치연대 www.greens.or.kr> 정책실장입니다.